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책집에서 나누는 마음 (2018.8.17.)

― 경기 수원 〈리지블루스〉

경기 수원시 영통구 매탄로160번길 15

https://www.instagram.com/bookstore_lizzyblues



  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이 있습니다. 이 배움모임이 있는 줄 처음 안 때는 1999년입니다. 그때 저는 신문을 돌리는 일꾼 자리를 떠나면서 출판사에서 책을 알리고 파는 자리로 옮겼습니다. 제가 몸담은 출판사에서 펴낸 책을 바리바리 싸들고 길바닥에 자리를 깔고서 판다든지, 책잔치 자리에서 길손을 붙잡고 끝없이 책수다를 펴면서 책을 팔았어요. 흔한 도서목록 아닌 새로운 도서목록을 짠다든지, 책손한테 드릴 새로운 그림엽서나 그림판을 꾸민다든지, 전국 도서관이며 초등학교에 손글월을 띄우면서 이곳 책을 알린다든지, 이모저모 새로운 장삿길을 열어 보려 했습니다. 때로는 초등학교나 도서관이나 어린이책 전문서점을 찾아가서 책을 알리거나 넣었지요. 인쇄·제본을 거치다가, 창고하고 책집 사이를 오가다가, 이래저래 다쳐서 팔 길 없는 책을 깨끗하게 손질해서 시골 작은 학교나 도시 가난한 학교나 여러 작은 도서관에 선물꾸러미로 보내거나 가져다주었습니다. 이런 일을 하며 초등학교 교사 가운데 ‘말을 말답게 가르치자는 뜻’으로 하나가 된 분들을 만났어요.


  1999년에는 제가 몸담은 출판사 책을 팔아야 하면서 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분들을 만났다면 2018년 여름에는 이 모임에서 여름에 펴는 사흘짜리 배움마당 ‘마무리 이야기벗’이 되어 찾아갑니다.


  얼추 스무 해란 나날이 이렇게 흘렀군요. 예전에도 오늘에도 저는 사전이라는 책을 쓰는 길을 갑니다. 예전에는 신문을 돌리거나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조용히 사전이라는 책을 썼다면, 이제는 시골자락에서 아이들을 돌보면서 고요히 사전을 씁니다. 예전에는 도시 한복판에서 사전을 썼고, 이제는 시골 한가운데에서 사전을 써요.


  마땅한 소리일 텐데, 어느 자리에서 쓰느냐에 따라, 올림말을 다루거나 바라보는 눈길이며 손길이 확 다릅니다. 도시 한복판에서 살며 말을 다룰 적에는 아무리 도시에서도 숲을 그리면서 다룬다 할는지라도 도시내음이 스며요. 시골 한가운데에서 아이들하고 어우러지면서 말을 다룰 적에는 언제나 이 삶결이 그대로 말결로 옮아갑니다.


  배움마당 마무리 이야기를 펴려고 한신대학교로 가는 길목이기에, 수원 마을책집 가운데 〈리지블루스〉에 들르기로 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수원 남문 곁에 있는 헌책집도 들르고, 다른 여러 마을책집도 바지런히 들르고 싶습니다만, 고흥에서 순천을 거쳐 수원으로 오니 벌써 두 시가 훌쩍 지나갑니다.


  수원역에서 택시를 잡습니다. 책집 주소를 길찾기로 살펴서 손쉽게 옵니다. 시내버스를 타고도 책집에 갈 수 있지만, 오늘은 1분조차 길에서 보내고 싶지 않아요. 아니, 1분조차 흘릴 겨를이 없습니다.


  파랗게 물들인 책집 바깥모습을 눈부신 햇살에 담아서 바라봅니다. 해가 참으로 잘 드는 골목 한켠입니다. 조용한 이 골목으로 걸어오는 분이라면 조용하게 책시렁을 돌아보다가 조용하게 걸상에 앉아서 한때를 누리겠지요.


  오늘 〈리지블루스〉로 온 까닭은 바로 이곳에서 펴낸 책이 있기 때문이에요. 책집지기님이 쓴 책을 바로 그 책집에서 사고 싶어 일부러 걸음을 했습니다. 그 책을 고르기 앞서 《오늘도, 무사》(요조, 북노마드, 2018)를 고릅니다. 서울에서 마을책집을 하다가 제주로 터전을 옮긴 이야기를 읽습니다. 예전에 인천에서 이야기꽃을 펴는 자리에서 책집지기 요조 님을 뵌 적이 있는데, 그때 만난 이야기도 책에 흐릅니다.


  달거리 이야기를 다룬 《어바웃 문데이》(김도진, 해피문데이, 2017)를 고릅니다. 영어로 하면 이렇게 되네 하고 생각하다가도 “달날 이야기”나 “달거리란”이나 “달빛이란”이나 “달마음이란”이나 “다달이 꽃”처럼, 조금 더 알아보기 쉽도록 이름을 붙이면 어떠했으려나 싶습니다.


