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바이 준초이
준 초이 사진과 글 / 디자인하우스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돈’사진이든 ‘사람’사진이든
 [찾아 읽는 사진책 105] 준초이, 《메이드 바이 준초이》(디자인하우스,2004)

 


  1952년에 태어난 최명준(준초이) 님은 쉰을 조금 넘은 나이에 《메이드 바이 준초이》(디자인하우스,2004)라 하는 자서전을 내놓습니다. 200쪽 안팎이 되는 자그마한 《메이드 바이 준초이》 겉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사진의 비밀’이라는 이름이 붙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가장 비싼 사진’이 무엇이고, 이 같은 사진을 찍은 비밀이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는 한 줄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준초이 님이 광고사진을 찍어 얼마나 받았기에 ‘가장 비싼’ 사진이라 하는지, 또는 ‘비싼’ 사진이라 하는지 또한 알 길이 없습니다. 다른 광고사진가는 광고업자한테서 얼마를 받고, 준초이 님은 얼마를 받느냐 하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거든요. 곧, 《메이드 바이 준초이》는 사진책이지만 사진책 가운데에서도 ‘자서전’이나 ‘회고록’이요, 자서전이나 회고록이지만, 모든 이야기를 낱낱이 담지는 않습니다. 임응식 님이 낸 《내가 걸어온 한국 사단》(눈빛,1999)은 퍽 시시콜콜하다 싶은 대목까지 찬찬히 적습니다. 임응식 님은 당신이 살아낸 나날로도 ‘한국 사진 역사’가 되는데, 당신이 겪은 ‘사진삶’을 시시콜콜히 밝히는 이러한 이야기에서도 ‘사진으로 살아가’거나 ‘사진을 읽’거나 ‘사진을 생각하’는 여러 가지 길을 느끼도록 해 줍니다. 이와 달리 준초이 님이 내놓은 《메이드 바이 준초이》는 ‘준초이 성공 이야기’를 자서전이나 회고록 틀로 보여주기는 하지만, 정작 시시콜콜하거나 자질구레하다 싶은 여러 이야기를 낱낱이 밝히지 못하는 만큼, ‘한국 사진 역사’도 ‘사진으로 살아가는 길’도 ‘사진을 읽는 눈’도 ‘사진을 생각하는 마음’도 들려주지 못합니다. 안타깝지만 ‘준초이 님 자기 위안’이나 ‘준초이 님 자기 자랑’이라는 틀에서 맴돕니다.


  “일본 유학을 끝내자 때마침 한국의 중앙대학교에서 사진과 교수 제의가 들어왔다. 무척 고맙기는 했지만, 나는 내친 김에 미국에 가서 사진가로서 실무경험을 쌓고 싶었다. 아니, 사진의 일인자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49쪽).” 하고 말합니다. 준초이 님이 ‘일본 사진 유학’이 어렵다 하던 때에 일본으로 사진을 배우러 갔다고 적지만, 어렵게 비자를 받아 일본에 가서 알바를 하다가 좋은 분을 만나 도움을 받기도 했다는 대목만 살짝 실립니다. 한국에서 김동리 님하고 가까이 지냈다고 적기도 하지만, ‘왜 어떻게 얼마나’ 가까이 지냈는가 하는 대목은 없습니다. 중앙대학교에서 어떤 일로 어떤 사진과 교수가 되기를 바라며 연락했는지, 준초이 님이 스스로 생각하는 ‘사진가로서 실무경험’은 무엇인지 하는 대목 또한 없습니다.


  다만, “(미국) 사진가들은 내가 가장 자랑하고 싶었던 ‘우수한 장학생’의 성적표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내 포트폴리오만 훑어보던 그들은 그것마저도 흥미를 갖지 않는 듯했다(58∼59쪽).” 하는 대목은 밝힙니다. 그렇지만, 미국 사진가들이 ‘일본에서 대학교를 마친 준초이 님 사진 어느 모습이 마음에 안 끌리는가’ 하는 이야기를 찬찬히 밝히지 않습니다. 성적표에 찍힌 ‘훌륭한 점수’도 밝혀 주지 않습니다.


  예나 이제나 아주 마땅하지만, 사진길을 걷고 싶은 사람이 보여줄 모습은 오직 하나입니다. ‘사진’입니다. 사진길을 걷고 싶으니 사진을 찍고 사진을 읽으며 사진을 나눕니다. 온몸이 사진이 됩니다. 온마음이 사진이 됩니다.


  사진길을 걷는 사람한테 갈래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다큐사진이든 예술사진이든 사람사진이든 미술사진이든 상업사진이든 패션사진이든 광고사진이든 생활사진이든 대수롭지 않아요. 노동자와 어깨동무하며 찍는 사진이든 대기업과 어깨동무하며 찍는 사진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큰 장비를 걸머지고 찍는 사진이든 작은 사진기 하나로 찍는 사진이든 대수로울 수 없어요. 큰 장비와 값진 사진기로 찍는 사진이라면 빈틈이 거의 없는 틀을 마무를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사진’은 ‘작품 만들기’가 아닙니다. 사진은 그저 ‘사진찍기’입니다.


