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한 통



  읍내에 갈 일이 없다가, 자동차를 얻어타고 읍내에 간다. 집으로 돌아올 적에도 자동차를 얻어탄다. 오가는 길에 자동차를 얻어타다니 참 고맙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읍내 가게에 들러 수박을 한 통 산다. 읍내까지 자전거로 다녀오지 못하기도 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수박을 장만해서 들고 들어오기도 힘들어, 올여름에는 집에서 수박을 먹은 일이 아주 드물다. 고흥집에 나들이를 오신 손님이 들고 오셨을 때에만 아이들이 수박맛을 볼 수 있었다.


  졸린 아이들이 졸음을 꾹 참고 수박노래를 부른다. 나는 아이들이 수박을 먹고 잠들기를 바라지 않는다. 물이 가득한 열매를 먹으면 밤에 자다가 자꾸 쉬가 마려울 테니까. 곁님이 수박을 썰어 아이들한테 준다. 아이들이 달게 잘 먹는다. 그러다 아이들은 수박을 다 못 먹고 남긴다. 우리 아이들은 ‘수박을 남길 아이’가 아닌데, 참말 배가 부르고 졸리면서 힘드니, 더 못 먹는다.


  아이들을 재운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아이들이 그토록 수박노래를 불렀는데, 오늘 밤은 잘 자고 나서 이튿날 주려 하기보다는, 저녁이라도 한두 조각씩 썰어서 준 뒤, 이튿날 더 먹자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 저녁에 이렇게 못 했다. 못 하고 나서 깨닫는다.


  내가 어릴 적에는 어떠했을까.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떠했을까. 나도 어릴 적에 수박노래를 신나게 불렀을 텐데, 어머니는 이녁 아이한테 어떻게 하셨을까. 잘 모르겠으나, 어머니는 한숨을 폭 쉬다가 수박을 주셨지 싶다. 그러니까 그렇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어버이라면, 아이가 밤에 오줌이 마렵다 하면 벌떡 일어나서 쉬를 누이면 되고, 아이가 이불에 쉬를 누면 이불을 빨면 된다. 오늘 저녁 일을 다시금 깊이 돌아본다. 4347.8.14.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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