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의 나날들 - 흐르는 삶, 퇴적된 기억
이상엽 지음 / 이른아침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찾아 읽는 사진책 129

 


사진은 어디에 있는가요
― 청계의 나날들
 이상엽 사진·글
 이른아침 펴냄,2008.6.12./9000원

 


  사진책 《청계의 나날들》(이른아침,2008)을 내놓은 이상엽 님은 “내가 처음 청계천을 가 본 것은 온 나라가 대통령의 죽음으로 어수선한 79년이었다. 당시 국민학교 6학년이었던 나는 중학교용 참고서를 싼값에 산다는 핑계로 청계천 헌책방을 어슬렁거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홀로 도심을 탐색하고 다닌 셈이다. 하지만 어디서도 개천을 발견할 수 없었기에 왜 청계천이라 하는지 몰랐다(56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나는 서울 청계천이라는 데를 언제쯤 처음 가 보았나 돌아봅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인 1993년에 처음 가 보았지 싶습니다. 인천이라는 시골에서 태어나 살다가, 큰물이라 하는 서울은 모든 것이 크고 많고 넓고 깊다 해서, 여름방학인가 일요일에 전철을 타고 찾아가 보았지 싶어요. 퍽 조그마한 가게가 줄지어 서고, 사이사이 옷집이 많으며, 책 살피는 사람보다 옷 장만하려는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청계천 헌책방거리를 여러 시간 걸어다녔습니다. 청계천 헌책방거리 일꾼들 눈치를 안 보거나 안 느낀다면 몇 시간쯤 서서 책을 읽을 수 있을 테지만, 십 분이나 이십 분쯤 책읽기를 하자니 자꾸 눈치와 핀잔을 받아야 했습니다. 사지 않을 책을 자꾸 만지작거리면서 넘기는 몸짓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구나 하고 느끼면서, 그저 두리번두리번하면서 이쪽 거리 끝에서 저쪽 거리 끝까지 걷기만 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나머지, 책방이 많고 책이 많지만, 한갓지거나 느긋하게 이야기를 나눌 만하지 못하겠다고 느꼈어요.


  서울 청계천 사람들은 어떤 삶을 일구었을까요. 저마다 어떠한 이야기를 빚으면서 어떠한 하루를 맞이했을까요. 바깥에서 겉을 스치며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느끼는 청계천이 아니라, 청계천에 터를 잡고 살아온 사람들이 느끼는 청계천은 어떤 모습일까요. 청계천 언저리에 조그마한 집이 있고, 조그마한 집에서 아이가 태어나며, 아이들이 개구지게 뛰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청계천 사람들이 생각하는 청계천은 어떤 마을일까요.


  서울 청계천에서 살아가지 않는 사람들이 청계천이라 하는 냇물 위에 시멘트로 뚜껑을 덮습니다. 서울 청계천에서 살지 않는 사람들이 청계천이라 하는 뚜껑 덮인 냇물 위에 시멘트 고가도로를 놓습니다. 서울 청계천에서 살아갈 뜻이 없는 사람들이 청계천에 있던 시멘트 고가도로를 헐고 시멘트 뚜껑을 엽니다.


  하나하나 돌이켜보면, 어떤 도시계획이든, 계획에 따라 허물어 새로 지을 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스스로 도시계획을 세우는 일이란 없습니다. 골목동네 사람들 스스로 골목동네 새 모습을 설계하고 기획하고 꾸미고 하면서 다시 짓는 일이 없어요. 골목동네에서 살아가지 않고 골목동네에서 살아갈 뜻이 없는 사람들이 골목동네를 와장창 쓸어내어 뭔가 그럴듯하게 보인다는 모습으로 새로 지으려고 합니다. 도시 변두리나 시골에 발전소를 짓거나 골장을 짓거나 골프장을 지으려 하는 사람들, 이른바 공무원과 정치꾼과 기업꾼들은, 도시 변두리나 시골에서 살아가지 않아요. 전남 고흥에 우주기지를 세웠다지만, 이 우주기지 언저리에서 살아가는 공무원과 정치꾼과 기업꾼은, 또 과학자나 학자나 전문가나 기자는 몇이나 될는지요.

 

 


  막개발이 이루어지는 까닭은 꼭 하나라고 느낍니다. 돈 때문에 막개발이 이루어진다고도 할 수 있지만, 돈 때문이라기보다, 스스로 그곳에서 살아가지 않고 살아갈 뜻이 없으니 막개발이 이루어지는구나 싶어요. 서울에서 난지도 곁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난지도라는 데에 쓰레기무덤을 세우는 정책을 세울까요. 이제 난지도는 쓰레기섬에서 벗어난다고 하는데, 그러면 난지도에 버리던 쓰레기는 어디로 가지고 가서 버릴까요. 새로운 쓰레기섬이 되는 곳 언저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이제 쓰레기 여기다 버릴 테니, 너희는 너희 고향을 떠나. 돈 넉넉히 줄게.’ 하고 다그쳐도 될까요.

 

  《청계의 나날들》을 내놓은 이상엽 님은 “나는 고가도로의 그늘에 가려 음침하게 성장해 온 이곳이 좋았다. 이곳은 밝고 고상한 대신 복잡하고, 남루하며, 음흉한 곳이었다(57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살아가는 사람들은 살아가니까 살아갑니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삶터이니 살아갑니다. 삶터이기에 살아가면서 사랑을 속삭이고, 사랑을 속삭이는 터이니 사랑터로 거듭납니다. 사랑을 속삭이는 사랑터에서는 천천히 이야기가 태어납니다. 사랑터는 이야기터로 다시 태어납니다. 이야기터에서는 알콩달콩 웃음꽃이 피어나고, 얼룩덜룩 눈물꽃이 피어나기도 하며, 새록새록 삶꽃이 흐드러집니다.


  바깥에서 스윽 지나치는 사람들은 이렇게도 바라보거나 저렇게도 말하겠지요. 안쪽에서 궁둥이 눌러붙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런 삶도 누리고 저런 삶도 치르겠지요. 밥을 짓고 빨래를 합니다. 아이들을 돌보고 아이들이랑 마실을 다닙니다. 옆지기하고 도란도란 생각을 나누기도 하다가는, 툭탁툭탁 다툼질도 벌이겠지요.

