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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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서 즐기는 (2017.9.12.)

― 수원 〈노르웨이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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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이기에 땡볕을 긋고 싶지 않습니다. 한겨울이기에 칼바람을 비끼고 싶지 않습니다. 두 팔을 벌려 맞아들입니다. ‘아, 너 땡볕이네? 그래, 너 칼바람이야.’ 하고 혼잣말을 합니다. 남이 저를 바라보는 눈치는 대수롭지 않습니다. 누가 저를 어떻게 보든 그 사람 생각입니다. 추키는 말도 깎는 말도 제 삶길을 말해 주지 못해요. 책을 읽다가, 책집마실을 다니다가, 때때로 이 대목을 돌아봅니다. ‘아니, 난 언제부터 이렇게 맞아들였을까?’


어릴 적에는 혀짤배기라서 할 말을 못 했습니다. 푸름이일 적에는 입시지옥에 짓눌리느라 가로막혔습니다. 대학교에서는 나이랑 학번으로 두들겨패는 짓이 메스꺼워 그만뒀습니다. 군대에서는 의문사로 보낼 수 있다는 말에 끽소리를 못했어요. 사회로 돌아와 출판사 일꾼이 된 뒤에는 문단·화단 어르신을 깍듯이 모시로 술대접을 하라는 사장님 말씀에 껌뻑 죽어야 했는데, 2001년 1월 1일부터 우리말사전을 새로 쓰는 편집장 일을 하면서 ‘아닌 자리는 아니라’고 말하자고 다짐했습니다.


소설을 쓰면 그렇게 재미있다고 끝없이 수다를 터뜨리는 〈노르웨이의 숲〉 지기님이 수원으로 오라고 부릅니다. ‘사전이라는 책을 읽으며 말로 삶을 사랑하는 길’을 이야깃감으로 삼아 수다판을 벌이자고 말씀합니다.


책집지기님이 소설을 쓰시니 누구보다 ‘말’을 깊고 넓게 헤아리셨을까요. 모든 말은 그냥 터져나오지 않습니다. 이 말을 터뜨리는 사람이 두고두고 살아낸 나날이 고스란히 말 한 마디로 불거집니다. 잘난 말이나 못난 말이 없습니다. 잘난 삶도 못난 삶도 없거든요. 그저 다 다르게 치르며 맞아들이는 삶일 뿐입니다.


이오덕 어른은 “우리글 바로쓰기”를 외치셨지만, 저는 “우리말 살려쓰기”로 가야 즐거울 만하다고 여겼습니다. 저는 이제 “숲이며 마을이며 별에서 새롭게 우리말을 사랑하면서 즐기자”라는 이름으로 가다듬어서 이야기합니다. 제 책을 사서 읽어 준 수원 이웃님이 제 책을 내밀며 제 이름을 남겨 달라고 하시기에 “우리는 배우려고 태어나요. 그리고, 배운 것을 가르치려고, 살아가요.” 하고 넉줄글을 보탭니다. 수원 이웃님이 모인 자리에서 거듭거듭 들려준 이야기란 “어렵게 여기면 어렵고, 즐겁게 여기면 즐겁고, 쉽게 여기면 쉽고, 사랑스레 여기면 사랑스러운

글쓰기·그림그리기·사진찍기”입니다. 생각하는 말로 삶을 짓습니다.


우리가 저마다 도서관이나 책집을 따로 하나씩 꾸린다면 꽤 재미있겠네 싶습니다. 우리가 꾸릴 도서관이나 책집은 커야 하지 않고, 책이 많아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 나름대로 눈빛을 밝혀서 갈무리한 책으로 이야기를 꽃피우는 자리이면 되어요. 나라 곳곳에 마을책집이며 마을책숲(마을도서관)이 십만 곳이나 백만 곳쯤 있다면 참 재미나겠지 싶습니다. 서로서로 나들이를 다니고, 서로서로 다 다른 눈빛으로 가꾼 다 다른 책살림을 만나면서 서로서로 배우고 알려주는 마을길이 된다면 이 나라가 어느 만큼 살 만한 터전으로 거듭나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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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돌려줘!》(박준형 글·이지 그림, 딜라이트리, 2017)

《언니네 마당》(언니네 마당) 4호(2015.봄)

《언니네 마당》(언니네 마당) 5호(2015.여름)

《언니네 마당》(언니네 마당) 6호(2015.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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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없는 '노르웨이의숲'. 지기님이 부디 어디에서든 즐겁게 노래하며 별바라기 누리시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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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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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길을 잇는 작은숲 (2017.12.21.)

