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책을 싸던 종이 (2018.5.31.)


― 전남 순천 〈형설서점〉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이곡1길 12

061.741.1069.



  1999년이 저물고 2000년으로 접어들 즈음 바뀐 살림이 꽤 많은데, 이 가운데 하나는 책싸개입니다. 지난날에는 책싸개라 하면 으레 신문종이나 달력종이를 썼고, 살림이 나은 집에서는 닥종이를 썼지요. 이러다가 비닐로 책을 쌌으며, 요새는 딱히 책을 종이로 싸지 않습니다.


  책도 종이입니다만, 굳이 이 종이꾸러미를 다른 종이로 한 겹 둘렀다면, 그만큼 ‘책이란 종이뭉치가 아닌, 종이라는 몸에 입힌 오래오래 살아숨쉴 이야기빛’이란 뜻이겠지요.


  헌책집 〈형설서점〉에서 ‘책터 그날이오면’ 책싸개를 만납니다. 어느 집에서 한꺼번에 나온 책에 이 책싸개가 고스란히 있습니다. 저는 그 집에서 나온 책에는 마음이나 손길이 하나도 안 갔지만, ‘책터 그날이오면’ 책싸개를 ‘책에 싼 모습대로 고스란히’ 간직하고 싶어서 《에티엔 발리바르의 ‘정치경제(학) 비판’》(윤소영, 한울, 1987)하고 《농민층분해와 농민운동》(서울대 사회학과 사회발전연구회, 미래사, 1988)을 골랐습니다.


  책집지기님이 묻습니다. “허허, 책싸개 땀시롱 책을 사남? 책싸개라면 그냥 주지. 난 그냥 다 뜯어서 버리는데. 뭔 책인지 안 보이잖아. 근디, 뭘 안 읽을 책을 다 사남?” “책싸개도 책이 살아온 자취인걸요. 안 쓴 책싸개보다도 이렇게 책에 싼 책싸개가 ‘책이 살아온 자취’를 더 잘 말해 줘요. 책에 싼 책싸개를 보면서 이 책싸개를 어느 해에 썼는가를 읽을 수 있기도 하고요.” “자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책싸게도 되게 중한가 보이. 그럼 나도 하나 건사해야겠구만.”


  동화책 《조지, 마법의 약을 만들다》(로알드 달·퀸틴 블레이크/김연수 옮김, 시공주니어, 2000)를 집고서 《글쓰기 어떻게 가르칠까》(이오덕, 보리, 1993)를 집습니다. 우리 책숲에 이 책이 딱 하나만 있지 싶어, 하나 더 갖추자고 생각합니다.


고양이를 이해하지 못하니 징그럽기만 했을 것이다. 불쌍했다는 말은 말에 그치고 있다. 이것이 도시의 아이들이다. 자연을 멀리하고 자연과 아주 떨어져 있는 세상, 자연이 없고 있어도 병든 자연만 있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으니 자연을 알 리가 없고 자연에 정을 느낄 리가 없다. (이오덕/175쪽)


  순천시에서 낸 《순천 문화재 이야기》(순천시, 심미안, 2015)를 집습니다. “그 책이라면 잔뜩 쌓였네. 하나 그냥 가져가소.” “이 책이 잔뜩 들어왔다고요? 순천시에서는 이런 책을 잘 펴냈으면서 왜 둘레에 안 돌리고 그냥 버렸을까요?” “그러게 말여, 책은 존 책이고 잘 만들었는데 왜 그랬을까? 예산을 써서 책을 좋게 만들었으면 전국 도서관이나 학교에라도 뿌리면 좋지 않을까? 사후관리를 안 해. 그렇게들 생각이 없을까?” 뭉텅이로 쌓인 책 곁에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 활동자료집 2008.2.25∼2013.2.24.》(대통령실, 2013)이 있습니다. ‘대통령 여사님 책’까지 나라에서 돈을 대어 찍었군요.


‘대기업 사모님’답지 않게 소탈하고 진솔한 면모를 보여온 김윤옥 여사는 자신의 블로그 ‘가회동 이야기’에 ‘신혼 첫날 밤’, ‘못생긴 남편 얼굴’, ‘작은 눈이 매력적’ 등을 주제로 이명박 대통령과의 소소한 일상을 전해 네티즌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특히 김 여사가 ‘가회동 이야기’에 남긴 글귀 “어느 누구보다 힘든 길을 가고 있는 남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적절한 조언과 위안’이었다”는 영부인의 내조 스타일을 반영한다. (11쪽)


  우리는 2010년대를 훌쩍 넘은 때까지 ‘내조 스타일’을 따져야 하는지 아리송합니다. 《바람이 또 나를 데려가리》(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디자인하우스, 2005)라는 사진책을 봅니다. 영화감독이 찍은 사진을 넘기면서, 이분은 이런 사진을 ‘흐르는 모습’으로 담으려 했네 하고 깨닫습니다. 《고통의 언어 삶의 언어》(성민엽, 한마당, 1986)를 고르고, 《승무》(조지훈, 정음문화사, 1984)를 고릅니다. 조지훈 님이 쓴 시 가운데 ‘어린이에게’가 눈에 띕니다.