 

 


  사진은 무엇을 찍을까요. 사진은 언제 찍을까요. 사진은 누구를 찍을까요. 사진은 왜 찍을까요. 서울 청계천을 어슬렁거리는 사람은, 아마 어슬렁거리는 느낌을 사진으로 찍겠지요. 서울 청계천에 동무가 있어 와하하 깔깔깔 호호호 웃고 떠들며 노는 사람은, 청계천 동무하고 놀며 누린 느낌을 사진으로 찍겠지요. 서울 청계천에서 나고 자라는 동안 힘들거나 고단한 일을 오래 겪은 이는, 어린 나날부터 겪은 힘들거나 고단한 느낌을 살려 사진으로 찍겠지요. 서울 청계천에서 식구들이랑 웃음노래 부르면서 맑은 이야기 건사한 사람은, 이녁 스스로 즐겁게 지낸 삶자락 되새기면서 사진으로 찍겠지요.


  삶이 다르기에 사랑이 다르고, 사랑이 다르기에 생각이 다르며, 생각이 다른 만큼 이야기가 달라, 이야기 다른 결에 맞추어 사진이 다르게 자라납니다.


  사진은 자랍니다. 사진은 무럭무럭 자라 이야기나무가 됩니다. 이야기나무가 되는 사진은 꿈을 따스하게 품어 안습니다. 꿈을 따스하게 품어 안은 사진은 기쁘게 맞아들이는 사진이 되고, 즐겁게 바라보면서 마음을 넉넉하게 쉬도록 이끄는 사진이 됩니다.


  이상엽 님은 서울 청계천 모습을 사진으로 담으며 “또 다른 세련된 콘크리트로 대체된 것은 아닌지 회의하고 의심할 뿐이다(59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서울 청계천에 있던 시멘트 뚜껑이 사라졌고, 시멘트 고가도로가 사라졌어요. 그런데, 두 가지 시멘트덩이가 사라진 자리에는 새로운 시멘트덩이가 깃들었어요.


  냇물이 냇물답게 흐르는 곳이 아닌 청계천이에요. 모래와 흙과 돌이 자연답게 흐르지 못하는 청계천이에요. 서울사람이 쓰고 버리는 물은 어디로 흘러들까요. 샴푸로 머리를 감은 물, 세제로 그릇을 씻은 물, 자동차 껍데기를 씻은 물, 옷가지 빨래한 물, 밥을 지으며 쓰는 물, 몸을 씻고 난 물, 공장에서 물건 만들며 내놓는 물, 발전소에서 내놓는 열폐수, 자동차 배기가스, 살림집과 건물을 덥히며 나오는 가스, …… 이 모든 더러운 것들은 어디로 가고, 서울 청계천은 어떠한 물이 흐르는 냇물이라 할 만한가요.


  서울 청계천을 떠올리는 사진은 무엇을 담는 사진이 될까 궁금합니다. 서울 청계천을 찾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려고 사진을 찍을까 궁금합니다. 무엇보다, 서울 청계천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 스스로 서울 청계천 이야기를 사진과 글과 그림과 노래와 만화와 춤과 연극과 영화로 선보일 날은 언제쯤 될까 궁금합니다. 사진은 어디에 있는가요. 4346.2.13.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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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라 로켓파크 카르페디엠 32
이시다 이라 지음, 김윤수 옮김 / 양철북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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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과 함께 살기 104

 


청소년은 즐겁게 살아가고 싶다
― 날아라 로켓파크
 이시다 이라 씀,김윤수 옮김
 양철북 펴냄,2013.1.2./11000원

 


  바람이 붑니다. 여러 가지 소리를 내며 바람이 붑니다.


  귀를 기울입니다. 내 귀로 스며드는 여러 가지 소리를 가만히 듣습니다.

  바람은 철마다 다 다른 소리와 내음과 무늬와 빛깔로 내 몸으로 스밉니다. 바람은 다달이 다 다른 소리로 찾아들고, 나날이 다 다른 내음으로 찾아들며, 아침저녁으로 다 다른 무늬를 선보이다가는, 때마다 늘 다른 빛깔이 눈부십니다.


  바람은 소리로만 찾아오지 않습니다. 바람에는 수많은 모습이 서립니다. 시골에서 부는 바람이랑, 숲과 들과 마당과 마을과 바다에서 부는 바람이 사뭇 다릅니다. 대청마루에 앉아 마주하는 바람이랑, 헛간 곁에서 마주하는 바람이랑, 대문 앞에서 마주하는 바람이랑, 마늘밭이나 무논에서 마주하는 바람이 서로 달라요.


  도시에서도 바람은 노상 다릅니다. 찻길에서 마주하는 바람, 거님길에서 마주하는 바람, 높다란 아파트나 건물 곁에서 마주하는 바람, 도시 한켠 공원에서 마주하는 바람, 도시 길가 가녀린 나무 옆에서 마주하는 바람, 골목 어귀에서 마주하는 바람, 골목동네 한복판에서 마주하는 바람, 골목밭 앞에서 마주하는 바람, ……, 참말 같은 바람이란 없습니다.


.. 고개를 드니 콘크리트 난간 너머로 도쿄의 하늘이 보였다. 크림처럼 하얀 봄 하늘이다. 요지는 요코하마나 여기나 하늘은 똑같구나 생각했다 … “사람한테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어른이라도 그저 그런 사람이 있고, 아이라도 놀랄 ㅁ나큼 믿음직한 사람이 있어. 너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똑바른 사람이라서 부탁한 거란다.” ..  (7, 71쪽)


  햇살이 드리웁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안고 햇살이 드리웁니다.


  눈을 감습니다. 내 살결로 젖어드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곰곰이 헤아립니다.


  햇살은 철마다 다 다른 이야기로 나한테 다가옵니다. 도란도란 속삭이는 이야기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우당탕탕 헐레벌떡 거침없이 휘젓듯이 다가오기도 합니다. 햇살이 우당탕탕거릴 수 있느냐고요? 네, 그래요. 햇살을 스물네 시간 바라보셔요. 새벽부터 밤까지 햇살을 찬찬히 느껴 보셔요. 시멘트로 지은 집에서 말고, 흙과 나무와 짚과 돌로 지은 집에 깃들어 햇살을 하나하나 느껴 보셔요. 아니, 시멘트로 지은 집에서도 햇살을 느낄 수 있어요. 마음으로 눈을 뜨며 가만히 헤아려 봐요.

  해가 기운 저녁에도 햇살을 느낄 수 있어요. 지구별 다른 쪽 비추는 햇살을 느껴요. 달에 어리는 햇살을 느껴요. 멀디먼 뭇별에 닿는 햇살을 느껴요. 밤에도 햇살은 우리 마을 우리 집까지 찾아옵니다. 낮에도 아침에도 햇살은 즐겁게 찾아옵니다.


