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넋·삶 83 스스로 그리는 그림



  우리는 스스로 그림을 그립니다. 누가 시켜서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학교라는 곳에 들어가면 ‘우리 마음’이 이끄는 대로 스스로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학교 정규 교육과정에 맞추어 ‘남이 시키는 말’에 억지로 휘둘리는 그림을 어쩔 수 없이 그려야 합니다. 학교에서 시키는 그림은 점수로 매깁니다. 학교에서 그리라고 시키는 그림은 점수에 따라 등급을 매깁니다. 이리하여, 수많은 아이들이 학교만 다니면 ‘그림그리기’에서 아주 멀어지고 맙니다.


  우리는 늘 그림을 그립니다. 무슨 그림을 그리느냐 하면, ‘내 그림’을 그립니다. 내 그림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내 삶’입니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면서 내 그림을 떠올립니다. 우리는 낮을 보내면서 내 그림대로 삶을 짓습니다. 우리는 밤에 잠이 들면서 새롭게 내 그림을 그립니다. 이리하여, 내 삶은 ‘아침 낮 밤’으로 흐르는데, 아침에는 그림을 새로 들여다보고, 낮에는 그림대로 살며, 밤에는 새롭게 그림을 그립니다. 종이에 얹는 그림은 무엇인가 하면, 밤에 새롭게 빚는 그림이거나, 아침에 새롭게 바라보는 그림이거나, 낮에 새롭게 짓는 그림입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누구나 스스로 그림을 그리는 대로 이룹니다. 우리가 그린 그림을 우리가 스스로 이룹니다. 우리는 스스로 그림을 그린 대로 앞으로 나아가면서 새로운 삶을 짓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스스로 그림을 그리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이루지 않습니다. 왜 아무것도 이루지 않을까요? 스스로 ‘아무것도 안 그렸’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 그린 삶’을 이룹니다.


  명상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명상’을 이룹니다. 명상이란 무엇일까요? “마음 비우기”라고들 말합니다. “마음 비우기”란 무엇일까요? 마음에 아무런 그림을 안 그리는 모습입니다. 이리하여, 명상을 하는 사람은 ‘마음에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 모습’대로 나아가는 삶을 이룹니다. 명상을 하면 할수록 ‘마음은 텅 비어’서 ‘가볍다 싶은 몸’이 될는지 모르나, 그 어느 것도 스스로 이룰 수 없는 마음과 몸이 되고 말아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까요? ‘내 그림’을 손수 그려야 합니다. 남이 시키는 그림이 아니라, 스스로 이루려 하는 삶을 그림으로 그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 그림을 늘 새롭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 그림을 내가 새롭게 바라보면서 내 삶을 늘 새롭게 지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에 내 삶은 제자리를 찾으면서 제대로 빛나고, 제대로 흘러서, 제대로 아름다운 사랑으로 됩니다. 거듭 말하자면, ‘하고 + 보며 + 되다’입니다. 생각을 해서 그림으로 짓고, 그림으로 지은 것을 보며, 그림으로 지은 것이 그대로 되다, 와 같은 얼거리입니다.


  스스로 그리는 그림은 모두 이루어집니다. 이를테면, 내가 전쟁무기를 그림으로 그리면 전쟁무기가 어디에선가 태어납니다. 내가 싸움박질을 그림으로 그리면 내가 싸우든 다른 사람이 싸우든 합니다. 내가 ‘사랑 어린 푸른 숲’을 그림으로 그리면, 나는 사랑 어린 푸른 숲을 누리는데, 내가 아니더라도 내 이웃이 이 사랑 어린 푸른 숲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예술이나 미술이나 문화가 되는 그림이 아닌, 내 삶을 짓도록 스스로 북돋우는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그림 솜씨를 자랑하려는 그림이 아니라, 사랑을 담아서 꿈으로 나아가는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그림을 그리려고 미술학원에 다닐 까닭이 없습니다. 그림을 그리려면 내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아야 하고, 내 삶이 언제 어느 곳에 어떻게 있는가를 제대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때에 나는 홀가분하게 ‘내 그림’을 그리고, ‘좋고 나쁨이 없’는 사랑으로 그림을 그려서, 이 그림이 그대로 아름다운 삶으로 태어납니다. 4348.3.10.불.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말넋/숲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겹말 손질 367 : 참견하고 끼어들고


 남의 일에 참견하거나 끼어들지 마

→ 남 일에 끼어들지 마

→ 남 일에 이래라저래라 끼어들지 마

→ 남 일에 토를 달거나 끼어들지 마


참견(參見) : 자기와 별로 관계없는 일이나 말 따위에 끼어들어 쓸데없이 아는 체하거나 이래라저래라 함


  한자말 ‘참견’은 “끼어들기”나 “이래라저래라 함”을 뜻합니다. ‘간섭(干涉)’이라는 한자말도 있는데, 말뜻을 살피면 “간섭 = 참견”입니다. 그러니, 참견이든 간섭이든 한국말로는 ‘끼어들다’로 손질하면 됩니다. ‘참견쟁이’처럼 쓰기도 하는데, 이처럼 재미나게 쓰려면 쓰되, 섣불리 겹말을 쓰지 않도록 잘 살필 수 있기를 빕니다. 4348.10.20.불.ㅅㄴㄹ



