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결에 물든 미국말

 베이비 사인baby sign



  ‘베이비 사인’은 한국말이 아닙니다. ‘baby sign’이라는 영어입니다. 이런 말은 한국말사전에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이 영어를 ‘아기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가 알아야 할 전문 낱말’인 듯 여기는 바람이 붑니다. 이 영어를 한국말로 옮기지 않고 그냥 ‘베이비 사인’으로 쓰는데, ‘baby’는 ‘아기’를 가리키고, ‘sign’은 ‘몸짓’을 가리켜요. 그러니 우리는 ‘아기 몸짓’이라는 말을 새롭게 지어서 쓸 만합니다.


 아기 몸짓 . 아깃짓 . 배냇짓


  아기가 자면서 짓는 얼굴짓을 놓고 ‘배냇짓’이라 합니다. 날 때부터 몸에 깃든 무엇을 가리키는 ‘배내’라는 말이 있어요. 여기에 ‘배내똥·배내옷’이라는 말하고 ‘배냇냄새·배냇니·배냇머리·배냇버릇·배냇저고리’ 같은 말이 있지요.


  ‘배냇짓’을 잘 적에 짓는 얼굴짓만 나타내는 낱말로 쓰지만, 아기가 ‘입으로 하는 말’이 아닌 ‘몸을 움직여서 제 뜻을 나타내는 짓’을 가리키는 자리에 넉넉히 쓸 만합니다. ‘아깃짓(아기 짓)’처럼 새말을 지어도 됩니다. 4348.10.24.쇠.ㅅㄴㄹ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아기는 상호작용을 위해 몸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베이비 사인Baby sign’을 사용합니다

→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아기는 이야기를 나누려고 몸으로 제 뜻을 나타내는 ‘배냇짓(아기 몸짓)’을 씁니다

《김수연-0∼5세 말걸기 육아의 힘》(예담프렌즈,2015) 110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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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접하다接



 사고 보도를 접하다 → 사고 보도를 듣다

 남편의 사망 소식을 접하자 → 남편이 죽은 소식을 듣자

 신을 접하게 되는데 → 신을 만나는데 / 신이 내리데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에 접해 있다 →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에 닿았다

 우리 마을은 바다와 접해 있다 → 우리 마을은 바닷가에 있다

 판자로 지은 집들이 서로 접해 있다 → 판자로 지은 집들이 서로 맞닿았다

 우리 집은 바다를 접하고 있다 → 우리 집은 바다 옆에 있다

 동학의 교리에 접하고 → 동학 교리를 듣고

 사람들과 접하면서 → 사람들과 사귀면서 / 사람들과 만나면서

 그들이 서로 접하기 시작한 것은 → 그들이 서로 만난 때는


  ‘접(接)하다’는 “1. 소식이나 명령 따위를 듣거나 받다 2. 귀신을 받아들여 신통력을 가지다 3. 이어서 닿다 4. 가까이 대하다 5. 직선 또는 곡선이 다른 곡선과 한 점에서 만나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국어사전에 실렸으니, 이렇게 다섯 갈래로 쓸 만하다 여길 수 있지만, 예부터 한겨레가 다섯 갈래로 다 다르게 나누던 말마디가 ‘접하다’라는 외마디 한자말한테 잡아먹힌 셈이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하나하나 갈무리해 보면, 한국사람은 다음처럼 이야기하면서 살았습니다.

 

 접하다 1 → 이야기(소식)를 듣다

 접하다 2 → 신이 내리다 / 신을 만나다

 접하다 3 → 바다에 닿다 / 집이 붙다 / 바다를 끼다

 접하다 4 → 교리를 듣다 / 사람과 만나다 / 사람을 보다 

 접하다 5 → 닿다 / 만나다

 

  이야기를 듣는 자리라면 ‘듣다’라 말할 노릇입니다. 무당한테 신이 내리면 ‘내리다’라 말할 노릇입니다. 이어서 닿으니 ‘닿다’고 말합니다. 집은 “다닥다닥 붙었다”라 말하면 되고, “우리 집은 바다를 낀다”라든지 “우리 집은 바다 가까이 있다”나 “우리 집은 바다 옆에 있다”나 “우리 집은 바닷가에 있다”처럼 말하면 돼요. 가까이 마주하기에 ‘마주하다’나 ‘가까이 마주하다’라 말합니다. 서로서로 만나거나 사귈 때에는 ‘사귀다’나 ‘만나다’라 말합니다. “나를 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처럼 ‘보다’를 쓸 수 있어요. 그리고 ‘접하다 5’ 뜻풀이처럼, ‘만나다’나 ‘닿다’라 말할 자리에 굳이 ‘접하다’를 써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책을 접한다”라든지 “영화를 접하다”라든지 “문화를 접하다”처럼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제법 많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조용히 사라집니다. “영화를 보”고 “문화를 누리”는 사람도 차츰 사라집니다. 말다운 말이 주눅들고, 삶다운 삶이 자취를 감춥니다. 4348.10.23.쇠.ㅅㄴㄹ