너희들도 보았을 것이다. / 오랜 가뭄 끝에 줄기차게 내리는 비를 / 쓰레기도 구더기도 걸레쪽도 쇠똥조박도 / 더러운 것이라 모두다 떠내려가는 그 검은 흙탕물을 / 그게 바루 혁명이란 게다. / 혁명은 홍수 혁명은 씻어 버리는 것 / 어린이들아 즐겁지 않으냐 / 말라서 터진 이랑마다 흠뻑 스미고 / 남아서 철철 논고마다 넘치는 물 / 잎새는 더 푸르고 꽃은 더욱 붉고 / 싱싱히 너울대는 그늘에 / 너도 매미처럼 노래하며 자라거라. (어린이에게, 조지훈/246쪽)


  묵은 시집 《붉은 강》(강은교, 풀빛, 1984)하고 《오늘도 너를 기다린다》(강은교, 실천문학사, 1989)를 봅니다. 《한국어의 입말과 글말》(노대규, 국학자료원, 1996)이며 《채광석전집 4 평론 1 민중적 민족문학론》(채광석, 풀빛, 1989)에다가 《채광석전집 5 평론 2 찢김의 문화 만남의 문화》(채광석, 풀빛, 1989)도 돌아봅니다.


교수님과 학생 모두에게 있어 사회의 현실을 바르게 분석한다는 것은 곧 역사적, 사회적 현실을 비판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물을 맹목적, 순응적으로 인식할 때 그 사물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전집 5권 226쪽)


  저는 사전이란 책을 짓기에 곁책으로 삼으려고 《한민족역사문화도감 : 식생활》(최호식 사진, 김혜경·이건욱 글, 국립민속박물관, 2007) 같은 두툼한 책도 장만합니다만, 구태여 이렇게 책이름을 붙여야 하는지 아리송합니다. ‘한겨레’란 이름이 있는데 ‘한민족’이라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밥살림’이라 하면 될 텐데 ‘식생활’처럼 일본 한자말을 써야 학문이 되는지 궁금합니다.


  밥살림이건 옷살림이건 집살림이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수수하게 지은 발자취는 제대로 안 남곤 합니다. 여느 자리에서 여느 살림을 꾸리는 이라면 다 낡고 닳은 살림은 불쏘시개로 삼거나 흙한테 돌려주지요. 쓰레기 없는 살림이라 늘 돌고 돌아요. 언제라도 스스로 새로 짓기에 말끔하면서 정갈합니다. ‘투박하다’고 하는 들사람 살림일 텐데, 이 투박한 살림이란 ‘튼튼하면서 밝은 길’이라고 느낍니다. 역사나 문화나 학문이 아닌, 살림살이로 바라보면서 사랑스레 다가설 적에 비로소 어떤 밥을 어떻게 누렸나 하는 이야기가 꽃으로 피어나리라 생각해요.


  예전에는 시큰둥하게 지나친 《천년의 울음이여 사랑이여》(고은 글·리천록 사진, 한샘출판사, 1990)란 사진책을 봅니다. 마침 그 늙은 고은 글이 깃든 사진책입니다. 겉속 다른 늙은네 글이 깃든 책은 앞으로 두고두고 손가락질을 받겠지요.


  사진책 《PEOPLE OF THE WORLD》(national geographic, 2001)를 마지막으로 고릅니다. 푸른별 뭇나라 뭇겨레를 찬찬히 담아내려 애썼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푸른별 온나라를 책 하나로 담아내려 하노라면 ‘한 나라 이야기를 몇 줄’로 담아도 넘치기 마련입니다. 어느 나라가 어떠한 숨결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어떤 몇 줄’로 담을 적에 제대로 바라보면서 나눌 만할까요? 우리는 스스로 이 나라를 ‘어떤 몇 줄’로 그릴 만하고, 이웃 여러 나라를 ‘어떤 몇 줄’로 그릴 만할까요?


  해가 높이 솟습니다. 바람이 붑니다. 때때로 비가 내립니다. 풀벌레가 노래합니다. 새가 날갯짓을 하면서 날벌레를 홱 잡아챕니다. 개구리가 풀밭에서 푸스럭 뛰고, 오디가 검붉게 익습니다. 얇은종이 한 자락이 책을 고이 감싸면서 두고두고 여러 손길을 탑니다. 자그맣다 싶은 사랑을 아이들한테 남긴다면 이 사랑스러운 손길로 이 땅이 앞으로 환하게 달라지리라 생각합니다. 책이라면, 종이뭉치를 넘어선 책이라면, 숲빛을 살뜰히 담아 마음으로 빛날 책이라면, 따사로이 살림을 쓰다듬는 자리에 깃들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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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사하는 책 (2018.4.18.)


― 전남 순천 〈형설서점〉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이곡1길 12

061.741.1069.



  오늘 이곳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문득 글·그림·사진으로 옮깁니다. 처음에는 한 꼭지였다면 어느새 둘셋넷이 되고, 열을 지나 쉰을 거쳐 차곡차곡 쌓습니다. 어느 날 돌아보니 여태 건사한 이야기가 제법 두툼해서 하나씩 되새기면서 솎고 가리고 추려서 꾸러미를 하나 짓습니다. 이 꾸러미를 새롭게 여미니 책으로 태어납니다.


  책 하나란 ‘이 푸른별에서 살아온 사람이 건사한 이야기 꾸러미’입니다. 책집에 책 하나만 동그마니 놓을 수 있습니다. 책집에 숱한 책을 빼곡하게 갖출 수 있습니다. 요즈막에 ‘셀렉트숍’이란 이름을 쓰는 책집이 꽤 늘어나는데, 이 일본스러운 영어가 아니어도 모든 책집은 책집지기 눈썰미로 고른 책을 갖춥니다. ‘골라서 갖추지 않은 책집’이란 한 곳도 없습니다.


