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기 2018.2.10.


《닭들이 이상해》

브루스 맥밀란 글·귀넬라 그림/서혜영 옮김, 바람의아이들, 2007.2.15.



  일산마실을 가는 길에 그림책을 하나 챙긴다. 우리 아이들이 즐겁게 읽으며 새로운 이야기꽃을 가슴에 피울 수 있기를 바라며 《닭들이 이상해》를 고른다. 아이슬란드라는 아름다운 나라에서 하늘을 훨훨 나는 닭무리가 물어다 날라서 한국에 살포시 내려놓아 준 멋진 그림책이다. 글이며 그림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눈부신지 모른다. 우리 집 곁님도 이 그림책을 보며 빛깔이며 결이 참 좋다고 말한다. 반가우면서 고맙다. 사랑스럽고 눈부신 그림책을 알아보는 사람은 늘 멋님이요 길벗이며 꿈지기라고 느낀다. 일산마실은 만만하지 않지만, 만만하지 않으니 느긋하게 다녀오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서울 고속버스역에서 내려 베트남 쌀국수집에 들렀는데, 밥은 설익어서 딱딱하고 말랐으며, 고기는 너무 짜고 단데다 질기다. 이런 밥이랑 고기를 아이한테 먹이라고? 우리는 꾸역꾸역 먹었다. 다 먹고 나서 저녁에 이런 말을 나누었다. “다음에는 엉터리로 나온 밥을 보면 도로 가져가라 하고서 그곳에서 나와야겠어요.” 늘 사람으로 북적대며 바쁜 곳에서는 얄궂은 얼거리가 되어도 그곳 일꾼 스스로 모른다. 삶터를 사랑으로 가꾸려 하는 데에서는 씩씩한 텃사람이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기쁨을 넉넉히 짓는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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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2.9.


《어쩌면 좋아》

사노 요코 글/서혜영 옮김, 서커스, 2017.5.15.



  지난해 여름에 장만해서 한창 읽다가 덮어 놓은 줄 잊은 《어쩌면 좋아》를 다시 손에 쥔다. 처음에 신나게 손에 쥐어 읽던 책을 책꽂이에 살짝 내려놓은 뒤에 여러 달이 흐르도록 까맣게 잊곤 한다. 나는 아무래도 잊기쟁이일는지 모른다. 또는 이 책 옮김말이 더없이 엉성한 번역 말씨투성이라서 읽다가 지치고 힘들어 한동안 밀어두자고 여겼을 수 있다. 여러 달 만에 다시 쥐어서 읽자니, 글월마다 눈에 걸리고 마음에 걸린다. 어찌 이렇게 일본 말씨를 걸러내지 못하면서 한국말로 옮긴다고 하는지 아리송하다. 너무하지 않나? 번역이라는 일을 하는 분들은 한국말을 안 익히나? 어릴 적이나 대학생 무렵에 한국말을 배우고는 더 안 배우나?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이야기가 아니다. 외국말을 한국말로 옮길 적에는 외국말만 잘해서는 안 된다. 한국말을 한국말답게 잘하도록 늘 가다듬을 줄 알아야 한다. 한글로 옮기는 글이 아닌 한말(한국말)로 옮기는 글이다. 껍데기만 한글인 옮김말이란 텅 빈 수레이지 싶다. 사노 요코 님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엉뚱한 잊기쟁이가 된다며 한숨짓는다. 나도 한숨을 짓는다. 우리네 번역가 이웃님은 한말을 잊지 말아 주소서.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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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2.8.


《꽃보다 먼저 다녀간 이름들》

이종형 글, 삶창, 2017.12.15.



