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처럼



  언제나처럼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들이 아직 잠을 깨지 않을 무렵 글을 쓰고는, 아이들이 일어난 뒤 천천히 밥을 짓고 국을 끓이며 풀을 뜯는다. 밥상을 차리고 아이들을 부른다. 아이들은 저희끼리 개구지게 논다. 밥을 먹고 밥상을 치우며 설거지를 한다. 노는 아이들이 밥그릇을 그대로 두면 밥상을 한참 뒤에나 치울 수 있다. 여름 막바지 햇볕이 후끈후끈 달아오른다. 늦여름이어도 아침마다 햇볕이 뜨겁다. 그래도 늦여름이기에 해가 기울 무렵부터는 산들산들 시원한 바람이 분다.


  언제나처럼 맞이하는 아침이요 언제나처럼 차려서 먹는 밥이다. 그렇지만, 어느 하루도 똑같은 밥이나 이야기는 없다. 늘 다르게 맞이하는 하루요 삶이다. 아이들은 날마다 자라고, 어버이도 날마다 자란다. 아이와 어버이는 서로서로 마주보고 사랑하면서 날마다 자란다. 날마다 자라지 않는다면 삶에 노래가 흐르지 못한다. 매미가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늦여름을 돌아본다. 4347.8.16.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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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69] 풀과 농약과 아이들

― 왜 시골에 아이들이 없을까



  풀을 싫어하는 시골이 되면 아이들이 사라집니다. 아이들이 사라지는 시골이 되면 농약이 찾아옵니다. 아이들을 시골로 다시 데려오려면 풀을 사랑해야 합니다. 농약을 멀리할 수 있는 삶이 되어야 비로소 아이들이 시골에서 살아갈 수 있어요.


  오늘날 한국에서는 어느 시골을 가든 아이들이 없습니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어느 시골을 가든 늙은 할매와 할배만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에서는 어느 시골을 가든 온통 농약바람입니다. 어느 시골에서나 끔찍하게 비닐을 쓰고 태우며 파묻습니다. 참말 오늘날에는 어느 시골이든 풀을 끔찍하게 싫어해요. 이런 곳에서는 아이들이 느긋하게 자랄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앞날을 보여줍니다. 아이들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보여줍니다. 언제나 온통 농약투성이로 지내면서 비닐로 온 밭뙈기를 덮다가 끝없이 태우는 시골에는 어떤 앞날이 있을까요. 이런 시골에 아이들이 얼마쯤 남는다 하더라도, 무슨 빛을 가슴에 품을 수 있을까요.


  도시에서 지내는 어버이는 아이들한테 ‘유기농’을 먹이려고 애씁니다. 유기농이란 무엇일까요? 일본 한자말 ‘有機農’은 똥오줌을 거름으로 삼아 흙을 일구는 일을 가리킵니다. ‘유기농’을 하려면 농약을 쓰면 안 되고, 비닐을 쓰면 안 됩니다. 여기에 항생제나 비료를 모두 안 쓸 때에 ‘유기농’이 됩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에서는 거의 모든 시골이 농약과 비닐과 비료와 항생제 범벅입니다. 오늘날 여느 시골에서 거두는 곡식이나 열매는, 오늘날 여느 도시에서 여느 어버이가 ‘먹이고 싶지 않은 곡식이나 열매’입니다.


  아이들이 도시에만 몰립니다. 그러나 도시에 몰리는 아이들은 놀지 못합니다. 놀 곳이 없고 놀 틈이 없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도시에 가두기만 할 뿐,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면서 씩씩하게 자라도록 북돋우지 않습니다. 풀이 자라지 못하는 도시는 빈터가 없고 쉼터가 없으며 놀이터도 일터도 마땅하지 않습니다.


  풀이 자라는 곳에서 모든 목숨이 싱그럽게 살아갑니다. 풀이 자라야 풀벌레와 개구리가 깃듭니다. 풀이 자라야 나무가 튼튼히 섭니다. 풀이 자라야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포근합니다. 풀이 자라야 풀잎을 꺾어 풀피리를 불고, 풀꽃을 따서 풀꽃반지를 낍니다.


  풀이 없는 곳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풀이 없는 데에서 아이들은 어떤 마음이 될까요. 아이들이 맑고 밝게 자라면서 착하고 아름답게 사랑하기를 바란다면, 시골은 풀을 아끼면서 돌볼 줄 아는 터로 거듭나야 합니다. 아이들이 시골에서 까르르 웃고 노래하기를 바란다면, 앞으로 시골에서는 농약을 걷어치워야 합니다. 4347.8.1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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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4-08-16 0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척박한 땅에 제일 먼저 풀씨가 날아와 자리를 잡아야 생명 있는 것들이 깃들어 살아가니까 풀이 잘 자라는 시골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에 충분히 공감되네요!