  다만 다르게 볼 대목은 있어요. 그냥저냥 팔림새에 맞추어 고를 수 있습니다. 팔림새보다는 읽음새를 헤아려 고를 수 있습니다. 잘 팔릴 만하다 싶어서 잔뜩 들일 수 있지만, 잘 읽힐 만하다 싶어서 알맞게 들일 수 있습니다. 널리 알려진 책이니 누구라도 집어들리라 여겨 갖추는 책집이 있고, 아예 안 알려지다시피 한 책이지만 책집지기가 알아채고서 ‘어느 책나그네가 이 책을 기쁘게 알아보아 줄까?’ 하고 설레면서 갖추는 책집이 있습니다.


  봄빛 봄바람을 누리면서 순천마실을 합니다. 아이들이 따라나섭니다. 시외버스에서 노래노래 부르며 찾아갔고, 거님길을 뚜벅뚜벅 걷습니다. 큰아이는 성큼성큼 걷는다면, 작은아이는 폴짝폴짝 뜁니다. 〈형설서점〉에 닿습니다. 두 어린이는 저마다 스스로 마음에 닿는 책에 손을 뻗습니다. “어, 이 책 우리 집에도 있는데?” 하면서 낯익은 책부터 집어서 폅니다. 재미나지요. 어린이는 으레 ‘예전에 읽은 책’을 다시 끄집어서 읽어요. 아직 안 읽은 책보다는 ‘예전에 즐겁게 읽은 책’을 새롭게 읽을 뿐 아니라 ‘예전하고 다른 눈빛’으로 읽어내곤 합니다.


  어른도 비슷합니다. 새롭게 책집마실을 할 적에 “그래, 이 책 읽어 봤지.” 하면서 ‘스스로 읽은 책’부터 알아보곤 해요. 읽었기 때문에 눈에 바로 뜨인달 수 있어요.


  처음에는 이와 같지 싶어요. 처음에는 눈에 익은 대로 바라보고, 어느새 ‘처음 마주하는 책’에 눈이 가며, 손이 가고, 마음이 갑니다. 한 걸음씩 나아갑니다. 머나먼 길에 이르기까지 숱한 걸음을 옮기듯, 저 너머로 나아갈 새로운 살림길을 다스리도록 곁벗으로 삼을 책 하나를 고를 적에 찬찬히 온 숨결을 뻗습니다.


  아이들하고 읽으려고 《사람이 되고 싶었던 고양이》(로이드 알렉산더/햇살과나무꾼 옮김, 논장, 1999)를 고릅니다. ‘삼천포시립도서관 장서’ 자국이 남은 《전후 신춘문예 당선시집 下》(조태일·김흥규 엮음, 실천문학사, 1982)를 봅니다. 묵은 책이어서 공공도서관에서 버렸구나 싶어요. 《광양 방언 사전》(기세관, 한국문화사, 2015)이 보입니다. 지자체에서 그 고장 이야기하고 살림을 담아내는 책을 펴내는 일에 거의 이바지를 안 해요. 어느 고장이나 비슷합니다. 지역문화를 북돋우려 한다면, 오늘 이곳에서 일구는 밑살림을 아로새겨서 아이들한테 물려줄 ‘우리 고장 책하고 사전’에 밑돈을 넉넉히 들일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 《광양 방언 사전》의 자료는 대부분 10여 년 전에 이미 모은 것이다. 당시 나는 2∼3년 간격으로 이 책을 출판하기 위하여 광양시에 그 출판비 일부를 도와줄 것을 요청하는 신청서를 두어 차례 낸 바 있으나 거듭 거절당하였다. 그 뒤 나는, 이 책의 편찬이 두고두고 역사·문화적 업적으로 남을 것임을 몰라주는 야속한 광양시 당국을 원망하기도 하면서 내 나름으로는 실의에 빠져 가슴아파하며 버텨온 지 10여 년이 흘렀다. (5쪽)


  얼결에 집은 《작가는 왜 쓰는가》(제임스 A.미치너/이종인 옮김, 미세기, 1995)는 ‘순천공업고등학교 도서실 장서’ 자국이 있습니다. 오늘 따라 도서관 자국이 새삼스럽습니다. ‘전라남도의회 자료실’ 자국이 있는 책도 봅니다. 


나는 그들이 왜 “난 포크너처럼 쓰고 싶지는 않아”라고, 혹은 피츠제럴드, 울프, 사르트르, 카뮈처럼 쓰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을까 의아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혹시 그 많은 작가들이 속으로는 헤밍웨이 흉내를 내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만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이 갔다. (150쪽)


“민주주의 국가가 선전포고도 하지 않은 채 전쟁에 끼어든다는 것은 위험천만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늙은이들은 후방에 앉아서 전쟁세도 내지 않고 생명의 위협도 느끼지 않으면서 돈을 버는데 젊은이들은 사지에서 허덕인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이라는 것도 알았어요. 특히나 어떤 젊은이는 고향에서 편하게 있는데 어떤 젊은이는 재수없어 전투에 차출되는 것도 잘못된 일이라는 걸 알았어요.” (156쪽)


