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348) 일고의


 일고의 여지도 없다

→ 한 번 돌아볼 틈도 없다

→ 한 번 쉴 겨를도 없다

 일고의 주의도 베풀지를 않았다

→ 한 번도 돌아봐 주지를 않았다

→ 눈길 한 번조차 두지를 않았다


  ‘일고(一顧)’는 “한 번 돌이켜 봄”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고의 가치도 없다” 같은 말마디라면 “한 번 돌이켜 볼 값어치도 없다”는 소리입니다. 그러니까, ‘눈여겨볼’ 값어치가 없다거나 ‘생각할’ 값어치가 없다거나 ‘따져 볼’ 값어치가 없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아무’ 값어치가 없고 ‘어떠한’ 값어치도 없으며 ‘하나도’ 값어치가 없다는 이야기예요.


  말뜻 그대로 적으면 이렇습니다. 말뜻 그대로 적는 이런 말투라 한다면, 어른뿐 아니라 어린이도 잘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누구나 쓰기에 좋고 언제라도 쓸 만합니다.


  “일고의 무엇” 꼴로 읊는 말투는 거의 모두 ‘글 많이 쓰는’ 어른한테서 엿볼 수 있습니다. 제법 나이 많은 분한테서 들으며, 이 말투가 어린이책에 실린 모습은 볼 수 없습니다. 또한, 입으로 읊는 말투보다는 글에 실린 글투로 흔히 봅니다. 교장선생님 같은 분이나 나이 많은 지식인들 글에 으레 나타납니다. 4348.9.15.불.ㅅㄴㄹ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 돌아볼 값어치도 없다고 여긴다

→ 눈여겨볼 값어치도 없다고 여긴다

→ 생각할 값어치도 없다고 여긴다

《스콧 버거슨/주윤정 옮김-맥시멈 코리아》(자작나무,1999) 226쪽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

→ 조금도 값어치가 없었다

→ 아무런 값어치도 없었다

→ 아무 값어치도 없었다

→ 터럭만 한 값어치도 없었다

→ 어떠한 값어치도 없었다

《프리먼 다이슨/김학영 옮김-과학은 반역이다》(반니,2015) 275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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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347) 초로의


 오십을 눈앞에 바라보는 초로였다

→ 쉰을 눈앞에 바라보는 늙은이였다

→ 쉰을 눈앞에 바라보는 늘그막이었다

 오십을 갓 지난 초로의 중년이었다

→ 쉰을 갓 지난 늘그막한 사람이었다

→ 쉰을 갓 지난 살짝 늙은 사람이었다

→ 쉰을 갓 지난 조금 나이든 사람이었다


  ‘초로(初老)’는 “노년에 접어드는 나이. 또는 그런 사람”을 뜻한다고 합니다. ‘노년(老年)’은 “늙은 나이”를 뜻합니다. 그러니 한국말사전에서 ‘초로’를 풀이한 말은 겹말입니다. “늙은 나이에 접어드는 나이”처럼 풀이한 꼴이니까요.


  늙어 가는 무렵을 가리키는 ‘늘그막’이라는 한국말이 있습니다. 늙은 나이인 사람은 ‘늙은이’라고 합니다. 말뜻 그대로 쓰면 됩니다. “나이든 사람”이라 해도 되고, “늙은 사람”이라 해도 됩니다. 4348.9.15.불.ㅅㄴㄹ



머리칼이 희끗한 초로의 아주머니가 되어 있었다

→ 머리칼이 희끗한 늙수그레한 아주머니가 되었다

→ 머리칼이 희끗한 늙은 아주머니가 되었다

→ 머리칼이 희끗한 늘그막인 아주머니가 되었다

→ 머리칼이 희끗한 제법 나이든 아주머니가 되었다

→ 머리칼이 희끗한 나이 많은 아주머니가 되었다

《서영은-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문학동네,2010) 32쪽


58세 초로의 실험가와 28세 젊은 이론가는

→ 58세 늙은 실험가와 28세 젊은 이론가는

→ 쉰여덟인 늙은 실험가와 스물여덟인 젊은 이론가는

《프리먼 다이슨-과학은 반역이다》(반니,2015) 275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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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75 궁금하거나 못 미덥거나



  알고자 하는 사람은 늘 궁금해 합니다. 알고자 하지 않는 사람은 늘 못 미덥게 여깁니다. 알고자 하는 사람은 아직 스스로 모른다고 여깁니다. 알고자 하지 않는 사람은 벌써 다 안다고 여기거나, 굳이 알 까닭이 없다고 여깁니다. 알고자 하는 사람은 언제나 새롭게 배우려고 합니다. 알고자 하지 않는 사람은 더 배울 뜻이 없습니다. 알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한테서나 배우려 하고, 언제 어디에서나 배울 뜻이 있습니다. 알고자 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한테서도 배우려 하지 않고, 언제 어디에서든 딱히 배울 마음이 아닙니다.