나와는 다른 사람을 접하면서

→ 나와는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 나와는 다른 사람을 겪으면서

→ 나와는 다른 사람을 부대끼면서

《스나가 시게오/교육출판기획실 옮김-풀잎들의 교실》(동녘,1987) 103쪽


늘 아이들과 접하면서

→ 늘 아이들과 만나면서

→ 늘 아이들과 부대끼면서

→ 늘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스나가 시게오-아들아 너는 세상 모든 것을 시로 노래하는 사람이 되어라》(가서원,1988) 55쪽


소식을 텔레비전으로 접했다

→ 소식을 텔레비전으로 보았다

→ 소식을 텔레비전으로 알았다

→ 소식을 텔레비전으로 들었다

《팀 윈튼/이동욱 옮김-블루백》(눌와,2000) 121쪽


자연의 모습을 접할 수 있다

→ 자연을  수 있다

→ 숲을 만날 수 있다

→ 숲을 느낄 수 있다

→ 숲을 맛볼 수 있다

→ 숲과 함께할 수 있다

《사사키 미쓰오·사사키 아야코/정선이 옮김-그림 속 풍경이 이곳에 있네》(예담,2001) 57쪽


새로운 환경에 접해도

→ 새로운 환경이 되어도

→ 새로운 곳에 놓여도

→ 새로운 자리에 있어도

《이란주-말해요 찬드라》(삶이보이는창,2003) 83쪽


아이들은 단순하게 자연을 접해야 한다

→ 아이들은 꾸밈없이 자연을 만나야 한다

→ 아이들은 티없이 자연을 느껴야 한다

《하진희-샨티니케탄》(여름언덕,2004) 50쪽


이야기는 곧잘 접해 보았지만

→ 이야기는 곧잘 들어 보았지만

→ 이야기는 곧잘 들었지만

→ 이야기는 곧잘 귀에 들어오지만

《김종휘-너, 행복하니?》(샨티,2004) 75쪽


여아 살해와 나스닥 증권시장 붕괴, 지참금 문제로 아내를 태워죽이는 남편들과 세계미인대회에 나가는 여성들에 관한 소식을 늘 동시에 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 어린 여자 아이 죽이기와 무너지는 나스닥 증권시장, 지참금 때문에 아내를 태워죽이는 남편들과 세계미인대회에 나가는 여성들 이야기를 늘 한꺼번에 들으며 살아갑니다

《아룬다티 로이-9월이여 오라》(녹색평론사,2004) 21쪽


외부의 미생물과 접하지 않도록

→ 바깥 미생물과 닿지 않도록

→ 밖에서 미생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 바깥에서 미생물이 파고들지 않도록

《고와카 준이치/생협전국연합회 옮김-항생제 중독》(시금치,2005) 61쪽


노찾사를 처음 접하게 된 해

→ 노찾사를 처음  해

→ 노찾사를 처음 만난 

→ 노찾사를 처음 들은 해

〈노래를 찾는 사람들〉 노래잔치 안내책자(2005)


노찾사의 앨범을 처음 접하는 날

→ 노찾사 음반을 처음 듣던 날

→ 노찾사 음반을 처음 손에 쥔 

〈노래를 찾는 사람들〉 노래잔치 안내책자(2005)


한국 사람을 가까이 접하고

→ 한국사람을 가까이하고

→ 한국사람을 가까이 두고

→ 한국사람과 가까이 어울리고

→ 한국사람과 가까이 만나고

→ 한국사람과 가까이 사귀고

《엘리자베스 키스·엘스펫 K. 로버트슨 스콧/송영달 옮김-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책과함께,2006) 14쪽


