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마을책집 돌잔치 (2020.2.14.)


― 경기 수원 〈책먹는 돼지〉

경기도 수원히 팔달구 세지로 300

http://instagram.com/piggyeatsbooks



  아파트마을 한복판에 있는 마을책집 〈마그앤그래〉에서 길을 나서며 생각합니다. 이 마을책집에 머무는 동안 이곳이 아파트숲 한복판이 아닌, 오직 책숲일 뿐이로구나 싶더군요. 책집으로 들어선 뒤부터 책집에서 나올 때까지 마치 딴나라에 있었구나 싶어요. 책가게이면서 책터이고, 책쉼터이자, 책으로 이룬 조촐한 숲이지 싶습니다.


  수원 시내버스를 탑니다. 성빈센트병원 쪽으로 갑니다. 길을 물어물어 지동초등학교 쪽에 이르고, 호젓한 길을 따라 걸어 〈책먹는 돼지〉에 닿습니다. 수원에서 마을책집으로 돌잔치를 이곳에 기림글을 건네고 싶어서 마실을 합니다. 우리 집 아이들을 돌보며 늘 부르던 어린이노래 가운데 ‘겨울 물오리’가 있어요. 이원수 님 글에 가락을 입힌 노래인데, 노랫말을 고쳐서 마을책집 돌잔치에 불러 줄 생각입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걸어서 햇볕을 쬐는 동안, 고쳐서 부를 노랫말을 곱씹어 수첩에 적습니다.


 책먹는돼지가 이쁘지 않니

 동동동 노래하는 꽃아이들아

 이 고장 수원에서 야물지고 알뜰한

 책돼는 하늘바람 마시는 쉼뜰

 나도 여기 책집이 사랑스러워

 먼걸음 한달음에 찾아왔지


  마을책집 돌잔치는 조촐하면서 즐겁습니다. 있는 걸상 없는 자리 모두 마련해서 모여앉고 이야기를 하고 저마다 한 마디씩 하면서 돌떡을 나눕니다. 저마다 부산하게 돌잔치를 챙기는 사이, 책시렁을 살피면서 어떤 책을 골라서 고흥으로 가져갈까 하고 생각합니다. 책집잔치이니 이런 날일수록 더더욱 책을 사야지요. 오래오래 깃들어 두고두고 따사로이 숲바람을 나누는 쉼뜰이 되도록 하자면, 바로 틈틈이 찾아와서 읽을거리를 하나씩 장만하는 손길을 펴야지 싶습니다.


  마침 이곳이 ‘책 먹는 돼지’이기도 한 만큼, 오늘은 돼지 책만 골라 보자고 생각합니다. 눈에 뜨이는 다른 책도 있지만, 《사고뭉치 돼지소년》(제럴드 맥더멋/서남희 옮김, 열린어린이, 2012)하고 《꼬마 돼지의 불끄기 대작전 29》(아서 가이스트/길미향 옮김, 보림, 2007)하고 《사노 요코 돼지》(사노 요쿄/이지수 옮김, 마음산책, 2018)를 집습니다.


  돼지가 나오는 돼지 책을 세 가지 고르다가, ‘책 먹는 쥐’라든지 ‘책 먹는 소’라든지 ‘책 먹는 토끼’라든지 ‘책 먹는 나무’처럼, 어느 한 가지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새롭게 마을책집을 꾸밀 만하겠다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이 차근차근 이런 마을책집을 꾸밀 수 있습니다. 나라나 고장에서 힘을 보태어 ‘쥐 도서관’이나 ‘토끼 도서관’이나 ‘개구리 도서관’을 꾸밀 수 있어요. 십진분류법으로 가르는 도서관이나 책집이 아니라, 우리가 저마다 다르게 좋아하거나 사랑하거나 아끼는 갈래를 하나씩 헤아려, 이 하나로 도서관이나 책집을 꾸민다면 더없이 빛날 만하지 싶습니다.


  수원 마을책집 〈책 먹는 돼지〉를 보면, 돼지 책도 많지만, 책집지기님이 그동안 그러모안 ‘돼지 노리개’가 곳곳에 있어요. 앞으로는 서울을 토막토막 갈라 작은고장으로 가도록 하고, 온나라 여러 고장도 더 크게 가기보다는 더 조그맣고 조촐하게 가면 아름다우리라 봅니다. 덩치를 키워야 하지 않거든요. 덩치를 키우니 자꾸 벼슬아치나 우두머리가 생기려 해요. 자그마한 마을에서는 누구나 일꾼이면서 서로 이웃이 됩니다. 이른바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군인도 경찰도 공무원도 모두 없어도 되는 자그마한 마을로 나아간다면, 우리 보금자리가 한결 빛나고, 이 보금자리 곁에는 책뜰을 비롯한 여러 쉼뜰이 올망졸망 태어나겠지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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