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삶 74 안 보일 때, 보일 때


  낮이 저물고 밤이 되면 둘레가 온통 깜깜합니다. 이제 빛이 없는 때입니다. 빛이 없으니 눈으로 알아볼 수 없는 모습입니다. 빛이 있을 적에는 온갖 빛깔이 알록달록 드러나는데, 빛이 없을 적에는 모두 까맣기만 합니다. 게다가 어느 것도 눈에 안 보이니까, 있는지 없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낮에서 밤으로 접어들 적에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면서 눈에 기운을 모으면, 차츰 눈이 밝게 트입니다. 사람한테는 낮눈과 함께 밤눈이 있어요. 안 보인다고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못 보고 말지만, 내 밤눈을 생각하면서 차분히 기다리면 밤눈이 천천히 뜨입니다.

  어떤 사람은 밤눈이 아닌 다른 눈으로 봅니다. 적외선을 볼 수 있다면 아무리 어둡더라도 환하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따로 장치를 눈에 씌워서 볼 테고, 어떤 사람은 맨눈으로도 적외선을 보겠지요. 그러면, 안 보이기에 두렵거나 무섭고, 보이기에 안 두렵거나 안 무서울까요? 우리는 어떤 눈으로 무엇을 볼까요?

  바닷속을 들여다볼 수 있기에 바닷물을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닷속을 들여다볼 수 있지 않으나 헤엄을 칠 줄 알아서 바닷물을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헤엄을 칠 줄 알고 바닷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데 두려워 하는 사람이 있어요. 바닷속에서 무섭다 싶은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어느 한 사람한테는 무서운 것’이 ‘어느 한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은 두려움에 떨지만, 한 사람은 느긋하면서 차분하지요.

  1억 원에 이르는 돈을 손에 쥐었지만 두려워 하는 사람이 있고, 1억 원에 이르는 돈을 손에 쥐었기에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돈이 한푼조차 없으나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1억 원에 이르는 돈은 도무지 손에 쥘 수 없다는 생각에 두려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보는 눈’이란 무엇일까요? 겉모습을 보기에 ‘보는 눈’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못 보는 눈’이나 ‘안 보는 눈’이란 무엇일까요? 겉모습을 못 보면 ‘못 보는 눈’일까요? 겉이나 속 어느 것도 안 쳐다보려고 하면 ‘안 보는 눈’일까요?

  같은 책을 놓고 읽는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책에 깃든 참이나 거짓을 느끼거나 헤아리지 못합니다. 다른 한 사람은 책에 깃든 참이나 거짓을 느끼거나 헤아립니다. 참이나 거짓을 ‘보는 눈’은 어떤 눈일까요? 참이나 거짓을 ‘못 보는 눈’이나 ‘안 보는 눈’은 어떤 눈일까요? 몸에 있는 눈으로 얼굴이나 차림새를 알아본다고는 하지만, 마음속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보는 눈’일까요 ‘못 보는 눈’일까요 ‘안 보는 눈’일까요? 삶을 이루는 사랑과 꿈을 알아보지 못하면, 우리는 ‘뜬 눈’일까요 ‘감은 눈’일까요?

  어떤 것이 코앞에 있어도 안 보일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이 아주 멀리 있어도 보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코앞에 두고도 안 볼 수 있으며, 어떤 사람이 대단히 멀리 떨어진 데 있어도 서로 마주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몸에 달린 눈’으로만 바라보지 않습니다. ‘몸에 깃든 마음’으로도 함께 보기 마련입니다. 이제 하나하나 헤아려야 합니다. ‘몸에 깃든 마음’ 가운데 어떤 눈으로 서로 마주보거나 바라보는가를 헤아려야 합니다. 네 마음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내 ‘마음눈’은 무엇인지 헤아려야 하고, 우리 마음이 하나가 될 수 있다면 내 ‘마음눈’은 어느 자리에 있는지 헤아려야 합니다. 마음눈을 뜨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마음눈을 안 뜨는 사람은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마음눈을 활짝 열지 않으면 참이나 거짓을 알 수 없기도 하지만, 사랑과 꿈으로 나아가지 못하기도 합니다. 마음눈을 활짝 열 때에 비로소 참과 거짓을 환하게 알아볼 뿐 아니라, 참과 거짓을 넘어 사랑과 꿈으로 곱게 거듭나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4348.3.19.나무.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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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1730) 세계적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동화작가

→ 스웨덴에서 태어나 세계에 이름난 동화작가

→ 스웨덴에서 태어난 훌륭한 동화작가

→ 세계에 이름난 스웨덴 동화작가

→ 온누리에 널리 알려진 스웨덴 동화작가

→ 온누리에 사랑받는 스웨덴 동화작가


  ‘세계적(世界的)’은 “이름이나 영향이 온 세계에 미치거나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을 가리키는 셈입니다. 한국말사전을 보면 “세계적 명성” 같은 보기글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명성(名聲)’은 “세상에 널리 퍼져 평판 높은 이름”을 뜻하지요. “세계적 명성”은 겹말입니다. ‘명성’이라고만 쓰거나 “세계에 알려진 이름”처럼 써야 올발라요.