― 서울 〈대륙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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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한테는 우리말이 있고, 조선 무렵에 훈민정음이 나왔습니다만, 글님은 으레 중국 한문을 썼어요. 얼마 앞서 장만해서 새로 읽는 《역옹패설》은 고려 무렵에 나왔다고 하니 훈민정음하고는 동떨어집니다만, 이 나라에 살림꽃이 제대로 섰다면 훈민정음이 태어난 뒤 이 한문책을 훈민정음으로 옮기는 일을 했겠지요. 그때 제대로 훈민정음으로 이 한문책을 옮겼다면, 책이름을 어떻게 읽는지, 또 우리가 오래도록 쓰던 말씨가 어떤 글씨로 나타나는가를 또렷이 아로새길 만했으리라 봅니다. 가만 보면 우리는 이웃나라 책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에 앞서, 아직 우리 글씨가 없던 무렵 한문으로 쓴 책을 오늘날 우리 글씨로 알맞게 옮기는 일이 서툴거나 늦습니다. 우리가 쓰는 말이 삶자리에서 삶말이 되도록, 너나없이 쉽게 읽고 쉽게 익혀서 쉽게 나누는 길로 이어가도록 종이책을 가꾸는 살림이 모자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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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담는 말을 갈무리하는 사전’을 이야기하는 수다판을 〈대륙서점〉에서 마련합니다. 겨울바람을 가르고 서울마실을 합니다. 큰말보다 작은말부터 살피고 싶습니다. 이를테면 ‘벌레’랑 ‘곤충’은 서로 어떻게 다른 말이 되어야 할까요. 왜 두 낱말을 다르게 써야 할까요. 1800년대를 살던 사람들이 ‘곤충’이라는 한자말을 썼을까요. 1700년대나 1500년대 이 나라 옛사람이 ‘곤충’이라는 한자말로 ‘벌레’를 가리켰을까요. ‘풀벌레·딱정벌레’란 이름도 있으나, 학문으로 다룰 적에는 우리말을 쓸 수 없다고 여기는 이 나라입니다. 학문을 밝히거나 책을 내거나 학교에서 가르칠 적에는 우리말과 등돌리는 이 나라예요. 물고기를 살피는 학자는 ‘물고기 학자’ 아닌 ‘어류 학자’, 새를 돌아보는 학자는 ‘새 학자’ 아닌 ‘조류 학자’라 하지요.


꺼풀을 씌우다 보니 겹말이 불거져요. “깊고 근원적”, “새로운 신제품”, “본바탕”, “맞서려는 저항”은 모두 겹말입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른 비슷한말을 가누지 않으니 겉보기만 한글이요 속살은 어지러운 판입니다.


숲이 우거지고 맑은 물과 바람을 마시는 살림을 건사한다면 숲내음이며 물빛하고 바람노래로 마음을 다스려요. 숲보금자리라면 누구라도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어요. 숲이 우거진 곳에 있는 작은 집, 맑은 물과 바람을 마시면서 맑은 마음이 되도록 북돋우는 작은 보금자리, 파랗게 눈부신 하늘과 하얗게 빛나는 구름을 껴안는 작은 마을, 사람이라면 이러한 데에서 사랑을 길어올리겠지요. 그러나 오늘날 입시지옥 학교는 이 모든 작은마을 작은길 작은숲하고 동떨어져요.


멋스러이 꾸미기에 멋지지 않아요. 스스로 사랑하는 살림을 짓는 마음이기에 저절로 사랑빛이 피어나면서 멋져요. 스스로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누릴 적에 스스로 아름다운 생각을 나누겠지요. 스스로 빛나는 삶과 사랑이 될 적에 빛나는 이야기를 담은 책 한 자락 누리겠지요. 성대골 〈대륙서점〉은 상냥하며 조촐한 말빛으로 책빛을 퍼뜨리는 마을책집으로 나아가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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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의 비밀》(공문정 글·노인경 그림, 바람의아이들, 2015)

《대전여지도 1》(이용원, 토마토, 2016)

《북숍 스토리》(젠 캠벨/조동섭 옮김, 아날로그, 2017)

《책 사랑꾼 이색 서점에서 무얼 보았나?》(김건숙, 바이북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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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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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이란 굴레 아닌 살림길을 (2014.9.21.)

