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 숨을 쉬지 못할 적에



  권정생이라는 할배가 숨을 거둔 때가 2007년 봄이다. 나는 2003년 여름부터 2007년 이월까지 이오덕 님 글과 책을 갈무리하는 일을 맡았고, 이동안 경상도 안동에 몇 차례 찾아가서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이때 권정생 할배한테서 들은 말 가운데 늘 가슴에 남는 대목은 “나 대신 아파 해 달라”이다. 권정생 할배는 옆구리에 구멍을 내어 끼운 노란 고무호스를 보여주었다. 오줌을 이렇게 빼내야 한다면서, 이 고무호스를 아침저녁으로 갈아끼우는데 참으로 아프다고 했다. 이런 일을 마흔 해나 하며 살자니 아주 힘들다고 했다.


  그런데 이 말을 찬찬히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때에나 이제에나 거의 없지 싶다. 권정생 할배가 손님들한테 자주 들려준 말, “나 대신 아파 해 달라”를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얼마나 될는지 궁금하다.


  나는 코로 숨을 잘 못 쉰다. 때때로 코가 잘 뚫려서 숨을 그럭저럭 잘 쉬기도 하지만, 입을 꾹 닫고 지내자면 숨쉬기가 갑갑하기 일쑤이다. 어느덧 마흔 해를 이렇게 산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로 접어들면 그야말로 숨을 쉬는 일이 고단하다. 도무지 숨을 쉴 수 없어 코를 훌쩍이거나 풀지만, 아무리 풀고 풀어도 콧물은 끝없이 나온다. 콧물이 나올 뿐 아니라 코가 꽉 막힌다. 나중에는 골이 아프고 온몸을 비틀어 용을 쓰지만 이도 저도 하지 못한다. 밤새 코를 풀고 다시 풀기를 여러 시간 하면 아주 깊은 밤에 겨우 한쪽 코가 살짝 뚫려 가늘게 숨을 쉴 수 있다. 이때에 비로소 잠이 든다.


  한 해 내내 숨쉬기가 힘겨운 나날이다 보니, 냄새와 맛을 잘 느끼지 못하고, 웬만한 일에는 무디거나 무덤덤하게 지내자고 여기곤 한다. 숨을 한 차례 쉬는 일보다 대수로운 일이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늘 막히고 갑갑하던 코가 처음으로 뚫린 때는 군대에서이다. 스물한 살 나이에 비로소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시골이라기보다 두멧자락에서 스물여섯 달을 보내야 했는데, 군대에서는 숨을 쉬는 걱정이 없었다. 다만, 군대에서도 한겨울이나 한여름은 괜찮았으나 봄과 가을은 죽을 노릇이었다. 그래도,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는 코가 확 트인다고 깨달았다. 예부터 몸이 나쁜 이들이 시골로 가서 맑은 바람과 밝은 햇볕을 머금으면서 싱그러운 물과 꽃내음과 나무노래를 들으면서 몸을 되살리려 했다는 이야기를 아주 잘 느꼈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몸이니, 군대라는 데에도 안 가야 했다. 신체검사를 맡은 군의관은 나더러 어떻게 군대에 가려 하느냐며 거꾸로 나한테 따졌다. 그래서 신체검사를 받던 때 군의관더러, 그렇게 잘 알면 그렇게 검사 결과가 나온 대로 하십쇼 하고 말했는데 면제가 아닌 현역을 주었다. 군대를 안 갔다면 내 오늘이 어떤 모습이었을는지 모르겠는데, 군의관이 부정을 저질러 준 탓에 나는 ‘두멧시골’이라는 터전을 새롭게 바라보면서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튼, 군대를 마치고 도시로 돌아오니 다시 괴로운 나날이 이어진다. 도무지 숨을 쉴 수 없었다. 참말 다들 어떻게 이런 도시에서 같은 바람을 마시면서 살는지 아리송했다. 그렇다고 섣불리 도시를 떠나지도 못했다. 시골에 아는 사람이 없고, 밑돈도 없었으니까.


  숨을 쉬기 몹시 어려운 몸이기에 ‘몸이 아픈 사람’을 볼 때면 새삼스러운 생각이 들곤 한다. 몸이 아플 적에는 작게 다쳤건 크게 다쳤건 똑같이 아프다. 더 아프거나 덜 아픈 일이란 없다. 그런데 나는 마음속으로 늘 이렇게 생각한다. ‘자네는 숨을 쉴 수 있잖아? 숨을 못 쉬니?’


