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문이 되자



  아마 열다섯 살이었지 싶다. 이무렵부터 ‘한국에서 나오는 신문’은 모두 거짓말투성이라고 깨달았지 싶다. 그러나 이무렵에는 이렇게 깨닫기만 할 뿐, 달리 무엇을 할 수 없었다. 스무 살이 되어 비로소 글쓰기를 할 무렵, 나 스스로 한 가지를 생각한다. 한국에서 나오는 신문이 모두 거짓말투성이라 한다면, 덧없고 부질없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가득 채워 애먼 나무를 괴롭히는 짓만 일삼는다면, 내가 스스로 신문이 되자고 생각한다.


  신문이 엉터리이기 때문에 신문이 될 생각이 아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꾸준히 이야기를 들으면서 스스로 삶을 가꿀 때에 아름답기 때문에 ‘어떤 글이나 말’을 꾸준히 만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나 스스로 신문이 되자’ 하고 생각한 까닭은 오직 하나이다. 내가 스스로 삶을 지으면서 하루하루 맞이하는 이야기를 글로 찬찬히 갈무리하여 날마다 꾸준하게 띄울 수 있으면, ‘사람을 바보나 종이 되도록 가두는 굴레’인 신문이나 방송에서, 내 이웃과 동무부터 천천히 벗어날 수 있으리라 느꼈다. 나부터 스스로 내 삶을 새롭게 지어서 배우고, 내가 배운 내 삶을 이웃과 동무한테 보여주는 동안, 내 이웃과 동무는 스스로 삶을 짓고 생각을 짓는 슬기를 깨달으리라 느꼈다.


  참말 내 꿈대로 나는 천천히 신문이 된다. 종이신문도 누리신문도 아닌 ‘이야기신문’이 된다. 마음을 열어 생각을 지으려 하는 이웃이나 동무라면, 내가 쓴 이야기를 읽으면서 스스로 새 이야기를 찾거나 깨달으리라 본다. 스스로 새 이야기를 찾거나 깨달은 이웃과 동무는, 또 이녁대로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서 들려주겠지. 4347.10.9.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내 마음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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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뒷모습



  읍내마실을 갔다. 아이들은 언제나처럼 앞에서 신나게 달린다. 뒤에서 신나게 좇다가 문득 뒷모습을 생각한다. 이 집에서 조금 얻고 저 집에서 조금 얻은 옷을 입은 아이들인데, 큰아이 바지는 아버지가 모처럼 사 주어서 입혔고, 작은아이 가방은 큰아이가 다섯 살 무렵 부산에서 사 준 가방인데 이제 큰아이한테 작아서 작은아이가 물려받았다. 큰아이가 발에 꿴 신은 문을 닫은 어느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주운 뒤 잘 빨고 말려서 신겼고, 작은아이 벌레신은 곁님이 새로 장만해 주었는데, 작은아이가 골짝물에 담가서 반짝반짝 나오던 불이 꺼지고 말았다.


  가만히 아이들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는 아이들 옷차림을 거의 들여다본 적이 없다고 깨닫는다. 어떤 옷이든 대수롭지 않게 입히면서 살았다. 아마 앞으로도 이렇게 살겠지. 내가 바라보고 싶은 곳은 아이들 마음이고, 아이들이 나한테서 물려받기를 바라는 것은 사랑이니까. 4347.10.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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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와 자는 동안



  두 아이와 자는 나날도 앞으로 얼마 안 남는다. 왜냐하면, 이듬해 여름에 셋째가 올 테니까. 이 작은 집에서 세 아이와 지낼는지, 조금이나마 넓은 집을 마련할 수 있을는지 아직 모르지만, 두 아이를 토닥토닥 재우면서 제법 길게 눈을 붙이던 일도 얼마 안 남은 셈이다.


  갓난쟁이를 곁에 누워 재우자면 밤새 잠을 이룰 수 없다. 그때에는 첫째와 둘째는 어떠할까? 두 아이도 갓난쟁이와 함께 밤에 잠을 깰까?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깊이 잠들까?


  두 아이와 자는 동안 틈틈이 잠을 깬다. 이리저리 뒹군 아이를 바로 눕힌 뒤 이불깃을 여민다. 한 시간에 한 차례쯤 이렇게 한다. 요즈음은 철이 바뀌는 때라, 아이들이 이불을 걷어찼으면 바로바로 다시 덮어 주어야 한다. 안 그랬다가는 찬바람이 들 테니까.