숲노래 2014-08-15 05:50   좋아요 0 | URL
아스팔트를 깔아 자동차가 다닐 길이 아닌,
풀이 돋으며 아이들이 뛰놀 터가 되도록
우리 나라가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수박 한 통



  읍내에 갈 일이 없다가, 자동차를 얻어타고 읍내에 간다. 집으로 돌아올 적에도 자동차를 얻어탄다. 오가는 길에 자동차를 얻어타다니 참 고맙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읍내 가게에 들러 수박을 한 통 산다. 읍내까지 자전거로 다녀오지 못하기도 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수박을 장만해서 들고 들어오기도 힘들어, 올여름에는 집에서 수박을 먹은 일이 아주 드물다. 고흥집에 나들이를 오신 손님이 들고 오셨을 때에만 아이들이 수박맛을 볼 수 있었다.


  졸린 아이들이 졸음을 꾹 참고 수박노래를 부른다. 나는 아이들이 수박을 먹고 잠들기를 바라지 않는다. 물이 가득한 열매를 먹으면 밤에 자다가 자꾸 쉬가 마려울 테니까. 곁님이 수박을 썰어 아이들한테 준다. 아이들이 달게 잘 먹는다. 그러다 아이들은 수박을 다 못 먹고 남긴다. 우리 아이들은 ‘수박을 남길 아이’가 아닌데, 참말 배가 부르고 졸리면서 힘드니, 더 못 먹는다.


  아이들을 재운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아이들이 그토록 수박노래를 불렀는데, 오늘 밤은 잘 자고 나서 이튿날 주려 하기보다는, 저녁이라도 한두 조각씩 썰어서 준 뒤, 이튿날 더 먹자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 저녁에 이렇게 못 했다. 못 하고 나서 깨닫는다.


  내가 어릴 적에는 어떠했을까.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떠했을까. 나도 어릴 적에 수박노래를 신나게 불렀을 텐데, 어머니는 이녁 아이한테 어떻게 하셨을까. 잘 모르겠으나, 어머니는 한숨을 폭 쉬다가 수박을 주셨지 싶다. 그러니까 그렇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어버이라면, 아이가 밤에 오줌이 마렵다 하면 벌떡 일어나서 쉬를 누이면 되고, 아이가 이불에 쉬를 누면 이불을 빨면 된다. 오늘 저녁 일을 다시금 깊이 돌아본다. 4347.8.1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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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한테 재미있으면 다 돼



  소꿉놀이를 한다면서 벼리랑 보라가 작은 이불을 들고 마루로 나와서 펼친다. 바닥에 이불을 펼치고 온갖 장난감을 늘어놓는다. 장난감으로 놀다가, 어느새 종이접기책을 꺼내어 종이를 접는다. 그림책도 읽는다. 아이들은 갖고 논 뒤 제자리에 갖다 놓지 않는다. 그러니, 아이들이 어디에서건 한번 놀면 온통 뒤죽박죽 발을 디딜 틈이 없다. 발을 디딜 틈이 없이 놀면서 이불까지 바닥에 깔아 놓으니, 이불을 밟고 미끄러지기 일쑤이다.


  그래 그래 다 좋아. 너희한테 재미있으면 다 돼. 그런데 말야, 발을 디딜 틈은 좀 마련하면서 놀지 않겠니? 4347.8.1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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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위험할까



  일곱 살 사름벼리는 높은 데에 잘 올라간다. 아마 나도 곁님도 어릴 적에 높은 데에 곧잘 올라가며 놀았으리라 생각한다. 무섭다는 생각도 없이 척척 올라간다. 떨어지면 다친다는 생각이 없이 올라간다. 아슬아슬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재미있고, 바람맛이 새롭다고 느낀다.


  둘레에서는 아이들이 ‘위험하지 않느냐’ 하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도 안 위험하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위험하다는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사름벼리가 돌쟁이일 무렵 아버지 사진기를 목에 걸거나 두 손에 쥐고 놀 적에도 ‘위험하다 느낀 적이 없’다. 아이는 아버지 사진기를 안 떨어뜨리고 잘 놀았다. 둘레에서는 ‘비싼 사진기 깨질라 위험하다고 걱정’해 주지만, ‘그런 걱정이 걱정을 낳으니, 걱정을 하지 말고 즐겁게 지켜보거나 고개를 돌려 주십사’ 하고 말했다.


  아이들이 즐겁게 놀기를 바란다면 아이들이 즐겁게 논다. 아이들이 씩씩하게 뛰놀기를 바란다면 아이들은 씩씩하게 뛰논다. 어버이가 바라보는 대로 아이들은 무럭무럭 큰다. 어버이가 사랑하는 대로 아이들은 야무지게 자란다. 어버이가 따사롭게 어루만지고 보듬는 결대로 아이들은 맑고 밝게 꿈을 꾼다. 4347.8.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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