  숨은 쉬더라도 숨통이 안 붙은만 못하다 싶은 삶도 있으리라 느낀다. 그런데, 숨을 제대로 쉬기 어려워 골골대야 할 적에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못 한다. 잠을 자지도 밥을 먹지도, 그리고 숨을 쉬지도 못한다. 앉지도 서지도 눕지도 못한다. 참으로 어정쩡하게 코를 부여잡고 산다.


  코가 없으면 입으로 숨쉬면 된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다문 십 분만 입으로 숨을 쉬어 보라고, 아니 일 분만 입으로 숨을 쉬라고 말해 주고 싶다. 입으로도 숨을 쉴 수야 있겠지. 그런데 입으로 숨을 쉬면 곧 목이 막힌다. 목이 말라서 재채기가 끝없이 나온다. 재채기가 나오다가 나중에는 피가 나오고, 입으로 더는 숨을 쉴 수 없다.


  우리 몸은 왜 밥을 먹어야 할까. 우리 몸은 왜 숨을 쉬어야 할까. 우리 몸은 왜 물을 받아들여야 할까. 어릴 적부터, 아주 어릴 적부터 숨쉬기가 몹시 힘들어 날마다 괴로운 나날을 보내야 하다 보니, 참말 나는 어릴 적부터 ‘밥·숨·물’이 왜 있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했다. 밥도 숨도 물도 없는 몸으로는 살 수 없는가. 넋이 깃드는 몸은 오롯이 홀가분할 수 없는가. 스물다섯 살 무렵이던가, 권정생 할배가 쓴 《하느님의 눈물》이라는 동화책에서 토끼가 풀잎이 아닌 이슬과 바람만 먹으면서 살고 싶다고 하느님한테 눈물로 이야기하는 대목을 읽었는데, 참말 나는 토끼와 같은 마음이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게다가 이슬과 바람조차도 없이 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어릴 적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꼭 한 가지를 느낀다. 숨을 제대로 쉬기 벅차서 몸은 가없이 힘들고 괴롭지만, 내 넋은 몸과 달리 참으로 고요하다. 아프기 때문에 배운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나, 왜냐하면 안 아파도 얼마든지 배우기 때문인데, 숨을 제대로 못 쉬는 아픈 몸으로 넋과 마음을 늘 새삼스레 되돌아볼 수 있다. 4347.10.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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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rilob 2015-04-04 12:03   좋아요 0 | URL
저도 코가 막혀 거의 잠을 못자요

garilob 2015-04-04 12:03   좋아요 0 | URL
글에 공감이 합니다
 

[시골살이 일기 74] 조용히 지나가는 시골

― 가을에 하늘과 들을 함께 바라보기



  하늘이 트인 곳에서 살면 트인 하늘을 봅니다. 하늘이 막힌 곳에서 살면 막힌 하늘을 봅니다. 바람이 싱그러이 부는 곳에서 살면 싱그러운 바람을 마십니다. 바람이 매캐한 곳에서 살면 매캐한 바람을 마십니다. 하늘이 탁 트이고 들이 곧게 열린 시골길을 두 아이와 함께 자전거로 달립니다. 천천히 달리면서 천천히 노래합니다. 처음 이 시골길을 달릴 적에는 노래를 부를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 달리자니 몸이 퍽 힘들었어요. 이제 나는 예전보다 나이를 더 먹었고 아이들은 예전보다 훨씬 무게가 나가는데, 외려 예전보다 가볍게 자전거를 달릴 뿐 아니라, 자전거를 몰면서 노래까지 스스럼없이 부릅니다. 아이들은 샛자전거와 수레에 앉아서 아버지와 함께 노래를 부릅니다.


  도시에서 지낼 때에는 으레 아이와 함께 골목마실을 다녔습니다. 도시에서는 골목이 조용히 아이와 거닐 만한 데라고 느꼈습니다. 조용한 골목에서 꽃을 만나고 바람을 마시며, 언덕받이 골목동네에서 비로소 탁 트인 하늘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노래를 부르며 다니지 못했어요. 좁은 골목을 거닐면서 노래를 부르면 이웃집에 소리가 퍼지는데, 노랫소리를 반기지 않을 사람들이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시골에서는 집에서도 마당에서도 길에서도 곧잘 노래를 부릅니다. 아니, 늘 노래를 부릅니다. 오늘날 시골에는 사람이 참으로 없기에 노래를 불러도 될 만하다고 여길 수 있겠지만, 이보다 노래가 저절로 솟습니다. 내 마음을 하늘처럼 열고, 내 생각을 들처럼 보듬으며, 내 넋을 아이들과 함께 들여다봅니다.