얼마 안 가서 식구들이 참견하기 시작했어요. 모두들 샘이 났는지 이래라 저래라 내 일에 끼어들지 뭐예요

→ 얼마 안 가서 식구들이 끼어들었어요. 모두들 샘이 났는지 이래라저래라 내 일에 끼어들지 뭐예요

→ 얼마 안 가서 식구들이 한마디씩 했어요. 모두들 샘이 났는지 이래라저래라 내 일에 끼어들지 뭐예요

《마리 데플레솅/김민정 옮김-나는 사랑 수집가》(비룡소,2007) 9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415) 합하다合


 서로 합하여 그 일을 해냈다 → 서로 도와 그 일을 해냈다

 작은방을 큰방과 합하여 → 작은방과 큰방을 더해서

 별거 중이던 아내와 다시 합했다 → 떨어져 살던 아내와 다시 한집에 살았다

 그 일에 합한 자격 → 그 일에 맞는 자격

 부모님의 뜻에 합한 배우자 → 부모님 뜻에 맞는 배우자


  ‘합(合)하다’는 “1. 여럿이 한데 모이다 2. 자격, 조건, 뜻 따위에 일치하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모이다’나 ‘맞다/들어맞다(일치一致)’ 같은 한국말을 쓰면 됩니다. “서로 합하여”는 “서로 모여”로 손보면 되는데, “서로 도와”나 “서로 힘을 모아”로 손볼 만합니다. “작은방을 큰방과 합하여”는 “작은방을 큰방과 더하여”로 손보면 되고, “작은방을 큰방과 붙여서”나 “작은방과 큰방을 하나로 하여”로 손볼 만해요. “그 일에 합한 자격”이란 “그 일에 맞는 자격”이나 “그 일에 걸맞는 자격”이나 “그 일에 어울리는 자격”이나 “그 일에 들어맞는 자격”으로 손봅니다. 4348.10.19.달.ㅅㄴㄹ



모두 합해 20명

→ 모두 더해서 20명

→ 모두 해서 20명

→ 모두 20명

《호리 신이치로/김은산 옮김-키노쿠니 어린이마을》(민들레,2001) 25쪽


다 합해서 다섯 개예요

→ 다 더해서 다섯 개예요

→ 다 해서 다섯 개예요

→ 다 모아서 다섯 개예요

《마리 데플레솅/김민정 옮김-나는 사랑 수집가》(비룡소,2007) 9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285) 고요의


 고요의 바다 → 고요 바다 / 고요한 바다

 고요의 집 → 고요한 집

 고요의 밤 → 고요한 밤

 고요의 순간 → 고요한 때


  한국말 ‘조용하다’는 ‘조용’만 따로 쓰는 일이 없지만, ‘고요하다’는 ‘고요’만 따로 쓰는 일이 꽤 있습니다. 다만, ‘고요’를 외따로 이름씨처럼 쓴다고 하더라도 ‘고요 + 의’처럼 쓸 수 있습니다. 그림씨인 ‘고요하다’는 “고요한 무엇” 꼴로 써야 올바르지, “고요의 무엇”처럼 쓰는 일은 모두 잘못입니다. 문학을 하는 이들이 글멋을 부린다면서 ‘-의’를 붙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4348.10.19.달.ㅅㄴㄹ



착륙 지점은 고요의 바다 한가운데다

→ 내릴 곳은 고요 바다 한가운데다

→ 내릴 곳은 고요한 바다 한가운데다

《사토 사토루/햇살과나무꾼 옮김-비밀의 달팽이 호》(크레용하우스,2000) 80쪽


모든 악몽 위에 세워진 / 고요의 땅

→ 모든 악몽에 세워진 / 고요한 땅

→ 모든 악몽에 세워진 / 고요 누리

《안희연-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창비,2015) 14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말이랑 놀자 153] 팔랑치마



  한국말사전을 문득 들추니 ‘꽃치마’라는 낱말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 낱말은 널리 쓸 말이 아닌 “북녘말”이라는 꼬리표가 붙습니다. 아니, 북녘뿐 아니라 남녘에서도 ‘꽃치마’ 같은 말은 널리 쓰는데 이 낱말은 왜 북녘말이어야 할까요? 남녘에서는 꽃무늬가 깃든 치마를 ‘꽃치마’라고 해서는 안 될까요? 꽃치마처럼 ‘꽃바지’가 있습니다. 치마와 바지가 꽃치마와 꽃바지가 되듯이 ‘꽃옷’이 있지요. ‘꽃양말’도 있을 테고, 온갖 옷을 살피며 ‘풀옷·풀치마’라든지 ‘잎옷·잎치마’도 있어요. 다만, 한국말사전에 이런 낱말을 다 싣자면 끝이 없을 테니 ‘-치마’나 ‘-바지’나 ‘-옷’을 뒷가지로 삼아서 새로운 낱말을 짓는 바탕을 마련하면 됩니다. 이리하여, 꽃치마처럼 ‘팔랑치마’나 ‘팔랑바지’가 있어요. 팔랑거리는 옷이니 ‘팔랑옷’도 되어요. 날개 같은 치마라면 ‘날개치마’가 되고, 한들한들 보드랍거나 바람 따라 춤을 추는 치마라면 ‘한들치마’가 됩니다. 아이도 어른도 고운 치마를 입으면서 고운 웃음을 짓습니다. 아이도 어른도 어여쁜 옷을 입으면서 어여쁜 노래를 부릅니다. 4348.10.14.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숲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