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접하다接



 사고 보도를 접하다 → 사고 보도를 듣다

 남편의 사망 소식을 접하자 → 남편이 죽은 소식을 듣자

 신을 접하게 되는데 → 신을 만나는데 / 신이 내리데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에 접해 있다 →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에 닿았다

 우리 마을은 바다와 접해 있다 → 우리 마을은 바닷가에 있다

 판자로 지은 집들이 서로 접해 있다 → 판자로 지은 집들이 서로 맞닿았다

 우리 집은 바다를 접하고 있다 → 우리 집은 바다 옆에 있다

 동학의 교리에 접하고 → 동학 교리를 듣고

 사람들과 접하면서 → 사람들과 사귀면서 / 사람들과 만나면서

 그들이 서로 접하기 시작한 것은 → 그들이 서로 만난 때는


  ‘접(接)하다’는 “1. 소식이나 명령 따위를 듣거나 받다 2. 귀신을 받아들여 신통력을 가지다 3. 이어서 닿다 4. 가까이 대하다 5. 직선 또는 곡선이 다른 곡선과 한 점에서 만나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국어사전에 실렸으니, 이렇게 다섯 갈래로 쓸 만하다 여길 수 있지만, 예부터 한겨레가 다섯 갈래로 다 다르게 나누던 말마디가 ‘접하다’라는 외마디 한자말한테 잡아먹힌 셈이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하나하나 갈무리해 보면, 한국사람은 다음처럼 이야기하면서 살았습니다.

 

 접하다 1 → 이야기(소식)를 듣다

 접하다 2 → 신이 내리다 / 신을 만나다

 접하다 3 → 바다에 닿다 / 집이 붙다 / 바다를 끼다

 접하다 4 → 교리를 듣다 / 사람과 만나다 / 사람을 보다 

 접하다 5 → 닿다 / 만나다

 

  이야기를 듣는 자리라면 ‘듣다’라 말할 노릇입니다. 무당한테 신이 내리면 ‘내리다’라 말할 노릇입니다. 이어서 닿으니 ‘닿다’고 말합니다. 집은 “다닥다닥 붙었다”라 말하면 되고, “우리 집은 바다를 낀다”라든지 “우리 집은 바다 가까이 있다”나 “우리 집은 바다 옆에 있다”나 “우리 집은 바닷가에 있다”처럼 말하면 돼요. 가까이 마주하기에 ‘마주하다’나 ‘가까이 마주하다’라 말합니다. 서로서로 만나거나 사귈 때에는 ‘사귀다’나 ‘만나다’라 말합니다. “나를 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처럼 ‘보다’를 쓸 수 있어요. 그리고 ‘접하다 5’ 뜻풀이처럼, ‘만나다’나 ‘닿다’라 말할 자리에 굳이 ‘접하다’를 써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책을 접한다”라든지 “영화를 접하다”라든지 “문화를 접하다”처럼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제법 많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조용히 사라집니다. “영화를 보”고 “문화를 누리”는 사람도 차츰 사라집니다. 말다운 말이 주눅들고, 삶다운 삶이 자취를 감춥니다. 4348.10.23.쇠.ㅅㄴㄹ



나와는 다른 사람을 접하면서

→ 나와는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 나와는 다른 사람을 겪으면서

→ 나와는 다른 사람을 부대끼면서

《스나가 시게오/교육출판기획실 옮김-풀잎들의 교실》(동녘,1987) 103쪽


늘 아이들과 접하면서

→ 늘 아이들과 만나면서

→ 늘 아이들과 부대끼면서

→ 늘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스나가 시게오-아들아 너는 세상 모든 것을 시로 노래하는 사람이 되어라》(가서원,1988) 55쪽


