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노래꽃 / 숲노래 동시

내가 안 쓰는 말 52 공부 2023.5.19.



머리에 욱여넣기만 하니

멀미가 나서 고단하고

멍멍 어질어질 지치고

생각이 멎는 듯해


마음에 담으려는 길은

스스럼없이 마주하고

스스로지어 만나면서

천천히 슬슬 가지


거미는 하늘을 가르면서

맑게 바람빛 실을 풀고

제비는 구름을 가르면서

밝게 들빛 노래를 품네


꽃피고 잎지는 철을 읽어

눈오고 비오는 날을 읽어

해뜨고 별돋는 빛을 읽어

속으로 익히고 몸으로 배워


ㅅㄴㄹ


‘공부(工夫)’는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힘”을 뜻한다는데, 우리말 ‘배우다’를 “새로운 기술을 익히다”로 풀이하는 낱말책입니다. 겹말풀이예요. 이 같은 뜻풀이로는 우리가 무엇을 ‘배우’거나 어떻게 ‘익히’는가를 알기 어렵겠다고 느껴요. ‘배우다’는 “스스로 몸을 놀려 해보거나 겪다. 몸으로 받아들이도록 스스로 해보거나 겪다”처럼 뜻풀이를 새롭게 추슬러야지 싶습니다. 새롭게 해보면서 그야말로 새롭게 받아들여서 스스로 알아보려는 길이 ‘배우다’라고 할 만합니다. ‘익히다’라면 “자꾸, 오래, 꾸준히 하면서 쉽게 하도록 하다”로 뜻풀이를 붙이면서, ‘배우다·익히다’를 알맞게 갈라서 쓰는 길을 밝혀야지 싶어요. 어두운 곳이 눈에 ‘익’고, 낯선 길도 어느덧 눈에 ‘익는’다고 해요. 처음에는 하나도 알기 어렵고 낯설지만, 하고 또 하고 거듭하면서 몸에 어느덧 붙도록 하는 길이 ‘익히다’입니다. 더 잘 해내고 싶을 적에는 ‘갈다·갈고닦다·닦다’라는 낱말을 쓰지요. 더더욱 잘 해내고 싶으니 ‘벼리다’라는 낱말을 쓰고요. 둘레를 읽고 생각하고 마음을 기울이니 하나씩 알아갑니다. 글도 하늘도 숲도 마음도 읽어요.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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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6-10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덩달아 나도 공부하게되네요. 공부라는 한자어가 바로 쿵푸인듯.

숲노래 2023-06-10 08:40   좋아요 0 | URL
‘쿵푸‘라 말씀하시니
<쿵푸 팬더>가 떠오르네요.

저는 아직 <쿵푸 팬더> 영화평을 안 쓴 듯한데,
아이들은 진작에 100번을 넘게 보았고,
저는 아직 50번쯤밖에 안 본 터라....

저도 아이들처럼 <쿵푸 팬더>를 100번 넘게 본 뒤에는
<쿵푸 팬더> 영화평을 써야겠다고
문득 생각해 봅니다 ^^
 

숲노래 노래꽃 / 숲노래 동시

내가 안 쓰는 말 62 초록 2023.5.25.