  “매혹적인 빛의 변화를 쳐다보고 있노라면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산뜻하고 건조한 분위기가 태양이 기울면서 점차 다양한 무드로 변해 가는 과정을 해가 지도록 즐기곤 했다(108쪽).” 하는 말을 읽습니다. 준초이 님은 ‘빛을 좋아한다’고 밝히고, ‘빛을 잘 다룬다’고 밝힙니다. 그런데 《메이드 바이 준초이》에 나오는 빛 이야기는 모두 ‘조명’입니다. 108쪽에 딱 한 차례 ‘햇살이 이루는 빛’을 말해요. 준초이 님이 사람을 찍든 가구를 찍든 호텔을 찍든 언제나 ‘전등 불빛’과 ‘조명’을 쓸 뿐, ‘햇빛’으로 사진을 찍는 일은 없습니다.


  전기로 밝히는 불빛도 빛입니다. 해가 비추는 빛도 빛입니다. 어느 쪽이든 빛을 좋아하고 빛을 다루는 일이니 ‘빛’이라 말할 만합니다. 그러니까, 준초이 님이 광고사진 일을 하면서 조명을 많이 자주 다뤄야 한다면, 얼마나 많은 조명을 어디에 어떻게 놓으면서 어떻게 터뜨리는가 하는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이 사진책에 밝히면 돼요. 한 마디로 간추려 ‘준초이는 빛을 잘 다룬다구!’ 하고 말할 노릇이 아니라, ‘빛을 잘 다룬다구!’ 하는 말은 안 해도 되고, 쪽수가 두 쪽이나 열 쪽으로 넘쳐도 좋으니, 광고사진을 찍으며 400킬로그램이나 되는 조명이나 장비를 날라야 한다는 이야기는 덜면 돼요. 몇 사람이 조명기구를 어떻게 다루며, 이렇게 다루고 놓느라 품과 겨를을 어떻게 쓰다가 사진은 어떻게 찍는가 하는 이야기를 넣으면 돼요. 스튜디오에서 준초이 님이 ‘새로 만든 빛’으로 사진을 찍을 때에 어떠한 느낌과 생각과 사랑이 피어나는가 하는 이야기를 찬찬히 쓰면 돼요.


  “좋은 호텔일수록 사진가에 대한 대우에 각별한 신경을 쓴다. 반대로 수준이 낮은 곳일수록 사진가를 업자 취급 하며 명령하듯 일을 한다. 사진가로서의 프라이드는 전적으로 작품의 질에 비례한다. 자존심을 죽이고 하는 일의 결과가 좋을 리 없다(113∼114쪽).” 하는 말을 읽습니다. 바보스레 일하는 사람을 사진으로 찍으면 바보스레 보이는 모습이 나옵니다. 아름답게 일하는 사람을 사진으로 찍으면 아름답게 보이는 모습이 나옵니다. 일류 호텔이기에 더 멋스레 보이지 않습니다. 일류이건 이류이건 스스로 아름답게 일하는 사람들은 아름답게 흘리는 땀방울을 보여주기에, 이 아름다움이 사진에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일삯을 한 푼도 쳐 주지 못하는 데에서 자원봉사로 일하더라도, 이곳에서 땀흘리는 이들이 아름다운 웃음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자원봉사 사진가인 나는 언제나 아름다운 웃음을 사랑스레 사진으로 담을 수 있어요. ‘사진을 찍는 나’는 늘 ‘아름다운 사랑’을 사진으로 담고 싶습니다. ‘사진을 읽는 나’는 노상 ‘아름다운 꿈’을 사진에서 읽고 싶습니다. 좋아하는 이야기를 사진에 담습니다. 좋아하는 이야기를 사진에서 느낍니다.


  그런데 준초이 님은 “예술사진과 광고사진, 굳이 경계를 나누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광고사진을 하더라도 예술을 하는 자세로 임했고, 그 결과 또한 대등한 것이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광고사진이 많은 인재들의 공동 작업이 낳은 것이라는 점에서 더 가치 있는 예술품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삼성의 해외 광고 작업은 단순한 상업광고를 넘어서 내게 작가적 열정을 일깨워 준 의미 있는 프로젝트였다(124∼125쪽).” 하고 말합니다. 새삼스럽지만, 사진에는 갈래(경계)가 없습니다. 갈래가 없는데 애써 갈래를 짓는다면 스스로 갈래라는 이름으로 틀에 박히거나 울타리에 갇힙니다. “광고사진을 하더라도 예술을 하는” 매무새로 사진을 찍었다는 준초이 님이라 밝히지만, 이 말은 “광고 일로 돈을 벌더라도 예술을 했다”는 뜻입니다. 곧, 준초이 님은 ‘사진’을 한 사람이 아니라 ‘예술’을 한 사람이요, ‘예술을 하며 돈을 번’ 사람이라는 소리가 됩니다.


