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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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을빛을 나누는 길 (2018.12.8.)

― 순천 〈골목책방 서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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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장삿길은 지난날보다 훨씬 크고 깊어요. 나라마저 장삿길을 부추겨요. 살림길은 온데간데없지 싶습니다. 큰고장은 하나같이 서울을 닮으려 하고, 시골마저 서울 따라쟁이로 치닫습니다. 시골 읍내에 높다란 시멘트집이 자꾸 올라서고, 큰고장 한복판뿐 아니라 바깥자리까지 높다란 시멘트집이 그득그득 올라섭니다.


고흥살이를 잇는 동안 순천으로 책마실을 다니며 지켜보니, 처음 깃들 무렵만 해도 너른 들이던 곳이 조금씩 아파트로 잡아먹힙니다. 순천은 아파트를 더 늘려야 할까요? 바닷가·갯벌·들·멧골을 자꾸 아파트한테 내줘야 할까요? 순천만정원만 놓기보다는, 순천이라는 고장이 오롯이 푸른마을이 되도록 할 일이 아닐까요?


어느 고장에서든 어린이·푸름이가 학교나 사회에서 배우는 말은 ‘제도권 말’인데 ‘교양 있는 서울말’이에요. 순천·광양에 있는 학교로 찾아가서 푸름이를 만나고 말을 섞으면서 ‘사투리 쓰는 푸름이’를 거의 못 봅니다. 말씨는 조금 순천스러울는지 몰라도 ‘오랜 순천 낱말’을 쓰는 아이는 하나도 없다 할 만해요.


고흥 어린이는 고흥말을, 순천 푸름이는 순천말을, 봉화 어린이는 봉화말을, 상주 푸름이는 상주말을, 이렇게 제 고장 말씨를 물려받고서 교과서를 비롯해 학교·사회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글을 쓴다면, 작은고장이나 시골 아이들은 ‘두 말씨(텃말하고 서울말)’를 익힐 만합니다. 이른바 ‘2개 국어’입니다.


행정·문학 때문에 서울말을 익혀서 써야 하더라도 삶·살림에서는 아스라이 먼 옛날부터 손수 일구며 지은 사랑으로 태어난 사투리를 넉넉히 쓰면 좋겠어요. 길알림판을 ‘순천말·서울말’로 붙이면 얼마나 재미날까요. 교과서도 ‘순천말·서울말’로 엮으면 구성지고 맛깔스러울 뿐 아니라 고을빛을 가꾸는 밑힘이 됩니다.


마을에 깃드는 책집은 마을빛을 살리는 샘터가 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마을책집에서 꾀하는 여러 모임을 ‘서울말 안 쓰기’로 꾸릴 수 있어요. ‘마을말 배우기’ 모임을 따로 꾸려도 재미나겠지요. 거의 모든 책은 서울말로만 나오는데, 마을책집에서 여는 책모임에서는 ‘우리 고장 말씨로 읽기’를 해볼 만해요. 순천에는 여러 고장에서 모인 분이 많으니, 저마다 ‘내가 자란 고장에서 쓰던 말씨’를 살려서 읽어 본다면, 다 다른 말씨에 깃들고 다 다른 말결에 흐르는 다 다르면서 고운 살림새를 싱그러이 마주하면서 누리리라 봅니다.


처음에는 〈그냥과 보통〉이던 책집이 〈골목책방 서성이다〉란 이름이 됩니다. 책집지기님이 바뀝니다. 그냥그냥 누구한테나 수수하게 열린 이 길은, 슬렁슬렁 골목을 서성이는 걸음으로 이어갑니다. 한 걸음은 두 걸음으로, 이내 석 걸음하고 넉 걸음으로 잇습니다. 겨울이어도 바람이 부드럽고 해님이 포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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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 원했던 삶의 방식을 일궜는가?》(편집부, 브로드컬리, 2018)

《내가 나눠줄게 함께하자》(일리아 그린/임제다 옮김, 책속물고기, 2013)

《통통공은 어디에 쓰는 거예요?》(필리포스 만딜라리스(글)·엘레니 트삼브라(그림)/정영수 옮김, 책속물고기, 2015)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이반 일리치/허택 옮김, 느린걸음,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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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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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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