  천천히 천천히 노래를 부르면서 천천히 천천히 자전거 발판을 구릅니다. 천천히 달리다가 때때로 멈춥니다. 자전거 발판 구르는 소리마저 없는 조용한 들 한복판에서 바람소리를 듣습니다. 바람 따라 볏포기가 물결을 치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이들이 내처 부르는 노랫소리가 바람에 감겨 들에 퍼지는 결을 느낍니다.


  어디에서든 삶은 흐릅니다. 어디에서든 우리 스스로 노래를 부르면 됩니다. 어디에나 삶을 일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디에 살든 우리 스스로 삶을 일구어 아름다이 노래하면 됩니다. 매캐하거나 메마르다 싶은 도시라 하지만, 이런 도시에서 골목을 이루는 사람들은 골목밭을 일구어 골목꽃을 피웁니다. 마음을 착하게 다스리면 어디에서나 숲이면서 꽃밭입니다. 마음을 참다이 돌보면 언제나 하늘이면서 맑은 숨결입니다. 파랗게 밝은 하늘을 등에 지고 조용히 들길을 지나갑니다. 4347.10.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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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이들을 재우다가



  어제 아이들을 재우는데 작은아이는 곧 곯아떨어지고 큰아이는 숨소리 없이 조용하다. 문득 무엇인가 느끼고 두 아이 이마를 쓰다듬고 머리카락을 쓸어넘긴다. 노래를 한 가락 부른다. 이마 쓰다듬기와 머리 쓸어넘기기를 그대로 한다. 작은아이는 깊이 꿈나라로 갔다. 그러나 큰아이는 아직 아니다. 큰아이가 깊이 꿈나라로 갈 적에는 으레 몸을 살짝 비틀어 옆으로 눕는다. 가만히 있는 모양새로 보아 하니, 아버지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는 손길을 즐기는 듯하다. 한참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다가 살며시 입김을 얼굴에 호 분다. 실눈을 뜨고 곁눈을 보던 큰아이가 “에그!” 하고 놀라면서 웃는다. “자, 이제는 자야지. 몸이 힘드니까. 꿈에서 더 신나게 놀고 아침에 즐겁게 일어나자.” 큰아이는 이윽고 몸을 옆으로 돌려누운 뒤 깊이 잠든다. 4347.10.2.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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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보라 까치발 안 해도 돼



  얼마 앞서까지 키가 안 닿아 까치발을 해도 마을 어귀 빨래터 울타리 너머를 볼 수 없던 산들보라인데, 이제 제법 키가 자라 까치발을 하지 않고도 누나와 나란히 빨래터 울타리에 달라붙어서 건너편을 넘겨볼 수 있다. 넘겨보기란 얼마나 재미있는가. 그동안 볼 수 없던 건너편을 넘겨볼 수 있으니 얼마나 기쁜가. 건너편에 딱히 대단한 것이 없다 하더라도, 누나하고 나란히 서니 기쁘다. 4347.9.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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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 어린이 설거지



  일곱 살 사름벼리가 오늘 아침에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선다. 작은걸상을 개수대 앞에 받쳐서 올라간다. 일곱 살 사름벼리는 물을 살살 틀어 졸졸 흐르게 한 뒤 천천히 꼼꼼히 수세미질을 한다. 일곱 살 사름벼리가 설거지를 마치기까지 무척 오래 걸린다. “벼리가 아버지 큰 잔도 설거지 했어요!” 하고 외친다. 큰 유리잔을 살핀다. 물때가 남지 않게 잘 헹구었다. 용하구나.


  나도 어릴 적에 곧잘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섰다. 어머니는 할 일이 많으면 “나와 봐. 엄마가 할게.” 하면서 부엌일을 거들지 말라 하셨다. 왜냐하면, 어린 내가 설거지를 하면 한참 걸리기 때문이다. 그래, 어린이가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설 때에는 ‘일하기’가 아닌 ‘놀이하기’이다. 물을 갖고 논다. 물을 수세미로 갖고 논다. 물을 수세미로 갖고 그릇을 곁들여 논다.


  놀면서 설거지를 익힌다. 놀면서 빨래를 익힌다. 놀면서 걸레질과 비질을 익힌다. 놀면서 밥하기와 도마질을 익힌다. 놀면서 호미질과 낫질을 익힌다. 놀면서 가위질과 풀바르기를 익히고, 놀면서 사랑과 꿈을 익힌다. 4347.9.30.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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