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80 남편과 아내 사이



  《남편이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다》나 《아내를 위한 식탁》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누가 누구한테 해주는 밥보다는 “함께 짓는 즐거운 밥자리”가 가장 맛나면서 사랑스럽고 빛나리라 생각합니다. 남한테 이런 말을 하기보다 스스로 할 노릇이기에, 지난 2017년에 ‘아버지 육아일기·전업주부일기’를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이란 이름을 붙여서 내놓았습니다. ‘사내(돌이)’가 도맡아서 ‘해주는’ 집안일이 아닌, “함께 살림을 즐겁게 짓자”는 마음이 되도록 씨앗을 심는 길이 즐거우며 아름답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남편’이 아니고, 저랑 사는 사람은 ‘아내’가 아닙니다. 우리는 서로 ‘곁님’입니다. 아이들은 저한테 ‘부양가족’이 아닙니다. ‘집님’입니다. 우리 보금자리에서 네 사람은 서로 ‘곁님·집님’이면서 ‘살림님·사랑님’입니다. 이러면서 ‘별님·숲님·꽃님·이야기님’으로 나아가자고 생각해요. 어깨동무하는 곳에서 놀이가 태어나거든요. 손잡는 데에서 사랑이 싹트고요. 노래하는 곳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춤추는 곳에서 손을 잡습니다. 순이돌이(여남)를 가르기보다는 돌이순이(남녀)가 보금자리를 즐겁게 사랑으로 짓는 슬기롭고 푸른 눈빛이 되어 함께 노래하는 꽃둥지로 가기를 꿈꿉니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책빛 2021.12.22.

책하루, 책과 사귀다 78 제비



  지난날에는 우리나라 우체국 그림이 ‘제비’였습니다. 어느 돈터(은행)는 ‘까치’를 얼굴(상징)로 삼았습니다. 제비나 까치는 우리나라에서 널리 사랑받던 새입니다만, 시골이 줄고 서울이 자라는 사이에 차츰 잊히거나 미움받는 숨결로 바뀝니다. 이러던 어느 날 우체국도 돈터도 제비 그림하고 까치 그림을 슬그머니 치웠고, 이를 눈치채지 못하는 분이 무척 많습니다. 봄이 되면 찾아오는 반가운 새인 제비처럼, 우리한테 반가이 글월이 찾아든다는 이야기를 제비 그림으로 나타냈는데, 제비보다 빠른 누리길(인터넷)에 밀린 셈입니다. 묵은 우편번호부를 들추다가 ‘우편 도령’이라는 이름을 보았어요. ‘도령’은 ‘도련님’처럼 오랜 우리말입니다. 우체국에서 제비 그림을 치우는 동안 ‘우편 도령’뿐 아니라 ‘도령’ 같은 이름도 이 삶자리에서 스러지거나 잊힙니다. 더 빠르고 더 크고 더 많이 쌓아올려야 한다는 오늘날이기에 ‘도령’은 시골스럽거나 예스러워서 느리고 작고 적다고 여길 테지요. 책은 더 빨리 더 많이 읽어야 할까요? 더 훌륭하거나 더 좋거나 더 이름난 책을 읽어야 할까요? 마음을 담아 차근차근 손글씨로 글월을 나누는 길은 낡았을까요? 마음을 담아 찬찬히 여민 책은 ‘이름이 안 났’으면 읽을 값이 없을까요?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책빛 2021.12.21.


백신반대·백신패스반대 : 코로나백신 문제가 불거지기 앞서, 우리 집은 모든 예방주사(백신)를 거슬렀다. 우리 집은 스스로 모든 백신이 무엇인가를 샅샅이 살피며 스스로 배웠으니까. 백신회사는 어느 정치집단과 얽혔는지도 살펴보았는데 ‘에스테스 키포버’같은 사람은 ‘제약회사·정부’ 이음고리(커넥션)를 비롯한 막짓(독과점 문제)을 파헤치며 미국 벼슬판(정치사회)에서 목소리를 내다가 갑자기 죽기도(암살) 했다. 


