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책집에서 나누는 마음 (2018.8.17.)

― 경기 수원 〈리지블루스〉

경기 수원시 영통구 매탄로160번길 15

https://www.instagram.com/bookstore_lizzyblues



  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이 있습니다. 이 배움모임이 있는 줄 처음 안 때는 1999년입니다. 그때 저는 신문을 돌리는 일꾼 자리를 떠나면서 출판사에서 책을 알리고 파는 자리로 옮겼습니다. 제가 몸담은 출판사에서 펴낸 책을 바리바리 싸들고 길바닥에 자리를 깔고서 판다든지, 책잔치 자리에서 길손을 붙잡고 끝없이 책수다를 펴면서 책을 팔았어요. 흔한 도서목록 아닌 새로운 도서목록을 짠다든지, 책손한테 드릴 새로운 그림엽서나 그림판을 꾸민다든지, 전국 도서관이며 초등학교에 손글월을 띄우면서 이곳 책을 알린다든지, 이모저모 새로운 장삿길을 열어 보려 했습니다. 때로는 초등학교나 도서관이나 어린이책 전문서점을 찾아가서 책을 알리거나 넣었지요. 인쇄·제본을 거치다가, 창고하고 책집 사이를 오가다가, 이래저래 다쳐서 팔 길 없는 책을 깨끗하게 손질해서 시골 작은 학교나 도시 가난한 학교나 여러 작은 도서관에 선물꾸러미로 보내거나 가져다주었습니다. 이런 일을 하며 초등학교 교사 가운데 ‘말을 말답게 가르치자는 뜻’으로 하나가 된 분들을 만났어요.


  1999년에는 제가 몸담은 출판사 책을 팔아야 하면서 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 분들을 만났다면 2018년 여름에는 이 모임에서 여름에 펴는 사흘짜리 배움마당 ‘마무리 이야기벗’이 되어 찾아갑니다.


  얼추 스무 해란 나날이 이렇게 흘렀군요. 예전에도 오늘에도 저는 사전이라는 책을 쓰는 길을 갑니다. 예전에는 신문을 돌리거나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조용히 사전이라는 책을 썼다면, 이제는 시골자락에서 아이들을 돌보면서 고요히 사전을 씁니다. 예전에는 도시 한복판에서 사전을 썼고, 이제는 시골 한가운데에서 사전을 써요.


  마땅한 소리일 텐데, 어느 자리에서 쓰느냐에 따라, 올림말을 다루거나 바라보는 눈길이며 손길이 확 다릅니다. 도시 한복판에서 살며 말을 다룰 적에는 아무리 도시에서도 숲을 그리면서 다룬다 할는지라도 도시내음이 스며요. 시골 한가운데에서 아이들하고 어우러지면서 말을 다룰 적에는 언제나 이 삶결이 그대로 말결로 옮아갑니다.


  배움마당 마무리 이야기를 펴려고 한신대학교로 가는 길목이기에, 수원 마을책집 가운데 〈리지블루스〉에 들르기로 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수원 남문 곁에 있는 헌책집도 들르고, 다른 여러 마을책집도 바지런히 들르고 싶습니다만, 고흥에서 순천을 거쳐 수원으로 오니 벌써 두 시가 훌쩍 지나갑니다.


  수원역에서 택시를 잡습니다. 책집 주소를 길찾기로 살펴서 손쉽게 옵니다. 시내버스를 타고도 책집에 갈 수 있지만, 오늘은 1분조차 길에서 보내고 싶지 않아요. 아니, 1분조차 흘릴 겨를이 없습니다.


  파랗게 물들인 책집 바깥모습을 눈부신 햇살에 담아서 바라봅니다. 해가 참으로 잘 드는 골목 한켠입니다. 조용한 이 골목으로 걸어오는 분이라면 조용하게 책시렁을 돌아보다가 조용하게 걸상에 앉아서 한때를 누리겠지요.


  오늘 〈리지블루스〉로 온 까닭은 바로 이곳에서 펴낸 책이 있기 때문이에요. 책집지기님이 쓴 책을 바로 그 책집에서 사고 싶어 일부러 걸음을 했습니다. 그 책을 고르기 앞서 《오늘도, 무사》(요조, 북노마드, 2018)를 고릅니다. 서울에서 마을책집을 하다가 제주로 터전을 옮긴 이야기를 읽습니다. 예전에 인천에서 이야기꽃을 펴는 자리에서 책집지기 요조 님을 뵌 적이 있는데, 그때 만난 이야기도 책에 흐릅니다.


  달거리 이야기를 다룬 《어바웃 문데이》(김도진, 해피문데이, 2017)를 고릅니다. 영어로 하면 이렇게 되네 하고 생각하다가도 “달날 이야기”나 “달거리란”이나 “달빛이란”이나 “달마음이란”이나 “다달이 꽃”처럼, 조금 더 알아보기 쉽도록 이름을 붙이면 어떠했으려나 싶습니다.


  이제 《리지의 블루스》(김명선, 리지블루스, 2018)를 고릅니다. 이 책을 이곳에서 사러 왔지만 다른 책도 둘러보고 싶었어요. 책집을 열기까지, 책집을 열면서, 책집에서 햇살을 파랗게 맞아들이는 동안, 찬찬히 맞아들인 여러 가지 이야기가 조곤조곤 흐릅니다. 마지막으로 《크레용이 화났어》(드류 데이월트 글·올리버 제퍼스 그림/박선하 옮김, 주니어김영사, 2014)까지 살핍니다. 뿔이 난 그림연필은 이 불길을 잠재우고서 신나게 그림놀이로 나아갈까요.


  배움마당으로 가야 할 때입니다. 더 머물지 못해서 아쉬워도 다음걸음이 있으리라 생각하며 짐을 꾸립니다. 마침 요즈막에 새로 써낸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을 챙겨서 나왔기에 책집지기님한테 가만히 건네고서 돌아나옵니다. 짐수레는 돌돌 굴리고 등짐은 질끈 동여매며 골목을 걷는데 〈리지블루스〉 지기님이 부릅니다. “책 선물 고마워요!” 하면서 흔드는 손길에 저는 고개를 꾸벅 숙입니다. 택시로 한림대학교를 가 보는데 어귀부터 우거진 나무가 마음에 듭니다. 나무가 우거진 대학교라면 이곳을 다니는 젊은 분도 푸른 넋을 더 곱게 배울 만하겠다고 생각합니다. 온누리 모든 학교가 나무를 품으면서 푸르면 좋겠어요. 지식·정보를 나누는 길을 넘어서 꿈·사랑을 그리면서 나누는 자리에 서면 좋겠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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