  풀과 나무와 꽃은 햇살을 먹으며 살아갑니다. 물고기와 들짐승과 풀벌레 모두 햇살을 마시며 살아갑니다. 사람 누구나 햇살을 들이켜면서 살아갑니다. 햇살 한 모금 마시지 않으면 숨결을 잇지 못해요. 햇살 한 조각 먹지 않으면 목숨을 건사하지 못해요. 내 즐거운 삶을 빛내는 반가운 햇살을 고맙게 마주하면서 두 팔을 활짝 벌립니다.


.. 다들 한눈으로도 간타를 특이한 아이로 여기는 듯했다. 어른들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 간타를 특별한 아이 취급하는 사람들은 유치원 선생님만이 아니었다. 어른들은 모두 그랬고, 늘 간타와 함께 있는 요지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 “걱정 안 해도 돼. 아빠가 그랬어. 신은 장애를 가진 사람을 다른 사람보다 훨씬 강하게 만드셨대. 곤란하거나 괴로운 일을 견딜 수 있는, 그래서 우리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래.” … “사람을 심판한다는 건 그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부분까지도 전부 깎아내는 일이야.” ..  (14, 15, 23, 166쪽)


  푸름이는 누구나 즐겁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꿈을 키우는 푸름이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사랑을 노래하는 푸름이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실컷 놀고, 개구지게 달리고 싶습니다. 마음껏 뛰고, 온몸 휘저으며 뒹굴고 싶습니다.


  어느 일터에 몸이 매여 달삯바라기만 하는 푸름이로 살아가는 일은 즐겁지 않습니다. 대학생이 되어야 할 푸름이가 아닙니다.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되어야 할 푸름이가 아닙니다. 자영업자가 될 푸름이가 아닙니다. 푸름이는, 푸름이라는 이름 그대로 푸른 삶 푸른 꿈 푸른 사랑을 꽃피울 수 있는 가슴을 북돋울 때에 푸름이입니다.


  즐겁게 삶을 누리는 어린이가 즐겁게 삶을 빛내는 푸름이가 됩니다. 즐겁게 삶을 빛내는 푸름이가 즐겁게 삶을 일구는 어른이 돼요. 어릴 적 즐겁게 놀지 못하면, 푸른 나날에도 즐겁게 배우지 못해요. 푸른 나날에 즐겁게 배우지 못하면, 어른이 되어 아이들을 낳거나 짝꿍과 사랑을 나누고 싶을 때에 즐거운 삶길을 걷지 못합니다. 어릴 적에 놀지 못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으면, 이녁 아이하고 놀 줄 몰라요. 어릴 적에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짝꿍을 사귀려 할 적에 사랑을 어떻게 나누어야 아름다운가를 몰라요.


  대학입시에 얽매여 즐거운 나날을 누리지 못하던 아이들이 대학생이 짠 하고 된대서 즐거운 삶을 스스로 일구지 못합니다. 대학입시 공부에 목이 매여 참고서와 교과서와 문제집만 가방 가득 짊어지고 다녀야 하는 푸름이라면, 꿈도 사랑도 이야기도 모두 짓눌린 채 바보가 된 슬픈 넋일 뿐입니다. 가방에 시집 한 권 챙기지 못한다면, 집에서 만화책 한 권 느긋하게 펼치지 못한다면, 동무들과 바다마실 숲마실 들마실 즐기지 못한다면, 어버이와 오순도순 이야기꽃 피우지 못한다면, 푸름이로서 푸름이다운 한삶을 못 누리는 셈입니다. 푸름이일 때에 푸름이답게 한삶을 못 누린다면, 이웃을 아끼거나 뭇목숨을 소담스레 보살피는 손길을 키우지 못해요.


.. 아이들이 자살하는 첫 번째 원인은 학교생활 때문이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는 아이들에게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정글과 같았다 … “한 살 많은 얼간이를 왜 선배라고 불러야 하는데? 난 그런 거 싫어. 운동은 좋아하지만.” … 누가 더 센지 싸우고, 교실에서는 누구 머리가 좋은지 시험 점수로 경쟁한다. 그것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이었다 ..  (32, 98, 101쪽)


  학교에 가야 하는 아이들이 아니고, 학교에 안 가야 하는 아이들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그저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야 하는 어버이가 아니고, 아이들을 학교에 안 보내도 되는 어버이가 아닙니다. 어버이는 누구나 어버이입니다.


  아이들 마음을 읽어요. 어른들 마음을 보여주어요. 아이들 생각을 쓰다듬어요. 어른들 생각을 활짝 열어요. 아이들 사랑을 돌보아요. 어른들 사랑을 스스럼없이 드러내요.


  우리가 서로서로 할 일은 오직 하나, 사랑입니다. 사랑스럽게 말을 하고, 사랑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며, 사랑스럽게 밥을 지으면 됩니다. 사랑스럽게 빨래를 하고, 사랑스럽게 비질과 걸레질을 하며, 사랑스럽게 웃고 울어요. 사랑스럽게 자전거를 타고, 사랑스럽게 들길을 걸으며, 사랑스럽게 나물을 캐고 나무를 어루만져요. 사랑스럽게 책을 읽고, 사랑스럽게 글을 쓰며, 사랑스럽게 사진을 찍어요.


  무엇을 하든 사랑으로 하면 돼요. 학교를 다니며 공부를 하든, 집에서 지내며 숲과 바다와 들을 온몸으로 껴안든, 시골에서 시골 아이로 자라든, 도시에서 도시 어른으로 크든, 마음속에 사랑씨앗 한 알 곱게 심으면 돼요.


  무엇이 되겠다거나, 어떤 뜻을 이루겠다는 생각도 좋아요. 다만, 어떤 이름값을 떨치거나 얼마쯤 되는 돈을 벌겠다는 뜻을 세우든, 언제나 사랑으로 할 수 있으면 됩니다. 사랑스럽게 이름을 떨치고, 사랑스럽게 돈을 벌며, 사랑스럽게 꿈을 이루면 되지요.


  사랑이 없을 때에는 메마릅니다. 사랑이 없으니 차갑습니다. 사랑하고 등을 돌리면 나 스스로 삶이 고단해요. 아이를 품에 안고 다독다독 자장노래 부를 적에는 목소리만 예쁘게 뽑는대서 아이가 새근새근 잠들지 않아요. 어버이나 어른으로서 온 사랑 듬뿍 실어 부드러이 부르는 자장노래일 적에 아이는 느긋하게 눈을 감고 즐겁게 웃으며 꿈나라로 날아갑니다.