  이제 《리지의 블루스》(김명선, 리지블루스, 2018)를 고릅니다. 이 책을 이곳에서 사러 왔지만 다른 책도 둘러보고 싶었어요. 책집을 열기까지, 책집을 열면서, 책집에서 햇살을 파랗게 맞아들이는 동안, 찬찬히 맞아들인 여러 가지 이야기가 조곤조곤 흐릅니다. 마지막으로 《크레용이 화났어》(드류 데이월트 글·올리버 제퍼스 그림/박선하 옮김, 주니어김영사, 2014)까지 살핍니다. 뿔이 난 그림연필은 이 불길을 잠재우고서 신나게 그림놀이로 나아갈까요.


  배움마당으로 가야 할 때입니다. 더 머물지 못해서 아쉬워도 다음걸음이 있으리라 생각하며 짐을 꾸립니다. 마침 요즈막에 새로 써낸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을 챙겨서 나왔기에 책집지기님한테 가만히 건네고서 돌아나옵니다. 짐수레는 돌돌 굴리고 등짐은 질끈 동여매며 골목을 걷는데 〈리지블루스〉 지기님이 부릅니다. “책 선물 고마워요!” 하면서 흔드는 손길에 저는 고개를 꾸벅 숙입니다. 택시로 한림대학교를 가 보는데 어귀부터 우거진 나무가 마음에 듭니다. 나무가 우거진 대학교라면 이곳을 다니는 젊은 분도 푸른 넋을 더 곱게 배울 만하겠다고 생각합니다. 온누리 모든 학교가 나무를 품으면서 푸르면 좋겠어요. 지식·정보를 나누는 길을 넘어서 꿈·사랑을 그리면서 나누는 자리에 서면 좋겠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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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한복판에 심은 꽃 (2018.8.20.)

― 서울 종로 〈역사책방〉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0길 24

02.733.8348.

http://historybooks.modoo.at



  우리 몸을 이루는 숨결이 무엇인가를 놓고서 스스로 몸에 이모저모 해본 폴란드사람이 있습니다. 이분은 이태란 나날을 덩이진 밥을 안 먹고서 햇볕하고 바람하고 빗물을 받아들이면서 살기도 했답니다. 이동안 손수 살피고 캐내며 알아낸 이야기를 여러 나라를 돌면서 들려주는데 마침 한국에도 찾아온다고 해서 곁님하고 아이들이랑 배움마실을 다녀왔어요. 지리산 골짜기에서 듣고 같이 해보는 배움마실은 재미났습니다. 오래도록 뒤엉킨 여러 실타래를 찬찬히 풀기도 했습니다. 한동안 집을 나선 김에 여느 때에는 좀처럼 가기 힘든 데도 나들이를 합니다. 이를테면 일산에서 묵으며 전철로 아이들하고 서울 한복판 경복궁 옆자락으로 나들이를 왔어요. 이곳에 ‘한글전각갤러리’란 알찬 터가 있거든요. 한글전각갤러리 ‘돌꽃지기’님하고 돌에 글씨를 새기며 놀다가, 이곳하고 이웃한 〈역사책방〉에 살짝 들릅니다. 한글전각갤러리는 곧잘 들렀는데 어느새 이웃에 알뜰한 책집이 깃들었네요.


  책집 이름처럼 역사를 다루는 책을 넉넉히 들여놓습니다. 역사책만으로도 넉넉히 책집을 채울 만하지요. 다만 역사책만으로 장사가 될까 걱정하면서 선뜻 ‘역사책집’을 열려고 나서기는 만만하지 않으리라 봅니다.


  경복궁 곁에 햇볕이 잘 드는 자리에 있는 〈역사책방〉 골마루를 거닙니다. 《박남옥, 한국 첫 여성 영화감독》(박남옥, 마음산책, 2017)이라는 책을 먼저 집어듭니다. ‘첫 여성’ 영화감독이라서기보다, 글쓴님이 걸어온 삶자국이 대단하다고 느낍니다. 마치 레닌 리펜슈탈 님처럼 모든 삶길을 스스로 일구고 스스로 짓고 스스로 펴면서 이 별에 사랑이란 씨앗을 심은 분이로구나 싶어요.


  역사책 곁에 있는 과학책이라 할 《우리는 모두 별이 남긴 먼지입니다》(슈테판 클라인/전대호 옮김, 청어람미디어, 2014)도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책을 죽 읽고 보니 뒤로 가면 갈수록 엮은이가 여러 과학자한테 묻는 말이 새롭지 못해요. 일부러 뻔한 말만 묻는다기보다 스스로 마음을 더 틔우거나 열면서 ‘별 = 먼지’인 실마리를 깊고 넓게 들여다보지는 않네 싶더군요.


