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와 칠성이 방방곡곡 구석구석 옛이야기 10
박영만 원작, 안미란 엮음, 김종도 그림, 권혁래 감수 / 사파리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마음껏 살고 싶은 아이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79] 김종도·박영만, 《연이와 칠성이》(사파리,2009)

 


  아이들은 스스로 학교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은 어버이가 아이를 학교에 보내야겠다고 생각하니 아이들이 학교에 갈 뿐입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회사원이나 공무원이나 과학자나 소설가나 이런저런 직업을 꿈꾸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은 어버이가 이런 길이 좋다거나 저런 길이 낫다거나 그런 길이 쓸모있다고 으레 이야기하니, 아이들이 저희 삶길을 헤아리지 않으며 이런저런그런 직업전선에 뛰어들 뿐입니다.


  아이들은 그저 마음껏 살고 싶습니다. 나부터 생각한다면, 두 아이 아버지로 살아가는 어른이기 앞서, 나 또한 그저 마음껏 살아가고픈 아이였고, 아직 아이이며, 앞으로도 아이로 지내지 않으랴 싶습니다. 나는 내 마음이 가장 보드라우면서 따사로운 결을 건사하는 자리를 생각합니다. 스스로 슬프게 찌푸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스스로 바보스레 윽박지르듯 말하지 않기를 꿈꿉니다. 가장 환한 얼굴로 가장 맑은 말을 빛낼 수 있기를 빕니다.


  어느 하루도 나한테는 가장 좋은 하루입니다. 나한테도 아이들한테도 살붙이한테도 하루하루는 참 좋은 선물입니다. 다만, 이 선물을 참 좋게 누리기도 할 테지만, 참 얄궂게 못 누리기도 합니다. 스스로 가장 좋은 마음이 된다면 선물을 실컷 누리고, 스스로 안 좋은 마음이 된다면 선물을 조금도 못 누립니다.


  온 들판을 울리는 개구리 노랫소리도 내 마음이 따사로울 때에 따사롭게 누립니다. 처마 밑 제비집에서 제비들 지저귀는 노랫소리 또한 내 마음이 너그러울 때에 너그럽게 누려요. 스스로 어떤 틀이나 굴레에 갇히면 아무것도 안 들리고 아무것도 못 보며 아무것도 못 누립니다.

 

 


.. 자식이 없어서 클클히 지내는 부부가 멀지 않은 곳에 또 있었어. 두 사람도 산신령께 백일 동안 정성껏 기도를 올렸어. 그러자 부인의 배가 불러 오더니 꽃같이 예쁜 딸아이를 낳았어. 아기 이름은 연이라고 지었지 ..  (7쪽)


  김종도 님이 박영만 님 글에 그림을 엮어 빚은 그림책 《연이와 칠성이》(사파리,2009)를 오래도록 들여다봅니다. 석 달 남짓 책상맡에 두고는 자꾸 들여다보며 생각합니다. 슬프면서 아름다운 한겨레 옛이야기라 하는데, 막상 이 그림책 줄거리가 ‘왜 슬프’고 ‘왜 아름다운’지를 그림책 끝자락 풀이말에서 옳게 들려주지는 못한다고 느낍니다. 더욱이, 왜 연이네 어버이나 칠성이네 어버이는 ‘조선 무렵 양반 옷차림’을 해야 할까 궁금합니다. 한겨레 옛이야기 가운데에는 조선 무렵 옛이야기도 있을 테지만, 참말 말 그대로 ‘한겨레’ 옛이야기예요. 게다가, ‘양반이나 사대부나 임금님 둘레’ 옛이야기가 아니에요. 고운 아이를 바라는 어버이가 으레 ‘양반 계급 같은 사람’이어야 하지 않아요.


  그러나, 《연이와 칠성이》 이야기를 이루는 밑흐름을 살핀다면, 두 집안 어버이는 ‘아이가 태어나기’만을 바랐을 뿐, ‘아이가 태어난 뒤 아이 스스로 어떤 꿈과 사랑을 누리며 살아가기’를 헤아리지는 않았어요. 두 집안 어버이는 두 아이를 ‘더 좋은 교육을 받도록’ 금강산으로 보내기는 했으되, 정작 두 아이 스스로 맑은 꿈과 사랑을 꽃피우는 길을 스스로 걸어가도록 마음을 기울이지 않았어요.