  이 나라에서 도서관은 책을 건사만 하기는 어렵습니다. 이 나라는 도서관이란 집을 뚝딱 올린 뒤에 ‘새로 받아들일 책을 건사할 새로운 집’은 좀처럼 더 안 짓거든요. 날마다 새책이 꾸준히 나오는데, 이 새로운 책을 건사할 넓은 자리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도서관이란 이름을 붙여도 될까요? 《어느 자연주의자의 죽음》(세이머스 히니/최유경 옮김, 시학사, 1995)을 고르다가 생각합니다. 이 나라는 도서관이 좁고 작아서 어쩔 길 없이 책을 버려야 합니다. 버림책이 해마다 잔뜩 나오는데요, 버림책이 나오기에 뜻밖에 책이 더 돌고 돌는지 몰라요. 다만 종이쓰레기로 버리지 않는다면, 헌책집에 맡긴다면, 마을 한켠에서 새롭게 책터를 가꾸도록 내놓아 준다면, 도서관에서 버려야 하는 책이 새롭게 빛나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책숲에 《우리글 바로쓰기》(이오덕, 한길사, 1989) 예전판이 없는 줄 뒤늦게 알았습니다. ‘오늘의 사상신서 121’로 나온 묵은 판이 마침 〈형설서점〉에 있어요. 고마운 노릇이라고 여기면서 집어듭니다. 서른 해쯤 지난 묵은 이야기를 새삼스레 되읽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일본글을 제대로 큰 잘못 없이 번역해 놓은 책을 거의 보지 못했다. 일본글을 우리 글로 올바르게 번역하는 일은 일본글의 뜻을 틀리지 않게 우리 말로 나타내고, 그리고 그렇게 옮겨 놓은 글이 우리 말로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번역 문장이 뜻도 틀리고, 우리 말은 아주 엉망인 경우가 많다. 지난날 36년 동안 온 나라 사람들이 일본말을 배우고 쓰다시피 했는데, 이건 어찌된 셈인가? 그 가장 큰 까닭은 일본의 말법과 우리 말법이 비슷해서 글을 따라 차례로 낱말만 우리 말로 바꿔 놓으면 뜻이 통한다고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한자말을 쓰기 때문에 그 한자말을 그대로 적어 놓으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주 잘못되었다. 아무리 말법이 비슷하다고 해도 일본말은 일본말이지 우리 말은 아니다. (85∼86쪽)


  말짜임이 비슷하더라도 한국하고 일본 두 나라는 말이 달라요. 때로는 똑같이 생겼구나 싶은 한자말이 있더라도 한국하고 일본 두 나라에서 그 한자말을 쓰는 자리가 달라요. 무엇보다도 한국에서는 한자말이 들어오기 앞서 사람들이 널리 쓰던 삶말이 있습니다. 일본도 이 대목에서는 매한가지입니다. 두 나라 모두 ‘한자말이 없던 무렵 오래오래 마을에서 사랑으로 삶을 슬기롭게 가꾸면서 지어내어 쓴 수수하고 상냥한 텃말’이 있습니다. 이러한 말길을 헤아리지 않는 번역이라면 모조리 엉터리가 될 텐데, 엉터리 아닌 번역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아니, 번역에 앞서 ‘한국사람이 한국말로 쓴 글’이 한국글다운지조차 잘 모르겠습니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쓰는 미국말(영어)하고,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쓰는 미국말(영어)은 다릅니다. 왜 다를까요? 서로 삶이 다르고, 삶을 바라보는 넋이 다르거든요.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사람은 ‘이 땅에서 나고 자라면서 스스로 마음이랑 몸을 가다듬는 넋’부터 슬기롭고 사랑스러우면서 즐겁게 가다듬지 못했다는 뜻이겠지요. 건사할 마음이 무엇인지를 잊기에, 건사할 생각이 무엇인가를 놓치기에, 아직 한국은 한국말이라고 하는 숨길을 틔우지 못했구나 싶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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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선비마을보다는 책마을 (2019.12.24.)


― 경북 안동 〈마리서사 오로지책〉

경북 안동시 태사길 7, 1층



  책이 없던 먼 옛날에도 사람들은 서로 읽고 살았습니다. 종이책이나 누리책 없던 옛날에는, 신문이나 잡지가 없던 지난날에는, 무엇보다 낯빛을 읽고 마음을 읽었습니다. 생각을 읽고 꿈을 읽었어요. 이루고픈 뜻을 읽고, 밝히려는 뜻을 읽으며, 함께 나아가려는 뜻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바람이며 하늘이며 날씨를 읽었지요. 비랑 눈이 오는 결을 읽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철을 읽으며, 씨앗마다 다른 숨결을 읽었습니다. 바닷물이 흐르는 결을 읽고, 물살마다 다르게 일렁이는 빛을 읽으며, 제비 날갯짓이나 딱따구리 먹잇짓을 읽었어요.


  요즈음에는 ‘읽다’라 하면 글에 너무 치우칩니다. 틀림없이 글도 읽습니다만, 그림도 읽고 만화나 사진이나 빛깔도 읽을 수 있어요. 별자리나 별빛을 읽기도 하고요.


  경북 안동은 오랜 선비넋이 깊은 고장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안동은 헌책집이 일찍 사라지고 만 고장이기도 합니다. 헌책집이 사라졌다고 할 적에는 ‘새로운 책을 꾸준히 장만해서 읽으며 배우는 사람이 줄었다’는 뜻이에요. 새로운 책이 흐르는 손길이 없기에 헌책이 나돌지 않고, 책을 배우려는 빛이 스러지면서 헌책집뿐 아니라 새책집이 나란히 힘들어요.


  이런 안동이지만, 시내 한복판에 2019년 12월 2일부터 〈마리서사 오로지책〉이 열었습니다. 이곳은 헌책집입니다. 책을 다루는 손길이 깊은 헌책집이요, 책을 다루는 사람들 손길에 어리는 사랑을 고이 품으려는 마을책집입니다. 오로지 이 책집을 바라보면서 안동마실을 하면 좋겠네 하고 생각하면서 안동 시내버스를 탑니다. 안동도 아파트가 높고 자동차가 많네 하고 여기며 한참 달립니다. 이제 안동 시내버스에서 내려 골목을 걷습니다. 어디쯤일까? 어느 이웃가게랑 어우러지는 터전일까?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덧 책집 앞. 조금만 옆으로 가도 복닥거리며 번쩍거리는 가게가 줄줄이 있는데, 〈마리서사 오로지책〉 둘레는 호젓합니다. 책집 하나가 골목이며 마을을 바꿉니다.


