평상놀이 4 - 둘이 마주앉아서



  평상에 둘이 마주앉는다. 볕과 바람이 알맞게 포근한 날, 둘은 평상에 앉아서 조그마한 장난감을 만지작거린다. 다만, 아이들이 만지작거리는 장난감은 장기알 같은 녀석에다가 쇠자석인데, 이것들을 장기판을 펼쳐 놀거나 둥글자석에 붙이면서 놀지는 않는다. 장기판도 둥글자석도 어디론지 사라졌다. 아무튼 빨래가 잘 마르고 바람이 보드랍다. 이런 날 평상놀이는 얼마나 홀가분하면서 상큼할까. 4347.10.1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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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순이 14. 돌콩을 까자 (2014.9.29.)



  마을 들녘에서 돌콩을 줍는다. 아무도 안 심은 돌콩이지만,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서 해마다 잔뜩 열린다. 돌콩을 줍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모두 늙고 힘든데다가 여기까지 쳐다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마을 할매와 할배가 손수 심은 콩을 훑는 일로도 바쁘니 돌콩까지 줍지는 않는다. 아이와 함께 자전거마실을 하면서 주운 돌콩을 집으로 가져와서 톡톡 꼬투리를 벗긴다. 우리 집 살림순이는 한 번 두 번 하면서 이내 익숙하게 손을 놀린다. 그렇지만 콩이 톡톡 튀기면서 멀리 굴러가기도 한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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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눈빛 64. 날마다 베풀고 베풀지



  짭짤한 바닷바람을 마시면서 자라는 후박나무는 겨울에도 짙푸른 잎사귀입니다. 소나무와 잣나무뿐 아니라 동백나무와 후박나무도 늘푸른나무입니다. 가시나무와 아왜나무도 늘푸른나무입니다. 서울이나 경기도 언저리에서는 늘푸른나무를 찾아보기 어려울 수 있으나, 시골에서는 곳곳에서 늘푸른나무를 만납니다.


  그런데, 늘푸른나무라고 해서 잎사귀 하나가 오래오래 살지는 않아요. 늘푸른나무에서도 가랑잎이 집니다. 다만, 가을에 가랑잎이 지는 다른 나무처럼 한꺼번에 모든 잎이 지지는 않아요. 한여름부터 늦가을 사이에 묵은 잎이 천천히 노랗게 물들면서 툭툭 떨어집니다. 늘푸른나무는 ‘여름가랑잎’을 낸다고 할까요.


  한국말사전에는 ‘가랑잎’이라는 낱말만 나오고 ‘여름가랑잎’과 ‘가을가랑잎’이라는 낱말은 안 나옵니다. 말을 살피는 학자나 나무를 헤아리는 학자가 아직 이런 낱말을 짓지 못한 탓일 수 있는 한편, 시골사람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학자가 아직 모르는 탓일 수 있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언제나 ‘사진을 찍는 바로 그곳’에 있어야 합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글을 쓰는 바로 그곳’이나 ‘그림을 그리는 바로 그곳’에 있어야 제대로 느낌을 살립니다. 그런데,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바로 그곳’에 없었어도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요. 왜냐하면, ‘바로 그곳’에 있던 사진가 한 사람이 사진을 찍었다면, ‘바로 그곳’에 없었어도 사진을 보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글이나 그림을 빚을 수 있습니다.


  사진만큼은 글이나 그림을 보면서 찍지 못합니다. ‘바로 그곳’에다가 ‘바로 오늘 이때’에 찍는 사진이기에,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은 언제나 온몸으로 부대끼면서 바라보고 알아야 합니다.


  온몸을 움직여서 삶을 함께 맞아들일 때에 찍는 사진입니다. 온몸을 써서 삶을 살갗으로 느낄 때에 찍는 사진입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언제나 새롭게 바라볼 수 있기에 새롭게 배울 수 있습니다. 새롭게 바라보며 새롭게 배우는 사진가는 새롭게 생각을 지어 새롭게 이야기를 엮을 수 있습니다.


  숲은 날마다 새로운 모습을 베풉니다. 하늘과 땅은 날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달과 별과 해는 날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우리가 눈여겨보면 새로운 모습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날마다 새로운 모습이요, 우리 집 아이들이나 이웃집 어른들도 날마다 새로운 모습이기에, 이러한 모습을 알아차린다면 사진은 언제나 새로운 모습을 담는 새로운 노래가 됩니다.


