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기 2018.3.2.


《마들린느와 쥬네비브》

루드비히 베멀먼즈 글·그림, 시공주니어, 1994.3.17.



  시공주니어에서 1990년대부터 나라밖 손꼽히는 그림책을 한국말로 잔뜩 옮겨 주었다. 시공주니어가 아니어도 아름답고 훌륭한 그림책을 한국말로 옮기는 손길이 있었지만, 큰돈을 들여 잔뜩 옮기면서 이제껏 없던 새로운 책바람이 불 수 있기도 했다. 시공주니어에서 내는 책을 보면 간기에 언제나 ‘전재국’이라는 이름이 있다. 이 이름을 어떻게 바라볼는지는 아직 섣부를 수 있겠으나, 1951년에 나온 《마들린느와 쥬네비브》 같은 그림책을 비롯해서 수수한 이야기가 흐르는 숨결을 오늘날에도 새삼스레 마신다. 마들린느는 얼마나 씩씩한가. 쥬네비브는 얼마나 똑똑한가. 이러면서도 모두 개구쟁이요 장난꾸러기이다. 아이다움을 한껏 느끼면서 책을 넘긴다. 아이다움을 담는 아이스러운 붓끝을 느끼면서 앞으로도 흐르고 흘러 즐겁고 상냥한 웃음이 노래가 될 터전하고 마을을 그린다. 들개는 들개로되 얼마든지 동무요 놀이벗으로 삼을 줄 아는 마음이 곱다. 누가 벗인가. 누가 이웃인가. 벗은 어떠한 넋인가. 이웃은 어떠한 살림인가. 이런저런 곳에서 상을 받는 그림책도 멋지다고 여기지만, 더 놀라운 붓끝보다는 한결 수수하거나 수더분한 붓놀림으로 아이랑 함께 노는 그림책이 한국에서도 새록새록 태어나기를 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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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3.1.


《장난을 잘 치는 타카기 양 1》

야마모토 소이치로 글·그림, 대원씨아이, 2016.8.31.



  달이 바뀌어 3월 1일인데다가 국경일인 줄 어제 알았다. 그런데 오늘 우리 집에 택배가 온다. 이런 날에도 일하는 분이 고맙다. 따지면 나도 한 해 내내 쉬는 날이 없이 일한다. 집안일도 날마다 하고, 사전짓기도 날마다 한다. 오늘 받은 택배는 ‘물잣틀’이라고 할까, 영어로 펌프이다. 면소재지 수도집에서는 우리더러 와서 사서 들고 가라는데, 자전거로 짊어지고 오기에는 버거운 터라 누리저자로 살피니 물잣틀도 택배가 되네. 게다가 면소재지 수도집보다 3만 원 눅어 14만 원. 예전에 한 번 떼어내어 손질을 맡긴 적 있으니, 새 물잣틀도 얼마든지 손수 달 수 있겠지. 저녁을 지으며 만화책 《장난을 잘 치는 타카기 양》 첫째 권을 읽는다. 마음에 있는 짝꿍을 놀려먹는 재미로 학교를 다니는 아이는 언제나 즐겁게 골탕을 먹인다. 짓궂은 골탕이 아닌 상냥하면서 사랑스러운 골탕인 셈인데, 골탕을 먹는 아이는 매우 무디어 왜 이렇게 저를 골탕 먹이는가를 모른다. 곰곰이 보면 웬만한 사내는 으레 무딘 채 삶을 따분하게 보내지 않을까? 즐거운 놀이를, 재미난 살림을, 신나는 하루를 어떻게 지어서 나눌 적에 아름다울는지 잊거나 놓치는 사내가 많다. 나도 이 같은 사내가 아닌가 돌아보면서 어느새 둘째 권까지 읽어치운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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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2.28.


《우리말은 서럽다》

김수업 글, 나라말, 2009.8.3.