  궁금한 사람이 묻습니다. 궁금하지 않은 사람은 묻지 않습니다. 궁금해 할 수 있는 마음이기에 묻습니다. 그런데, 궁금하지 않으면서도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알고자 하지 않으나 인사치레로 묻고, 알려는 뜻이 없으나 심심풀이로 그냥 묻습니다.


  궁금해서 묻는 사람은 스스로 실마리를 찾습니다. 궁금해서 묻기에 무엇이든 스스로 알 길을 찾습니다. 궁금해서 물으려는 마음이기에 언제나 새롭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궁금해 하지 않고 묻지 않는 사람은 실마리를 찾을 생각조차 없습니다. 모든 것은 틀에 짜인 대로 있다고 여기니, 실마리가 없거나 있거나 대수롭지도 않기 마련입니다. 궁금해 하지 않으니 언제나 똑같다고 여길 뿐, 다시 보거나 새로 보지도 않거나 아예 안 쳐다보기까지 합니다.


  궁금해 하기에 자꾸 묻고 새로 묻습니다. 자꾸 묻기에 자꾸 생각하며, 새로 묻기에 새로 생각합니다. 궁금해 하지 않아서 묻지 않는 사람은 그저 못 미덥다고만 여깁니다. 못 미더우니 고개를 젓거나 돌립니다. 못 미덥기에 짐짓 다른 데를 쳐다보는 듯 보이지만, 막상 어느 곳도 쳐다보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안 보는 채 고개를 이리저리 돌릴 뿐입니다.


  아이들이 날마다 새롭게 자랄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이든 궁금하게 여기면서 새롭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언제나 무럭무럭 자라면서 씩씩해지거나 튼튼해지는 까닭은, 무엇이든 어떤 틀로 굳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틀을 만들지 않으니 새롭고, 틀을 굳히지 않으니 자라며, 틀을 세우지 않으니 사랑스럽습니다.


  어른은 어떤 사람일까요? 아이다운 숨결을 어른이 되어도 건사한다면, 언제나 믿음직하고 사랑스러우면서 씩씩한데다가 튼튼합니다. 아이다운 숨결, 그러니까 무엇이든 늘 언제 어디에서나 궁금하게 여기면서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숨결을 잊거나 잃는다면, 그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채 딱딱하게 굳어 버립니다.


  굳어 버린 사람은 몸과 마음이 함께 굳으니 죽음과 늙음으로 달립니다. 굳어 버린 사람은 몸과 마음뿐 아니라, 눈길도 굳고 눈빛도 굳습니다. 사랑과 꿈마저 굳어 버립니다. 모든 것이 굳어 버리니까 따스하게 나누는 사랑이 샘솟지 못하고, 언제 어디에서나 모조리 굳어 버리니까 넉넉하게 이루는 꿈은 하나도 없습니다.


  마음을 열 수 있을 때에 궁금해 합니다. 마음을 열 수 있기에 활짝 웃으면서 궁금한 대목을 묻습니다. 마음을 열어 이곳에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을 수 있기에 누구라도 따스하게 맞아들이면서 이웃으로 삼고 동무로 여깁니다. 마음을 열어 싱그러운 바람을 들이켤 수 있으니 스스로 숲이 되고 나무가 되면서 꽃이 됩니다.


  궁금한 사람은 아이입니다. 궁금한 사람은 어른입니다. 궁금한 사람은 바람입니다. 궁금한 사람은 해님입니다. 궁금한 사람일 때에 비로소 참다이 사람입니다. 궁금해 하지 않는다면, 겉모습으로는 아이요 어른이요 바람이요 해님이요 사람이라 하더라도, 겉모습만 있는 빈 껍데기가 되고 맙니다. 알찬 사람은 바람이 불면 시원해 하면서 노래를 부르지만, 텅 빈 껍데기인 사람은 바람이 불면 먼지처럼 휘 날아가고 맙니다. 4348.3.19.나무.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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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1734) 대대적