.. 정말 그럴까? 간타는 생각했다. 요지와 함께 만든 로켓파크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샀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주식이 오르고 이익이 늘어나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누군가는 아파트 단지 공원에 있는 로켓 미끄럼틀을 탄 적도 없을 뿐더러, 그 존재조차 알지 못한다 … “이상한 건, 모두 노동이 신성하다고 외치면서 실제로 회사에서는 사람을 기계 부품처럼 취급한다는 거야. 말과 행동이 전혀 달라. 노동은 신성하지만 노동자는 한 번 쓰고 필요없어지면 버리는 일회용이라니 모순이야.” ..  (247, 271쪽)


  푸른문학 《날아라 로켓파크》(양철북,2013)를 읽습니다. 일본사람 이시다 이라 님은 아이들이 어릴 적에 어떤 사랑을 받으며 자라는가에 따라 어른이 되며 살아가는 모습이 사뭇 달라진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예쁜 사랑 예쁘게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예쁜 이야기 꽃피우는 예쁜 어른으로 살아갑니다. 슬픈 사랑 슬프게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슬픈 이야기 주섬주섬 줍는 슬픈 어른으로 살아갑니다.


  어린이인 오늘 즐겁게 살아야, 어른이 된 오늘 즐거운 이야기 나눕니다. 푸름이인 오늘 즐겁게 지내야, 어른이 된 오늘 즐거운 일을 기쁘게 합니다.


  스무 살에 대학생이 되고 스물대여섯 살에 도시에서 일자리 얻어, 예순두어 살쯤 정년퇴직을 하고는, 늙어서 죽을 때까지 연금 받으며 조용조용 손자 재롱에 깔깔깔 웃는 삶이 즐거운 삶일는지 생각할 수 있기를 빕니다. 우리 어른들은 이렇게 지내는 삶이 즐거울까요. 우리 아이들한테 이런 삶을 물려주어야 즐거울까요.

  사람으로 태어난 보람이란 무엇일까요. 사람으로 사랑을 나눈다는 뜻이란 무엇일까요. 사람으로 생각하고 마음을 여는 길이란 무엇일까요. 어깨동무란 무엇이고, 품앗이랑 두레는 무엇일까요. 마을이란 무엇이고, 보금자리란 무엇일까요. 일이란 참말 무엇이며, 놀이란 참말 무엇일까요.


  도시에서는 숱한 등불과 건물에 가려 밤하늘 별을 바라보기 힘들다고 하지만, 도시 어디에나 별은 뜹니다. 등불이나 건물에 가릴 뿐, 별은 늘 반짝반짝 빛나요. 아이들이 입시지옥과 취업지옥에 시달리거나 들볶인다지만, 이 아이들 가슴에는 사랑을 빛내고픈 작은 씨앗 하나 어김없이 있어요. 작은 씨앗은 사랑을 먹으며 자라고 싶어요. 작은 씨앗은 사랑 어린 손길 받으며 따사로운 마음밭에서 자라고 싶어요.


  아이들이 날게 해 주셔요. 아이들 날개를 보드랍게 쓰다듬어 주셔요. 아이들 마음자리에 사랑이라는 새 날개옷 베풀어 주셔요. 아이들 누구나 스스로 사랑날개 펼쳐 사랑노래 부를 수 있도록, 우리 어른들 모두 웃음꽃 피울 수 있기를 빌어요. 4346.2.1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푸른책과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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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2-12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엇이 되겠다거나, 어떤 뜻을 이루겠다는 생각도 좋아요. 다만, 어떤 이름값을 떨치거나 얼마쯤 되는 돈을 벌겠다는 뜻을 세우든, 언제나 사랑으로 할 수 있으면 됩니다. 사랑스럽게 이름을 떨치고, 사랑스럽게 돈을 벌며, 사랑스럽게 꿈을 이루면 되지요."

-이 글을 읽으니 칼릴 지브란 저, <예언자>에서‘모든 노동은 사랑이 없는 한 공허한 것.’이란 말이 생각납니다. 사랑으로써 행하기,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깁니다.


숲노래 2013-02-13 07:45   좋아요 0 | URL
삶에는 사랑이 있기에 뜻이 있구나 싶어요.
참 그래요.
 
물은 답을 알고 있다 - 물이 전하는 신비한 메시지 물은 답을 알고 있다 (더난출판사) 1
에모토 마사루 지음, 홍성민 옮김 / 더난출판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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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126

 


사진빛은 늘 마음속에 있다
― 물의 메시지
 에모토 마사루 사진·글,양억관 옮김
 나무심는사람 펴냄,2003.9.30.

 


  사진으로 찍어서 나눌 모습은 늘 곁에 있습니다. 어떤 시골마을 아이를 찾아나서면서 사진을 찍지 않아도 됩니다. 어떤 골목동네 아이를 찾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지 않아도 됩니다. 어떤 두멧나라 두멧시골 아이를 찾아내면서 사진을 찍지 않아도 됩니다. 이야기는 늘 내 마음속에 있기 때문에, 우리 집 아이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을 줄 안다면, 우리 집 아이를 담은 사진으로도 넉넉히 사진빛을 이룹니다. 이웃 아이를 담은 사진으로도, 우리 마을 아이를 담은 사진으로도, 내 마음속에서 피어날 이야기를 가뿐히 나눌 수 있어요.


  내 마음속 사진빛을 느끼지 못하면, 이웃 아이를 바라보건 시골마을 아이를 마주하건 골목동네 아이를 만나건 두멧나라 두멧시골 아이를 들여다보건, 어떠한 사진도 얻지 못합니다. 이때에는 그럴듯한 작품만 빚습니다.


  그럴듯하게 빚은 모습을 놓고 사진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럴듯하게 꾸민 모습을 놓고 그림이라 말하지 않고, 글이라 말하지 않아요.


  루벤스나 피카소를 똑같이 베낄 때에도 그림이라 말하지 않아요. 이때에는 ‘복제품’이라 말합니다. 멋들어지게 그리거나 그럴듯하게 그렸으나, 그림 하나에는 이야기가 있어야 그림이지만, 이야기 없이 눈가림에 그치거든요. 눈가림은 눈가림이요, 복제품은 복제품입니다. 겉치레는 겉치레요 손재주는 손재주입니다.


  어떤 기교를 부리면 기교입니다. 기교를 부리는 시는 시가 아닌 기교입니다. 기교를 부리는 사진은 사진이 아닌 기교입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가 있을 때에 비로소 시라 하고, 사진이라 하며, 문학이 되고, 노래가 돼요.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를 건사하지 못하면 시도 사진도 문학도 노래도 못 됩니다.