도로와 접해 있는 논

→ 길과 닿은 논

→ 길에 붙은 논

→ 길과 가까이 있는 논

 길 옆에 있는 논

→ 길가에 있는 논

→ 길가 논

《엔도 슈사쿠/김석중 옮김-유모아 극장》(서커스,2006) 64쪽


쉽게 접하지 못하고

→ 쉽게 다가서지 못하고

→ 쉽게 만나지 못하고

→ 쉽게 알아보지 못하고

《홍대용/이숙경·김영호 옮김-의산문답》(꿈이있는세상,2006) 7쪽


신문으로 그 내용을 다시 접하니

→ 신문으로 그 얘기를 다시 들으니

→ 신문으로 그 이야기를 다시 보니

→ 신문으로 그 이야기를 다시 읽으니

《이병철-나는 늙은 농부에 미치지 못하네》(이후,2007) 19쪽


소식지를 접하고 계신

→ 소식지를 받으시는

→ 소식지를 받아보시는

→ 소식지를 읽으시는

《성심수녀회 예수마음 배움터》 2008년 봄호 1쪽


접했던 질문

→ 받던 물음

 듣던 물음

→ 듣던 이야기

→ 듣던 소리

《심상정-당당한 아름다움》(레디앙,2008) 131쪽


여러 가지 풍경을 접하게 됩니다

→ 여러 가지 모습을 봅니다

→ 여러 가지 모습을 만납니다

→ 여러 가지 모습을 마주합니다

《야마오 산세이/김경인 옮김-애니미즘이라는 희망》(달팽이,2012) 245쪽


명상을 처음 접하면

→ 명상을 처음 하면

→ 명상을 처음 겪으면

→ 처음 명상을 하면

→ 처음으로 명상을 하면

《혜별-애니멀 레이키》(샨티,2014) 57쪽


생후 8개월 이후에는 집 안에서 자주 접하는 물건에 이름이 있다는

→ 태어난 지 여덟 달 뒤에는 집 안에서 자주 보는 물건에 이름이 있다는

→ 난 지 여덟 달이 지나면 집 안에서 자주 보는 물건에 이름이 있다는

《김수연-0∼5세 말걸기 육아의 힘》(예담프렌즈,2015) 68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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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지금의


 지금의 나 → 오늘 나 / 오늘날 나

 지금의 20대 → 오늘날 20대 / 요즈음 20대

 지금의 네 고민은 → 오늘 네 걱정은

 지금의 나를 만든 사람 → 오늘 같은 나를 만든 사람

 지금의 선택을 잘 해야 한다 → 오늘 선택을 잘 해야 한다

 지금의 커피를 기억해 → 오늘 마신 커피를 기억해

 지금의 한국을 이룩한 사람 → 오늘날 한국을 이룩한 사람


  ‘지금(只今)’은 “말하는 바로 이때”를 뜻한다고 합니다. 말뜻을 헤아린다면, 한국말로는 ‘이제’나 ‘이때’를 ‘지금’으로 적는다고 할 만합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한 시간”은 “이제부터 한 시간”으로 손볼 만하고, “왜 지금에서야”는 “왜 이제서야”나 “왜 이때에야”로 손볼 만합니다. “지금 막 집에 도착했다”는 “이제 막 집에 닿았다”로 손보면 되고, “지금 운동을 하고 있다”는 “한창 운동을 한다”로 손보면 돼요.


  ‘지금’이라는 한자말에 붙인 토씨 ‘-의’는 군더더기입니다. 한자말 ‘지금’을 쓰고 싶다면, “지금 심정”이나 “지금 내 모습”이라 하면 그만이에요. “지금 느끼는 마음”이나 “지금 바라보는 내 모습”처럼 사이에 다른 말을 넣어서 느낌을 살려도 됩니다. “지금 돌아보는 내 모습”이라든지 “지금에 와서 느끼는 마음”처럼 살을 더 붙여도 됩니다. “지금의 심정”처럼 쓸 까닭이 없습니다. 4348.10.23.쇠.ㅅㄴㄹ



지금의 우리

→ 오늘 우리

 이제 우리

→ 오늘날 우리

→ 오늘을 사는 우리

 오늘 여기에 있는 우리

→ 우리는 오늘

→ 우리는 이제

《야나기 무네요시/김순희 옮김-다도와 일본의 미》(소화,1996) 86쪽


지금의 심정도 그렇다

→ 요즈음 마음도 그렇다

→  마음도 그렇다

→ 오늘 마음도 그렇다

《임응식-내가 걸어온 한국 사단》(눈빛,1999) 5쪽


 지금의 내 모습은 어떠할까

 요즈음 내 모습은 어떠할까

→ 오늘 내 모습은 어떠할까

→ 오늘 이곳에서 내 모습은 어떠할까

《임응식-내가 걸어온 한국 사단》(눈빛,1999) 5쪽


지금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 이렇게 살아가려면

→ 이와 같이 살림을​ 꾸리려면

 이만큼 살아​가려면

→ 이만 한 살림을 지키려면

→ 이러한 살림살이를 이으려면

《후쿠오카 켄세이/김경인 옮김-즐거운 불편》(달팽이,2004) 155쪽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야