  날마다 달라지는 모습은 날마다 베푸는 선물입니다. 날마다 달라지는 모습은 날마다 새로 태어나는 숨결입니다. 4347.10.1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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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지어 즐겁게 살다



  아이린 하스 님이 빚은 이쁘장한 그림책 《꿈의 배 매기호》(비룡소,2004)가 있습니다. 이 그림책을 보면, 일고여덟 살 즈음 되는 듯한 아이가 저보다 서너 살 밑인 동생을 살뜰히 돌보면서 함께 노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그림책에서 주인공이 되는 가시내는 ‘내가 모는 내 나룻배’를 한 척 갖고 싶습니다. 그래서 내가 모는 배를 한 척 갖고 싶다는 꿈을 키우면서 날마다 즐겁게 노래합니다. 이러던 어느 날, 그림책 주인공인 가시내는 참말 ‘내 배’를 얻습니다. 아마 꿈속이었을 테지요. 그런데, 내 배를 얻은 가시내는 ‘내 배’를 쓱쓱싹싹 깨끗이 치웁니다. 청소부터 해요. 그러고는 도시락을 장만하고, 동생을 불러서 함께 바다를 가릅니다. 함께 도시락을 먹고, 씩씩하게 바다를 가르다가, 그만 거센 비바람을 만나요. 이때에도 일고여덟 살 즈음 큰아이는 꿋꿋하게 배를 몰아 비바람을 헤쳐 나갑니다. 마지막으로는 어린 동생을 잘 토닥이고 달래면서 잠을 재우는데 바이올린을 켜고 자장노래를 불러 주어요.


  그림책에 나오는 어린 동생은 하루 내내 누나 손길을 받습니다. 어린 동생은 한결같이 누나 손길을 포근하게 받습니다. 어린 누나는 저보다 어린 동생을 살뜰히 아끼면서 내내 빙그레 웃습니다.


  어린 누나는 이처럼 따사로운 웃음과 보드라운 손길을 어디에서 배웠을까요? 아마 집에서 배웠겠지요. 아이 어머니와 아버지가 여느 때에 따사로우면서 보드라운 몸짓으로 삶을 가꾸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겠지요. 어버이한테서 사랑을 즐겁게 물려받아, 이 사랑을 맨 먼저 제 동생한테 베풉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책을 좋아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책을 읽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림책 《꿈의 배 매기호》에는 무척 깊고 너른 삶이 깃들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그림책 얼거리를 다시 돌아보면, 이 그림책 주인공인 가시내는 ‘별님’한테 ‘이루고 싶은 꿈’을 말합니다. 입으로 말하고 마음속으로 빕니다. 아주 오랫동안 말하고 빌었으리라 느껴요. 더욱이, 아주 오랫동안 말하고 비는 동안 즐겁게 기다렸구나 싶어요. 이러다가 비로소 어느 아침을 ‘새롭게 맞이’하면서 ‘내 배’를 만날 수 있어요.


  아이는 스스로 지은 꿈에 따라서 하루를 아주 즐겁고 신나게 놉니다. 아이는 스스로 지은 사랑에 따라서 하루를 아주 따사로우면서 포근하게 누립니다. 아이는 스스로 즐거우면서 신나는 마음이 되었기에, 어린 동생을 아주 아끼고 깊이 사랑하면서 신나게 함께 놉니다. 즐거움과 신나는 숨결이 함께 있으니 저절로 노래가 흐르고 악기를 켤 수 있습니다. 밥 한 그릇을 이웃이나 동무하고 나누듯이 동생하고 기꺼이 나눕니다. 동생을 먼저 재우고 뒤따라 함께 잠듭니다.


  그러니까, 그림책 《꿈의 배 매기호》는 ‘꿈을 짓는 삶은 언제나 사랑스러우며 아름답다’는 줄거리를 아주 멋지게 그린 작품이로구나 싶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넋이라 저마다 다른 책을 즐길 텐데, 이러한 그림책을 한번 들여다볼 수 있다면, 아이와 어른이 함께 지을 꿈과 하루와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기운을 얻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책을 덮고 우리 집 아이를 바라봅니다. 책을 꽂고 내 모습을 들여다봅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듯이 우리 집 아이도 사랑스러운 숨결로 하루를 짓곤 합니다. 나 또한 내 하루를 사랑스러운 숨결로 지을 때가 있습니다.