  에모토 마사루 님이 물방울 결정을 사진으로 담아 들려주는 이야기책 《물의 메시지》(나무심는사람,2003)를 읽습니다. 에모토 마사루 님은 “만일 일본민족과 한민족이 싸워야 할 사태가 벌어졌을 때 우리 자식들은 과연 어느 편을 들어야 할까요. 그때 나는 맹세했습니다.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리라고(9쪽).”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에모토 마사루 님 사진은 에모토 마사루 님 생각을 드러냅니다. 스스로 이루고픈 일을 사진 하나로 담고, 스스로 살아내고픈 모습을 사진 하나로 빚습니다.


  “순수한 샘물 결정의 촬영은 참으로 즐거운 작업이었습니다. 아무리 사진을 찍어도 처참한 모습만 드러내는 수돗물의 경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 두근거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강물은 식물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것을 기르며 평야로 흘러들어 상류에서 가져온 영양분을 내려놓습니다. 매일 우리 식탁에 오르는 음식의 대부분은 강물의 혜택을 받아 성장한 것입니다(15쪽).” 하는 이야기를 헤아립니다. 물마다 결정이 다르듯, 물마다 맛이 다릅니다. 물마다 결정이 다른 모양이요 생김새이며 무늬이듯, 물마다 내음이 다르고 느낌이 다르며 숨결이 달라요.


  물 한 잔 받아서 마음속 사랑을 고이 들려주면 물방울 결정은 곱게 거듭납니다. 물 한 잔 아무렇게나 다루거나 함부로 굴리면 물방울 결정은 아무렇게나 망가집니다.


  깊은 두멧시골에서 길어올린 물이어야 아름다운 결정을 이루지는 않습니다. 깊은 두멧시골에서 길어올렸다 하지만, 내 마음이 엉망이거나 어수선하다면, 물방울 결정도 그만 엉망이 되거나 어수선하게 뒤틀려요. 내 마음이 따스할 때에 우리 아이들한테 따스한 말을 건네고, 내 마음이 차가울 때에 우리 아이들한테 차가운 말을 건넵니다. 나한테서 태어난 따스한 말은 아이들을 거치고 여러 사람을 거치며 차츰 더 따스한 기운을 뽐냅니다. 나한테서 자라난 차가운 말은 아이들을 거치고 여러 사람을 거치며 자꾸 더 차가운 기운이 짙습니다. 곧, 내 마음자리에 따라 물무늬와 물빛이 바뀌어요. 물은 스스로 맑거나 곱게 빛나기도 하지만, 내 마음결에 따라 한결 맑거나 슬프게 맑을 수 있고, 한껏 곱거나 안쓰러이 고울 수 있습니다.


  이리하여, 에모토 마사루 님은 “이 결정이 보다 크고 힘찬 모습의 결정으로 변할 수는 없을까요? 그 열쇠는 아마도 당신의 마음일 것입니다(29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물방울 결정이 오롯이 아름답지 못한 까닭은 바로 내 마음 때문이거든요. 물방울 결정이 오롯이 아름답다면 바로 내 마음 때문이에요. 내 사진이 오롯이 아름답지 못하면, 사진 솜씨가 모자라거나 사진 장비가 뒤떨어지기 때문이 아니에요. 내 마음이 모자라거나 내 사랑이 뒤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나는 다른 무엇보다 내 마음을 따스히 살찌울 수 있은 다음 사진기를 쥘 노릇입니다. 나는 바로 내 사랑부터 곱게 여미면서 사진기를 붙잡을 노릇입니다.


  마음이 따스하지 않으면서 겉보기에 그럴듯하게 꾸민다면, 작품으로서는 남다르다 싶을 수 있겠지만, 아름다움이나 즐거움이나 해맑음을 나누지 못해요. 마음이 따스하면서 사진길을 걸어가면, 처음에는 사진 솜씨가 모자라거나 어설플 수 있지만, 솜씨란 차츰 익숙해지면서 거듭납니다. 처음에는 투박하거나 거친 사진이라 하지만, 따스하거나 보드라운 마음이 깃들 때에는, 사진읽기를 즐기는 사람들 모두 활짝 웃을 수 있어요.


  에모토 마사루 님은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음식이나 식물 속에 포함된 물이 음악이나 말을 듣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사람이 음악을 듣고 즐거워하고 힘을 되찾는다면, 사람 몸속의 물이 변화하기 때문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던 것입니다(60쪽).” 하고도 이야기합니다. 이 대목을 곰곰이 되씹습니다. 내가 찍은 사진이 새롭게 보인다거나 예쁘게 보인다면, 왜 새롭게 보이거나 예쁘게 보일까요. 내가 찍은 사진이 틀에 박혀 보이거나 따분해 보인다면, 왜 틀에 박혀 보이거나 따분해 보일까요.

  우리는 어떤 짝꿍하고 사랑을 속삭이고 싶은가요. 우리는 어떤 짝꿍하고 어떤 사랑을 속삭이고 싶은가요. 우리는 우리 아이들하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가요. 우리는 우리 아이들한테 어떤 나라 어떤 누리를 물려주고 싶은가요.


  짐승을 귀엽게 여기며 보살피는 사람은 온갖 사랑을 듬뿍 나누어 줍니다. 짐승한테 막말을 일삼거나 막짓을 퍼붓지 않아요. 사진을 어여삐 여기며 보듬는 사람은 온갖 사랑을 듬뿍 담아 사진을 찍거나 읽습니다. 서툰 사진쟁이나 풋내기 사진쟁이 작품이라서 깎아내린다든지 얕잡지 않습니다. 삶을 삶대로 바라보고, 사랑을 사랑대로 마주하며, 사진을 사진대로 즐깁니다.


  에모토 마사루 님은 물방울 결정을 사진으로 찍으며, 참으로 깊은 한 가지를 스스로 묻습니다. “우리 눈으로 봐도 참 아름다운 사진인데요, 과연 물도 우리와 같은 느낌이었을까요(105쪽)?”


  자, 다 함께 생각해 보아요. 내가 바라보며 아름답다 느끼는 사진을 내 이웃이나 동무나 살붙이도 아름답다 느끼며 바라볼까요. 내가 아름답다 느끼는 풀잎을 내 이웃이나 동무나 살붙이도 아름답게 맞아들일까요. 내가 아름답다 느끼는 햇살이나 무지개나 구름이나 별빛을 내 이웃이나 동무나 살붙이도 아름답게 마주할까요.


