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 일기 87] 딛고 밟는 땅

― 보금자리와 집과 삶터



  내가 딛는 곳이 내 삶터입니다. 내가 두 다리로 딛는 곳이 내 보금자리가 됩니다. 내가 즐겁게 딛는 곳을 내 집으로 삼고, 내가 가장 오랫동안 두 다리로 딛고 서서 움직이는 자리에서 삶이 피어납니다.


  사람들이 도시에서 가장 많이 몰려서 사는 까닭은 도시에서 하려는 일이 가장 많고, 도시에서 하고 싶은 일이 가장 많으며,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가장 많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시골에서 하려는 일이 많다면 아주 마땅히 시골에서 살 테며, 사람들이 시골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여기면 아주 저절로 시골에서 보금자리를 찾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시골에서 삶자리나 일자리나 놀자리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첫발을 떼는 날부터 ‘도시바라기’가 됩니다. 도시사람도 도시바라기요, 시골사람도 도시바라기입니다.


  우리가 먹는 밥은 모두 시골에서 납니다. 쌀밥이든 보리밥이든 시골 논에서 거둡니다. 콩을 즐기든 나물을 즐기든 채식을 하든 육식을 하든, 돼지와 닭과 소도 모두 시골에서 기릅니다. 도시사람은 채식이나 육식을 따로 가리지만, 시골사람은 이것저것 굳이 가리지 않아요. 시골사람은 스스로 먹을 밥을 스스로 가꾸고 돌보며 아끼면서 얻습니다.


  도시사람이 채식이나 육식을 가리면서 ‘이것이 좋’거나 ‘저것이 안 좋’다고 가르는 까닭은, 손수 삶을 짓지 않기 때문입니다. 손수 흙을 짓지 않는 삶이니 ‘좋아하는 밥’이 따로 있습니다. 손수 집을 짓지 않는 삶이기에 ‘보금자리’가 아닌 ‘부동산(재산)’을 바라봅니다.


  도시가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도시에 깃들면서 삶을 짓는 하루하고 너무 크게 동떨어진다는 뜻입니다. 채식을 하고 싶으면 밭을 가꾸면 됩니다. 육식을 하고 싶으면 짐승우리를 치면 됩니다. 그뿐입니다. 손수 나아가려는 길을 손수 갈고닦으면 됩니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를 보면, 시골이든 도시이든, 모든 아이를 도시로 보내서 도시에서 회사원이나 공무원이나 전문가나 학자로 키우려고만 합니다. 시골학교에서 시골아이를 시골지기로 키우지 않습니다. 도시학교에서 도시아이를 시골지기로 가르치지 않을 뿐 아니라, 도시학교에서조차 시골지기를 이웃으로 보여주지 못합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뛰놀며 밟고 딛는 땅을 아이들과 함께 바라봅니다. 이 땅이 우리 보금자리입니다. 이 터가 우리 삶터입니다. 이곳이 우리 집입니다. 나는 삶을 지으려고 곁님과 아이들하고 시골에서 삽니다. 4348.2.26.나무.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고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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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와 함께 촛불보기



  오늘부터 두 아이와 함께 촛불보기를 한다. 며칠 앞서부터 큰아이하고는 먼저 촛불보기를 했다. 지난주까지는 혼자 촛불보기를 했는데 아이들하고도 함께 해야겠다고 느껴서 마땅한 때를 헤아리다가, 낮에 한 차례 저녁에 다시 한 차례 하기로 한다. 낮에는 작은아이가 낮잠을 잘 무렵을 골라서 한다. 작은아이는 자전거마실을 하면 수레에서 잠드는데, 수레에서 잠들면 꼭 집에 닿을 무렵 다시 깨니까 낮잠이 모자라다. 저녁에 촛불보기를 다시 하면, 이때에는 큰아이가 사르르 잠이 든다. 오늘 낮에 촛불보기를 하니, 큰아이는 끝까지 야무지게 잘 하고, 작은아이는 살몃살몃 잠들 듯하다가 몸을 나한테 맡기고 깊이 잠든다. 잠자리에서 자장노래를 부르는 하루는 이제 끝이 나는구나. 이제는 잠자리에 앞서 촛불을 보면서 생각을 물로 녹이도록 하고, 잠자리에 누워서는 하늘에 있는 별을 몸으로 받아들이도록 그림을 그리자. 고요하면서 차분하게 아이들과 누리는 하루는 얼마든지 즐겁게 지을 수 있다. 4348.2.25.물.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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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배움자리 12. 학교나무 심자