  조용히 들어섭니다. 큰 등짐을 내려놓고 홀가분한 몸으로 책시렁을 살핍니다. 책기둥이 겹치지 않도록 하려는 손길을 느낍니다. 책꽂이나 책시렁이 빽빽하기보다는 알맞게 느슨하면서 여러 책을 차근차근 누리도록 이끌려는 손길을 봅니다. 따로 책집지기가 알려주지 않아도 눈으로 발걸음으로 책자취로 알 만합니다. 얼마나 품을 들이고 땀을 쏟았을까요.


  예전에 이런 책이 있었구나, 이 책부터 이분이 이런 말을 퍼뜨리셨구나 하고 생각하며 《한국미, 한국의 마음》(최순우, 지식산업사, 1980)을 집습니다. 책값이 만만하지 않을 줄 알지만, 얼추 마흔 해를 가로지르는 책이니 그 만만하지 않을 책값은 비쌀 수 없습니다. 마흔 해를 타고 넘은 삯일 뿐입니다.


이 비석머리의 작자는 이 소박하고도 단순한 선과 원을 새겨 넣으면서 그 나름으로 추상 조형의 흥겨움을 감추지 못할 만큼 즐거웠던 것이 아닌가 한다. (340쪽)


  동시집 《하르방 이야기》(제주아동문학협회 7집, 아동문예, 1988)를 살살 읽다가, 경희대학교 도서관 빌림종이가 그대로 붙은 《톨스토이의 생활과 문학》(로망 롤랑/오현우 옮김, 정음사, 1963)을 봅니다. 이 책은 저희 책숲에 한 벌 있습니다만, 구태여 집습니다. 예전에 다른 헌책집에서 장만해서 읽었지만, 경희대 도서관에서 고맙게 내놓아 주었기에 오랜 자취를 새롭게 느끼면서 예전 옮김말을 다시 느껴 봅니다.


  요즈음도 나오는지 모르겠는데 잡지 《북한》(북한연구소) 116호(1981.8.)은 박정희·전두환을 가로지르면서 밥벌이를 하던 먹물붙이 뒷그늘을 엿볼 만한 징검다리입니다. 북녘을 이웃이나 벗으로 여기지 않은 마음이 가득한 글로 엮은 이 잡지는 평화·민주·통일에 이바지를 할 수 없겠지요. 그렇지만 우리 모습이에요. 숨길 수 없는 민낯입니다.


  잡지 《월간 독서》(월간독서) 1979년 5월호를 만납니다. 마흔 해 남짓 앞서는 사람들이 책을 놓고서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고 마주했으려나 하고 헤아리면서 한 쪽 두 쪽 읽습니다. 오늘 이곳에서 우리가 읽을 책은 앞으로 마흔 해 뒤를 살아갈 사람들한테 어떤 씨앗을 남길 만한가 하고도 생각하면서 천천히 읽습니다.


(잡지 《엄마랑 아기랑》은) 실제로 기획의 대부분이 대여섯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여 만들어지고 있음을 본다. 또 농어촌 아이들의 환경에 관심이 적은 것도 그 하나다. 도시에서 살며 생활 수준이 중류층이 되지 않으면 친근감을 갖기 어려운 기사들이 많다. (178쪽/김형윤)


  잡지 《월간 독서》(월간독서) 1979년 7월호도 폅니다. 마흔 해 앞서 이 나라 책마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지난 마흔 해에 걸쳐 우리 책밭은 어느 만큼 자랐을까요. 마흔 해가 지났어도 아직 똑같이 쓴말을 뱉어내야 할는지요, 이제는 달라진 모습으로 새로운 길을 닦을는지요.


그러나 근본적으로 우리의 수준은 아직도 원시적이다. 대중을 대상으로 한 일반도서 이외에는 우리 자신이 만들어 내고 있는 문헌 자료조차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180쪽/이중한)


  책이 가장 대수로웁지는 않습니다. 책은 우리 살림을 갈무리해서 아이들한테 물려주는 이야기꾸러미입니다. 우리한테는 오늘인 이 하루가 앞으로 태어나서 자랄 아이들한테는 어제입니다. 우리는 오늘을 오늘책에 담고, 앞으로 살아갈 아이들은 ‘우리가 지은 오늘책’을 ‘새롭게 돌아보며 배울 어제책’으로 삼아요, 어제를 또렷이 되새기면서 오늘을 가꾸는 밑거름으로 삼을 어제노래가 책이라는 모습으로 남습니다. 이러한 몫을 헤아린다면, 우리 삶터는 좀 달라질 만할까요. 잡지 《월간 독서》(월간독서) 1979년 2월호를 더 펼칩니다.


요즈음 연말이 되자 숱한 광고물과 출판물 그리고 신문 잡지가 훨씬 요란해져 가고 있다. 모두가 소비 성향을 조장하는 그런 것들이다. 연말 선물용들이 대부분인데 그것의 대상이 여성들이 사서 여성에게 주라는 것도 있고 남성들이 사서 여성에게 주라는 것도 있다. 그러나 결국 대상은 여성들인 것이 대부분이다. (118쪽/최민지)


  마흔 해가 훌쩍 지났지요. 오늘날 장삿길은 지난날보다 훨씬 크고 깊습니다. 나라에서까지 장삿길을 부추겨요. 살림길은 온데간데없지 싶습니다. 큰고장은 하나같이 서울을 닮으려 하고, 시골마저 서울 따라쟁이로 치닫습니다. 시골 읍내에 높다란 시멘트집이 자꾸 올라서고, 큰고장 한복판뿐 아니라 바깥자리까지 높다란 시멘트집이 그득그득 올라섭니다.