 

 


.. 연이와 칠성이는 금강산에서 친형제처럼 지냈어. 한방에서 같이 지내며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이 자고 같이 공부했지 ..  (13쪽)


  아이들은 ‘더 돈있는 집안’ 짝꿍을 만나 시집장가를 가야 즐거울까요. 아이들은 ‘더 이름있는 대학교’를 마쳐서 ‘더 돈 많이 주는 회사’에 들어가야 기쁠까요.


  아이들은 어느 때에 환하게 웃을까요. 아이들은 어느 때에 맑게 이야기꽃 피울까요.


  아이들에 앞서 어른들은 어느 때에 환하게 웃나요. 아이들이 시험을 잘 치러 100점을 맞아야 환하게 웃나요. 아이들이 싱그러이 뛰놀며 까르르 웃음보따리 터뜨릴 때에 환하게 웃나요.


  그림책 《연이와 칠성이》는 참말 슬픈 이야기입니다. 두 집안 어버이가 바보스러운 굴레에 스스로 갇혀 아이들을 사랑스레 아끼지 못하는 모습이 훤히 드러나니 슬픈 이야기입니다. 그림책 《연이와 칠성이》는 참으로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두 집안 아이들이 스스로 저희한테 가장 빛나는 사랑길을 찾아 모든 굴레와 껍데기를 벗어던지면서 어깨동무를 하기에 더없이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 이튿날 아침, 편지를 본 칠성이는 크게 놀랐어. 연이가 없으니 외로워서 잘 수도 없고, 공부도 할 수 없었지. 칠성이는 연이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 그래서 연이를 찾아가기로 결심했어 ..  (20쪽)


  금강산에는 아이들만 배우러 갈 노릇이 아닙니다. 아이와 어버이가 함께 금강산에 갈 노릇입니다. 두 집안 어버이는 굳이 아이들을 금강산으로 보내지 않아도 됩니다. 이녁 집안에서 아이들을 곱고 맑게 사랑하는 길을 살펴 즐겁게 가르칠 노릇입니다.


  집에서 가르칠 수 있을 때에 금강산에서 가르칠 수 있습니다. 집에서 배울 수 있을 때에 금강산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여느 살림집, 곧 보금자리는, 가장 좋은 삶터이자 가장 좋은 배움터입니다. 여느 어버이, 곧 여느 어머니와 아버지는, 가장 좋은 교사이자 가장 좋은 동무입니다.


  좋은 슬기는 어버이 가슴속에 있습니다. 좋은 슬기는 아이들 가슴속에도 있습니다. 어버이와 아이가 서로 예쁘게 얼크러지면서 저마다 가장 좋은 슬기를 가장 좋은 넋으로 북돋우면서 가장 좋은 꿈으로 빛내면 넉넉합니다.


.. 마침내 연이가 시집가는 날이 되었어. 연이는 칠성이 생각에 가슴이 미어질 듯 아프기만 했지. 가마가 칠성이 무덤 옆을 지날 때였어. 연이는 사람들이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가마에서 내려 칠성이 무덤을 쓸어안고 안타까이 울었어 ..  (25쪽)

 


  마음껏 살아갈 때에 아름다운 아이들입니다. 어른들도 어버이들도 이녁 마음을 가장 살찌우면서 북돋울 때에 가장 아름다운 넋이 됩니다. 누구나 아름답게 살아갈 노릇이지, 무언가를 거머쥐며 살아갈 노릇이 아닙니다. 이것이 되거나 저것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이런 숫자를 이루거나 저런 실적을 쌓아야 하지 않습니다. 이런 상을 받거나 저런 이름값을 남겨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학자나 전문가나 교사가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되어야 하지 않습니다.


  거름이 되려고 꽃을 피우는 들풀은 없습니다. 사람한테 잡아먹히려고 크는 소나 돼지는 없습니다. 저마다 마음껏 삶을 사랑하면서 피어나는 풀이고 꽃이며 나무입니다. 저마다 마음껏 삶을 누리면서 태어나는 귀뚜라미이며 개구리이고 왜가리입니다. 사람이 낳은 사람은 ‘학교를 다니’거나 ‘영어를 배우’거나 ‘돈을 벌라’는 뜻으로 자랄 넋이 아닙니다. 사람이 낳은 사람은 ‘서로 사랑하’고 ‘서로 믿으’며 ‘서로 어깨동무하’는 맑은 꿈을 빛낼 어여쁜 넋입니다. (4345.7.1.해.ㅎㄲㅅㄱ)

 


― 연이와 칠성이 (김종도 그림,박영만 글,사파리 펴냄,2009.6.26./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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