  꿈을 짓기에 삶을 짓고, 삶을 짓기에 하루를 짓습니다. 꿈으로 삶과 하루를 지으니 사랑을 지을 수 있고, 사랑을 짓는 사람은 노래와 춤을 지으면서, 웃음과 이야기를 지어요.


  예부터 어느 나라 어느 겨레에서든 옛이야기가 무척 많이 흐르는 까닭은 어느 곳에서든 사람들이 스스로 삶을 짓고 꿈과 사랑을 지었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아이와 나누는 이야기는 언제나 꿈과 사랑으로 짓습니다. 이웃하고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는 삶을 지을 때처럼 늘 즐겁게 짓습니다.


  그런데,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는 그저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뿐일까요? 큰아이는 작은아이를 안 아낄까요? 일고여덟 살짜리 아이는 동생을 사랑하거나 보살필 줄 모를까요?


  예부터 모든 아이들은 동생을 아꼈습니다. 우리 집 동생도 아끼고, 이웃집 동생도 아낍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회에서는 ‘아낄 동생’을 만나기 어려워요. 집에서는 아이가 혼자이기 일쑤입니다. 학교는 일찍부터 입시지옥으로 흐릅니다. 학교 바깥은 학원이기 일쑤입니다. 마을 놀이터가 사라졌습니다. 골목은 자가용으로 꽉 차서 놀 빈틈이 없습니다. 오늘날 아이들은 기껏해야 피시방에서 인터넷게임을 하거나 손전화로 온갖 게임을 하는데, 아이들이 하는 게임은 ‘동무나 이웃을 아끼는 삶’을 보여주지 않아요. 아이들이 하는 게임은 ‘적을 죽이거나 때려잡는 짓’만 되풀이하도록 이끕니다.


  아이들이 동생을 아낄 줄 모른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오늘날 사회가 바로 아이들을 바보로 만든다고 느낍니다. 더욱이, 오늘날 사회는 남이 아닌 우리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사회가 이루어져 아이들이 입시지옥과 게임폭력에 길든 지 고작 서른 해 즈음입니다. 백 해도 안 된 뒤틀린 사회 얼거리 때문에 수많은 아이들이 괴롭고, 아이들뿐 아니라 어버이도 고달픕니다.


  아이와 함께 아름답게 문학을 누리고 싶은 어른이라면, 아름다운 문학을 짓는 일과 함께 아름다운 사회를 이루도록 힘을 쏟아야지 싶습니다. 우리 동네와 마을을 아름답게 가꾸어야지 싶습니다. 내 보금자리를 사랑스레 보듬어야지 싶습니다. 나무를 심어서 돌보고, 숲이 푸르게 우거지도록 보살피며, 골목이나 고샅에 빈터가 생기도록 해야지 싶습니다. 입시지옥과 시험문제와 학교성적에 매이지 않는 어버이와 아이가 되어야지 싶습니다. 더 많은 책을 읽히지 말고, 아름다운 책을 아이와 함께 읽어야지 싶습니다.


  아이들이 꿈을 지어 즐겁게 놀 수 있는 곳에서 어른들은 사랑을 지어 서로 어깨동무를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꿈을 지어 즐겁게 놀도록 이끄는 그림책이란, 바로 어른들도 스스로 삶을 지어 사랑을 꽃피우도록 돕는 어여쁜 이야기꾸러미입니다. 4347.10.15.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어린이문학 비평)


..


아이가 읽는 그림책은 <나무의 아기들>입니다 ^^

이 그림책도 아주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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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이 212. 2014.10.11. 이불 쌓아 책놀이



  자는방에서 이불과 베개를 쌓고 놀던 두 아이가 그림책을 가지고 와서 함께 읽는다. 이불과 베개로 마련한 높직하고 폭신한 걸상에 앉아서 그림책을 누리는 셈이다. 무르익는 가을빛이 문살을 거쳐 들어오고, 두 아이는 천천히 그림책을 펼치면서 읽으며 놀다가, 이내 다른 곳으로 가서 새롭게 논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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