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353) 개개의


 개개의 사건 → 낱낱 사건 / 사건 하나하나

 개개의 물건 → 낱낱 물건 / 물건 하나하나

 개개의 사람 → 사람 하나하나


  ‘개개(個個/箇箇)’라는 한자말은 “하나하나. 낱낱”을 뜻한다고 합니다. 한국말사전에 나온 풀이를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한국말로 ‘하나하나’이거나 ‘낱낱’이라면, 이러한 한국말을 알맞게 쓰면 될 텐데, 왜 구태여 이 한국말을 한자로 옮기는 ‘個個’나 ‘箇箇’를 써야 할까요? 구태여 안 써도 될 한자말을 끌어들이기 때문에 ‘-의’도 자꾸 들러붙고 말지 않을까요? 4348.9.21.달.ㅅㄴㄹ



개개의 작품으로서가 아니고

→ 따로따로인 작품이 아니고

→ 따로따로 노는 작품이 아니고

→ 따로따로 있는 작품이 아니고

→ 작품 하나하나가 아니고

《나까니시 모토오/박진숙 옮김-경영전략으로서의 다지인 : 철도 지하철》(시각문화사,1979) 6쪽


인격체로 이루어진 공동체 안에서 움직이는 개개의 인격체를 나타내는 표시이다

→ 인격체로 이루어진 공동체에서 움직이는 사람을 하나하나 나타내기도 한다

→ 인격체로 이루어진 공동체에서 움직이는 사람을 하나하나 나타낸다

→ 인격체로 이루어진 공동체에서 움직이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나타낸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 노동하는 인간》(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1983) 5쪽


개개의 영역이 더욱 확장될수록

 저마다 영역이 더욱 늘어날수록

→ 저마다 제자리가 더욱 커질수록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김대웅 옮김-독일 이데올로기》(두레,2015) 192쪽


모든 작물은 개개의 성질이 있으므로

→ 모든 작물은 하나하나 성질이 다르므로

→ 모든 곡식은 저마다 성질이 다르므로

→ 모든 곡식과 남새는 성질이 다 다르므로

《쓰지 신이치·가와구치 요시카즈/임경택 옮김》(눌민,2015) 73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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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을 앞두고 나올 책에 들어가는 글을 손질하다가

'시작'하고 '애로' 이야기를 새로 써 보았다.

곧 나올 책에 실리는 글이지만

이렇게 함께 걸어 놓는다.


'시작'이나 '애로'라는 말을 그냥저냥 쓰고 싶다면 쓰면 되지만,

이러한 말이 언제부터 왜 쓰여서 어떻게 퍼졌는가를

조금이라도 살피면서 생각하고 헤아리는

한국사람이 늘어날 수 있기를 빈다.


..


시작: ‘처음’으로 읊을 말 ‘시작’


논두렁길을 걷기 시작했다 → 논두렁길을 걸었다

회의가 시작되다 → 회의를 하다

곧 학기가 시작하면 → 곧 새 학기가 되면

날이 어둡기 시작했다 → 날이 어두워진다


  한국사람은 ‘시작(始作)’이라는 한자말을 안 쓰며 살았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이 한자말이 널리 퍼졌기에 오늘날처럼 씁니다. 한국사람은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을 뿐,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한다”라 하지 않았습니다. “하다가 그치면 아니 함만 못 하다”라 했을 뿐, “중간에 포기하면 아니 시작함만 못 하다”라 하지 않았어요. 일본에서는 ‘始め’나 ‘始まり’처럼 쓰고 한국에서는 ‘始作’으로 쓰는데, “시작이 반이다”, “시작이 중요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다”, “시작이 좋으면 끝이 좋다”, “또 시작이군”, “무엇부터 시작할까요”,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사업을 시작하다”, “새로 시작하다”, “걷기 시작하다”, “꽃이 피기 시작하다” 같은 말마디는 모두 일본말을 번역하면서 퍼졌어요. 한국말로는 “처음이 반이다”, “처음이 중요하다”, “처음부터 다시 하다”, “처음이 좋으면 끝이 좋다”, “또 하는군/또 저러는군”, “무엇부터 할까요”, “아직 맛보기이다/아직 맛보기일 뿐이다”, “일을 하다”, “새로 하다”, “걷다”, “꽃이 피다/꽃이 피려 한다/꽃이 막 핀다”처럼 적어야 옳아요.


  “준비(準備), 시작!”도 일본 말투입니다. “요이, 땅!”을 “준비, 시작!”으로 바꾸었을 뿐이고, “준비, 출발!”도 일본 말투입니다. 한국말로는 “자, 가자!”나 “자, 달려!”나 “자, 하자!”처럼 써야 올바릅니다.