― 부산 〈대영서점(새동화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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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자락이 빛나기까지는, 책을 쓴 사람하고 책을 엮은 사람하고 책을 펴낸 사람이 있습니다. 갓 나온 책을 다루는 새책집 일꾼이 있고, 이 책을 알아본 책벗이 있으며, 책벗은 다른 책벗을 헤아리면서 이녁 책을 내놓습니다. 책은 갓 태어날 적에도 읽히지만, 두고두고 되읽혀요. 도서관은 온갖 책을 찬찬히 보듬어 오랫동안 건사하면서 읽히는 징검다리입니다. 그런데 도서관에서도 건사하지 못해 버리는 책이 있으니, 헌책집은 모든 묵은 책을 차근차근 매만지면서 되살릴 책을 추립니다.


헌책집을 다니다가 때때로 ‘같은 책을 두세 자락’ 더 장만합니다. 온누리에 책이 얼마나 많은데 ‘같은 책을 뭐 하러’ 또 갖추느냐고 물을 만한데, 새책집 책시렁에서 사라진 책은 앞으로 도서관에서 다시 만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헌책이 새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지 않습니다. 새옷을 입고 태어나더라도 처음 나온 옛모습을 간직한 책에는, 이 책을 처음 장만해서 읽은 사람이 남긴 손길과 자국이 있습니다. 책을 쓴 사람 이야기에, 책을 읽은 사람 이야기가 나란히 있어요.


숱한 책을 쓰다듬고 건사하고 읽고 품으며 생각합니다. 어느 글쓴이는 가난한 살림에 글빛을 밝힙니다. 버지니아 울프처럼 ‘먹고사는 걱정이 없는 집안’에서 태어난 글쓴이도 글빛을 밝힙니다.


가난해야 깨끗하게 글을 쓰지 않습니다. 가멸차면 지저분하게 글을 쓰지 않습니다. 돈이 아닌 마음에 따라, 마음을 다스리는 눈빛에 따라, 눈빛을 사랑하는 손길에 따라 글결이 다르다고 여겨요. 무엇보다 틀에 매이지 않을 적에 글이 빛납니다. 이른바 ‘전통·형식·사상’에 얽매이지 않을 적에 오래오래 읽히며 슬기로운 새빛으로 흐르지 싶어요. 참말 그렇습니다. ‘전통·형식·사상’은 굴레이기 일쑤입니다. 우리 생각을 얽매는 굴레예요. 흔히 말하는 ‘전통’이란 무엇일까요? 임금님이 따르던 버릇이 전통일까요? 권력자나 지식인이 섬기는 길이 전통일까요? 우리나라로 치면, 양반이나 사대부가 따르던 ‘중국 문화’를 함부로 전통이라고 해도 될까요? 지난날 이 땅에서 살던 99퍼센트가 넘는 사람은 ‘글(한자)을 모르는 채 살았’으나, 글을 몰랐어도 입과 몸과 마음과 사랑으로 삶을 지었습니다. ‘글(한자)을 아는’ 옛날 권력자나 지식인은 오로지 ‘중국 섬기기’를 일삼았습니다.


한자문화권이라는 얘기를 곧잘 끄집어내는 지식인은 ‘지식 권력’을 말할 뿐입니다. 지난날 이 나라는 한자문화권이 아니었습니다. 한글문화권도 아니었습니다. 99퍼센트가 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가꾼 터와 누리던 삶을 돌아보면 ‘숲살림’입니다.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에 적혔기에 ‘우리 문화’이지 않아요.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옮기며 퍼지니 문화입니다. 아름드리숲처럼 아름찬 살림이 흐르고 이어 오늘에 이르지 싶어요. 굴레나 틀이 아닌, 스스로 빛나는 살림살이를 손수 짓는 마음으로 글을 어루만져야 비로소 아름책으로 묶을 아름글이 태어나지 싶습니다.