  ‘우리 집 학교’를 이루는 올해에 무엇을 가장 먼저 해야 할까 하고 생각하니, 저절로 나온 ‘내 생각’은 ‘우리 학교 나무를 심자’이다. 그러면 어떤 나무를 심지? 여러 날과 여러 주에 걸쳐서 곰곰이 생각을 했으나 딱히 어떤 나무가 어울릴는지 수가 나오지 않았다. 이러구러 이월 끝머리가 되는데, 설을 앞두고 우리 마을에서는 마을 어귀에 있던 나무를 몇 그루 뽑고는 이 자리에 정자를 박았다. 군청에서 ‘완성형 나무 정자’를 짜맞추어서 마을 어귀에 박으면서, 이 자리에서 퍽 오래 자라면서 꽃을 베풀던 나무를 뽑았다. 뽑은 나무는 다른 곳에 옮겨심으려나 했더니 마을에서 아무도 안 옮겨심을 뿐 아니라 마을 어르신이 쓰레기를 태우는 자리에 그냥 버렸다. 깜짝 놀랐다. 제법 큰 나무였는데 그냥 버리다니. 이 나무를 다시 심으면 살아날 수 있을까? 그제 비가 와서 나무뿌리를 적셔 주었고, 어제는 우체국에 다녀오느라 바빴기에 오늘 아침에 수레를 끌고 나무를 실어서 우리 ‘도서관+학교’로 실어 간다. 어른 혼자 들 수는 있으나 짊어지고 나를 수는 없다. ‘도서관+학교’로 들어가는 문 앞쪽 빈터에 볕이 잘 드는 자리에 옮겨심기로 한다. 뿌리가 제법 넓게 퍼졌기에, 옮겨심을 구덩이를 파느라 한 시간 즈음 걸린다. 혼자서 삽으로 파니까. 나무를 천천히 들어서 자리를 잡고, 흙을 덮고 북돋운다. 다시 한 시간 즈음 들여 나무를 살핀다. 우리 학교 나무가 처음으로 선다. 이 나무가 이곳에서 새 숨결을 얻어서 씩씩하게 자라 아름답고 짙푸른 그늘과 꽃내음과 잎내음을 베풀어 주기를 빈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집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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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기고 빨래하니 졸음



  오늘 낮에 보일러 기름을 넣는다. 꼭 200리터를 넣는다. 설날을 쇠고 고흥집으로 돌아와서 아이들을 못 씻기다가 오늘 드디어 씻긴다. 아이들이 벗은 옷도 함께 빨래를 한다. 아침에 손빨래를 한 차례 했고, 낮에는 기계한테 빨래를 맡긴다. 큰아이 신은 손으로 빨래해서 마당에 넌다. 이렇게 하고 보니 어깨가 뻑적지근하면서 졸음이 온다. 작은아이는 조금 칭얼거리다가 사르르 잠이 든다. 큰아이도 졸릴 법하지만 조용히 만화책을 파고든다. 빨래를 마당에 널면서 온갖 멧새 노랫소리를 들었다. 봄이 되어 새롭게 깨어나는 새가 많구나 하고 느낀다. 딱따구리 소리도 듣고, 무척 고운 노랫소리도 듣는다. 이 모든 봄맞이 소리를 들으면서 옷가지가 보송보송 마를 테지. 작은아이 곁에서 살짝 눈을 붙이고 일어나서 저녁을 지어야겠다. 4348.2.23.달.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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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배움자리 11. 하루를 나무와 함께



  봄이 찾아온다. 곧 봄이다. 아니, 벌써 봄이라고 할 만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스스로 봄을 생각하면 바로 이때부터 봄이다. 여덟 살 큰아이가 뒤꼍에 함께 올라가서 나무한테 인사하는 아침에 나한테 묻는다. “아버지, 봄은 언제 와?” “응, 벼리가 부르면 봄이 오지.” “불렀는데 안 와.” “자꾸 부르면 돼.” “자꾸 불러도 안 와.” 얘야, 네가 ‘안 온다’고 생각하니까 안 오지. 그래서 말을 돌리기로 한다. “자, 여기를 봐. 여기 쑥이 올라왔어. 아주 작고 예쁜 싹이지.” “나도 그거 봤어.” 그래, 이 아이들을 보았고, 우리 집 매화나무에 몽글몽글 부푸는 꽃몽오리를 네가 보면서 가만히 말을 걸고 웃음으로 인사를 했으면, 이제는 바야흐로 봄이란다. 봄에도 바람이 아직 쌀쌀할 수 있고, 봄이지만 해가 안 나오고 어둑어둑한 아침일 수 있어. 봄에도 비가 오고, 봄에도 흐린 날이 있지. 겨울에도 포근한 날이 있고, 겨울에도 맑은 날이 있어. 우리는 언제나 즐겁게 노래하면서 하루를 나무한테 인사하면서 기쁘게 열면 돼. 그러면 우리는 언제나 봄마음이 된단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집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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