→ 오늘 같은 나는 없었겠지

→ 오늘 내 모습은 없었겠지

→ 이런 나는 없었겠지

→ 이 같은 나는 없었겠지

→ 오늘처럼 살지 못했겠지

→ 오늘처럼 바뀌지 않았겠지

《아즈마 카즈히로/김완 옮김-알바고양이 유키뽕 11》(북박스,2006) 58쪽


지금의 한국은

 이제 한국은

 요즈음 한국은

→ 요사이 한국은

《이하영-열다섯 살 하영이의 스웨덴 학교 이야기》(양철북,2008) 220쪽


지금의 당신이 되고자

 오늘 같은 그대가 되고자

→ 이곳에서 그대가 되고자

→ 오늘 이곳에서 그대가 되고자

→ 바로 이곳에서 그대가 되고자

 이제껏 그대가 되고자

《람타/유리타 옮김-람타 화이트북》(아이커넥,2011) 157쪽


여전히 배고픈 사람들이 살아가는 지금의 삶을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 아직도 배고픈 사람들이 있는 오늘날 삶을 즐겁다고 할 수 있을까

→ 예전처럼 배고픈 사람들이 살아가는 오늘날을 기쁘다고 할 수 있을까

《최원형-10대와 통하는 환경과 생태 이야기》(철수와영희,2015) 212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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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넋·삶 85 내가 짓는 삶이다



  사회의식에서는 ‘네가 한 일은 네가 책임을 지라’라든지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처럼 말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말은 맞구나 싶은데, 그렇다고 옳거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럽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예부터 한겨레는 ‘뿌린 대로 거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내리사랑 치사랑’이라든지 ‘낳은 사랑 기른 사랑’을 함께 말합니다.


  내가 한 일이니 내가 맡아서 하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내가 한 일은 내가 스스로 끌어들인 삶이요 일(경험)입니다. 내가 짊어질 굴레는 아닙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서로 도와요. 두레도 하고 품앗이도 합니다. 요샛말로는 ‘이웃돕기’도 합니다. 왜 이런 일을 하느냐 하면, 함께 짓는 삶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대로 내 삶을 짓고 너는 너대로 네 삶을 짓습니다. 우리는 모두 따로따로 살아요. 한집에 사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따로따로 밥을 먹습니다. 내가 밥을 먹을 적에 네 배가 부르지 않습니다. 네가 숨을 쉴 적에 나는 숨을 안 쉬어도 되지 않습니다. 마음이 맞는 짝꿍이라 하더라도, 밥을 따로 먹고 똥을 따로 눕니다. 잠도 따로 자야 하고, 몸도 따로 씻어야 합니다. 참말 그래요. 내가 밥을 먹었으니 내가 똥을 누지, 네가 내 똥을 누어 줄 수 없습니다. 내가 힘들어서 내가 쉬지, 네가 내 몫을 쉬어 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 다 다른 삶을 짓습니다. 그런데, ‘내가 지은 삶’은 ‘우리가 함께 누리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내가 지은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내 이웃이 바라보면서 기쁨을 느낍니다. 내가 지은 어설픈 보금자리를 내 이웃이 바라보면서 혀를 끌끌 찹니다. 내 이웃이 기쁨을 느끼면 내 이웃은 새로운 기운을 얻고, 내 이웃이 혀를 끌끌 차면 이녁은 내 보금자리에 일손을 거들러 옵니다.


  그런데, ‘내가 지은 삶’이 있어야, 내 이웃이 나를 바라보면서 기쁨을 느끼든 도와주러 오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지은 삶’이 없다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고 하나도 안 나타납니다.


  좋거나 싫거나 나쁘다고 따지는 삶이 아닙니다. 그저 삶입니다. 내가 너보다 기운이 조금 세니까 내가 너보다 일을 많이 합니다. 어른이 아이보다 몸집이 크고 기운이 세니까 어른이 일을 도맡아서 하고, 아이는 신나게 뛰놀도록 합니다. 그저 그뿐입니다. 내가 너보다 돈이 조금 넉넉하니까 내 돈을 너한테 줍니다. 네가 나보다 돈이 훨씬 넉넉하니까 네가 나한테 꽤 많은 돈을 나누어 줍니다.


  고요히 흐릅니다. 물은 언제나 고요히 흐릅니다. 가파른 자리라면 거칠게 흐르면서 우렁찬 소리를 내는데, 아무리 가파르더라도 물이 다 쏟아지고 나면 비알은 사라집니다. 물은 다시 반반하게 멈추면서 고요하게 있지요.