  다음주에 설날이라는 이야기를 어제 들었다. 구미 ‘삼일문고’에서 다음 3월에 ‘사진+사전’을 놓고서 이야기꽃을 펴려 하면서 날짜를 잡으려고 달력을 보다가 비로소 안다. 깜짝 놀란다. 그렇구나. 우체국도 바쁘겠네. 아이들을 낮잠 재우고서 부랴부랴 읍내로 나와서 삼일문고로 사진책 열 가지를 부친다. 재미있고 뜻있는 사진책 열 가지를 벌여놓고서 ‘마실하는 작은 사진도서관’을 한동안 열려고 한다. 시골버스를 타고 읍내를 다녀오며 시집 《꽃보다 먼저 다녀간 이름들》을 챙긴다. 제주사람 가슴에 맺힌 피멍을 시로 담아내어 들려주는데, 베트남을 다녀온 이야기가 시집 끝자락에 흐른다. 제주에서 뭇사람이 어리석은 총부림에 죽어나갔듯이 베트남에서 뭇사람이 어리석은 총부림에 죽어나간 자취를 되새기면서, 이 생채기와 아픔과 슬픔을 언제쯤 끝장낼 수 있을까 하는 울음소리가 흐른다. 곧 겨울이 저물고 봄이 기지개를 켜겠지. 읍내에서 볼일을 보며 걷는 동안 시집을 읽는다. 손가락이 언다. 언손은 호호 불고, 녹은 손으로 다시 시집을 쥔다. 얼마 만에 혼자 조용히 걸으면서 책을 읽었나. 집으로 돌아가는 시골버스에서는 수첩을 꺼내어 오늘 하루 아이들하고 지은 살림살이를 적바림한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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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2.7.


《미생물군 유전체는 내 몸을 어떻게 바꾸는가》

롭 드살레·수전 L. 퍼킨스 글/김소정 옮김, 갈매나무, 2018.1.22.



  두 아이랑 순천마실을 한다. 커피를 내릴 적에 쓰는 거름종이를 고흥에서는 찾을 수 없어 순천으로 가 보는데, 누렇고 끝이 뾰족한 거름종이는 못 찾는다. 누리저자에서 사야 하는구나. 다들 누리저자에서 산다는데 애써 걸음한 내가 잘못이지. 지난 순천마실에서는 탁구채를 장만했고, 오늘은 야구장갑을 장만할까 싶었으나 큰아이가 안 하겠노라 해서 그만둔다. 순천역 앞 저잣길을 거닐며 떡을 장만했고, 다리가 아프다는 아이들은 고흥으로 돌아가는 버스랑, 고흥읍에서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고단하게 잠든다. 나는 이 길에 《미생물군 유전체는 내 몸을 어떻게 바꾸는가》를 챙겨서 읽는다. 틈틈이 양자물리학을 익히기에 이러한 책을 찾아서 읽는다. 양자물리학이 아니었다면 이 책이 눈에 안 들어왔을 테고, 줄거리를 거의 못 알아들었지 싶다. 우리 몸뿐 아니라 지구라는 별을 이루는 바탕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돌아보도록 이끄는 이야기는 생각을 조물조물 북돋아 준다. 우리는 자그마한 목숨을 몸으로 받아들이면서 살아간다고 할 텐데, 이곳에서 무엇을 하려고 몸이라는 옷을 입으면서 마음이라는 숨결을 움직일까? 즐거움이란, 따분함이란, 웃음이란, 눈물이란, 일이란, 놀이란 모두 무엇일까?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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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2.6.


《불맛》

구광렬 글, 실천문학사, 2009.12.14.



  소리를 듣는다. 별이 흐르는 소리를 듣고, 해가 뜨는 소리를 듣는다. 두 아이가 일어나는 소리를 듣고, 장난감을 손에 쥐는 소리를 듣는다. 밥이 끓는 소리를 듣고, 국물이 보글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우리가 하는 말을 듣고, 유투브라는 길을 거쳐 이웃나라 사람들 목소리를 듣는다. 곁님이 문득 ‘말 = 소리’라고 이야기한다. 말소리란 목소리요, 목소리란 말소리라는, 마땅하다면 아주 마땅하고, 아무것도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닌 얼개를 혀에 얹는다. 말을 나눌 적에는 저마다 다르게 받아들인 뒤에 저마다 다르게 내놓는 소리를 나누는 셈이다. 시집 《불맛》을 읽는데 이야기 한복판으로 스며들기가 만만하지 않다. 시를 쓴 분이 소리를 살짝 낮추어 주면 좋겠다고, 깊은 곳에서 목을 거쳐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면 굳이 싯말로 담지 않아도 좋겠다고, 치레하거나 꾸미는 말을 굳이 붙여서 잔소리가 늘어나지 않게 하면 좋겠다고 느낀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동무나 아이한테 잔소리를 쉽게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곁소리라든지 사랑소리라든지 웃음소리를 들려줄 수 있다. 목소리뿐 아니라 숨소리를 나눌 수 있고, 말소리뿐 아니라 노랫소리를 나눌 수 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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