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받은 옷만 자꾸자꾸



  사름벼리가 입는 치마는 모두 ‘선물받은 옷’이다. 아버지가 선물해 주고 어머니가 선물해 주며 이웃이 선물해 준 옷이다. 어느 옷이든 모두 선물받은 옷인데, 요즈막에 거의 한 가지 치마만 입으려 한다. 이제껏 ‘선물받은 옷’ 가운데 입기에 가장 나으면서 무늬가 가장 마음에 드는가 보다. 땀으로 젖은 옷을 저녁에 갈아입힌 뒤 빨아서 아침에 마르면, 이튿날 다시 이 치마만 입겠노라 한다. 사름벼리야, 다른 치마가 서운해 하지 않을까? 한 벌씩 돌아가며 날마다 갈아입어도 되지 않을까? 하기는, 더운 여름날이라 하루에 두세 차례 갈아입기도 하는데, 여러 가지 치마도 골고루 입지 않으련? 그러나 아이 스스로 가장 입고 싶은 치마를 입을밖에 없다. 4347.8.22.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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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멋진 도움이라면



  한국말사전을 새로 쓰는 일을 아버지를 두었기에, 아이들은 아버지하고 놀 겨를이 모자랄 때가 있다. 낱말풀이 하나를 새롭게 붙이고 보기글 쓰임새를 새롭게 달려고 할 적에 그야말로 온힘을 쏟아야 하니까, 한두 시간뿐 아니라 서너 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여느 사람이 보기에는 ‘고작 낱말 하나 풀이하는 일’이지만, 낱말 하나를 제대로 바라보면서 올바로 다루어 슬기롭게 풀이하는 일에 여러 날이 걸리기 일쑤이다. 어느 낱말은 몇 해에 걸쳐 비로소 낱말풀이를 마무리짓기도 하니까, 제대로 잘 갈고닦는 한국말사전을 빚는 일이란 어찌 보면 하염없다고까지 할 수 있다.


  오늘도 아버지는 낱말뜻을 살피면서 풀이말과 보기글을 붙이면서 참 기나긴 하루를 보낸다. 두 아이는 저희끼리 잘 논다. 낱말풀이와 보기글을 새로 지으면서 기운이 쪼옥 빠지니, 오늘은 밥도 제대로 차리지 못한다. 기운이 너무 빠져서 한참 자리에 드러눕기까지 했다.


  기운을 차려서 함께 놀기를 기다려 주는 아이들이란 언제나 가장 멋진 도움이라고 느낀다. 늘 곁에서 노래를 부르고 웃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운다. 아이들은 사랑으로 어버이를 돕고, 어버이는 꿈으로 아이들을 키운다. 4347.8.20.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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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한국말사전 2 (2014.8.17.)



  이틀째에 ‘한국말사전’ 그림을 마무리짓는다. 이 그림은 부엌에서 밥을 지을 적에 도마질을 하는 눈높이에 붙이기로 한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지으면서 늘 ‘한국말사전’이라는 이름을 바라볼 생각이다. 내가 앞으로 걸어갈 길을 즐겁게 되새기려는 뜻이다. 내 마음속에 이야기가 곱게 드리우기를 바라는 뜻이다. 이틀째 그리는 그림은 생각보다 일찍 끝난다. 옆에서 지켜보는 네 살 산들보라가 “나 이거 좋아. 나 나뭇잎 좋아.” 하고 말한다. 그래서, 그림 위쪽에 나뭇잎을 잔뜩 그려 넣었다. 온갖 빛깔로.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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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이서 함께 보는 영화



  시골 고흥에는 극장이 없기도 해서 영화를 함께 보러 나들이를 갈 수 없기도 하지만, 요즈음 한국 극장에 걸리는 영화치고 일곱 살 어린이와 네 살 어린이가 함께 가서 볼 만한 작품이 있는지 잘 모르기도 한다. 사랑스러우면서 아름다운 영화란, 맑으면서 밝은 영화란, 착하면서 참다운 영화란, 이야기가 흐르면서 노래가 넘실거리는 영화란, 한국에서 얼마나 될까. 따사로이 어깨동무를 하면서 오순도순 마을살이를 꿈꾸는 영화를 빚어서 선보이려는 영화감독과 영화배우는 얼마나 있을까.