  삶이 흐릅니다. 삶은 언제나 고요히 흐릅니다. 오르락내리락 고빗사위도 있어 보이는 삶이지만, 가만히 보면 어떤 고빗사위가 물결을 치더라도 우리 삶은 늘 차분하면서 고요한 자리로 갑니다.


  내가 짓는 삶은 거룩한 일(업적)을 쌓아올리려는 몸짓이 아닙니다. 내가 짓는 삶은 바로 오늘 이곳에서 즐겁게 웃고 기쁘게 노래하려는 몸짓입니다. 내가 짓는 삶에서 돈을 벌 수도 있고 이름을 얻을 수도 있으며 힘(권력)을 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돈·이름·힘을 거머쥐려고 오늘 이곳에서 살지 않습니다. 나는 늘 언제 어디에서나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이 되어서 씨앗을 바람에 날리려는 뜻으로 오늘 이곳에서 삶을 짓습니다.


  내가 지은 씨앗을 내가 뿌립니다. 내가 심은 씨앗으로 내가 꽃이 되어 새롭게 태어납니다. 내가 지은 삶을 내가 노래합니다. 내가 이루는 꿈을 내 온 사랑을 기울여 아낌없이 노래합니다.


  우리는 ‘책임을 질 만한 일을 스스로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스스로 기쁘게 웃고 노래할 사랑으로 가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짓는 삶은, 내가 짓는 사랑이요 꿈이요 웃음이요 노래요 글이요 춤이요 이야기입니다. 4348.3.24.불.ㅎㄲㅅㄱ


(최종규/숲노래 . 2015 - 람타 공부/숲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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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좀 생각합시다 12


 지나침이 없다


  배가 고플 적에는 “배고파” 하고 말해요. 배가 안 고플 적에는 “배 안 고파” 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요즈음 들어 “배고픔이 있어”나 “배고픔이 없어”처럼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사람이 나옵니다. 말결을 그대로 살려서 쓰지 않고 일부러 이름씨꼴로 바꾸어서 쓰는 셈입니다.


  입으로 말을 할 적에는 이름씨꼴이 잘 안 나옵니다. 입으로 말을 하지 않고 글부터 먼저 쓰고서 이 글을 읽느라 “만사에 지나침이 없도록 하자”나 “모자람이 없습니다” 같은 말투가 차츰 퍼집니다. “모든 일을 지나치지 않게 하자”나 “모자라지 않습니다”처럼 부드럽게 쓰던 말투를 어느새 잊습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같은 말은 그야말로 먼저 글을 쓴 뒤에 줄줄이 읽는 말투입니다. 아마 글을 쓸 적에는 이처럼 이름씨꼴로 맞추어야 더 힘주어 말하는 듯 여길 만하겠지요. 그런데 말에는 알맹이가 있어야 참다이 힘이 있습니다. 말꼴만 이름씨로 바꾼다고 해서 힘이 생기지 않아요. 알맹이 없이 껍데기만 만지작거리는 글투나 말투는 오래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처럼 글을 쓰고 말을 해야지요.


  “망설임이 없다”가 아니라 “망설이지 않다”입니다. “설렘이 없다”가 아니라 “설레지 않다”입니다. 다만, ‘두려움’이나 ‘웃음’은 이름씨꼴로 오래도록 썼기에 “두려운 줄 모른다”, “웃지 않는다”뿐 아니라 “두려움이 없다”, “웃음이 없다”처럼 써도 그리 낯설거나 어설프지 않아요. 그렇다고 “졸음이 없다”나 “기다림이 없이 가다”나 “머무름을 안 하고 바로 떠나다”처럼 쓸 수 없는 노릇입니다. 이런 말투도 언젠가 쓸 수 있는 날이 다가올는지 모릅니다만, 모든 말투를 억지스레 이름씨꼴로 맞추어야 하지 않습니다. ‘떨림’이나 ‘새로움’이나 ‘느림’이나 ‘사랑스러움’처럼 차근차근 새 낱말을 빚을 만합니다. 새 낱말을 빚는 까닭은 생각을 넓히면서 삶을 북돋우려는 뜻입니다. 4348.10.23.쇠.ㅅㄴㄹ



기계는 공동체의 파괴자라고 표현해도 지나침이 없다

→ 기계는 공동체를 파괴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 기계는 두레를 무너뜨린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스콧 새비지 엮음/강경이 옮김-그들이 사는 마을》(느린걸음,2015) 242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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