  “시작과 끝”이란 “처음과 끝”을 가리킵니다. “공연이 시작되었어”는 “공연을 해”를 가리킵니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나 “시작도 끝도 없다”는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나 “처음도 끝도 없다”처럼 손질하면 됩니다. 4348.9.20.해.ㅅㄴㄹ


+


애로 사항: ‘애로(隘路)’는 ‘걸림돌’이나 ‘어려운 일’로 적어요


그 도로의 남쪽 끝은 암벽으로 이루어진 애로가 되어

 → 그 길 남쪽 끝은 바윗돌로 이루어져 좁고 거칠어

애로가 많다

 → 많이 어렵다 / 많이 힘들다

덕유산까지 들어가기엔 적잖은 애로가 있었다

 → 덕유산까지 들어가기엔 적잖이 어려웠다


  한자말 ‘애로(隘路)’는 “1. 좁고 험한 길 2. 어떤 일을 하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러나 “좁고 거친 길”을 가리켜 ‘애로’라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좁고 거친 길”은 그저 “좁고 거친 길”입니다. 그러면 한국말사전에 왜 이런 말풀이가 나올까요? 바로 일본말사전을 그대로 옮겼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널리 쓰는 한자말 ‘애로’는 일제강점기에 한국으로 들어와서 퍼졌습니다. 일본말사전에 나오는 “販賣上の隘路”를 “판매상의 애로”처럼 적는다고 해서 한국말이 될 수 없습니다. “판매상의 애로가 있다”는 “팔기 어렵다”나 “팔기 힘들다”로 바로잡아야 옳습니다.


  한국말로는 어떤 일을 할 적에 걸림돌(장애)이 된다면 ‘걸림돌’이라 말합니다. 걸림돌이 있다면 어렵거나 힘들다는 뜻이니 ‘어렵다’나 ‘힘들다’라 말하기도 합니다. 어렵거나 힘들다면, 이러한 대목을 바로잡거나 고치기를 바라는 만큼 ‘고쳤으면 하는’ 일이나 ‘바로잡기를 바라는’ 일이라고도 말합니다.


  ‘힘들다’와 ‘어렵다’를 쓰면 되고, 때와 곳에 따라서는 ‘고단하다’나 ‘고되다’를 쓸 수 있습니다. ‘고칠 대목’이나 ‘바꿀 곳’처럼 쓸 수 있습니다. 윗자리에 있는 분들은 으레 “애로 사항이 있으면 건의하라”고 말합니다만, 이때에는 “힘든 일이 있으면 말하라”로 고치거나 “일하며 어려운 대목은 말하라”로 고쳐서 말해야지 싶어요. 4348.9.20.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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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93) 예의


 예의 그 문제로 → 바로 그 문제로 / 그러니까 그 문제로

 예의 그 쾌활함은 → 예전 같은 그 밝음은 / 예전에 본 그 시원시원함은


  ‘예(例)’는 “1. 본보기가 될 만한 사물. ‘보기’로 순화 2. (‘예의’ 꼴로 쓰여) 이미 잘 알고 있는 바를 가리킬 때 쓰는 말”을 뜻한다고 합니다. 이리하여 ‘例 1’는 모두 ‘보기’로 고쳐쓸 수 있고, 이렇게 고쳐써야 알맞습니다. “전형적인 예”나 “예를 보이다”나 “예를 들어 설명하다”는 “흔히 나타나는 보기”나 “보기를 보이다”나 “보기를 들어 얘기하다”로 손질해 줍니다.


  ‘例 2’은 ‘예 + 의’ 꼴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한국말은 이렇게 ‘-의’를 붙이면서 나타나지 않습니다. 아주 일본 말투라고 하겠습니다. “잘 아는 바”를 가리킨다고 하는 ‘예의’이니, 말 그대로 “잘 아는 대로”나 “모두 아는 대로”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나 ‘그러니까’나 ‘그 같은’을 넣어서 손질할 만합니다. 4348.9.20.해.ㅅㄴㄹ



