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사마귀가 가방에 알을 낳았네
[시골노래] 이 자리가 가장 아늑했구나
봄에 나락을 심은 시골지기는 이 한가을에 나락을 베느라 부산합니다. 제비는 일찌감치 바다를 가로질러 따스한 나라로 돌아갔습니다. 참새나 비둘기는 들판에 몰래 내려앉아 나락을 훑고 싶습니다. 뱀이나 개구리는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이 날씨에 겨울잠을 자야겠다고 생각하리라 느낍니다. 한밤에는 때때로 반딧불이가 나는데, 반딧불이를 비롯한 풀벌레도 곧 겨울이 다가오는 줄 느끼겠지요.
아침에 빨래를 해서 마당에 넙니다. 오늘은 읍내에 볼일이 있어서 곧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며 광에서 가방을 꺼냅니다. 해가 잘 드는 자리에 세운 빨랫대 곁에 가방을 펼쳐서 햇볕을 쪼여 줍니다.
이렇게 하고서 물병이랑 이것저것 챙깁니다. 작은아이는 집에서 소꿉놀이를 하겠노라 말하고, 큰아이만 아버지를 따라 읍내마실을 하겠노라 합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이제 가방을 들고 길을 나서려는데, 제 가방에 뭔가 일이 생겼습니다.
무슨 일일까요?
흙사마귀 한 마리가 제 가방 한쪽에 알을 낳았어요. 아니, 어느새? 어느 틈에 흙사마귀 한 마리는 제 가방으로 찾아들어 알을 낳았을까요? 몇 분 안 되는 그 짧은 겨를에.
우리 집에는 사마귀가 꽤 많습니다. 풀빛이 감도는 사마귀한테는 ‘풀사마귀’라는 이름을 붙이고, 흙빛이 짙은 사마귀한테는 ‘흙사마귀’라는 이름을 붙여요. 사마귀로서 잡아먹을 다른 벌레가 많으니 사마귀도 많으리라 느끼는데, 요즈막에는 마당 한쪽에 뒹구는 사마귀 주검을 곧잘 봅니다. 아마 알을 낳고 스스로 숨이 다한 사마귀이지 싶습니다.
때로는 짝짓기를 하려는 암수 사마귀를 보고, 암사마귀한테 머리를 잡아먹힌 수사마귀를 보기도 합니다. 나비를 잡아챈 사마귀를 보기도 하고, 이래저래 온갖 모습 사마귀를 늘 마주해요. 그렇지만 이렇게 제 가방에 찾아들어 알을 낳은 사마귀는 처음입니다.
이 흙사마귀는 제 가방이 아주 아늑하리라 여겼겠지요. 뜨끈뜨끈 볕도 잘 받았고, 가방 천이라 폭신하기도 하고, 구석진 자리도 있고, 여러모로 참 좋다고 여겼을 테지요.
한동안 흙사마귀하고 눈을 마주하면서 마음속으로 말을 건넵니다. ‘얘야, 너는 이 자리가 가장 좋았나 보구나. 알았어. 네 알집이 다치지 않도록 잘 건사할게. 네 모든 기운을 쏟아서 지은 알집이고 네 숨결이 고스란히 깃든 알집인 줄 알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제 풀숲으로 고이 돌아가서 네 새로운 꿈길로 가렴.’
흙사마귀가 혼자 조용히 떠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 줍니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다시 마당으로 나오니 흙사마귀는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사마귀 알집은 칼로 살살 떼어냅니다. 이 사마귀 알집이 가으내 겨우내 잘 있도록 돌보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새가 쪼거나 개미한테 들통나지 않도록 잘 지켜 주리라 다짐합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