  일본사람은 남다르기도 하다고 여기면서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이나가키 히데히로/조홍민 옮김, 글항아리, 2017)을 골라듭니다. 가만 보면 우리도 ‘숲고장’이나 ‘푸른고을’ 같은 이름으로 어느 고장이나 고을이 걸어온 길을 되새길 만합니다. 높다란 집이나 널따란 찻길이 끝없이 늘어나는 고장이나 고을이란 얼거리가 아닌, 어느 고장이나 고을에 푸나무가 얼마나 오래도록 어떻게 사람들 곁에서 푸른바람을 일렁이는가를 짚을 만해요. 푸나무가 우거진 고장에 마실을 해보면 그 고장에서 만나는 분들 낯빛이 참 푸르게 빛나요. 푸나무가 없다시피 한, 이른바 자동차하고 높은집으로 매캐한 고장에 마실을 해보면 그 고장에서 스치는 분들 낯빛이 너무 바쁘고 차갑고 서두르고 안절부절 못하는구나 싶어요.


  신기수라는 분이 남긴 자취를 따라서 엮은 《신기수와 조선통신사의 시대》(우에노 도시히코/이영화 옮김, 논형, 2017)는 일본사람이기에 엮을 만한 책인가 하고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이만큼 파고들거나 짚으면서 우리 발자취를 책으로 묶을 만한 마음결은 없지 싶습니다. 그러나 이런 책을 못 묶더라도 이런 책을 알아보고서 한국말로 옮길 줄은 알기에 반갑습니다.


  역사책 둘레에 살몃 깃든 사진책 《바람의 눈, 한국의 맹금류와 매사냥》(김연수, 수류산방, 2011)을 폅니다. 사진책이란 새로운 역사책입니다. 글 아닌 사진으로도 우리가 걸어왔고 살아왔고 사랑했고 살림한 자취를 읽을 만하거든요. 꼭 글로 갈무리해야 역사책 갈래에 들지 않아요. 사진책은 사진으로 역사에 인문에 문학에 예술에 그림에 이야기에 과학에, 모든 갈래를 품어서 선보이는 살뜰한 꾸러미라고 느껴요. 그나저나 매사냥을 다룬 사진책은 ‘너무 멋들어지게 꾸미려’ 했네 싶어서 아쉬워요. 수수하면서 가볍게 짚으면 한결 나아요. 자꾸 스스로 치켜세우면서 치레를 하려는 엮음새가 된다면, 되레 ‘바람눈’이라는 매사냥 이야기하고 동떨어질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한글전각갤러리에서 놉니다. “같이 책집 둘러볼래?” 하고 물으니 “우리 집에도 책 많아. 책 그만 사.” 하고 대꾸합니다. 심드렁한 아이들 대꾸도 있고 해서 책은 몇 자락만 고릅니다. 이곳 서울 한복판에 역사책으로 꽃을 심은 어여쁜 마을책집이 언제나 새롭게 피어나는 살림자리가 되기를 바라면서, 제가 쓴 사전 가운데 하나인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에 슥슥 토막글을 적어서 건넵니다. 이다음에 서울 한복판에 다시 마실을 올 날이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사뿐사뿐 걸음꽃 옮기고 싶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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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도서연구회에서 펴내는 '동화읽는 어른'에 실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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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이야기꽃

여덟걸음 ― ‘해보기’ 너머 ‘숲’으로



  둘레에서 누가 무슨 말을 하면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수첩에 적습니다. 어쩐지 머리나 마음으로 스미지 못하는구나 싶은 말을 한참 바라봅니다. 이 말을 쓰신 분으로서는 이 말이 그분 생각을 나타내는 길에 어울린다고 여겼을 테지만, 저는 제가 쓸 말을 곱씹습니다. ‘방향전환’이란 말 한 마디를 수첩에 옮겨적고 보니 ‘뜯어고치다’를 나타내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살짝 눈을 감고 생각을 잇습니다. ‘뜯어고치다’란 낱말 하나가 어떤 이야기를 담는가를 헤아리면서 화살표를 넣고서 다른 말을 줄줄이 붙여 봅니다.


뜯어고치다 ← 혁명, 혁신, 변혁, 개혁, 리빌딩, 개보수, 재건축, 개과천선, 방향전환


  그냥그냥 ‘방향전환’ 같은 말씨를 써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둘레에서 이런 말을 흔히 쓰면 받아들여도 되겠지요. 그러나 으레 스스로 묻습니다. 다른 누구보다 제가 여덟 살이나 열 살 어린이라 한다면, 둘레에서 쓰는 이런 말을 알아듣겠느냐고 묻습니다. 이다음으로 혀짤배기에 말더듬이 어린이가 이런 말을 혀에 얹어 소리를 내기 좋으려나 하고 묻습니다.