  언제쯤 높다란 시멘트집을 치우고서 그곳을 꽃밭이며 숲으로 가꿀 살림길을 펴려나요? 언제쯤 우리는 수돗물을 멈추고서 맑은 시냇물을 두 손으로 떠서 마시는 살림길을 이루려나요? 언제쯤 우리는 큰발전소를 멈추고서 집집마다 알맞춤하게 손수 전기를 지어서 누리거나 나눌까요? 언제쯤 우리는 대학 졸업장하고 자격증을 모조리 불사르고서 살림꽃으로 어깨동무하는 사랑스러운 마을길을 다스릴까요?


  책에 모든 길이 있지 않습니다만, 다시금 책을 폅니다. 《공소 예절》(가톨릭 공용어 심의위원회, 한국천주교회, 1967)이라는 자그맣고 낡은 알림책을 넘깁니다. 1967년에 천주절집에서 펴낸 새내기 믿음이 길잡이책에 적힌 말씨는 좀 어렵습니다만, 그래도 오롯이 한글로만 썼군요. 속살은 일본 한자말이어도 겉보기로는 한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일제강점기에서 풀려났어도 아직 ‘껍데기 한글’만 씁니다. 그나마 껍데기는 한글이랑 옷을 입었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쯤 속살까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한말(한국말)을 쓸 만할까요? 한글이 뛰어난 글이라는 자랑질은 언제쯤 그만두면서 한글에 담을 한말에 마음을 기울여서 속을 가꾸는 길에 들어설 만할까요?


  자꾸자꾸 책을 고르다 보니 이 책짐을 어찌 짊어지고 고흥으로 돌아갈 만한가 슬슬 조마조마합니다. 그렇다고 눈에 밟히는 책을 모르는 척할 수 없습니다. 이쪽에서는 이 책이 “날 좀 보렴.” 하고 부릅니다. 저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저쪽 책이 “그래, 날 보려고 했구나.” 하면서 부릅니다. 아아, 헌책집에 들어와서 그야말로 길을 잃습니다. 이쪽도 저쪽도 섣불리 바라보지 못합니다. 온갖 책이 온갖 목소리로 “내가 여태 품은 이야기를 옹글게 받아먹고서 한결 새롭게 마음을 살찌워 보렴.” 하고 떼노래를 부릅니다.


  책값도 책값이지만, 책무게가 뻐근하겠구나 싶어서 마지막으로 《kite, how to make and fly them》(Marion Downer, Lothrop Lee & Shepard, 1970)을 집어듭니다. 연을 어떻게 짓고, 연날리기를 어떻게 하느냐를 다룬 멋진 그림책입니다. 아이 참, 사랑스러워라. 한국에는 연짓기랑 연날리기를 다룬 그림책이 나온 적 있을까요? 이웃 일본에서는 종이비행기를 접어서 날리는 이야기를 다룬 그림책도 있습니다. 아이 눈높이에서, 아이 놀이자리에서, 아이 마음빛에서 바라보면 이런 아름책이 하나둘 태어날 만합니다. 아직 한국에서 태어나는 숱한 그림책은 ‘위에서 고개를 까딱이며 내려다보는 멋부리는 그림’ 틀에서 썩 못 벗어납니다. 놀이하는 어린이 이야기를 좀처럼 못 그리는 한국 그림책판이에요. 노래하고 춤추고 꿈꾸는 어린이가 무엇을 어떻게 놀면서 스스로 새로운 놀이를 지을 만한가 하는 대목은 영 건드리려 하지 않는 한국 그림책 출판사이기도 합니다.


  연날리기뿐 아니라 제기차기 하나로도 그림책 몇 가지를 그릴 만합니다. 널뛰기라든지, 그네타기라든지,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그림 그리기라든지, 깨끔발로 하는 놀이라든지, 맨손으로 하는 놀이라든지, 그야말로 놀이마다 따로 그림책을 선보일 만해요. 이제 오늘날 큰고장이건 작은고장이건 빈터마다 자동차가 득시글대느라, 또 학원하고 스마트폰하고 방과후학교 탓에 아이들이 숨돌릴 틈마저 없다지만, 이런 때일수록 더더욱 ‘놀이하는 기쁜 그림책’을 우리 어른들이 지어서 어린이한테 살며시 내밀 노릇이라고 생각해요. 그림솜씨를 부리는 그림책이 아니라, 엉뚱한 이야기를 억지스레 꾸미는 그림책이 아니라, 어디에서나 하늘처럼 웃으며 노는 어린이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담아내기를 바랍니다.


  안동은 예전에 헌책집이 참으로 많았다고 합니다. 이제는 〈마리서사 오로지책〉 한 곳이 야무지게 안동이란 고장에서 책빛을 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으레 안동을 놓고서 선비마을이라고들 합니다만, 글쎄요. 선비가 무엇을 할까요? 선비는 낮에 땅을 짓고 밤에 글을 지었습니다. 선비는 흰 두루마기를 바람에 날리면서 거들먹거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선비는 한 손에 호미를 쥐고 다른 손에 붓을 쥐면서 삶과 꿈을 스스로 짓던 일꾼이자 살림꾼이자 글꾼이었습니다.