풀은

온누리를 푸르게 물들이고

뭇누리를 가만히 품어주고

한누리를 푸지게 북돋운다


풀잎은

다 다른 잎빛에 잎새로

바람을 불러들여 돌보고

이슬을 송글송글 맺는다


풀꽃은

풀벌레가 노래하는 곳

벌나비가 쉬어가는 집

씨앗에 낟알이 영글지


풀꽃나무는

푸릇푸릇 우거지며 숲

해를 머금고 비를 받아

누구나 살풋 깃드는 빛


ㅅㄴㄹ 


풀잎은 어떤 빛인가요? 나뭇잎은 어떤 빛깔이지요? 풀이기에 ‘풀빛’입니다만, 적잖은 분들은 그만 풀을 풀빛이라 안 하고 ‘초록’이나 ‘녹색’으로 가리킵니다. 중국 한자말이라는 ‘초록(草綠)’은 “1. 파랑과 노랑의 중간색. 또는 그런 색의 물감 = 초록색 2. 파랑과 노랑의 중간 빛 = 초록빛”을 뜻한다고 합니다. 일본 한자말이라는 ‘녹색(綠色)’은 “= 초록색”으로 풀이해요. 우리한테는 ‘풀빛·푸름’이라는 우리말이 있으니, 이 말씨를 알뜰살뜰 쓸 수 있으면 됩니다. 푸르기에 풀이요, 푸지게 자라면서 푸른숨을 베풀 뿐 아니라, 푸른밥(나물밥·풀밥)을 베풀기에 풀입니다. 풀을 머금으면 우리 몸에 있던 찌꺼기를 풀어줍니다. 풀은 푸르게 일렁이는 바람을 불러서 모든 앙금을 풀어냅니다. 풀은 이 별에서 너른 땅(뭍)을 품습니다. 풀이 품는 곳에서 새도 풀벌레도 짐승도 사람도 푸근히(포근히) 보금자리를 지어서 살아요. 숲은 바로 풀이 바탕입니다. 풀과 꽃과 나무가 어우러지는 숲이란 ‘풀꽃나무’가 아름다운 삶터입니다. 풀을 풀로 바라보기를 바라요. 어린이가 무럭무럭 자라 몸과 마음이 싱그러이 빛나면서 철드는 어른으로 나아가는 길목이 ‘푸름이(푸른씨·청소년)’입니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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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숲노래 동시

내가 안 쓰는 말 39 포기 2023.5.6.



풀 한 포기는

숲에서도 들에서도 길에서도

마당서도 골목서도 서울서도

뿌리내리고 꽃피운다


매캐한 서울에 풀씨 앉으면

그만두고 싶거나

손들고 싶거나

죽고 싶을 수 있어


숱한 풀꽃나무는 고된 나머지

서울살이나 그늘살이를 끝내고

흙으로 돌아가거나

깊이 잠들었겠지


풀 한 포기는

포근한 흙과 해와 별과

푸근한 바람과 비와 너와

우리 품을 그리며 싹튼다


ㅅㄴㄹ


 우리말 ‘포기’는 풀꽃을 세는 이름입니다. 한자말 ‘포기(抛棄)’는 “1. 하려던 일을 도중에 그만두어 버림 2. 자기의 권리나 자격, 물건 따위를 내던져 버림”을 가리킵니다. 시골에서 살거나 풀꽃나무를 곁에 두는 사람이라면, ‘포기’라는 소리를 들을 적에 “풀 한 포기”나 “배추 한 포기”를 떠올립니다. 숲을 등지거나 서울에서만 맴돌 적에는 ‘포기’란 소리를 으레 한자말 ‘抛棄’, 그러니까 우리말로는 ‘그만두다·그치다·끝내다·버리다·떠나다·멈추다’를 뜻하는 낱말을 떠올릴 만합니다. 서울은 풀씨 한 톨이 깃들 조그마한 터도 쉽게 내주지 않습니다. 부릉부릉 매캐하고 빽빽하지요. 서울에서 흙이나 모래 한 줌을 만지기는 어렵고, 조약돌 하나를 구경하기도 힘들어요. 우리가 숨을 쉬려면, 바람이 맑고 하늘이 파랗게 물들 노릇인데, 맑고 파란 바람과 하늘은 풀꽃나무가 푸르게 우거진 숲이 있어야 태어나요. 풀씨나 꽃씨나 나무씨는 서울에 문득 깃들어야 하면, 뿌리를 내릴 곳부터 찾기 어려워서 그만두고 싶을 수 있어요. 그러나 아직 숱한 풀꽃나무는 서울 기스락이나 구석자리에서도 조용히 뿌리를 내리고 싹트면서 푸른숨을 베풉니다.


※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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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숲노래 동시

내가 안 쓰는 말 38 가능 2023.5.8.



