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75] 함께 자라는 사람들

― 아이를 얼마나 바라보는가



  빨래터와 샘터를 치우러 가자고 하면 두 아이가 모두 신나게 웃으면서 얼른 신을 뀁니다. 그야말로 잰 손놀림과 몸놀림으로 신과 옷을 갖추고는 “다 됐어요!” 하고 외칩니다. 아이들한테 빨래터 치우기는 아주 재미난 놀이인 터라, ‘빨래터 가자’ 하고 한 마디만 꺼내면 모든 일을 아주 빨리 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빨래터 가야겠는데, 마룻바닥에 어지른 소꿉을 치우자’ 하고 말하면 1분이 채 되지 않아 모든 장난감을 척척 치웁니다.


  우리 집에서 빨래터까지 꽤 가깝습니다. 너덧 집을 지나면 바로 빨래터입니다. 짧은 길이지만 아이들은 이 길을 춤추면서 걷고, 노래하면서 갑니다. 조용한 시골마을이기에 아이들 노랫소리는 온 마을로 퍼집니다. 외치듯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온 들로 스밉니다.


  빨래터 가는 길에 새삼스럽게 생각합니다. 먼먼 옛날부터 들과 숲은 아이들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자랐겠구나 싶습니다. 그리고, 들과 숲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일하던 어른들 숨결을 함께 들으면서 자랐겠구나 싶어요. 들과 숲은 곡식과 열매와 남새로 사람들을 살찌우고, 들과 숲은 즐거운 노랫소리와 웃음소리가 살찌웁니다.


  아이들 뒤에 서서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언제나 아이들이 앞장서서 걸으니 나는 늘 아이들 뒤에 서서 바라봅니다. 시골에서 지낼 적에는 늘 아이들이 씩씩하게 앞장서서 걷습니다. 이와 달리 면소재지나 읍내만 가더라도 자동차 때문에 아이들이 앞장서서 걷지 못하게 붙잡습니다. 손을 잡고 걸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면서 걷고 싶은데, 때로는 달리기나 뜀뛰기를 하면서 가고 싶은데, 자동차 때문에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못하는 사회 얼거리가 되었어요. 게다가 자동차가 넘치는 곳에서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지 않아요. 시끄럽기도 하고 어수선하기도 하며 이것저것 눈을 홀리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풀이 돋고 나무가 자라며 바람이 싱그러운 곳에서 아이들이 맑게 웃습니다. 풀내음을 맡고 나무그늘을 누리며 냇물을 마실 수 있는 곳에서 어른들이 맑게 일합니다. 아이가 자랄 만한 데에서 어른이 함께 자랍니다. 아이가 느긋하게 뛰노는 곳에서 어른이 즐겁게 일합니다. 아이 입에서 노래가 터져나오는 곳에서 어른도 저절로 노래를 터뜨리면서 날마다 잔치를 이룹니다. 4347.10.5.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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