보수동 헌책집 〈대영서점(새동화서점)〉에 깃들어 혼자 생각에 잠깁니다. 저는 살림글을 쓰고 싶으며, 살림책을 읽고 싶습니다. 살림빛이 될 길을 갈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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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인생론》(L.톨스토이/황문수 옮김, 삼중당, 1975)

《교양도서해제 및 도서관 이용안내》(중앙대학교 도서관, 1971)

《영어로 글 잘 짓는 법》(윌렴 스트렁크 2세·이 비 화이트, 한국 브리태니커 회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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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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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을빛을 나누는 길 (2018.12.8.)

― 순천 〈골목책방 서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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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장삿길은 지난날보다 훨씬 크고 깊어요. 나라마저 장삿길을 부추겨요. 살림길은 온데간데없지 싶습니다. 큰고장은 하나같이 서울을 닮으려 하고, 시골마저 서울 따라쟁이로 치닫습니다. 시골 읍내에 높다란 시멘트집이 자꾸 올라서고, 큰고장 한복판뿐 아니라 바깥자리까지 높다란 시멘트집이 그득그득 올라섭니다.


고흥살이를 잇는 동안 순천으로 책마실을 다니며 지켜보니, 처음 깃들 무렵만 해도 너른 들이던 곳이 조금씩 아파트로 잡아먹힙니다. 순천은 아파트를 더 늘려야 할까요? 바닷가·갯벌·들·멧골을 자꾸 아파트한테 내줘야 할까요? 순천만정원만 놓기보다는, 순천이라는 고장이 오롯이 푸른마을이 되도록 할 일이 아닐까요?


어느 고장에서든 어린이·푸름이가 학교나 사회에서 배우는 말은 ‘제도권 말’인데 ‘교양 있는 서울말’이에요. 순천·광양에 있는 학교로 찾아가서 푸름이를 만나고 말을 섞으면서 ‘사투리 쓰는 푸름이’를 거의 못 봅니다. 말씨는 조금 순천스러울는지 몰라도 ‘오랜 순천 낱말’을 쓰는 아이는 하나도 없다 할 만해요.


고흥 어린이는 고흥말을, 순천 푸름이는 순천말을, 봉화 어린이는 봉화말을, 상주 푸름이는 상주말을, 이렇게 제 고장 말씨를 물려받고서 교과서를 비롯해 학교·사회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글을 쓴다면, 작은고장이나 시골 아이들은 ‘두 말씨(텃말하고 서울말)’를 익힐 만합니다. 이른바 ‘2개 국어’입니다.


행정·문학 때문에 서울말을 익혀서 써야 하더라도 삶·살림에서는 아스라이 먼 옛날부터 손수 일구며 지은 사랑으로 태어난 사투리를 넉넉히 쓰면 좋겠어요. 길알림판을 ‘순천말·서울말’로 붙이면 얼마나 재미날까요. 교과서도 ‘순천말·서울말’로 엮으면 구성지고 맛깔스러울 뿐 아니라 고을빛을 가꾸는 밑힘이 됩니다.


마을에 깃드는 책집은 마을빛을 살리는 샘터가 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마을책집에서 꾀하는 여러 모임을 ‘서울말 안 쓰기’로 꾸릴 수 있어요. ‘마을말 배우기’ 모임을 따로 꾸려도 재미나겠지요. 거의 모든 책은 서울말로만 나오는데, 마을책집에서 여는 책모임에서는 ‘우리 고장 말씨로 읽기’를 해볼 만해요. 순천에는 여러 고장에서 모인 분이 많으니, 저마다 ‘내가 자란 고장에서 쓰던 말씨’를 살려서 읽어 본다면, 다 다른 말씨에 깃들고 다 다른 말결에 흐르는 다 다르면서 고운 살림새를 싱그러이 마주하면서 누리리라 봅니다.