  비가 시원하게 온다. 들이붓고 퍼붓고 쏟아붓는다. 문득 돌아보니 겨우내 눈이나 비가 드물었다. 무척 고마운 비가 거세게 내린다. 빗줄기를 보며 우체국마실을 이튿날로 미룰까 생각하다가 그냥 가기로 한다. 달력을 안 보고 사니까 날씨도 안 보고 살자는 생각이다. 마침 비가 오니 반바지에 맨발 고무신으로 우산 받고 가면 되겠지. 비가 드센 탓인지 시골버스에 손님이 나까지 둘. 읍내에서도 어린이랑 푸름이 몇을 빼고는 돌아다니는 사람도 적다. 읍내로 나오는 길에, 볼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우리말은 서럽다》를 읽는다. 글쓴이 김수업 님이 책이름으로 “우리말은 서럽다” 하고 붙인 뜻을 잘 알 만하다. 국립국어원에서 내는 사전도 엉망이고,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 동안 말을 말답게 가르치는 얼거리가 없다. 대학교라 해서 나아지지 않는다. 사회에서도 말넋을 가꾸는 길이 흐리멍덩하다. 2009년을 지나 2018년 요즈음은 어떨까? 글쓰기 책이 쏟아지고 글쓰기에 마음 두는 분이 많은데, 이제는 한국말이 새롭게 살아나는 길을 열면서, 이웃나라하고 온갖 말을 어깨동무하면서 즐겁게 꽃피우는 말살림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우리말은 즐겁다”는 생각으로 말꽃을 피우고 싶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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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2.27.


《꼬마 철학자 소라와 플라톤 1》

타나카노카 글·그림, 대원씨아이, 2013.5.15.



  면소재지 철물점에 연모를 장만하러 갔다가 김치에다가 감귤에다가 쑥떡에다가 김까지 얻었다. 철물점에 아직 학생인 아이가 둘 있구나 싶어서, 더없이 고마운 마음에 내가 쓴 사전하고 책을 여러 권 챙겨서 드렸다. 월요일에 받은 김을 화요일에 우체국에 가서 음성 할머니하고 일산 할머니한테 부치려고 생각했지만 몸이 따라주지 못한다. 하루 쉬고 수요일에 부치자고 생각하며 느긋하게 하루를 보낸다. 밥을 차려 놓고서 두 아이는 부엌에서, 나는 평상에 앉아서 먹는다. 머잖아 아이들도 “우리도 평상에서 해바라기 하며 먹을래요.” 하고 따라나오리라 본다. 밥그릇을 비운 뒤에는 만화책 《꼬마 철학자 소라와 플라톤》 첫째 권을 편다. 이 만화책이 처음 나온 해에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잊고 지나쳤다. 어른, 아이, 거북, 이렇게 셋이 입과 마음으로 나누는 말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엮는다. 수수하면서 따사로운 기운이 흐르는 만화책이지 싶다. 세 사람은 서로 기대기도 하고 스스로 서려고 하기도 하면서 하루를 새롭게 맞이한다. 우리도 이와 같으리라. 때로는 넘어질 수 있고, 씩씩하게 일어서거나 그냥 자빠질 수 있다. 어떠하든 다 좋다. 내가 너를 바라보고, 네가 나를 바라보는 이곳에서 노래가 싹튼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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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기 2018.2.26.


《흙집에 관한 거의 모든 것》

황혜주 글, 행성비, 2017.12.22.



  대학교수이면서 흙집짓기를 가르치는 분이 쓴 《흙집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조금씩 읽는다. 집살림을 가꾸는 길을 걷는 이라면 수수하게 말할 텐데, 대학교수 자리에 있으면 자꾸 겉치레 어려운 말씨가 된다. 이 책에는 ‘흙집 짓는 길’보다는 ‘왜 흙집인가?’를 밝히는 글이 거의 다 차지한다. 한참 읽으며 생각하니, ‘흙집 짓는 솜씨’는 그리 어렵잖이 누구나 배울 수 있어도 ‘흙집을 어떻게 지어 어떻게 살 생각인가’라는 대목은 뜻밖에도 거의 헤아리지 않을는지 모른다. 글쓴이 스스로 이 대목을 털어놓는다. 흙이란 무엇인가를 깊이 살피려는 분이 처음에는 거의 없단다. 전기무자위가 말썽인지 보일러가 말썽인지 아리송하나, 보일러가 물을 방바닥에 돌리도록 하는 부품이 망가진 듯해서 이 녀석을 떼어 자전거를 몰아 면소재지 철물점에 간다. 수도공사를 하는 집은 전화를 걸어도 늘 시큰둥. 자전거로 면소재지를 두 차례 오간 끝에 새 부품을 단다. 보일러 물관에 찬 흙물을 뺀다. 이제 전기무자위가 조용히 잘 돌아간다. 면소재지 철물점 아지매가 주신 신김치로 곁님이 김치국수를 삶았다. 등허리를 펴려고 자리에 누워 돌아본다. 《흙집에 관한 거의 모든 것》에 나오듯이 우리 집 안쪽 벽에 흙을 발라 볼까 싶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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