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그림놀이] 한국말사전 1 (2014.8.16.)



  새로운 한국말사전을 한창 쓴다. 출판사에서 새 원고를 받아들일는지 손사래를 칠는지 모르지만, 한자말을 한국말로 번역하자는 이야기를 담은 글꾸러미를 마무리지어서 보냈다. 모든 길이 사랑스레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그림을 그리기로 한다. 널찍한 나무판을 평상에 깐다. 늦여름 땡볕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등줄기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그림을 그린다. ‘한국말사전’이 곱게 피어나기를 바라는 뜻을 그림에 담기로 한다. 다섯 글자를 쓰고 난 뒤, 글자마다 별꽃으로 둘러싼다. 사마귀, 제비, 나비, 잠자리를 하늘빛으로 그린다. 이 다음으로 무엇을 그릴까 하고 생각하는데, 문득 후박나무 가랑잎이 그림종이에 톡 떨어진다. 그렇구나. 끄트머리가 벌레를 먹은 후박잎을 그린다. 후박잎 안쪽을 채우고 나서 사랑(하트)을 그린다. 사랑 곁에는 숲(별)을 그린다. 새로운 한국말사전이 한국말을 슬기롭게 여는 첫 밑돌이 되기를 바라면서 ‘하나(1)’를 그린다. 두 글자에 노란 꽃과 빨간 꽃을 그린다. 무지개 물결이 치고 별비가 내리는 데까지 그리는데, 뒤꼍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 뭔가? 다시 그림을 그리려는데 아무래도 사람 소리이다. 누가 우리 집에 함부로 들어왔나 싶어 가 보니, 우리 집과 돌울타리 사이로 고추밭을 일구는 면소재지 아저씨가 우리 집 돌울타리를 따라 돋은 무화과나무를 낫으로 벤다. 뭐 하는 짓인가? “뭐하세요?” 한 마디 여쭌다. 우리 집 돌울타리가 무화과나무 때문에 아래쪽으로 무너져 떨어졌단다. 무화과나무 때문이 아니거든요? 예전부터 다 바닥에 있던 돌이거든요? 짜증을 내지 말자고 생각하며, 울타리에서 그 아저씨네 밭으로 고개를 내민 무화과나무를 모조리 손으로 꺾는다. 무화과나무는 벤들 자른들 죽지 않는다. 외려 더 줄기가 힘차게 뻗는다. 저희 집 나무도 아니면서 함부로 낫으로 베는 이런 사람이 우리 집이든 뒤꼍이든 함부로 못 들어오기를 바라면서 맨손으로 척척 무화과를 꺾는다. 무화과한테 마음속으로 말한다. ‘얘들아, 괜찮아. 그런데 이웃집 밭으로 고개를 내밀지 말고 우리 집 쪽으로 가지를 뻗어야지. 우리 집 쪽으로 가지를 뻗으면 너희는 모두 살 수 있어. 사나운 곳에 가지 말자. 예쁜 곳에서 아름답게 자라기를 바란다.’ 무화과나무 쉰 그루 남짓 꺾었다. 그러나 우리 집 쪽으로 가지를 뻗은 아이들은 모두 살렸다. 마음이 아파 그림을 마무리짓지 않고 이튿날 마무리짓기로 한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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