  사진빛은 늘 마음속에 있습니다. 사랑빛은 언제나 마음밭에 있습니다. 삶빛은 한결같이 마음자리에 있습니다. 마음을 느낄 수 있으면 사진을 느낍니다. 마음을 아낄 수 있으면 사진을 아낍니다. 마음을 북돋울 수 있으면 사진을 북돋웁니다. 마음을 포근히 얼싸안으면 사진을 포근히 얼싸안습니다. 마음이 삶이요 삶이 마음입니다. 삶은 사진이고 사진은 삶입니다. 곧, 마음이 사진이요 사진이 마음입니다. 4346.2.1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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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색잉꼬 5
테츠카 오사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209

 


고흐 그림이 있는 마을
― 칠색잉꼬 5
 데즈카 오사무 글·그림,도영명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2012.4.25./9000원

 


  전남 고흥에서 충북 음성으로 옵니다. 두 아이와 함께 음성 할머니 할아버지 뵈러 나들이를 합니다. 고흥 시골집에서는 눈을 구경할 일이 거의 없지만, 음성 시골집으로 나들이를 오니, 아침에 새롭게 눈이 내립니다. 아직 한참 꿈나라를 누리는 아이들은 눈이 오는 줄 모를 텐데, 곧 잠에서 깨면 소복소복 내리는 눈이 좋아 까르르 웃고 노래하며 뒹굴겠구나 싶습니다.


  펄펄 내리는 눈은 온 들판을 덮습니다. 눈송이는 지붕을 덮고 숲을 덮으며 찻길을 덮습니다. 아파트도 공장도 하얗게 하얗게 덮습니다. 눈은 어디에나 내립니다. 눈은 어느 곳에나 내려앉습니다. 눈은 가리는 곳이 없습니다. 눈은 따지는 곳이 없습니다. 눈은 싫다 하거나 마다 하지 않습니다. 잣나무 가지에도 밤나무 가지에도 내려앉습니다. 사람들 머리에도 시외버스 지붕에도 찬찬히 내려앉습니다.


  들과 숲에 내린 눈은 천천히 녹습니다. 찻길에 내린 눈은 꽁꽁 얼어붙습니다. 들과 숲에 내린 눈은 흙으로 스며들어 흙을 살찌웁니다. 찻길에 내린 눈은 자동차 다니기 어렵게 얼어붙습니다.


  들과 숲에 내린 눈을 쓸거나 치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햇살이 천천히 녹여 들판을 천천히 살찌우거든요. 찻길에 내리는 눈은 곧장 치우는 사람들입니다. 찻길에 눈이 쌓이면 자동차가 다닐 수 없다면서 바지런히 쓸거나 치웁니다.


- “부모란 존재는 아이의 기분을 모르나 봐요.” “몰라도 괜찮아. 내 부모가 살아 있다고 해도 어차피 반대했을 거야. 학생 주제에 연애를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이지!” (20쪽)
- “그야 위로금을 받긴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돈을 받는다 해도 마음의 상처는 나아지는 게 아니지요. 그래서 우린 서로 손을 잡고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한달, 반드시 서로 우정으로 감싸 주자고 맹세를 했습니다.” (25쪽)

 

 


  빗물은 들과 숲에 녹아듭니다. 빗물 내리는 들과 숲은 무럭무럭 자라며 푸른 빛깔 흐드러지게 뽐냅니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빗물 또한 썩 달갑지 않게 여깁니다. 눈발 날리는 찻길도 빗물 흩날리는 찻길도, 자동차한테는 그저 성가실 뿐입니다. 하나하나 따지면, 도시사람은 눈도 비도 반기지 않습니다. 도시사람은 햇살이 눈부시거나 햇볕이 따사롭거나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도시사람은 바람이 불거나 자거나 헤아리지 않습니다.


  아파트와 숱한 건물에 깃드는 사람들은 해가 뜨건 말건 해를 바라보지 않습니다. 지하상가에서 일하거나 지하상가를 드나드는 사람들은 구름이 흐르거나 말거나 구름을 마주하지 않습니다.


  풀벌레는 찻길에서 살지 못합니다. 들새와 멧새는 찻길에 보금자리를 틀지 못합니다. 들짐승과 멧짐승은 찻길 언저리에 얼씬하지 못합니다. 찻길 빽빽한 도시는 풀벌레한테도 새한테도 짐승한테도 아주 안 좋은 터입니다. 오직 사람만 드나들거나 살아가는 도시입니다. 사람 아닌 목숨은 기웃거리기 힘든 도시요, 같은 사람한테조차 높다란 울타리가 있거나 두꺼운 바위가 턱 가로막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 “전 삼류 이하인 볼 것 없는 떠돌이 배우일 뿐입니다.” “하지만 저에게 있어선 명배우세요. 이렇게 매일 밤 절 감격하게 만드시는걸요.” (67쪽)
- “이제 그만 좀 하라니까! 너도 마찬가지야. 괜히 멋이나 부리고.” (108∼109쪽)

 

 


  그림쟁이 고흐 님은 어떤 마을에서 그림을 그렸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림쟁이 박수근 님이나 이중섭 님은 어떤 보금자리에서 그림을 그렸을까요. 시를 쓴 신동엽 님은 어떤 마을에서 삶을 빛내며 시를 썼을까요. 김남주 님이나 박노해 님은 어떤 터에서 이녁 삶을 밝히며 시 한 자락에 꿈 한 자락 살포시 얹었을까요.


  자동차 지나간 자리에는 풀이 돋기 어렵습니다. 자동차 밟은 자리에는 풀이 깔려 죽습니다. 자동차 지나다니는 찻길에서는 논이든 밭이든 잘 되기 어렵습니다. 논이나 밭은 조용한 시골마을 한켠에 있을 때에 잘 되고, 멧새 노랫소리와 풀벌레 노랫소리를 들어야 기름집니다. 논도 밭도 빗물과 눈송이를 머금으면서 해마다 알찬 곡식과 푸성귀를 베풉니다.


  사람은 무엇을 먹으며 살아갈까 헤아려 봅니다. 사람은 무엇을 먹을 때에 가장 빛나는 넋이 될까요. 사람은 어떤 먹을거리를 지을 때에 스스로 빛나는 얼이 되나요. 사람은 먹을거리를 어떻게 나누면서 하루를 즐길 적에 서로서로 고운 이야기를 꽃피울 수 있을까요.