例의 맹목적인 熱氣가 가시고 나면

→ 바로 그러한 눈먼 열기가 가시고 나면

 바로 그 바보스러운 북새통이 가시고 나면

→ 바로 그 같은 철없는 북새통이 가시고 나면

→ 그처럼 무턱대고 떠들던 기운이 가시고 나면 

→ 이같이 어지러운 떠들썩함이 가시고 나면

→ 이런저런 떠들썩함이 가시고 나면

《법정-영혼의 모음》(동서문화사,1973) 23쪽


예의 나폴리 사람들은

 바로 그 나폴리 사람들은

→ 언제나처럼 그 나폴리 사람들은

→ 누구나 알듯 그 나폴리 사람들은

→ 흔히 보이듯 그 나폴리 사람들은

→ 그러니까 나폴리 사람들은

→ 그러니까 그 나폴리 사람들은

→ 그러니까 바로 그 나폴리 사람들은

 그러니까 말이지, 바로 그 나폴리 사람들은

《막심 고리끼/이강은 옮김-이탈리아 이야기》(이성과현실,1991) 15쪽


예의 그 오만한 표정을 지으며

 예전처럼 그 건방진 얼굴빛을 지으며

 바로 그 건방진 얼굴빛을 지으며

 늘 보이듯이 그 건방진 얼굴빛을 지으며

→ 다시 그 거들먹거리는 낯빛을 지으며

→ 곧바로 그 거들먹거리는 낯빛을 지으며

《토마스 야이어/신홍민 옮김-바람이 들려주는 노래》(양철북,2009) 203쪽


문학이라 부를 수 없는 것을 문학으로 포장해 한탕 벌이에 몰두하는 예의 장사꾼으로 지목할 수 있을까

→ 문학이라 할 수 없는 글을 문학으로 덧씌워 한탕 벌이에 온힘을 쏟는, 이른바 장사꾼이라 할 수 있을까

→ 문학이라 할 수 없는 글을 문학으로 덮어씌워 한탕 벌이에 온힘을 쓰는, 이를테면 장사꾼이라 할 수 있을까

《정문순-한국문학의 거짓말》(작가와비평,2011) 186쪽


예의 그 부드러운 혀로

→ 바로 그 부드러운 혀로

→ 그러니까 그 부드러운 혀로

→ 언제나처럼 그 부드러운 혀로

《나쓰메 소세키/송태욱 옮김-문》(현암사,2015) 179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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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358) 회한의


 회한이 서린 목소리 → 아쉬움 서린 목소리 / 슬픔 서린 목소리

 회한의 눈물을 → 아쉬운 눈물을 / 아픈 눈물을 / 가슴 찢는 눈물을


  ‘회한(悔恨)’이라는 낱말은 “뉘우치고 한탄함”을 뜻한다고 합니다. 한자말 ‘한탄(恨歎)’은 “원망을 하거나 뉘우침이 있을 때에 한숨을 쉬며 탄식함”을 뜻한다고 해요. 한자말 ‘탄식(歎息)’은 “한숨을 쉬며 한탄함”을 뜻한다고 하는군요. 그러니까 ‘한탄 → 한숨 쉬며 탄식’이고 ‘탄식 → 한숨 쉬며 한탄’인 꼴이니 아주 뒤죽박죽인 말풀이입니다.


  말뜻을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회한이 서린 목소리”란 “뉘우치면서 아파하는 마음이 서린 목소리”입니다. “회한의 눈물”은 “뉘우치면서 슬퍼하는 눈물”이에요. 그런데, “뉘우치면서”라는 대목을 따로 넣지 않고 “아파하는”이나 “슬퍼하는”이라 적어도 뉘우치는 느낌이 담겨요. 4348.9.19.흙.ㅅㄴㄹ



회한의 이 능선 동편 깎아지른 계곡 속에도

→ 아픔 서린 이 멧등성이 동편 깎아지른 골짜기에도

→ 아픔 맺힌 이 멧등성이 동편 깎아지른 골짜기에도

→ 한숨 섞인 이 멧등성이 동편 깎아지른 골짜기에도

→ 아쉬움 서린 이 멧등성이 동편 깎아지른 골짜기에도

→ 응어리진 이 멧등성이 동편 깎아지른 골짜기에도

→ 구슬픈 이 멧등성이 동편 깎아지른 골짜기에도

《함광복-DMZ는 국경이 아니다》(문학동네,1995) 34쪽


회한의 언어가 아니라 희망의 언어

→ 한숨 섞인 말이 아니라 희망찬 말

→ 한숨 쉬는 말이 아니라 꿈꾸는 말

→ 한숨에 젖은 말이 아니라 밝은 말

→ 안타까운 말이 아니라 희망 어린 말

→ 슬픈 말이 아니라 기쁜 말

→ 눈물 젖은 말이 아니라 웃음 섞인 말

《알베르 카뮈/김화영 옮김-시사평론》(책세상,2009) 27쪽


아무리 회한의 고통을 거듭한다고 해도

→ 아무리 뉘우치는 괴로움을 거듭한다고 해도

→ 아무리 한숨 섞인 아픔을 거듭한다고 해도

→ 아무리 슬픈 괴로움을 거듭한다고 해도

《나쓰메 소세키/송태욱 옮김-문》(현암사,2015) 210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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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 없애야 말 된다

 (1744) 고의적


 고의적 실수 → 일부러 저지른 잘못 / 알고 한 잘못

 고의적으로 부딪치다 → 일부러 부딪치다 / 억지로 부딪치다

 그 사고는 고의적이었다 → 그 사고는 일부러 일으켰다 / 그 사고는 괘씸했다

 고의적인 반칙으로 → 일부러 저지른 반칙으로 / 못된 반칙으로


  ‘고의적(故意的)’은 “일부러 하는”을 뜻한다고 합니다. ‘-적’이 붙지 않은 ‘고의(故意)’는 “일부러 하는 생각이나 태도”를 뜻한다고 해요. 그러니, “너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은 고의가 아니었다”는 “너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은 일부러가 아니었다”라든지 “너에게 그런 말을 일부러 하지는 않았다”로 손볼 만해요.