빗물은 하늘땅 씻고

풀잎 나뭇잎 다독여

햇빛은 들숲 감싸고

냇물 바닷물 간질여


씨앗은 고요히 꿈꾸고

마을에 푸른숨 일으켜

열매는 알알이 영글고

모두들 넉넉히 살찌워


너는 휘파람 불 줄 알고

나는 바람춤 즐긴다

우리는 천천히 걸을 수 있고

함께 온누리 누빈다


해보면 새롭게 된다

그리면 언제나 이뤄

바라보며 하나씩 하고

놀고 노래하며 노을로


ㅅㄴㄹ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처음부터 알 수 있을까요? 얼핏 할 수 있는 듯싶으나, 막상 해보니 안 될 때가 있습니다. 둘레에서는 다 할 수 없다고 손사래를 치지만, 정작 해보니 스스럼없이 풀리면서 어렵잖이 될 때가 있어요. ‘가능(可能)’은 “할 수 있거나 될 수 있음”을 뜻합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마음에 생각씨앗을 담으면, 우리 걸음걸이는 ‘이제부터 차근차근 할’ 일놀이를 바라봅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마음에 아무런 생각이 없다면, 쉬운 일도 그르치거나 어긋나곤 해요. 하려는 마음이 ‘할 수 있음’으로 흐르고, 하려는 마음이 없기에 ‘할 수 없음’으로 굳는구나 싶습니다.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별이 돋는 하루는 어떻게 이처럼 한결같이 흐를까요? 우리는 이 하루를 어떤 마음으로 마주하면서 꿈과 생각을 지필 적에 즐거울까요?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붙잡으려 하기보다는, 가장 하고 싶은 한 가지부터 마음에 차근차근 놓으면서 한 발짝씩 떼어 봐요. 휘파람을 불면서, 콧노래를 부르면서, 이 길도 저 길도 그 길도 날갯짓을 하는 홀가분한 몸짓으로 어깨동무하면서 나아가 봐요.


※ 글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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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숲노래 동시

내가 안 쓰는 말 36 기억 2023.5.3.



마음이 떠나고 나면

어쩐지 떠오르지 않고

마음이 따뜻이 피면

하나둘 떠올라 새록새록


마음이 죽어갈 때면

도무지 생각이 없고

마음이 살아날 적에

도로롱 생각이 솟아


아프고 슬프고 괴로워

멍울로 흉으로 새겼어

기쁘고 반갑고 흐뭇해

볼우물 눈웃음 되새겨


하나씩 적어 볼게

찬찬히 담으려 해

어제도 오늘도 이 마음을

돌아보고 돌이켜서 또렷이


ㅅㄴㄹ


‘기억(記憶)’은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을 가리킨다고 해요. 우리말로는 ‘생각하다·생각나다’나 ‘떠올리다·떠오르다’입니다. 물에 떠서 올라오듯, 마음이나 머리에 떠서 올라오듯 나타나는 일·말·이야기이기에 ‘떠올리다’라 해요. 오래도록 마음에 두고 싶으면 ‘담’습니다. ‘새기’기도 하고 ‘남기’기도 합니다. 두려 하기에 ‘두다’란 말로 나타내고 ‘되새기다·되돌아보다·되살리다·되짚다·되씹다’처럼 ‘되-’를 붙여 이모저모 살피곤 합니다. 그리고 ‘간직’합니다. ‘건사’합니다. ‘돌아보’거나 ‘그리’기도 하고, ‘품’기도 합니다. ‘품다’라는 낱말은 “품에 있도록 하다”를 가리켜요. ‘품’이란 푸근하게 안으면서 풀어주는 넉넉한 곳입니다. 어버이가 아기를 품고, 어미 새가 알을 낳아 둥지에 품어요. 온누리를 푸르게 덮는 풀은 풀어주면서 품는 숨결이기도 합니다. 즐거운 날이나 일이나 이야기는 언제나 새롭게 빛나도록 품고 담고 남기고 떠올리고 되새깁니다. 안 즐거워 서운하거나 섭섭하거나 싫거나 밉던 모든 날과 일과 이야기는 찬찬히 다독여 이슬방울 같은 눈물꽃으로 피어나도록 추스릅니다. 오늘부터 한 걸음씩 다시 내딛으며 어제를 생각합니다.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리는 사람.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선생님, 우리말이 뭐예요?》,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밑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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