- “이 인형을 조종하는 모습을 한 번 보여주게. 내가 감동할 정도로. 자네가 이 인형에 혼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그냥 넘겨주지! 허나 그렇게 못 한다면 이 녀석은 화장할 거네.” (140쪽)
- “그러니까 가고 싶지 않다고 하잖아. 잉꼬 너한테서 손을 떼는 꼴이 된단 말이야!” “그거 좋지. 그렇게 되면 나도 편해질 테니.” “이 차가운 자식. 사람 마음도 몰라주고.” “대체 나한테 뭘 어찌하라는 건데!” “어떻게든 좀 도와주면 좋잖아.” (160∼161쪽)
- “공포탄이라니. 날 감동시키는군, 형사나리. 이건 돌려주겠어.” (172쪽)

 


  데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 《칠색잉꼬》(학산문화사,2012) 다섯째 권을 읽습니다. 사람이 사람다운 삶을 누리는 터전을 보여주는 짤막한 이야기를 읽습니다. 사람이 서로 사람다운 사랑을 나누는 터전이 어떻게 태어나는가 하는 짤막한 이야기를 읽습니다. 사람이 사람다운 꿈을 이루는 길이 어떻게 샘솟아 널리 퍼지는가 하는 짤막한 이야기를 읽습니다.


- “어이, 도지에몬. 뭐 하는 거야. 왜 밭을 갈아?” “화단을 만들고 있어요. 저 애랑 약속했잖아요.” “이 순해빠진 녀석아! 정말로 저 애한테 봉사할 생각이야?” “저 불쌍한 애한테 거짓말을 할 셈이요?” (186쪽)
- “이 마을에는 고흐나 세잔느도 있는 반면에, 이런 야비한 인종들도 떼로 몰려다닌단 말이렷다!” (190쪽)


  고흐 그림은 어떤 마을에 있을 때에 어울릴까요. 벨라스케스 그림이나 루벤스 그림은 어떤 마을에 있을 때에 알맞을까요. 고흥에서 태어난 천경자 님을 기려, 고흥군에서는 ‘천경자전시실’을 마련하기도 했지만, 제대로 보살피거나 나누지 못했어요. 천경자전시실 옥상 물탱크가 터져 물이 줄줄 새기까지 했어요. 천경자 그림 예순 점 남짓 받아 ‘천경자전시실’을 꾸린 고흥군이었지만, 2012년 12월 끝무렵, 고흥군은 그림들을 모두 그예 돌려주고 전시실을 문닫기로 했어요. 우리 식구는 고흥에 자리를 잡아 살아가지만, 이제 천경자전시실에 마실을 갈 수 없고, 고흥에서는 그림 구경도 할 수 없구나 싶습니다.


  미술관은 어느 곳에 지을 때에 어울릴까요. 박물관은 어느 터에 세울 때에 알맞을까요. 학교는 어느 곳에 지어, 어떤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가르치면서 나눌 때에 아름다울까요. 시골마을은 어떤 삶 어떤 사랑 어떤 꿈을 일구는 보금자리가 될 때에 환하게 빛날까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는 무엇이 있을 만한 곳일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 식구 살아가는 고흥 시골마을에는 어떤 문화나 삶이나 예술이나 이야기가 깃들 때에 어울릴까 헤아려 봅니다. 고흥군 고흥읍에는 박지성공설운동장이 있고, 고흥군 금산면에는 김일체육관이 있는데, 고흥군은 이러한 이름을 붙인 시설을 얼마나 건사할 만하거나 얼마나 아낄 만하거나, 얼마나 사랑할 만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제 곧 겨울바람 그치고 봄바람 온 들판에 가득할 테지요. 머잖아 봄햇살 온 숲에 드리우면서 푸릇푸릇 싱그러운 새 빛 눈부시겠지요. 아이들과 즐길 숲마실과 들마실과 바다마실을 기다립니다. 4346.2.10.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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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휴일 1
나가하라 마리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218

 


삶이란 하나
― 소소한 휴일 1
 나가하라 마리코 글·그림,장혜영 옮김
 대원씨아이,2005.2.15.

 


  나는 여섯 살 때에 무엇을 하고 무엇을 느끼며 살았을까 떠올려 봅니다. 음, 잘 안 떠오릅니다. 그렇지만, 여섯 살을 누리는 큰아이를 바라보면서 곰곰이 내 지난날을 되짚습니다. 나와 옆지기가 서로 여섯 살 적에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이 되어 어떤 놀이로 하루를 누렸을까 하고 곱씹습니다.


  작은아이를 마주할 적에는 내가 세 살 적에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이 되어 어떤 놀이로 하루를 누렸는가 하고 가만히 되새깁니다. 나는 내 형한테 어떤 동생이 되어 서로 놀이를 누리는 사이였을까 하고 찬찬히 돌아봅니다.


  아이를 바라보며 내 얼굴을 떠올립니다. 아이 얼굴에 비친 내 얼굴을 헤아리며 내 어버이 얼굴을 그립니다. 내 얼굴에는 우리 아이들 얼굴이 서리고, 내 어버이 얼굴에는 또 내 얼굴이 감돌겠지요.


- “요즘 넌 전화할 때마다 힘들다 소리밖에 안 하잖니. 허구헌 날 그런 소리 듣는 사람도 힘들어.” (8쪽)
- “계속 다른 반이었고, 선택과목 같은 것도 전혀 달랐으니까, 오늘 이렇게 이야기하게 돼서 기뻐.” (21쪽)


  추운 겨울이라고 하는데, 겨울이니 춥습니다. 더운 여름이라고 하지만, 여름이기에 덥습니다. 추운 겨울날 밤하늘 올려다봅니다. 까만 하늘 그득 채운 별빛이 곱습니다. 더운 여름날 밤하늘 바라봅니다. 캄캄한 하늘 가득 누비는 별무리가 예쁩니다. 추운 겨울에는 아이들과 살을 맞대며 잠듭니다. 겨울에는 조그마한 방 한 칸에 넷이 나란히 누워 따스합니다. 더운 여름에는 대청마루에서도 자고 곁방에서도 잡니다. 여름에는 모기그물 사이로 스며드는 밤노래를 들으며 저마다 깊은 밤을 누립니다.


  아이들은 겨울이고 여름이고 이리저리 뒤척입니다. 갓난쟁이일 적에는 밤마다 오줌기저귀 가느라 잠들지 못했고, 조금 크니 밤오줌 가리느라 잠들지 못하며, 제법 자라니 뒤척이며 발로 차고 머리로 박느라 자꾸자꾸 잠을 깹니다.


  이런 밤잠도 한때일 테지요. 이 아이들이 예닐곱 살이나 열두어 살쯤 되면, 아무 걱정이나 성가심 없이 밤잠을 누리겠지요. 밤잠을 못 자게 하는 아이들 칭얼거림이란 훌쩍 지나갈 테지요.