 대대적으로 환영하다 → 크게 반기다

 대대적인 찬사를 받다 → 찬사를 크게 받다

 취임식이 대대적으로 거행되었다 → 취임식이 크게 열렸다

 대대적으로 사업을 벌이다 → 떠들썩하게 일을 벌이다


  1990년대까지 나온 한국말사전에서는 올림말로 다루지 않던 ‘대대적(大大的)’이지만 2000년대로 접어든 뒤 ‘인터넷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대대적’을 올림말로 다룹니다. 이 한자말은 “일의 범위나 규모가 매우 큰”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국말로는 “매우 큰”이라 하면 됩니다. 때와 곳에 따라 ‘크나큰(크디큰)’이라 할 수 있고 ‘엄청난’이나 ‘대단한’이라 할 수 있습니다. ‘떠들썩한’이나 ‘시끌벅적한’이라 해도 됩니다. 사람들이 자꾸 쓰니까 ‘대대적’을 한국말사전에 올릴 수도 있습니다만, 알맞고 바르게 쓰는 얼거리를 먼저 보여주거나 밝혀야지 싶습니다. 4348.9.14.달.ㅅㄴㄹ



상인들이 대대적으로 반대하기까지 한 적이 있죠

→ 장사꾼들이 크게 반대하기까지 한 적이 있죠

→ 장사하는 분들이 매우 반대하기까지 한 적이 있죠

《J.L.카-시골학교 일곱 선생 이야기》(푸른나무,1992) 44쪽


축하 파티는 따로 날을 잡아서 대대적으로 할 계획이지만

→ 축하 잔치는 따로 날을 잡아서 으리으리하게 할 생각이지만

→ 축하 잔치는 따로 날을 잡아서 크게 할 생각이지만

→ 축하 잔치는 따로 날을 잡아서 시끌벅적하게 할 생각이지만

《모리모토 코즈에코/장혜영 옮김-조폭 선생님 3》(대원씨아이,2003) 43쪽


집이 너무 낡아서 대대적으로 보수를 했다

→ 집이 너무 낡아서 크게 손봤다

→ 집이 너무 낡아서 아주 많이 고쳤다

→ 집이 너무 낡아서 이곳저곳 뜯어고쳤다

《박도-안흥산골에서 띄우는 편지》(지식산업사,2005) 258쪽


일제 잔재가 남아 있는 풀꽃 이름을 대대적으로 정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일제 찌꺼기가 남은 풀꽃 이름을 크게 손질하기를 바란다

→ 일제 찌꺼기가 남은 풀꽃 이름을 모두 손질할 수 있기를 빈다

《이윤옥-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인물과사상사,2015) 9쪽


우리 풀꽃에 ‘좀’ 자가 대대적으로 붙기 시작한 것은

→ 우리 풀꽃에 ‘좀’이라는 말이 널리 붙은 때는

→ 우리 풀꽃에 ‘좀’이라는 말이 곳곳에 붙은 때는

《이윤옥-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인물과사상사,2015) 31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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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346) 잠시의


 잠시 동안 쉬다 → 짧게 쉬다

 잠시 걸음을 멈추다 → 살짝 걸음을 멈추다

 잠시 기다리다 → 조금 기다리다

 잠시의 방심도 없이 → 조금도 마음을 놓지 않고

 잠시의 귀향 → 고향에 살짝 돌아옴

 잠시의 여유도 없다 → 조금도 틈이 없다


  ‘잠시(暫時)’는 “1. 짧은 시간 2. 짧은 시간에”를 뜻한다고 합니다. 이 한자말을 쓰려 한다면 쓸 수 있으나, “잠시의 방심도 없이”는 “잠시도 방심이 없이”로 손질하고, “잠시의 여유도 없다”는 “잠시도 여유가 없다”처럼 손질해야 올바릅니다. 아니면, “짧은 시간”이나 “짧은 틈”이나 “짧은 겨를” 같은 말마디로 쓰면 됩니다. ‘살짝’이나 ‘조금’ 같은 한국말을 알맞게 넣을 수도 있습니다. 4348.9.14.달.ㅅㄴㄹ



마르크스가 잠시의 피난처로 선택한 영국

→ 마르크스가 잠시 피난처로 고른 영국

→ 마르크스가 살짝 피난하려고 한 영국

→ 마르크스가 얼마쯤 몸을 숨기려던 영국

《스즈키 주시치/김욱 옮김-엘리노어 마르크스》(프로메테우스출판사,2006) 12쪽


명령의 말 다음에는 늘 잠시의 휴지기가 온다

→ 명령하는 말 다음에는 늘 살짝 쉴 틈이 온다

→ 명령 말 다음에는 늘 조금 쉬는 틈이 온다

《막스 피카르트/배수아 옮김-인간과 말》(봄날의책,2013) 130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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