  스무 살 언저리부터 새벽신문 돌리는 일을 했기에 밤잠을 미루거나 밤에 일어나는 삶이 힘들다고 느낀 적이 없다. 지난 일곱 해 동안 두 아이와 살며 밤잠을 제대로 이룬 적이 없었으나, 이때마다 ‘이래서 내가 젊은 날에 그렇게 신나게 신문배달을 했구나’ 하고 느끼곤 했다.


  아이들아 너희 마음껏 자렴. 네 어버이는 너희를 재우느라 밤잠을 이룰 틈이 없지만, 너희가 쑥쑥 자라 스무 살 즈음 되면, 바야흐로 너희 어버이도 느긋하게 두 다리 뻗고 꿈나라를 누빌 수 있겠지. 4347.10.8.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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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림놀이] 노래 (2014.10.2.)



  이웃님한테 보내려고 그림을 그린다. 사진책을 펴내고 사진강의를 하면서 사진길을 걷는 이웃님한테 ‘노래’를 그려서 보내기로 한다. 노래란 무엇일까? 사진이란 무엇일까? 동그라미 하나가 다른 동그라미를 만나고, 동그라미 안쪽에서 온갖 빛깔로 무지개가 드리운다. 물결이 치고, 꽃과 별이 하나둘 돋더니, 어느새 잎이 나는 나무가 자란다. “흐르는 삶이 고스란히 품에 안겨 사진 한 장”이라고 한 마디를 짤막하게 붙인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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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살이 일기 75] 함께 자라는 사람들

― 아이를 얼마나 바라보는가



  빨래터와 샘터를 치우러 가자고 하면 두 아이가 모두 신나게 웃으면서 얼른 신을 뀁니다. 그야말로 잰 손놀림과 몸놀림으로 신과 옷을 갖추고는 “다 됐어요!” 하고 외칩니다. 아이들한테 빨래터 치우기는 아주 재미난 놀이인 터라, ‘빨래터 가자’ 하고 한 마디만 꺼내면 모든 일을 아주 빨리 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빨래터 가야겠는데, 마룻바닥에 어지른 소꿉을 치우자’ 하고 말하면 1분이 채 되지 않아 모든 장난감을 척척 치웁니다.


  우리 집에서 빨래터까지 꽤 가깝습니다. 너덧 집을 지나면 바로 빨래터입니다. 짧은 길이지만 아이들은 이 길을 춤추면서 걷고, 노래하면서 갑니다. 조용한 시골마을이기에 아이들 노랫소리는 온 마을로 퍼집니다. 외치듯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온 들로 스밉니다.


  빨래터 가는 길에 새삼스럽게 생각합니다. 먼먼 옛날부터 들과 숲은 아이들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자랐겠구나 싶습니다. 그리고, 들과 숲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일하던 어른들 숨결을 함께 들으면서 자랐겠구나 싶어요. 들과 숲은 곡식과 열매와 남새로 사람들을 살찌우고, 들과 숲은 즐거운 노랫소리와 웃음소리가 살찌웁니다.


  아이들 뒤에 서서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언제나 아이들이 앞장서서 걸으니 나는 늘 아이들 뒤에 서서 바라봅니다. 시골에서 지낼 적에는 늘 아이들이 씩씩하게 앞장서서 걷습니다. 이와 달리 면소재지나 읍내만 가더라도 자동차 때문에 아이들이 앞장서서 걷지 못하게 붙잡습니다. 손을 잡고 걸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면서 걷고 싶은데, 때로는 달리기나 뜀뛰기를 하면서 가고 싶은데, 자동차 때문에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못하는 사회 얼거리가 되었어요. 게다가 자동차가 넘치는 곳에서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지 않아요. 시끄럽기도 하고 어수선하기도 하며 이것저것 눈을 홀리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풀이 돋고 나무가 자라며 바람이 싱그러운 곳에서 아이들이 맑게 웃습니다. 풀내음을 맡고 나무그늘을 누리며 냇물을 마실 수 있는 곳에서 어른들이 맑게 일합니다. 아이가 자랄 만한 데에서 어른이 함께 자랍니다. 아이가 느긋하게 뛰노는 곳에서 어른이 즐겁게 일합니다. 아이 입에서 노래가 터져나오는 곳에서 어른도 저절로 노래를 터뜨리면서 날마다 잔치를 이룹니다. 4347.10.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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