  아이들은 알까요. 아이들은 저희 오줌기저귀 때문에 어버이가 밤잠 못 자는 줄 알까요. 아이들은 저희 밤오줌 가리기 때문에 어버이가 밤잠 이룰 수 없는 줄 알까요. 아이들은 저희 잠투정 때문에 어버이가 밤잠 누리지 못하는 줄 알까요.


  아마 알기는 알 테지만, 모르더라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니, 아이들은 이런 대목은 모르고 살아도 돼요. 하루하루 즐겁게 놀고 씩씩하게 크면 넉넉합니다. 나도 우리 아이들처럼 어릴 적에 어떻게 내 어버이를 고달프게 했는지 하나도 못 떠올려요. 우리 아이들이라 해서 다르지 않아요. 우리 아이들은 그저 밤에 달콤하게 자면 되고, 쉬 마려우면 누면 되며, 잠투정이나 잠꼬대 하고 싶으면 실컷 하면 됩니다. 밤별은 아이들 머리카락을 보드라이 쓰다듬어 줍니다.

 

 


- “결혼을 했든 안 했든 돈벌이를 잘하든 못하든, 그런 건 부모에겐 중요한 게 아니야. 자식이 행복하기만 하다면 그걸로 충분해.” (35쪽)
- ‘모르겠어. 난 헤어지고 나서 교류가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데,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걸까.’ (57쪽)
- ‘인연이 있는 사람과 함께 지내고 있으면 그걸로 된 게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한, 오늘 하루였습니다.’ (67쪽)


  나가하라 마리코 님 만화책 《소소한 휴일》(대원씨아이,2005) 첫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책이름처럼 우리 삶은 참으로 작습니다. 참말 작은 우리 삶은 수수합니다. 수수한 우리 삶은 투박합니다. 투박한 우리 삶은 아기자기합니다. 아기자기한 우리 삶은 맛깔납니다. 맛깔나는 우리 삶은 웃음꽃입니다. 웃음꽃 피어나는 우리 삶은 사랑입니다.


- ‘형태가 갖춰진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게 아냐. 여기에 필사적으로 일해 온 4년 반의 내가 있다.’ (82쪽)
- ‘요우코가 츠토무의 인생의 일부인 것처럼, 내 일도 내 인생의 일부야.’ (91쪽)
- ‘길을 잃고 다시 이곳으로 찾아오는 날도 있을까 모르지만, 그래도 언젠가 작아도 멀리서라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나만의 정원을 만들고 싶어. 그리고 그때 내 곁에서 함께 잡초를 뽑아 줄 누군가가 있다면 더욱 좋겠지.’ (98쪽)


  정갈하게 차린 밥상 함께 즐기려는 삶입니다. 겨울날 따스한 햇살 함께 즐기고 싶은 삶입니다. 여름날 시원한 바람 함께 즐기며 이야기꾸러미 펼치는 삶입니다.


  손가락 하나로 옆구리를 살며시 찌르기만 해도 웃음보가 터지는 아이들입니다. 손가락 하나로 발가락 하나 살포시 누르기만 해도 웃음주머니 터뜨리는 아이들입니다. 나뭇가지 하나로 온갖 놀이를 즐깁니다. 나뭇잎 하나로 갖은 이야기 쏟아냅니다. 돌멩이 하나가 우주와 같습니다. 들꽃 한 송이가 하느님과 같습니다.


  큰도시 커다란 가게로 찾아가서 장난감을 사 주어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 둘레 흙과 모래와 풀과 나무가 모두 놀잇감입니다. 큰도시 커다란 밥집으로 마실을 가서 비싼 밥 사다 먹여야 하지 않습니다. 들풀 한 줌이 밥이요, 아이와 나란히 들판에 앉아 들풀 뜯는 손길이 기쁨입니다. 큰도시 커다란 초·중·고등학교로 아이들을 보내 시험공부 잘 시킨 뒤 큰도시 커다란 대학교에 넣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아무 학교에 안 다녀도 되고, 아이들은 시골마을 작은 학교에 다녀도 됩니다. 학교를 다니고 안 다니고를 떠나, 이웃과 사랑을 나누고 동무랑 꿈을 속삭일 수 있으면 됩니다. 사랑스레 살아갈 하루요, 꿈을 이루는 하루입니다.


  공 하나 있으면 하루 내내 실컷 놀아요. 공 하나 없이 무등을 태우거나 손 잡고 들길을 걸어도 하루 내내 실컷 놉니다. 하모니카 하나 있으면 하루 내내 마음껏 노래를 불러요. 하모니카 하나 없이 목청 곱게 뽑으며 하루 내내 마음대로 노래를 부릅니다.


  자전거를 타면 돼요. 군내버스를 타면 돼요. 두 다리 믿고 씩씩하게 걸으면 돼요. 집부터 면소재지 우체국까지 십 리 길 걸어서 오가도 돼요. 이웃마을 살짝 지나가도 되고, 들길이나 숲길을 살그마니 거쳐 지나가도 돼요. 마을마다 한두 그루씩 있는 오래된 당산나무 그늘에서 다리쉼을 하면 돼요. 이백 살 오백 살 팔백 살 먹은 굵직한 나무를 얼싸안으면서 나무 숨결을 만날 수 있으면 돼요.

 

 


- ‘진심으로 좋아했던 상대와 헤어지고, 새로운 사랑은 찾아오지 않고, 인간관계는 가혹하고, 좋아하는 일을 해도 보답은 없고, 상처 주고 상처 입고 잃어버리고, 그런 일들이 없는 세상으로 가고 싶어.’ (119쪽)
- ‘생각났어. 그의 변화와 나의 변화가,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을, 5년 전에 깨달았기 때문에 헤어진 거야.’ (179쪽)


  날이 밝습니다. 작은아이가 먼저 잠에서 깹니다. 곧 큰아이도 깰 테지요. 나는 일찌감치 쌀을 씻어서 불렸습니다. 쌀을 불리며 국은 어떻게 끓일까 생각해 둡니다. 오늘 아침은 어제 아침보다 누그러진 겨울날이니, 여기저기 들판을 살피며 봄풀 몇 줌 뜯을까 싶습니다. 아버지는 봄풀을 뜯고, 아이들은 저희끼리 이리 쏘다니고 저리 달음박질치며 놀면 됩니다.


  맑은 바람을 쐽니다. 따사로운 햇살을 쬡니다. 시원한 물을 마십니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고소한 밥을 먹습니다. 하루는 천천히 흐르고, 아이들과 어른들은 저마다 천천히 자랍니다. 마음을 열면서 이야기가 오가고, 마음을 키우면서 이야기빛을 밝힙니다. 4346.2.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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