  좋은 일을 일부러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러’라 하면 어쩐지 좋지 않은 일이나 못된 일을 하는 자리가 먼저 떠오릅니다. “너 일부러 그랬지?” 하는 말투는 “너 나를 괴롭히려고 마음먹고 한 짓이지?” 같은 느낌입니다. 그렇지만 웃음기 어린 말씨로 “너 일부러 그랬지?” 하고 읊을 때에는 “너 내가 싫어할까 봐 넌지시 도와주었구나!” 같은 느낌이거나 “너 나를 놀래키려고 몰래 그렇게 했구나!” 같은 느낌입니다.


  우리 둘레에서 ‘고의적’이라고 하는 ‘-的’붙이 말투가 나타나는 자리 가운데 운동경기가 꽤 많습니다. 요사이는 ‘테크니컬 파울’이라고도 하고 ‘비신사적 행위’라고도 하는데, 이와 더불어 ‘고의적인 반칙’이라는 말투를 함께 씁니다. 언젠가 “저런 괘씸한 반칙을 하면 안 되지요.”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축구 경기를 들려주던 사회자가 ‘고의적’으로 저지른 반칙 하나를 놓고 여러 차례 이야기를 하다가 살며시 읊은 말인데, 이 말을 들으며 저절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참말로 ‘고의적’ 반칙이란 일부러 저지른 반칙이요, 일부러 저지른 반칙이라 할 때에는 더없이 괘씸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고의적인 반칙은 ‘괘씸한’ 반칙이면서, ‘못된’ 반칙이요 ‘궂은’ 반칙이며 ‘나쁜’ 반칙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일부러 저지른 잘못이란 ‘속으로 다 알면서’ 저지른 잘못입니다. 좋지 못한 줄 모른 채 저지른 잘못이 아닙니다. 좋지 못한 줄 알면서 저지른 잘못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괘씸하다고 할 터이니, “뻔히 알면서 저지른 잘못”이나 “버젓이 알면서 한 잘못”으로 손볼 수 있습니다.


  부딪칠 까닭이 없는데 부딪쳤으니 ‘일부러’ 부딪쳤습니다. ‘억지로’ 부딪친 셈입니다. ‘괜히’ 부딪친 노릇입니다. ‘대놓고’ 부딪친 모습입니다. 4348.9.19.흙.ㅅㄴㄹ



이러한 무익하고 고의적인 과장은

→ 이러한 값없는 부풀리기는

→ 이러한 쓸데없는 겉치레는

→ 이렇게 부질없고 엉뚱한 뽐내기는

→ 이처럼 쓸데없이 애써 우쭐거리는 짓은

《야나기 무네요시/김순희-다도와 일본의 미》(소화,1996) 77쪽


반 고의적으로 탈락하는 학생도

→ 거의 일부러 떨어지는 학생도

→ 마지못해 떨어져 나가는 학생도

→ 조용히 나뒹굴어 버리는 학생도

→ 슬며시 두 손 들어 버리는 학생도

→ 너무 힘들어 그냥 스스로 떨어진 학생도

 거의 스스로 두 손 들고 만 학생도

→ 스스로 그만두고야 만 학생도

→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손을 뗀 학생도

《사기사와 메구무/최원호 옮김-개나리도 꽃, 사쿠라도 꽃》(자유포럼,1998) 153쪽


우리는 고의적으로 다른 관대한 나라에서 사기를 친 셈이고

→ 우리는 일부러 다른 너그러운 나라에서 사기를 친 셈이고

→ 우리는 미리 짜고서 다른 너그러운 나라에서 속인 셈이고

→ 우리는 다른 너그러운 나라에서 짐짓 속여넘긴 셈이고

→ 우리는 다른 너그러운 나라에서 마지못해 거짓말을 한 셈이고

《레너드 위벌리/박중서 옮김-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뜨인돌,2005) 32쪽


오요네는 이를 고로쿠의 고의적인 처사라고 의심하기도 했다

→ 오요네는 이를 고로쿠가 일부러 그랬다고 의심하기도 했다

→ 오요네는 이를 고로쿠가 부러 한 일이라고 여기기도 했다

《나쓰메 소세키/송태욱 옮김-문》(현암사,2015) 129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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