소식을 텔레비전으로 접했다

→ 소식을 텔레비전으로 보았다

→ 소식을 텔레비전으로 알았다

→ 소식을 텔레비전으로 들었다

《팀 윈튼/이동욱 옮김-블루백》(눌와,2000) 121쪽


자연의 모습을 접할 수 있다

→ 자연을  수 있다

→ 숲을 만날 수 있다

→ 숲을 느낄 수 있다

→ 숲을 맛볼 수 있다

→ 숲과 함께할 수 있다

《사사키 미쓰오·사사키 아야코/정선이 옮김-그림 속 풍경이 이곳에 있네》(예담,2001) 57쪽


새로운 환경에 접해도

→ 새로운 환경이 되어도

→ 새로운 곳에 놓여도

→ 새로운 자리에 있어도

《이란주-말해요 찬드라》(삶이보이는창,2003) 83쪽


아이들은 단순하게 자연을 접해야 한다

→ 아이들은 꾸밈없이 자연을 만나야 한다

→ 아이들은 티없이 자연을 느껴야 한다

《하진희-샨티니케탄》(여름언덕,2004) 50쪽


이야기는 곧잘 접해 보았지만

→ 이야기는 곧잘 들어 보았지만

→ 이야기는 곧잘 들었지만

→ 이야기는 곧잘 귀에 들어오지만

《김종휘-너, 행복하니?》(샨티,2004) 75쪽


여아 살해와 나스닥 증권시장 붕괴, 지참금 문제로 아내를 태워죽이는 남편들과 세계미인대회에 나가는 여성들에 관한 소식을 늘 동시에 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 어린 여자 아이 죽이기와 무너지는 나스닥 증권시장, 지참금 때문에 아내를 태워죽이는 남편들과 세계미인대회에 나가는 여성들 이야기를 늘 한꺼번에 들으며 살아갑니다

《아룬다티 로이-9월이여 오라》(녹색평론사,2004) 21쪽


외부의 미생물과 접하지 않도록

→ 바깥 미생물과 닿지 않도록

→ 밖에서 미생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 바깥에서 미생물이 파고들지 않도록

《고와카 준이치/생협전국연합회 옮김-항생제 중독》(시금치,2005) 61쪽


노찾사를 처음 접하게 된 해

→ 노찾사를 처음  해

→ 노찾사를 처음 만난 

→ 노찾사를 처음 들은 해

〈노래를 찾는 사람들〉 노래잔치 안내책자(2005)


노찾사의 앨범을 처음 접하는 날

→ 노찾사 음반을 처음 듣던 날

→ 노찾사 음반을 처음 손에 쥔 

〈노래를 찾는 사람들〉 노래잔치 안내책자(2005)


한국 사람을 가까이 접하고

→ 한국사람을 가까이하고

→ 한국사람을 가까이 두고

→ 한국사람과 가까이 어울리고

→ 한국사람과 가까이 만나고

→ 한국사람과 가까이 사귀고

《엘리자베스 키스·엘스펫 K. 로버트슨 스콧/송영달 옮김-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코리아》(책과함께,2006) 14쪽


도로와 접해 있는 논

→ 길과 닿은 논

→ 길에 붙은 논

→ 길과 가까이 있는 논

 길 옆에 있는 논

→ 길가에 있는 논

→ 길가 논

《엔도 슈사쿠/김석중 옮김-유모아 극장》(서커스,2006) 64쪽


쉽게 접하지 못하고

→ 쉽게 다가서지 못하고

→ 쉽게 만나지 못하고

→ 쉽게 알아보지 못하고

《홍대용/이숙경·김영호 옮김-의산문답》(꿈이있는세상,2006) 7쪽


신문으로 그 내용을 다시 접하니

→ 신문으로 그 얘기를 다시 들으니

→ 신문으로 그 이야기를 다시 보니

→ 신문으로 그 이야기를 다시 읽으니

《이병철-나는 늙은 농부에 미치지 못하네》(이후,2007) 19쪽


소식지를 접하고 계신

→ 소식지를 받으시는

→ 소식지를 받아보시는

→ 소식지를 읽으시는

《성심수녀회 예수마음 배움터》 2008년 봄호 1쪽


접했던 질문

→ 받던 물음

 듣던 물음

→ 듣던 이야기

→ 듣던 소리

《심상정-당당한 아름다움》(레디앙,2008) 131쪽


여러 가지 풍경을 접하게 됩니다

→ 여러 가지 모습을 봅니다

→ 여러 가지 모습을 만납니다

→ 여러 가지 모습을 마주합니다

《야마오 산세이/김경인 옮김-애니미즘이라는 희망》(달팽이,2012) 245쪽


명상을 처음 접하면

→ 명상을 처음 하면

→ 명상을 처음 겪으면

→ 처음 명상을 하면

→ 처음으로 명상을 하면

《혜별-애니멀 레이키》(샨티,2014) 57쪽


생후 8개월 이후에는 집 안에서 자주 접하는 물건에 이름이 있다는

→ 태어난 지 여덟 달 뒤에는 집 안에서 자주 보는 물건에 이름이 있다는

→ 난 지 여덟 달이 지나면 집 안에서 자주 보는 물건에 이름이 있다는

《김수연-0∼5세 말걸기 육아의 힘》(예담프렌즈,2015) 68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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