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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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길을 잇는 작은숲 (2017.12.21.)

― 서울 〈대륙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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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한테는 우리말이 있고, 조선 무렵에 훈민정음이 나왔습니다만, 글님은 으레 중국 한문을 썼어요. 얼마 앞서 장만해서 새로 읽는 《역옹패설》은 고려 무렵에 나왔다고 하니 훈민정음하고는 동떨어집니다만, 이 나라에 살림꽃이 제대로 섰다면 훈민정음이 태어난 뒤 이 한문책을 훈민정음으로 옮기는 일을 했겠지요. 그때 제대로 훈민정음으로 이 한문책을 옮겼다면, 책이름을 어떻게 읽는지, 또 우리가 오래도록 쓰던 말씨가 어떤 글씨로 나타나는가를 또렷이 아로새길 만했으리라 봅니다. 가만 보면 우리는 이웃나라 책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에 앞서, 아직 우리 글씨가 없던 무렵 한문으로 쓴 책을 오늘날 우리 글씨로 알맞게 옮기는 일이 서툴거나 늦습니다. 우리가 쓰는 말이 삶자리에서 삶말이 되도록, 너나없이 쉽게 읽고 쉽게 익혀서 쉽게 나누는 길로 이어가도록 종이책을 가꾸는 살림이 모자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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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담는 말을 갈무리하는 사전’을 이야기하는 수다판을 〈대륙서점〉에서 마련합니다. 겨울바람을 가르고 서울마실을 합니다. 큰말보다 작은말부터 살피고 싶습니다. 이를테면 ‘벌레’랑 ‘곤충’은 서로 어떻게 다른 말이 되어야 할까요. 왜 두 낱말을 다르게 써야 할까요. 1800년대를 살던 사람들이 ‘곤충’이라는 한자말을 썼을까요. 1700년대나 1500년대 이 나라 옛사람이 ‘곤충’이라는 한자말로 ‘벌레’를 가리켰을까요. ‘풀벌레·딱정벌레’란 이름도 있으나, 학문으로 다룰 적에는 우리말을 쓸 수 없다고 여기는 이 나라입니다. 학문을 밝히거나 책을 내거나 학교에서 가르칠 적에는 우리말과 등돌리는 이 나라예요. 물고기를 살피는 학자는 ‘물고기 학자’ 아닌 ‘어류 학자’, 새를 돌아보는 학자는 ‘새 학자’ 아닌 ‘조류 학자’라 하지요.


꺼풀을 씌우다 보니 겹말이 불거져요. “깊고 근원적”, “새로운 신제품”, “본바탕”, “맞서려는 저항”은 모두 겹말입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른 비슷한말을 가누지 않으니 겉보기만 한글이요 속살은 어지러운 판입니다.


숲이 우거지고 맑은 물과 바람을 마시는 살림을 건사한다면 숲내음이며 물빛하고 바람노래로 마음을 다스려요. 숲보금자리라면 누구라도 스스로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어요. 숲이 우거진 곳에 있는 작은 집, 맑은 물과 바람을 마시면서 맑은 마음이 되도록 북돋우는 작은 보금자리, 파랗게 눈부신 하늘과 하얗게 빛나는 구름을 껴안는 작은 마을, 사람이라면 이러한 데에서 사랑을 길어올리겠지요. 그러나 오늘날 입시지옥 학교는 이 모든 작은마을 작은길 작은숲하고 동떨어져요.


멋스러이 꾸미기에 멋지지 않아요. 스스로 사랑하는 살림을 짓는 마음이기에 저절로 사랑빛이 피어나면서 멋져요. 스스로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누릴 적에 스스로 아름다운 생각을 나누겠지요. 스스로 빛나는 삶과 사랑이 될 적에 빛나는 이야기를 담은 책 한 자락 누리겠지요. 성대골 〈대륙서점〉은 상냥하며 조촐한 말빛으로 책빛을 퍼뜨리는 마을책집으로 나아가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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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의 비밀》(공문정 글·노인경 그림, 바람의아이들, 2015)

《대전여지도 1》(이용원, 토마토, 2016)

《북숍 스토리》(젠 캠벨/조동섭 옮김, 아날로그, 2017)

《책 사랑꾼 이색 서점에서 무얼 보았나?》(김건숙, 바이북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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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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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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