  저는 혀짤배기로 태어났고, 소리가 자꾸 새서 말더듬이로 어린 나날을 보냈습니다. 둘레 다른 분들이 아무렇지 않게 소리를 내는 말씨라 하더라도, 저로서는 모두 걸러내야 했습니다. 어릴 적에 소리를 내기 힘든 말씨 가운데 하나는 ‘우리나라·우리말’이었습니다. 어쩐지 ‘우리’가 들어가는 모든 말씨가 어렵고 소리가 샜고, 뒷말하고 안 이어져서 더듬더듬했어요. ‘우리’를 비롯해 ‘고리·뿌리·나리·소리·머리’처럼 ‘ㄹ’이 첫머리에 깃든 ‘리’란 말씨는 엄청난 담이더군요.


  이 담을 넘으려고 스무 해쯤 씨름을 했어요. 어떻게 했느냐 하면, 사람이 아무도 없다 싶은 외지거나 깊은 곳에 가서 큰소리로 혼자 외치면서 노래를 했어요. 적어도 하루에 두어 시간쯤. 누가 시켜서 하지 않았어요. 국민학교란 곳을 다니는 동안 소리가 새어 말더듬질을 할 적에 늘 놀림을 받고 괴롭힘질을 받은 터라, 살아남으려고 악을 썼을 뿐입니다.


길 ← 차도, 보도(步道), -가(街), 도로, 차로, 방법, 법, 방안, 방도, 수단, 대안, 대책, 방도, 노정, 노상, 기회, 여정, 도중, 지평, 도구, 지식, 루트, 루틴, 로드, 경로, 통로, 방식, 세대(世代), 과정, 교통, 노선, 선로, 행로, 행보, 행적, 목적, 목적의식, 목표, 정책, 이치, 원리, 레이스, 가도(街道), 가로(街路), 가두, 차례, 비전(vision), 진출, 선택, 선택지, 비결, 비방(秘方), 노하우, 키, 해결책, 해결 방안, 해결 대책, 묘수, 묘책, 돌파구, 캐치프레이즈, 습관, 공식(公式), 아이콘, 여행, 순리, 답(答), 해답, 처세, 처세술, 방면, 방향, 모델, 복(福), 제도(制度), 창구, 도상(途上), 궤도, 궤적, 사이클, 지리, 지형, 측면, 타운(town), 측(側), 운명(運命), 운(運), 운수(運數), 지표


  한국말사전이란 책을 쓰기에 늘 말을 헤아리기도 하지만, 저 스스로 혀에 얹을 만한 말씨인가 하고 살펴야 하기에 언제나 말을 헤아립니다. 어느덧 마흔 몇 해를 살아낸 몸이기에 이 걸음을 되새기면서 ‘길’이란 무엇일까 하고, 이 ‘길’은 얼마나 너른 품인 낱말인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저는 그저 ‘길’ 한 마디만 쓰는데, 둘레에서는 갖가지 말을 잔뜩 써요.


  자리마다 다르게 쓸 수 있습니다. 여러 말을 쓴대서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데 참 궁금하더군요. 왜 ‘길’ 한 마디이면 안 될까요? ‘길’이란 낱말 하나가 얼마나 넓고 깊은가를 하나하나 또렷하게 밝혀서 어린이한테 들려주고 어른 스스로 새롭게 바라보면 어떨까요? 우리는 이 ‘길’로 깊이 생각(철학)을 할 수 있어요.


  숱한 한자말이나 영어를 ‘길’로 고쳐쓰자는 뜻이 아닙니다. 아주 수수하면서 쉽고, 또 소리를 내기에도 부드러운 ‘길’이란 낱말이 있다면, 이 낱말에 얽힌 수수께끼를 즐겁게 풀어내면서 새롭게 이야기를 지을 만하지 싶습니다.


시골 들길을 걷는 사람이 없어지고 들바람을 쐬면서 노는 아이도 어른도 사라진 자리에는 기계가 울리는 소리만 가득할 뿐, 들일꾼이 부르는 들노래는 없습니다. 집집마다 텔레비전을 두면서 대중노래를 듣지만, 마을이 어우러져서 부르는 마을노래와 일노래와 놀이노래는 자취를 감춥니다.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68쪽


  1982년이란 해에 국민학교에 들어간 터라, 그즈음 대통령이 된 분이 나라 곳곳에 세운 커다란 돌을 흔히 보았어요. 이 가운데 제가 늘 봐야 했던 큰돌 글씨는 “하면 된다”예요. 그러나 뭘 하면 되는지, 하면 어떻게 되는지, 해서 되면 뭐가 달라지는지 알 길이 없더군요. 그무렵 어른들은 새마을이란 바람을 타고서 “하면 된다”는 말을 윽박지르기에 바빴다고만 느낍니다.