  “세계적 권위자”는 “세계 권위자”로 고쳐쓰고, “세계적 예술가로 성장하였다”는 “세계에 손꼽히는 예술가로 자랐다”나 “세계에 이름을 날리는 예술가로 자랐다”로 고쳐씁니다. “세계적인 규모”는 “세계 규모”나 “세계에 손꼽히는 크기”로 손볼 만하고, “세계적인 수준”은 “세계 수준”으로 손봅니다. “우리나라 자연의 아름다움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라면 “아름다운 우리나라 자연은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나 “우리나라 자연은 아름답기로 세계에 두루 알려졌다”로 손볼 수 있어요. 4348.8.30.해.ㅅㄴㄹ



그들이 만든 장식품들은 세계적으로 소문이 나 있다

→ 그들이 만든 장식품들은 세계에 소문이 났다

→ 그들이 만든 장식품들은 널리 소문이 났다

《쿠르트 쿠젠버그-심각한 소설》(까치,1978) 20쪽


이제 벌레 먹기는 차츰 세계적 관심사로 떠올라

→ 이제 벌레 먹기는 차츰 세계에 관심사로 떠올라

→ 이제 벌레 먹기는 차츰 온 나라에서 눈길을 모아

《정부희-곤충들의 수다》(상상의숲,2015) 250쪽


일약 세계적 명성을 얻은 반면

→ 한달음에 세계에 이름을 얻었으나

→ 하루아침에 온누리에 이름을 얻었지만

《프리먼 다이슨-과학은 반역이다》(반니,2015) 246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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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332) -로부터의


 국가로부터의 배신에 실망하다

→ 나라가 배신하여 실망하다

→ 배신하는 나라에 실망하다

 마음으로부터의 소리를 듣다

→ 마음에서 울리는 소리를 듣다

→ 마음 소리를 듣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감옥에서 생각하기

→ 감옥에서 했던 생각


  한국말사전을 보면 ‘-로부터’라는 토씨가 실리고, “아버지로부터 편지가 왔다”와 “바퀴 달린 탈것은 마차로부터 고속 전철까지 발전해 왔다” 같은 보기글이 나옵니다. 그러나, 한국말에는 ‘-로부터’라는 토씨가 없습니다. 이 토씨를 넣은 말이나 글은 모두 틀립니다. “아버지한테서 편지가 왔다”와 “바퀴 달린 것은 마차에서 고속 전철까지 발전해 왔다”처럼 바로잡아야 옳습니다.


  다시 한국말사전에서 ‘-으로부터’를 살피면, “그 사람으로부터 나온 이야기”와 “그곳으로부터 십 리 밖의 거리”와 “시험으로부터 해방되다”와 “남쪽으로부터 꽃 소식이 전해 온다” 같은 보기글이 나오지만, 이 보기글도 “그 사람한테서 나온 이야기”와 “그곳부터 십 리 밖 거리”와 “시험에서 풀려나다”와 “남쪽에서 꽃 노래가 날아 온다”처럼 고쳐써야 올발라요.


  “예부터 내려오는 이야기”처럼 써야 올바른데, “예로부터 내려오는 이야기”처럼 잘못 쓰는 사람이 꽤 있고, “예로부터의 이야기”처럼 아주 엉터리로 쓰는 사람까지 퍽 있습니다. ‘-의’만 턴 대서 되는 일은 아니고, ‘-로부터/-으로부터’는 모두 잘못 쓰는 토씨인 줄 알아야 합니다. 4348.8.30.해.ㅅㄴㄹ



깊은 혼으로부터의 외침

→ 깊은 넋에서 샘솟는 외침

→ 깊은 넋에서 터지는 외침

→ 깊은 넋에서 외치는 소리

→ 마음 깊은 곳에서 외치는 소리

《E.브조스토프스키/홍윤숙 옮김-작은 자의 외침》(성바오로출판사,1987) 21쪽


다른 회사 노동자들로부터의 연대 의사를 접하는 경우

→ 다른 회사 노동자들한테서 연대 의사를 들을 때

→ 다른 일터 노동자들한테서 함께하자는 뜻을 들을 때

《강수돌-노동의 희망》(이후,2001) 217쪽


더 많은 혜택을 받은 지역으로부터의 침략에 맞선 아프리카인의 방어

→ 더 많이 혜택을 받은 지역에서 쳐들어왔을 적에 맞선 아프리카인

→ 더 많이 혜택을 받은 곳에서 쳐들어왔을 적에 맞서 싸운 아프리카인

《존 아일리프/이한규·강인황 옮김-아프리카의 역사》(이산,2002) 14쪽


일본으로부터의 자본과 기술 도입으로 세워진 기업이지만

 일본에서 돈과 기술을 들여와 세운 기업이지만

→ 일본에서 돈과 기술을 받아들여 세운 기업이지만

 일본에서 돈과 기술을 받아서 세운 기업이지만

→ 일본에서 들여온 돈과 기술로 세운 기업이지만

→ 일본 돈과 기술로 세운 기업이지만

《이진희/이규수 옮김-해협, 한 재일 사학자의 반평생》(삼인,2003) 278쪽


시민사회로부터의 강력한 반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 시민사회에서 나오는 거센 반대 목소리에도