처음에는 〈그냥과 보통〉이던 책집이 〈골목책방 서성이다〉란 이름이 됩니다. 책집지기님이 바뀝니다. 그냥그냥 누구한테나 수수하게 열린 이 길은, 슬렁슬렁 골목을 서성이는 걸음으로 이어갑니다. 한 걸음은 두 걸음으로, 이내 석 걸음하고 넉 걸음으로 잇습니다. 겨울이어도 바람이 부드럽고 해님이 포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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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 원했던 삶의 방식을 일궜는가?》(편집부, 브로드컬리, 2018)

《내가 나눠줄게 함께하자》(일리아 그린/임제다 옮김, 책속물고기, 2013)

《통통공은 어디에 쓰는 거예요?》(필리포스 만딜라리스(글)·엘레니 트삼브라(그림)/정영수 옮김, 책속물고기, 2015)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이반 일리치/허택 옮김, 느린걸음,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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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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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에는 유월처럼 (2017.6.18.)

― 전주 〈유월의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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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유월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습니다. 십이월이란 달도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않아요. 유월은 유월으로 여기고 십이월은 십이월로 느낍니다. 어느 달 하나만 좋아하거나 싫어하기에는 다른 열한 달이 서운해 하거나 섭섭해 하거든요.


2016년에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을 마무르고서 2017년 올해에는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하고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두 가지를 함께 마무리하느라 하루조차 쉴틈이 없습니다. 여느 책을 쓰는 분이라면 다음 책을 헤아리며 쉴틈을 둘는지 몰라도, 사전은 마무리가 없이 날마다 보태고 기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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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지 않나요? 하루도 안 쉬고 일하려면?” 하고 묻는 이웃님한테 “저는 하루조차 쉴 생각이 없이 태어났다고 여겨요. 저한테는 일하는 틈이 쉬는 틈인걸요. 아이를 돌보며 같이 놀고 자전거를 달리고 씻기고 입히고 먹이는 살림이 고스란히 쉬는 틈이곤 해요. 아이를 재우다가 같이 곯아떨어지고, 이내 번쩍 일어나서 일손을 잡고, 내내 그렇게 살았네요.” 하고 대꾸합니다.


이 나라 삶터를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지 싶습니다. 정치나 경제나 문화를 마주하며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이란 드문데요, 이 나라 학교를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매우 드뭅니다. 이 나라 언론이나 종교를 마주하며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도 더더욱 드물어요. 그렇다면 이 나라에서는 무엇이 아름다울까요? 어디가 어떻게 아름다우면 좋을까요?


사전을 쓰는 사람은 참말 한 해 내내 하루조차 안 쉽니다. 아니, 한 해 내내 노래하면서 일합니다. 노래하지 않는다면 쉴틈없는 나날을 못 견디겠지요.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우리 집 나무 곁에서 춤을 춘답니다. 왜냐하면, 풀꽃나무도 한 해 내내 딱히 쉬는 일 없이 즐거이 가지를 뻗고 잎을 내며 한들거려요. 말을 다루는 길이라면 나무처럼 해바라기에 바람바라기에 비바라기로 고이 살아가면 된다고 여겨요. 말을 글로 옮겨서 이룬 책을 다루는 책집이라면 한 해 내내 신바람으로 삶을 바라보면서 나긋나긋 노래하듯이 하루를 열 만하겠지요.


이 나라가 아름답다면, 사진을 찍는 사람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빚어서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 나라가 아름답지 않더라도 이 나라를 이루는 수수한 사람들은 저마다 고요하게 아름다운 삶을 조촐하게 지어요. 이 나라를 이루는 수수한 사람들 이야기는 신문·방송에 거의 안 나오고, 영화나 책으로도 거의 안 나올 뿐입니다. 수수한 사람들 이야기에 눈길을 두는 눈빛이 있다면 우리는 늘 아름빛이겠지요.


전주 한켠에서 고즈넉히 골목이웃하고 노래하는 〈유월의서점〉이지 싶어요. 이 노랫결은 나지막히 흘러 고흥에도 닿고 부산으로도 퍼지고 서울로도 가요. 어느 곳에서도 이 마을책집이 열었다는 말은 없었지만, 유월바람을 타고 저한테 스며든 소리를 듣고, “와, 반갑네, 유월책집이라니!” 하면서 유월 한복판에 마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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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들고 느릿느릿》(그사람, 스토리닷)

《뉴욕의 책방》(최한샘, 어라운드, 2012)

《뜨뜨시 할머니의 바다 레시피》(윤예나,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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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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