  그러면, 이쯤 해서 준초이 님 스스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사진의 비밀’을 밝힐 때입니다. 대기업 삼성 광고를 맡은 준초이 님이 ‘얼마’를 받아서 ‘훌륭한 예술품’을 빚었는가 하는 대목을 이야기할 때입니다. 또는 “작가적 열정”이라고 밝힌 말처럼, 준초이 님이 나아가고 싶은 꿈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해야겠지요.


  준초이 님은 광고사진을 찍으면서도 사람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합니다. 이리하여, “내가 인물사진을 한다고 하니, 혹자는 상업사진가로도 충분히 명예를 얻었는데 너무 욕심이 과한 것 아니냐는 얘기들을 한다. 그러나 그걸 ‘과욕’이라고 부른다면 먼저 그 오해부터 풀어야겠다. 내가 인물사진을 하겠다는 것은 또 하나의 명예를 얻기 위함이 아니라 젊은 시절, 경제적 이유 때문에 미뤄 놓은 못다 한 숙제를 마무리하기 위함이다(181쪽).” 하고 말합니다. 욕심이 없이 아쉬움을 털려고 사람사진을 찍겠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사진책 《메이드 바이 준초이》를 읽는 내내, 나로서는 준초이 님이 품은 ‘욕심’ 하나만 읽힙니다. 왜냐하면, 준초이 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진가로서 일등이 되기’를 바랐다고 밝히거든요. ‘일등 사진가’가 되고 싶어 일본으로 유학을 갔고, 일본에서 다시 미국으로 갔으며,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면서도 늘 ‘일등 되기’를 가슴속에 품으며 하늘한테 빌었다고 거듭 밝힙니다. 그래서 나는 준초이 님이 광고사진 말고 사람사진을 찍는다 할 때에는 한낱 ‘욕심’일 뿐이라고 느낍니다.


  준초이 님은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광고사진을 찍는대서 ‘사람을 사진으로 못 찍을 일’이 없습니다. 광고사진을 찍으면서 얼마든지 사람을 찍을 수 있습니다. ‘사진으로 담고 싶은 사람’을 어느 좋은 곳을 찾아다니며(헌팅) 그곳에 착 세워 차려 하고 서도록 한 다음 찍어야 사람사진이 되지 않아요. 스튜디오에서 함께 일하는 심부름꾼을 찍어도 사람사진이에요. 아이들 사진을 찍어도 사람사진이에요. 서울 포이동에 있다는 건물 옥상에서 길을 내려다보며 사진을 찍어도 사람사진이에요. 사진기 하나 들고 길거리로 나와 아무나 붙잡고 사진을 찍어도 사람사진이에요. 그냥 이렇게 사진을 찍으면 돼요. 광고사진판이나 사진이웃한테 ‘나 이제 사람사진 찍겠어!’ 하고 외칠 까닭이 없어요. 그냥 찍으면 돼요. 사진은 입으로 하지 않고 사진기 단추를 누르면서 하잖아요. 빙그레 웃으며 말없이 사진기 단추를 즐겁게 누르면 돼요. 사진기 단추를 누르기보다, 이렇게 자서전이자 회고록인 책에 ‘핑계’와 같은 말마디로 ‘욕심’을 새삼스레 드러낸대서 사람사진을 ‘일등 사진가’가 되어 찍을 수 있지 않아요.


  한 마디를 덧붙여 봅니다. 준초이 님은 “경제적 이유 때문에 미뤄 놓은 못다 한 숙제”가 ‘사람사진’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준초이 님을 뺀 숱한 사진쟁이들은 ‘돈이 없’어도 오래도록 사람을 사진으로 담는 한길을 걸었어요. 돈이 있대서 찍는 사람사진은 아니에요. 돈이 없대서 못 찍는 사람사진도 아니에요. 그저 내가 살아가는 곳에서 내 사랑과 꿈에 알맞게 누리는 사람사진이에요.


  ‘돈’사진이라서 나쁘지 않아요. 돈을 벌면 버는 대로 좋아요. ‘사람’사진이라서 좋지 않아요. 사람을 찍으면 찍는 대로 좋아요. 그저 좋아해 주셔요. 광고사진도 사진이고 다큐사진도 사진이에요. 예술사진도 사진일 뿐이에요. 그러나, 지구별에서 적잖은 사람들은 광고사진이나 패션사진이나 다큐사진이나 예술사진을 ‘사진’으로 하기보다는 ‘광고·패션·다큐·예술’로 하곤 합니다. 손에는 사진기를 쥐었으나 ‘사진’이 아닌 ‘광고’나 ‘예술’만 하는 사람이 많아요. 준초이 님은 어떤 길인가요. 준초이 님은 사진길인가요, 광고길인가요, 예술길인가요.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길을 걸어가면서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빛을 보여주셔요. (4345.7.2.달.ㅎㄲㅅㄱ)

 


― 메이드 바이 준초이 (준초이 글·사진,디자인하우스 펴냄,2004.7.16./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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