  대중노래가 확확 퍼졌고, 프로야구에 프로축구에 프로씨름에 프로배구에 ‘프로’란 이름을 내세운 운동경기가 넘쳤습니다. 동무끼리 골목이며 마을에서 스스로 지어서 부르던 놀이노래는 어느덧 구닥다리로 여기면서, 대중노래하고 프로스포츠에 사로잡히는 길로 빠져들었습니다.


  이런 어린 날을 되새기면서 앞뒤 모두 빠졌지 싶은 “하면 된다”란 말에 하나씩 살을 입혀 봅니다. “해보면(하면서 보면) 된다”로, “꿈대로 해보면 된다”로, “꿈꾸는 길대로 해보면 된다”로, “이루고 싶은 꿈길대로 생각해 보면 된다”로, “사랑으로 이루고 싶은 꿈길을 가는 대로 된다”로, “사랑스레 살림을 짓는 꿈길대로 해보면 된다”로, “사랑스레 살림을 짓는 숲에서 슬기로운 사람으로 살면서 해보면 된다”로, “어깨동무하는 즐거운 사랑으로 살림을 짓는 숲에서 슬기로운 사람으로 보금자리를 가꾸면서 해보면 된다”로, 말 한 마디씩 보태면서 마음에 씨앗을 심습니다.


  놀림받던 혀짤배기는 이 혀짤배기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말을 스스로 찾는 길을 걷기로 했습니다. 대학교를 그만두는 길에서 스스로 살림을 세우는 하루를 찾기로 했습니다. 군대에서 의문사를 여럿 지켜보고 살아남으면서 주먹질이 낳는 길을 새삼 돌아봤습니다. 서울·인천에서 사는 동안 집삯을 다달이 대는 길이 목을 얼마나 죄는가를 뼛속까지 느꼈습니다. 시골로 삶터를 옮겨 아이 둘을 돌보는 동안 손으로 빚는 살림길이 얼마나 대단한 이야기인가를 몸으로 새겼습니다.


해보다 ← 시도, 도전, 시험, 조치, 대처, 처리, 시범, 연습, 시행, 액션, 실천, 실행, 몰두, 활동, 실습, 경험, 체험


  여느 사전에는 아직 ‘시도’를 가리키는 ‘해보다’란 낱말이 없습니다. 둘레 많은 분들이 입말로 ‘해보다’를 꽤 오래 익히 쓰는데, 이웃들이 쓰는 ‘해보다’가 어떤 뜻이나 결인가를 하나씩 짚고 보니 꽤 재미있어요. ‘해보다’를 새말 한 마디로 삼아서 쓸 만하겠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새롭게 가고 싶은 삶길 얼거리를 펼쳐 본다면 이렇습니다. 보다(구경) → 하다(몸짓) → 해보다(겪다) → 맛보다(느낌) → 알다(배움) → 다시하다/새로하다/거듭하다(삶) → 익히다/깨닫다(마음) → 살림/철(보금자리) → 짓다(사랑) → 꿈(길) → 아이/씨앗(숲).


  갓 태어난 아기는 그저 지켜봅니다. 지켜보고 또 보고 자꾸 보다가 슬슬 움직입니다. 슬슬 움직이며 스스로 겪어요. 이러다가 하나씩 느끼고 어느덧 배워서 말을 터뜨립니다. 이다음에는 더 느끼고 더 배워서 더 많이 말할 수 있습니다. 어느새 깨닫는 이야기가 생기고 마음을 다스려요. 이렇게 흐르고 보면 철이 드는 나이에 이르고 새로 보금자리를 내고는 사랑을 찾아 꿈을 이루면서 스스로 어른이나 어버이란 자리에 섭니다.


  혀짤배기 말더듬이 어린이는 놀림질이랑 괴롭힘질이랑 따돌림질에서 살아남으려고 싸우는 어린 날을 보냈지만, 혀짤배기하고 말더듬질을 스스로 풀어낸 뒤에는 이다음에 뭘 해야 하는가를 놓고 헤매다가, 사전쓰기라는 길을 보았고 아이들을 돌보는 숲길을 바라보았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해보기였다면, 이제는 이 너머에서 새롭게 손을 잡을 수 있는, 또 스스로 푸르게 빛날 수 있는 숲을 노래하는 길을 아이들하고 걸어가자고 생각합니다. 해보고 또 해보는 하루보다는 사랑하고 거듭 사랑하며 바람이며 해님이며 빗방울이며 푸나무마냥 고요하면서 고운 사랑이 되는 길을 가려고 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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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해걸음 (2019.10.8.)

