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74] 조용히 지나가는 시골

― 가을에 하늘과 들을 함께 바라보기



  하늘이 트인 곳에서 살면 트인 하늘을 봅니다. 하늘이 막힌 곳에서 살면 막힌 하늘을 봅니다. 바람이 싱그러이 부는 곳에서 살면 싱그러운 바람을 마십니다. 바람이 매캐한 곳에서 살면 매캐한 바람을 마십니다. 하늘이 탁 트이고 들이 곧게 열린 시골길을 두 아이와 함께 자전거로 달립니다. 천천히 달리면서 천천히 노래합니다. 처음 이 시골길을 달릴 적에는 노래를 부를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 달리자니 몸이 퍽 힘들었어요. 이제 나는 예전보다 나이를 더 먹었고 아이들은 예전보다 훨씬 무게가 나가는데, 외려 예전보다 가볍게 자전거를 달릴 뿐 아니라, 자전거를 몰면서 노래까지 스스럼없이 부릅니다. 아이들은 샛자전거와 수레에 앉아서 아버지와 함께 노래를 부릅니다.


  도시에서 지낼 때에는 으레 아이와 함께 골목마실을 다녔습니다. 도시에서는 골목이 조용히 아이와 거닐 만한 데라고 느꼈습니다. 조용한 골목에서 꽃을 만나고 바람을 마시며, 언덕받이 골목동네에서 비로소 탁 트인 하늘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노래를 부르며 다니지 못했어요. 좁은 골목을 거닐면서 노래를 부르면 이웃집에 소리가 퍼지는데, 노랫소리를 반기지 않을 사람들이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시골에서는 집에서도 마당에서도 길에서도 곧잘 노래를 부릅니다. 아니, 늘 노래를 부릅니다. 오늘날 시골에는 사람이 참으로 없기에 노래를 불러도 될 만하다고 여길 수 있겠지만, 이보다 노래가 저절로 솟습니다. 내 마음을 하늘처럼 열고, 내 생각을 들처럼 보듬으며, 내 넋을 아이들과 함께 들여다봅니다.


  천천히 천천히 노래를 부르면서 천천히 천천히 자전거 발판을 구릅니다. 천천히 달리다가 때때로 멈춥니다. 자전거 발판 구르는 소리마저 없는 조용한 들 한복판에서 바람소리를 듣습니다. 바람 따라 볏포기가 물결을 치는 소리를 듣습니다. 아이들이 내처 부르는 노랫소리가 바람에 감겨 들에 퍼지는 결을 느낍니다.


  어디에서든 삶은 흐릅니다. 어디에서든 우리 스스로 노래를 부르면 됩니다. 어디에나 삶을 일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디에 살든 우리 스스로 삶을 일구어 아름다이 노래하면 됩니다. 매캐하거나 메마르다 싶은 도시라 하지만, 이런 도시에서 골목을 이루는 사람들은 골목밭을 일구어 골목꽃을 피웁니다. 마음을 착하게 다스리면 어디에서나 숲이면서 꽃밭입니다. 마음을 참다이 돌보면 언제나 하늘이면서 맑은 숨결입니다. 파랗게 밝은 하늘을 등에 지고 조용히 들길을 지나갑니다. 4347.10.4.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