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이팝나무 바람이 마을길로 (2020.5.6.)


― 서울 마포 〈조은이책〉

070.7617.6949.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27길 6

https://www.instagram.com/chouni.chaeg



  4월 끝자락하고 5월 첫머리가 달콤철이라 하던데, 달력에 적히기로는 여느 일터에서는 길게 쉴 때일는지 모르나, 시골은 달력으로 흐르지 않기에 먼나라 이야기로 느낍니다. 쉬는 날이 잇달이 있든 없든, 풀꽃나무는 딱히 쉬지 않습니다. 더구나 4월 끝자락하고 5월 첫머리는 풀꽃나무가 활짝 어깨를 펴면서 빛나는 철이에요. 옅푸른 빛살에서 짙푸른 빛살로 넘어가는 5월 첫머리요, 멧새가 기운차게 노래하고, 여러 풀벌레가 날갯질을 하려는 5월 첫머리라고 느낍니다. 이맘때에는 어떤 들풀도 나물이 됩니다.


  5월 5일까지 지나가기를 기다려 6일에 새벽바람으로 길을 나섭니다. 두 달 만에 서울마실을 합니다. 낮하고 저녁에 만날 분을 어림하면서 시외버스에서 동시를 새로 씁니다. 바깥마실을 나오는 날은 으레 밤샘으로 집일을 마무리하기 마련인데, 동시를 새로 다섯 꼭지를 쓰고서 한동안 곯아떨어졌고, 길게 한숨을 쉬고 일어나서 마저 두 꼭지를 썼어요.


  시외버스가 서울에 닿습니다. 이제 전철을 갈아탑니다. 버스나루이며 전철칸이며 약품 냄새가 짙습니다. 꽉 막힌 곳에서는, 또 서울 한복판에서는, 또 높다른 집이 겹겹이 있는 고장에서는, 이렇게 화학약품을 펑펑 뿌려야 하는구나 싶어요.


  숲은 푸르고 들은 곱습니다. 숲들에는 아무도 화학약품을 안 뿌리거든요. 숲들에는 갖은 풀벌레가 있어 잎을 갉고 나무줄기를 파고들어 알을 낳지만, 온갖 새가 있어 풀벌레를 알맞게 잡습니다. 벌레도 새도 짐승도 고루 어우러집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습니다. 콩 석 알을 사람이랑 벌레랑 새가 나눈다는 옛말처럼, 이 푸른별은 뭇목숨이 고이 어우러지는 사랑스러운 터전이지 싶어요. 그러나 서울처럼 커다란 곳은 오직 사람만 살아남으려는 얼개로 올려세우는 터라, 숲바람도 들바람도 없이 화약약품 냄새가 가득해야겠구나 싶습니다.


  마포구청역에서 전철을 내립니다. 드디어 바깥바람하고 해를 봅니다. 큰길은 자동차로 시끄럽지만 마을길은 드문드문 지나가는 자동차가 있을 뿐 조용합니다. 곳곳에 제법 자란 나무가 있습니다. 이 안골에 처음 뿌리를 내릴 무렵에는 작았을 나무일 테지만, 이제는 꽤 키가 큽니다.


  이팝나무 바람을 쐬며 걷는 마을길이 싱그럽습니다. 5월 첫머리 서울 마포 골목마을은 이팝나무 잔치로군요. 이켠에 둥지를 튼 〈조은이책〉도 바로 앞에 나무 몇 그루가 바람 따라 살랑이면서 가볍게 그늘을 드리웁니다. 나무가 상냥한 곳에 자리잡는 책집이란 참으로 아늑하지요. 걸상을 나무그늘에 놓고서 책을 펼 만하고, 조촐히 책모임을 할 적에도 나무그늘 곁에 모일 수 있어요.


  오랜만에 다시 태어난 그림책 《나의 원피스》(니시마키 가야코/황진희 옮김, 한솔수북, 2020)를 이곳에서 만납니다. 누리책집에서 시킬 수 있지만, 두 발로 찾아가서 두 손으로 만나고 싶었습니다. 《장날》(이서지 그림·이윤진 글, 한솔수북, 2008)이 나온 지 열 몇 해가 되었군요. 몰랐습니다. 이서지 님이 빚은 그림은 예전에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으로 일할 적에 알뜰히 사서 건사했어요. 옛살림이나 시골살림을 사랑스레 담아낸, 멋부리기보다는 수수한 사람들 수수한 마을빛을 찬찬히 옮겨낸, 한국에서는 참 드문 그림입니다.


  가만히 보면 숱한 그림쟁이는 예술을 하려고 합니다. 그저 그림을 그리면 될 텐데요. 예술도 문화도 아닌 살림을 그림으로 담고, 사랑을 그림으로 여미며, 숲처럼 살아가는 마을 이야기를 그림으로 옮기면 넉넉합니다.


  책집지기님이 보여주신 그림책 가운데 《무슨 일이지?》(차은실, 향, 2019)하고 《으악, 도깨비다!》(손정원 글·유애로 그림, 느림보, 2002)를 더 고릅니다. 이곳 〈조은이책〉에는 그림책 말고도 여느 책이 많지만, 오늘은 그림책만 둘러봅니다. 다음에 걸음할 책에는 다른 책도 둘러보려고 해요.


  책 하나가 모든 삶을 밝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느 책은 장삿속에 기울 수 있습니다. 눈가림이나 거짓말이나 이름팔이를 하는 책도 있을 테지요. 그러나 적잖은 책은 삶을 고요히 밝혀요. 오직 사랑스러운 꿈을 짓는 길을 들려주려는 책이 많아요. 맑은 눈빛을 받고서 자란 이야기가 밝은 손길을 거쳐서 책으로 태어나면, 즐거운 눈길로 여민 책시렁을 반가운 손빛으로 쓰다듬는 이웃이 찾아오겠지요. 마을책집은 마을이 품어 주니 포근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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