― 서울 신촌 〈숨어있는 책〉

02.333.1041.

서울 마포구 신촌로12길 30



  이틀이 멀다 하고 나들이하던 책집에 해걸음을 합니다. 해걸음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반가이 여길 노릇 아니겠느냐고 생각합니다. 전남 한켠에서 살림을 꾸리니 서울마실이 뜸하고, 뜸한 서울길에 해마다 하루쯤 걸음할 수 있다면, 더구나 해걸음을 하는 데에도 한 시간을 미처 채우지 못하고서 부랴부랴 돌아나와야 하더라도, 이렇게 찾아갈 수 있으니 고마운 일이 아니냐고 생각합니다.


  서울에 살며 날마다 책숲마실을 다닐 적에 만난 ‘날걸음(날마다 걸음하는)’ 책손 할배는 으레 “하루에 한 번도 모자라! 아침 낮 저녁, 이렇게 세 걸음은 해야 단골 책집이라고 말할 만하지!”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한 군데 책집을 하루에 세걸음을 하기는 어려웠어요. 그도 그럴 까닭이 서울에만 해도 아름책집이라 할 곳이 1990년대 끝무렵하고 2000년대 첫무렵 사이만 하더라도 삼백∼오백 곳쯤 되었다고 느끼거든요. 하루에 한 곳씩 들르면 해걸음이 되는 셈이니, 하루에 세걸음을 하는 엄청난 단골 책집까지 두지는 못했어요. 이틀이나 사흘마다 찾아가는 책집을 여럿 두었을 뿐입니다.


  어느덧 스무 해 책손이 된 〈숨어있는 책〉입니다. 새삼스럽지만 〈숨어있는 책〉이 처음 문을 열던 무렵이 애틋하게 떠오르고, 그날부터 뻔질나게 드나들던 일이 아련하게 생각나며, 충주로 인천으로 삶터를 옮기면서 차츰 발길이 뜸해야 했고, 전남으로 옮기며 그야말로 까마득하네 싶어, 이따금 사진을 넘기면서 ‘그때에는 이러했지’하고 되새기곤 합니다. 책집을 다닐 적마다 책집 삶자락을 바지런히 사진으로도 옮겨놓는데요, 그동안 찍은 사진이 누구보다 저 스스로한테 반가우면서 고맙구나 싶어요.


  글하고 사진이 어우러진 《look at us, etc, etc》(William Saroyan 글·Arthur Rothstein 사진, Cowles book, 1967)를 봅니다. 통통 튀는 글에 수수한 미국사람 살림살이가 묻어나는 사진이 함께 있습니다. 펴낸해를 다시 들춥니다. 1967년. 우리한테 1967년은 이만 한 책은 어림조차 못하던 나날이었구나 싶으면서, 그 뒤 쉰 해 남짓 흐르는 사이 우리 글살림·사진살림은 얼마나 발돋움했으려나 궁금합니다.


  전남에 살기에 눈에 꽂히는 《한국 지명 총람 14 전남편 2》(한글학회, 1982)하고 《한국 지명 총람 15 전남편 3》(한글학회, 1983)을 만납니다. ‘전남편 2’은 예전에 장만했고, ‘전남편 1’가 아직 없습니다. 비록 ‘전남편 2’은 예전에 갖추었더라도 이 나라 땅이름을 하나로 그러모은 놀라운 꾸러미이기에 한 자락 더 갖추자고 생각합니다. 남녘을 골골샅샅 누비며 땅이름을 그러모은 이 꾸러미는 참 대단하지요. 오늘날처럼 셈틀을 놓고서 갈무리한 꾸러미가 아니라 맨손으로 일궈낸 열매이기까지 하거든요. 더구나 지난날에는 길그림만 보고서 골골샅샅 누볐으니, 또 길그림에 안 나온 데도 많았으니, 다리품을 어마어마하게 팔아야 여밀 수 있던 꾸러미입니다.


  손바닥책으로 나온 《ブッダ 12》(手塚治蟲, 潮出版社, 1993)를 봅니다. 짝이 안 맞기에 하나만 고릅니다. 테즈카 오사무 님이 빚은 《붓다》를 일본에서는 이렇게 앙증맞게도 펴내었네요. 일본이 책살림이 남달리 앞선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한국은 뻥튀기가 너무해요. 단출하면서 가볍고 값싸게 널리 읽도록 책꼴을 여미는 일을 제대로 하는 ‘큰 출판사’는 아직 하나도 없거든요.