  시골집에서는 셈틀을 켜서 넷이서 함께 영화를 본다. 두 아이와 함께 보면서 어버이로서 마음속에 이야기꽃이 피어나도록 북돋울 만한 영화를 고른다. 두 아이뿐 아니라 두 어버이 가슴속에 이야기빛이 자라서 삶에 무지개가 드리운 뒤, 차근차근 새로운 길을 열도록 이끌 만한 영화를 살핀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어버이는 어떤 영화를 아이와 함께 볼 수 있을까? 이 나라 방송국에서 흐르는 온갖 연속극이나 운동경기와 연예인 풀그림 들은 얼마나 아이한테 보여줄 만할까? 이 나라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흐르는 온갖 대중노래는 얼마나 아이한테 들려줄 만할까? 일본영화 〈별이 된 소년〉을 넷이서 함께 보기 앞서 생각에 잠긴다. 4347.8.1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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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한국말사전 1 (2014.8.16.)



  새로운 한국말사전을 한창 쓴다. 출판사에서 새 원고를 받아들일는지 손사래를 칠는지 모르지만, 한자말을 한국말로 번역하자는 이야기를 담은 글꾸러미를 마무리지어서 보냈다. 모든 길이 사랑스레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그림을 그리기로 한다. 널찍한 나무판을 평상에 깐다. 늦여름 땡볕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등줄기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그림을 그린다. ‘한국말사전’이 곱게 피어나기를 바라는 뜻을 그림에 담기로 한다. 다섯 글자를 쓰고 난 뒤, 글자마다 별꽃으로 둘러싼다. 사마귀, 제비, 나비, 잠자리를 하늘빛으로 그린다. 이 다음으로 무엇을 그릴까 하고 생각하는데, 문득 후박나무 가랑잎이 그림종이에 톡 떨어진다. 그렇구나. 끄트머리가 벌레를 먹은 후박잎을 그린다. 후박잎 안쪽을 채우고 나서 사랑(하트)을 그린다. 사랑 곁에는 숲(별)을 그린다. 새로운 한국말사전이 한국말을 슬기롭게 여는 첫 밑돌이 되기를 바라면서 ‘하나(1)’를 그린다. 두 글자에 노란 꽃과 빨간 꽃을 그린다. 무지개 물결이 치고 별비가 내리는 데까지 그리는데, 뒤꼍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 뭔가? 다시 그림을 그리려는데 아무래도 사람 소리이다. 누가 우리 집에 함부로 들어왔나 싶어 가 보니, 우리 집과 돌울타리 사이로 고추밭을 일구는 면소재지 아저씨가 우리 집 돌울타리를 따라 돋은 무화과나무를 낫으로 벤다. 뭐 하는 짓인가? “뭐하세요?” 한 마디 여쭌다. 우리 집 돌울타리가 무화과나무 때문에 아래쪽으로 무너져 떨어졌단다. 무화과나무 때문이 아니거든요? 예전부터 다 바닥에 있던 돌이거든요? 짜증을 내지 말자고 생각하며, 울타리에서 그 아저씨네 밭으로 고개를 내민 무화과나무를 모조리 손으로 꺾는다. 무화과나무는 벤들 자른들 죽지 않는다. 외려 더 줄기가 힘차게 뻗는다. 저희 집 나무도 아니면서 함부로 낫으로 베는 이런 사람이 우리 집이든 뒤꼍이든 함부로 못 들어오기를 바라면서 맨손으로 척척 무화과를 꺾는다. 무화과한테 마음속으로 말한다. ‘얘들아, 괜찮아. 그런데 이웃집 밭으로 고개를 내밀지 말고 우리 집 쪽으로 가지를 뻗어야지. 우리 집 쪽으로 가지를 뻗으면 너희는 모두 살 수 있어. 사나운 곳에 가지 말자. 예쁜 곳에서 아름답게 자라기를 바란다.’ 무화과나무 쉰 그루 남짓 꺾었다. 그러나 우리 집 쪽으로 가지를 뻗은 아이들은 모두 살렸다. 마음이 아파 그림을 마무리짓지 않고 이튿날 마무리짓기로 한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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