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좀 생각합시다 12


 지나침이 없다


  배가 고플 적에는 “배고파” 하고 말해요. 배가 안 고플 적에는 “배 안 고파” 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요즈음 들어 “배고픔이 있어”나 “배고픔이 없어”처럼 말을 하거나 글을 쓰는 사람이 나옵니다. 말결을 그대로 살려서 쓰지 않고 일부러 이름씨꼴로 바꾸어서 쓰는 셈입니다.


  입으로 말을 할 적에는 이름씨꼴이 잘 안 나옵니다. 입으로 말을 하지 않고 글부터 먼저 쓰고서 이 글을 읽느라 “만사에 지나침이 없도록 하자”나 “모자람이 없습니다” 같은 말투가 차츰 퍼집니다. “모든 일을 지나치지 않게 하자”나 “모자라지 않습니다”처럼 부드럽게 쓰던 말투를 어느새 잊습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같은 말은 그야말로 먼저 글을 쓴 뒤에 줄줄이 읽는 말투입니다. 아마 글을 쓸 적에는 이처럼 이름씨꼴로 맞추어야 더 힘주어 말하는 듯 여길 만하겠지요. 그런데 말에는 알맹이가 있어야 참다이 힘이 있습니다. 말꼴만 이름씨로 바꾼다고 해서 힘이 생기지 않아요. 알맹이 없이 껍데기만 만지작거리는 글투나 말투는 오래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처럼 글을 쓰고 말을 해야지요.


  “망설임이 없다”가 아니라 “망설이지 않다”입니다. “설렘이 없다”가 아니라 “설레지 않다”입니다. 다만, ‘두려움’이나 ‘웃음’은 이름씨꼴로 오래도록 썼기에 “두려운 줄 모른다”, “웃지 않는다”뿐 아니라 “두려움이 없다”, “웃음이 없다”처럼 써도 그리 낯설거나 어설프지 않아요. 그렇다고 “졸음이 없다”나 “기다림이 없이 가다”나 “머무름을 안 하고 바로 떠나다”처럼 쓸 수 없는 노릇입니다. 이런 말투도 언젠가 쓸 수 있는 날이 다가올는지 모릅니다만, 모든 말투를 억지스레 이름씨꼴로 맞추어야 하지 않습니다. ‘떨림’이나 ‘새로움’이나 ‘느림’이나 ‘사랑스러움’처럼 차근차근 새 낱말을 빚을 만합니다. 새 낱말을 빚는 까닭은 생각을 넓히면서 삶을 북돋우려는 뜻입니다. 4348.10.23.쇠.ㅅㄴㄹ



기계는 공동체의 파괴자라고 표현해도 지나침이 없다

→ 기계는 공동체를 파괴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 기계는 두레를 무너뜨린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스콧 새비지 엮음/강경이 옮김-그들이 사는 마을》(느린걸음,2015) 242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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