  어린이를 사진으로 어떻게 담아낼 만한가를 멋지게 담아낸 《complete course in photographing children》(John Hedgecoe, Simon & Schuster, 1980)을 봅니다. 오늘 만난 이 사진책은 책싸개도 대단합니다. 미국 어느 도서관에서 나온 책인데, 도서관에서 쓴 싸개는 책을 그야말로 곱게 건사하는 구실을 합니다. 어쩜 이렇게 세 겹짜리 책싸개로 책을 돌보는 손길이었을까요. 한국에서 도서관지기로 일하는 분이라면 ‘도서관 책싸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하는 매무새를 미국 도서관에서 배워야겠다고 느낍니다. 미국은 공공도서관이나 학교도서관뿐 아니라 군대도서관도 책을 알뜰히 다룰 줄 안다고 느껴요. 미국 도서관을 둘러본 일은 아직 없습니다만, 미국 도서관에 있다가 한국 헌책집으로 흘러나온 책은 수두룩하게 보았어요.


  언제 되읽어도 가슴을 찌릿찌릿 울리는 《마지막 인디언》(디오도러 크로버/김문해 옮김, 동서문화사, 1982)을 새삼스레 봅니다. 푸름이가 읽을 문학을 꾸준히 내는 몇몇 출판사에 이 아름다운 문학을 되살리면 어떻겠느냐고, 헌책집에서 이 책을 찾아내어 보낸 적이 있습니다만, 어느 출판사에서도 이 책을 되살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오래된 글이라 여길 수 있고, 그분들이 보기에 마음에 안 찰 수 있겠지요. 북미 텃겨레 가운데 미국 군홧발에 사라져야 했던 어느 겨레 마지막 살림살이 이야기를 눈물겨우면서도 아리땁게 담아낸 《마지막 인디언》이라고 느낍니다.


투시는 ‘푸른 동굴’에서 이시가 가져다 만들어 준 파란 꽃무늬 구슬을 단 조가비 목걸이를 걸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머리카락을 묶은 밍크 힘줄에 딱다구리의 빨강 깃털을 꽂았다. 스커트에도 콩꼬투리와 조가비 장식이 달려서 움직일 때마다 소리가 났다. (41쪽)


  이제 책을 그만 고르고 자리를 옮겨야 합니다. 이튿날 한글날을 맞이해서 가야 할 곳이 있어요. 그러나 1분이라도 쪼개어 골마루를 더 거닐고 싶습니다. 1초라도 틈을 짜내어 사진을 몇 칸이라도 더 찍고 싶습니다. 이러다가 ‘新 自然 きらきら’란 꾸러미로 나온 어린이 사진책 몇 자락을 만납니다.


《新 自然 きらきら 5 あまやどり》(久保秀一 사진·七尾 純 글, 偕成社, 2002)

《新 自然 きらきら 7 あおむしくん》(久保秀一 사진·七尾 純 글, 偕成社, 2002)

《新 自然 きらきら 9 かくれんば》(久保秀一 사진·七尾 純 글, 偕成社, 2002)

《新 自然 きらきら 10 なつのよる》(久保秀一 사진·七尾 純 글, 偕成社, 2003)

《新 自然 きらきら 11 コスモス さいた》(久保秀一 사진·七尾 純 글, 偕成社, 2003)


  숲살림을 사진으로 곱게 여미어서 보여주는 책입니다. 일본에서는 진작부터 이런 어린이책이 숱하게 나왔습니다. 때로는 그림으로, 때로는 사진으로, 풀벌레부터 숲짐승에 바다벗까지 두루 담아내었지요.


  일본에서 선보인 어린이 ‘숲살림 사진책’을 들여다볼 때면, 한국에서는 왜 어린이한테 이바지하는 이러한 사진길을 걸은 어른이 없었나 싶어 놀랍기만 합니다. 한국에서 사진길을 걷는 이들치고 예술을 한다고 우쭐거리는 이는 많아도, 어린이하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사진을 찍는 마음을 선보이는 이는 찾아볼 길이 없어요. 아마 대학교 사진학과에서도 이 대목을 못 짚거나 안 건드릴 수 있습니다. 사진강좌에서도 이 대목을 짚거나 다루는 일도 없겠지요. 여러 지자체는 목돈을 들여서 무슨무슨 ‘사진 비엔날레’를 그럴듯하게 일으키곤 하지만, 막상 알맹이가 튼튼하거나 빛나 보이는 자리는 여태 없었다고 느낍니다.


  예술이란 이름을 붙여야 예술이 되지 않습니다. 사진도 그림도 글도 모두 매한가지예요. 이름을 드높여야 이름이 퍼지지 않습니다. 수수한 사람들 살림자리에서 수사한 사랑을 스스로 길어올리는 길을 나아갈 적에 비로소 사진도 그림도 글도 환하게 빛나면서 가슴을 찌릿찌릿 울리면서 적시는 숨결이 된다고 느낍니다.