  안동을 안동답게 가꾸는 길이라면, 뭔가 으리으리한 관광시설이나 관광단지나 관광사업이 아닌, 조촐한 숲하고 책집이지 않을까요? 숲을 사랑하는 마음하고 책을 돌보는 숨결이 어우러지기에 비로소 선비라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요? 글만 쓰는 사람은 선비가 아닙니다. 살림을 사랑하고 글빛에 살림을 담아낼 줄 알기에 선비입니다. 책마을 없는 안동이라면 속 빈 강정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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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이팝나무 바람이 마을길로 (2020.5.6.)


― 서울 마포 〈조은이책〉

070.7617.6949.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27길 6

https://www.instagram.com/chouni.chaeg



  4월 끝자락하고 5월 첫머리가 달콤철이라 하던데, 달력에 적히기로는 여느 일터에서는 길게 쉴 때일는지 모르나, 시골은 달력으로 흐르지 않기에 먼나라 이야기로 느낍니다. 쉬는 날이 잇달이 있든 없든, 풀꽃나무는 딱히 쉬지 않습니다. 더구나 4월 끝자락하고 5월 첫머리는 풀꽃나무가 활짝 어깨를 펴면서 빛나는 철이에요. 옅푸른 빛살에서 짙푸른 빛살로 넘어가는 5월 첫머리요, 멧새가 기운차게 노래하고, 여러 풀벌레가 날갯질을 하려는 5월 첫머리라고 느낍니다. 이맘때에는 어떤 들풀도 나물이 됩니다.


  5월 5일까지 지나가기를 기다려 6일에 새벽바람으로 길을 나섭니다. 두 달 만에 서울마실을 합니다. 낮하고 저녁에 만날 분을 어림하면서 시외버스에서 동시를 새로 씁니다. 바깥마실을 나오는 날은 으레 밤샘으로 집일을 마무리하기 마련인데, 동시를 새로 다섯 꼭지를 쓰고서 한동안 곯아떨어졌고, 길게 한숨을 쉬고 일어나서 마저 두 꼭지를 썼어요.


  시외버스가 서울에 닿습니다. 이제 전철을 갈아탑니다. 버스나루이며 전철칸이며 약품 냄새가 짙습니다. 꽉 막힌 곳에서는, 또 서울 한복판에서는, 또 높다른 집이 겹겹이 있는 고장에서는, 이렇게 화학약품을 펑펑 뿌려야 하는구나 싶어요.


  숲은 푸르고 들은 곱습니다. 숲들에는 아무도 화학약품을 안 뿌리거든요. 숲들에는 갖은 풀벌레가 있어 잎을 갉고 나무줄기를 파고들어 알을 낳지만, 온갖 새가 있어 풀벌레를 알맞게 잡습니다. 벌레도 새도 짐승도 고루 어우러집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습니다. 콩 석 알을 사람이랑 벌레랑 새가 나눈다는 옛말처럼, 이 푸른별은 뭇목숨이 고이 어우러지는 사랑스러운 터전이지 싶어요. 그러나 서울처럼 커다란 곳은 오직 사람만 살아남으려는 얼개로 올려세우는 터라, 숲바람도 들바람도 없이 화약약품 냄새가 가득해야겠구나 싶습니다.


  마포구청역에서 전철을 내립니다. 드디어 바깥바람하고 해를 봅니다. 큰길은 자동차로 시끄럽지만 마을길은 드문드문 지나가는 자동차가 있을 뿐 조용합니다. 곳곳에 제법 자란 나무가 있습니다. 이 안골에 처음 뿌리를 내릴 무렵에는 작았을 나무일 테지만, 이제는 꽤 키가 큽니다.


  이팝나무 바람을 쐬며 걷는 마을길이 싱그럽습니다. 5월 첫머리 서울 마포 골목마을은 이팝나무 잔치로군요. 이켠에 둥지를 튼 〈조은이책〉도 바로 앞에 나무 몇 그루가 바람 따라 살랑이면서 가볍게 그늘을 드리웁니다. 나무가 상냥한 곳에 자리잡는 책집이란 참으로 아늑하지요. 걸상을 나무그늘에 놓고서 책을 펼 만하고, 조촐히 책모임을 할 적에도 나무그늘 곁에 모일 수 있어요.


  오랜만에 다시 태어난 그림책 《나의 원피스》(니시마키 가야코/황진희 옮김, 한솔수북, 2020)를 이곳에서 만납니다. 누리책집에서 시킬 수 있지만, 두 발로 찾아가서 두 손으로 만나고 싶었습니다. 《장날》(이서지 그림·이윤진 글, 한솔수북, 2008)이 나온 지 열 몇 해가 되었군요. 몰랐습니다. 이서지 님이 빚은 그림은 예전에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으로 일할 적에 알뜰히 사서 건사했어요. 옛살림이나 시골살림을 사랑스레 담아낸, 멋부리기보다는 수수한 사람들 수수한 마을빛을 찬찬히 옮겨낸, 한국에서는 참 드문 그림입니다.


  가만히 보면 숱한 그림쟁이는 예술을 하려고 합니다. 그저 그림을 그리면 될 텐데요. 예술도 문화도 아닌 살림을 그림으로 담고, 사랑을 그림으로 여미며, 숲처럼 살아가는 마을 이야기를 그림으로 옮기면 넉넉합니다.


  책집지기님이 보여주신 그림책 가운데 《무슨 일이지?》(차은실, 향, 2019)하고 《으악, 도깨비다!》(손정원 글·유애로 그림, 느림보, 2002)를 더 고릅니다. 이곳 〈조은이책〉에는 그림책 말고도 여느 책이 많지만, 오늘은 그림책만 둘러봅니다. 다음에 걸음할 책에는 다른 책도 둘러보려고 해요.