 시민사회가 내는 거센 반대 목소리에도

→ 시민사회가 거센 반대 목소리를 내어도

 시민사회가 거세게 반대를 해도

《오다 마코토/양현혜·이규태 옮김-전쟁인가 평화인가》(녹색평론사,2004) 4쪽


많은 일본 사람들이 나의 생일은 전생으로부터의 어떤 인연을 말해 주는 것이라고 했다

→ 많은 일본 사람들이 내 생일은 전생에 맺은 어떤 인연을 말해 준다고 했다

→ 많은 일본 사람들이 내 생일은 전생부터 이은 어떤 인연을 말해 준다고 했다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권영주 옮김-나는 어떻게 번역가가 되었는가》(씨앗을뿌리는사람,2004) 11쪽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두려움과 불안에 얽매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위로부터의 변화도 제대로 일어나야 한다

→ 이렇게 아래에서 바뀔 적에 두려움과 걱정에 얽매이지 않도록 위에서도 제대로 바뀌어야 한다

→ 아래에서 이렇게 바뀔 적에 두려움과 걱정에 얽매이지 않도록 위에서도 제대로 바뀌어야 한다

《강수돌-더불어 교육혁명》(삼인,2015) 369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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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44] 수수께끼짓



  눈을 찡긋하면서 마음을 살며시 보냅니다. ‘눈짓’을 합니다. 손을 놀려서 말을 겁니다. 나는 ‘손짓’을 합니다. 그런데 손짓으로는 아무래도 내 뜻을 알리기 힘들구나 싶어서 발을 함께 놀립니다. 어느새 ‘손짓 발짓’을 합니다. 아이들이 아무 말 없이 몸만 움직이면서 저희 뜻을 밝힙니다. ‘몸짓’으로 이야기를 건넵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은 서로 ‘사랑짓’을 나누고, 꿈을 꾸는 사람은 차근차근 ‘꿈짓’으로 나아갑니다. 책을 읽거나 쓰면서 삶을 누리는 사람은 ‘책짓’을 합니다. 고운 책싸개를 마련하거나 살피를 손수 꾸미는 몸짓도 ‘책짓’ 가운데 하나입니다. 알쏭달쏭하거나 궁금한 이야기를 풀려고 서로 ‘수수께끼짓’을 합니다. 때로는 아리송하게 이끌거나 궁금함을 부추기면서 ‘수수께끼짓’을 합니다. 삶을 새롭게 짓는 모습은 ‘삶짓’이고, 글 한 줄에 드러나는 모습은 ‘글짓’입니다. 우리는 서로 ‘말짓’을 헤아리면서 생각을 북돋웁니다. 네가 나를 아끼고 내가 너를 보살피는 동안 우리는 기쁜 웃음이 피어나서 ‘웃음짓’을 짓다가 신나게 ‘춤짓’을 선보이지요. 네 웃음짓이 아름답고, 내 춤짓이 어여쁩니다. 4348.8.29.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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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랑 놀자 145] 구슬치기



  아이들은 구슬을 몹시 좋아합니다. 사내도 가시내도 구슬을 참으로 좋아합니다. 사내들은 으레 고샅이나 골목이나 너른 마당에 모여서 구슬을 치며 놉니다. 씩씩한 가시내도 구슬치기를 함께 합니다. 꽤 많은 가시내들은 옹기종기 모여서 구슬을 만지작거리면서 놉니다. 예쁜 빛을 사랑하는 사내도 가시내 사이에서 얼마든지 구슬을 함께 만지작거리면서 소꿉놀이를 합니다. 이 아이들은 함께 어우러져서 놀면서 까르르 웃다가 노래를 부릅니다. 웃음꽃이 터지고 이야기꽃이 핍니다. 아이들이 놀며 부르는 노래는 마치 구슬이 굴러가는 듯합니다. 유리구슬이 구르든 돌구슬이 구르든, 또 흙구슬이나 떡구슬이 구르든 모두 사랑스럽습니다. 시골마을에는 멀구슬나무가 자라고, 어른들은 동글동글 해맑거나 빛나는 구슬을 엮어 목걸이도 빚고 팔찌도 빚습니다. 구슬을 실에 꿴 옷을 입은 아이들이 춤을 추면 구슬이 서로 부딪히면서 톡톡 탁탁 재미난 소리가 퍼집니다. 빙글빙글 신이 나는 아이들 눈망울이 꼭 구슬처럼 또렷하면서 환합니다. 4348.8.29.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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