  이제는 책집을 나서야 할 때입니다. 책값을 셈합니다. 〈숨어있는 책〉 책집지기님하고 마지막말을 나눕니다. “이제 올해에 얼굴 봤으니 올해에는 얼굴을 더 못 보나?” “그러게요. 10월이 되어서야 처음 얼굴을 보았네요. 해가 넘어가기 앞서 얼굴을 더 보면 좋을 텐데요.” “못 보면 어때. 다음해에는 또 볼 수 있잖아?” “아, 아, 아쉽다. 그러나 아쉽다 말아야지. 이렇게 올해에도 얼굴을 뵙고 책을 만날 수 있으니 고맙지요. 그러면, 아직 새해는 두 달 더 남았지만 미리 새해절을 할게요. 올해에도 새해에도 언제나 기쁘며 아름답게 이곳에서 하루 누리셔요. 고맙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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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숲마실


그림책을 빵처럼 신나게 (2019.11.28.)

― 광주 〈책빵〉

광주 동구 필문대로 192번길 32-4

062.655.9250.



  광주에서 하룻밤을 묵습니다. 길손집에 들기 앞서 책집을 먼저 들렀고, 묵직한 짐꾸러미를 길손집에 차곡차곡 내려놓은 다음에 가벼운 차림으로 산수시장을 거닐려고 하는데, 저잣거리 어귀에 빵집처럼 보이는 책집이, 아니 책집처럼 보이는 빵집이 있습니다. 저잣길을 걷고서 들를는지, 먼저 이곳을 들를는지 한동안 망설이다가, 저녁이 깊으면 이곳이 먼저 문을 닫을 수 있으니 얼른 들르자고 생각합니다.


  해가 떨어져 캄캄한 골목을 환하게 밝히는 〈책빵〉은 한켠에는 빵, 한켠에는 그림책이 가득합니다. 아이들하고 함께 마실했다면 이런저런 빵을 골랐을 터이나, 혼마실인 터라 한두 조각만 먹을 만하니 한두 가지만 고르고서 그림책 놓인 자리를 가만히 돌아봅니다.


  ‘책빵지기’님 말씀을 들으니 이곳에 놓은 그림책은 ‘이곳에 와서 읽을 수만 있다’고 합니다. 빵집지기로 계신 분은 빵굽기도 즐기지만 그림책도 무척 즐긴다고 말씀하셔요. 빵집에는 어린이 손님이 자주 찾아오고, 빵을 기다리는 동안 폭신걸상에 앉아서 그림책을 누리면 좋으리라 여겨 이처럼 ‘책 + 빵’인 가게를 꾸린다고 합니다.


  그동안 읽은 그림책도 많이 보이지만, 그동안 눈여겨보지 않은 그림책도 꽤 보입니다. 《즐거운 빵 만들기》(간자와 도시코 글·하야시 아키코 그림/김나은 옮김, 한림출판사, 2008)나 《고릴라 아저씨네 빵집》(시라이 미카코 글·와타나베 아키오 그림/남경희 옮김, 한림출판사, 2008) 같은 그림책은 처음 만납니다. 빵굽기에 그다지 마음을 안 기울인 터라 이런 그림책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 나중에 두 가지 그림책을 마을책집에서 장만해 보자고 생각하는데, 《손, 손, 내 손은》(테드 랜드 그림+빌 마틴 주니어·존 아캠볼트 글/이상희 옮김, 열린어린이, 2005)이 보입니다. 반갑습니다. 제가 그동안 읽고 누리며 아이하고 함께 읽은 숱한 그림책 가운데 더없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손, 손, 내 손은》인걸요. 큰아이가 이 그림책을 낡고 닳고 해지도록 읽어 주었기에 새로 한 자락 더 장만하기도 했고, 영어 그림책을 여러 자락 장만하기도 했습니다.


  그림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빵을 굽는다면 이곳 빵에는 상냥한 기운이 감돌겠지요. 빵을 사랑하는 손길로 그림책을 편다면 이곳에서 읽는 그림책에는 고운 마음이 어우러지겠지요.


  글을 쓰는 분들이 ‘글쓰는 손’을 ‘살림하는 손’으로도 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을 그리는 분들이 ‘그림그리는 손’을 ‘살림을 사랑하는 손’으로도 이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을 찍는 분들이 ‘사진찍는 손’을 ‘살림을 꿈으로 짓는 손’으로도 엮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온누리 골골샅샅에서 이 일 저 일 하는 뭇어른이 ‘일하는 손’을 ‘놀이하는 손’으로 잇고 ‘사랑스레 살림하는 손’으로 여미며 ‘숲을 고이 품는 손’으로 가만가만 풀어낸다면 가없이 아름답겠네 하고도 생각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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