  책 하나가 모든 삶을 밝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느 책은 장삿속에 기울 수 있습니다. 눈가림이나 거짓말이나 이름팔이를 하는 책도 있을 테지요. 그러나 적잖은 책은 삶을 고요히 밝혀요. 오직 사랑스러운 꿈을 짓는 길을 들려주려는 책이 많아요. 맑은 눈빛을 받고서 자란 이야기가 밝은 손길을 거쳐서 책으로 태어나면, 즐거운 눈길로 여민 책시렁을 반가운 손빛으로 쓰다듬는 이웃이 찾아오겠지요. 마을책집은 마을이 품어 주니 포근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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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마을책집 돌잔치 (2020.2.14.)


― 경기 수원 〈책먹는 돼지〉

경기도 수원히 팔달구 세지로 300

http://instagram.com/piggyeatsbooks



  아파트마을 한복판에 있는 마을책집 〈마그앤그래〉에서 길을 나서며 생각합니다. 이 마을책집에 머무는 동안 이곳이 아파트숲 한복판이 아닌, 오직 책숲일 뿐이로구나 싶더군요. 책집으로 들어선 뒤부터 책집에서 나올 때까지 마치 딴나라에 있었구나 싶어요. 책가게이면서 책터이고, 책쉼터이자, 책으로 이룬 조촐한 숲이지 싶습니다.


  수원 시내버스를 탑니다. 성빈센트병원 쪽으로 갑니다. 길을 물어물어 지동초등학교 쪽에 이르고, 호젓한 길을 따라 걸어 〈책먹는 돼지〉에 닿습니다. 수원에서 마을책집으로 돌잔치를 이곳에 기림글을 건네고 싶어서 마실을 합니다. 우리 집 아이들을 돌보며 늘 부르던 어린이노래 가운데 ‘겨울 물오리’가 있어요. 이원수 님 글에 가락을 입힌 노래인데, 노랫말을 고쳐서 마을책집 돌잔치에 불러 줄 생각입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걸어서 햇볕을 쬐는 동안, 고쳐서 부를 노랫말을 곱씹어 수첩에 적습니다.


 책먹는돼지가 이쁘지 않니

 동동동 노래하는 꽃아이들아

 이 고장 수원에서 야물지고 알뜰한

 책돼는 하늘바람 마시는 쉼뜰

 나도 여기 책집이 사랑스러워

 먼걸음 한달음에 찾아왔지


  마을책집 돌잔치는 조촐하면서 즐겁습니다. 있는 걸상 없는 자리 모두 마련해서 모여앉고 이야기를 하고 저마다 한 마디씩 하면서 돌떡을 나눕니다. 저마다 부산하게 돌잔치를 챙기는 사이, 책시렁을 살피면서 어떤 책을 골라서 고흥으로 가져갈까 하고 생각합니다. 책집잔치이니 이런 날일수록 더더욱 책을 사야지요. 오래오래 깃들어 두고두고 따사로이 숲바람을 나누는 쉼뜰이 되도록 하자면, 바로 틈틈이 찾아와서 읽을거리를 하나씩 장만하는 손길을 펴야지 싶습니다.


  마침 이곳이 ‘책 먹는 돼지’이기도 한 만큼, 오늘은 돼지 책만 골라 보자고 생각합니다. 눈에 뜨이는 다른 책도 있지만, 《사고뭉치 돼지소년》(제럴드 맥더멋/서남희 옮김, 열린어린이, 2012)하고 《꼬마 돼지의 불끄기 대작전 29》(아서 가이스트/길미향 옮김, 보림, 2007)하고 《사노 요코 돼지》(사노 요쿄/이지수 옮김, 마음산책, 2018)를 집습니다.


  돼지가 나오는 돼지 책을 세 가지 고르다가, ‘책 먹는 쥐’라든지 ‘책 먹는 소’라든지 ‘책 먹는 토끼’라든지 ‘책 먹는 나무’처럼, 어느 한 가지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새롭게 마을책집을 꾸밀 만하겠다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이 차근차근 이런 마을책집을 꾸밀 수 있습니다. 나라나 고장에서 힘을 보태어 ‘쥐 도서관’이나 ‘토끼 도서관’이나 ‘개구리 도서관’을 꾸밀 수 있어요. 십진분류법으로 가르는 도서관이나 책집이 아니라, 우리가 저마다 다르게 좋아하거나 사랑하거나 아끼는 갈래를 하나씩 헤아려, 이 하나로 도서관이나 책집을 꾸민다면 더없이 빛날 만하지 싶습니다.


  수원 마을책집 〈책 먹는 돼지〉를 보면, 돼지 책도 많지만, 책집지기님이 그동안 그러모안 ‘돼지 노리개’가 곳곳에 있어요. 앞으로는 서울을 토막토막 갈라 작은고장으로 가도록 하고, 온나라 여러 고장도 더 크게 가기보다는 더 조그맣고 조촐하게 가면 아름다우리라 봅니다. 덩치를 키워야 하지 않거든요. 덩치를 키우니 자꾸 벼슬아치나 우두머리가 생기려 해요. 자그마한 마을에서는 누구나 일꾼이면서 서로 이웃이 됩니다. 이른바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군인도 경찰도 공무원도 모두 없어도 되는 자그마한 마을로 나아간다면, 우리 보금자리가 한결 빛나고, 이 보금자리 곁에는 책뜰을 비롯한 여러 쉼뜰이 올망졸망 태어나겠지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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