이이가 쓴 책으로 《독점―소수의 손에》가 1979년에 우리말로 나온 적 있는데, 까맣게 파묻혔다. 꽤 오래된 책이지만 요새 되읽어도 ‘제약회사·정부’로 끝이 아닌 ‘제약회사·정부·군대·종교’가 얽힌 뒷짓을 헤아릴 만하다. 그러나, 인터넷이 총칼(군사무기) 가운데 하나인 줄 제대로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빠른길(고속도로)조차 총칼(군사무기)이기에, 싸움이 터졌을 때 어떻게 바뀌는가를 모르는 사람이 숱하겠지. 나라에서 내세우는 길(복지·기간산업)은 속내를 파면 모두 ‘총칼(군사작전)으로 돌릴 길’이다. ‘꿍꿍이(음모론)’가 아닌 ‘민낯·속내(진실)’을 읽지 않으면 ‘나라(정부)가 시키는 대로 허수아비’이다. 일제강점기 숱한 친일부역자와 일본 벼슬꾼(공무원)을 읽어내지 않으면 누구나 눈먼 글바치(지식인)가 될 뿐이다. 


레프 톨스토이가 늘그막에 뒤늦게 깨우치고 쓴 책이 《국가는 폭력이다》이고, 톨스토이는 노벨문학상을 손사래쳤다. 레프 톨스토이는 ‘총칼(전쟁무기)로 벌어들인 돈으로 보람(노벨상)을 주면서 총칼질(전쟁)을 감추는 짓’이 사람들 눈귀를 막는다고 여겼다. 그러나 ‘노벨상’이 얽힌 민낯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뜻밖에 적다. 우리나라에서 노벨상을 받은 이가 아직 없는 대목은 부끄럽지 않다. 그런 ‘총칼질 무리’에 굳이 낄 까닭이 없다. 우리 집 아이들은 약도 백신도 없이 열넷·열한 해째 고뿔(감기)조차 없이 튼튼히 잘 논다. 나는 서른 해 가까이 약도 백신도 없이 ‘가끔 일 많이 한 몸살’ 빼고는 몸앓이가 없다. 약을 먹으니 앓고, 병원에 가니 죽는다. 


이반 일리치를 읽으면 뭐 하나? 이녁 말대로 “자전거가 행복을 부르”고. “병원이 죽음을 부르”는데, 이반 일리치를 읽고도 부릉이(자가용)를 안 버리고, 병원 그냥 다니고, 대학교 그냥 가고, 대학졸업을 자기소개에 버젓이 적는 그들이 어떻게 ‘어른(지성인)’일 수 있을까?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이든 《젠더》이든 《그림자 노동》이든 《깨달음의 혁명》이든 《학교 없는 사회》이든 《병원이 병을 만든다》이든, 책만 읽는 바보가 되는 이웃은 이제 사라지기를 빈다. 


읽었으면 움직이고 삶으로 녹여내기를 빈다. ‘반인권 차별’을 밀어붙이는 이 나라(정부)에 허수아비(거수기)를 노릇을 하는 이들은 민주도 평등도 평화도 아니다. 그저 힘꾼(기득권)이다. 낡은 힘꾼은 걷어치울 일이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숲노래 책빛 2021.12.20.

책하루, 책과 사귀다 77 아쉬운 책



  아쉽다고 여긴 책을 놓고서 느낌글을 굳이 쓸까 말까 한참 망설이지만 웬만하면 쓰려고 합니다. 아쉬운 책을 쓴 분이 우리나라 사람이건 이웃나라 사람이건 부디 글팔이 아닌 살림꽃이란 마음으로 처음부터 다시 걸어가기를 바라기에 느낌글을 씁니다. 읽었으니 읽은 느낌을 고스란히 옮깁니다. 스스로 선 자리에서 스스로 짓는 사랑이라는 눈길로 헤아리면서 느낌글을 씁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며 사랑하는 손길을 바탕으로 느낌글을 씁니다. 두멧시골에서 살아가며 마주하는 숲·바람·풀꽃나무·비·별·바다를 곁에 놓고서 느낌글을 여밉니다. 부릉이(자동차)를 몰지 않고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달리면서 살아가는 오늘을 돌아보면서 느낌글을 씁니다. 나라지기(대통령)나 고을지기(시장·군수)가 지나간다고 해서 쳐다볼 일이 없이, 철마다 새롭게 피고 지는 꽃잎하고 풀잎을 바라보면서 느낌글을 씁니다. 다른 사람이 쓴 느낌글을 따올 일이 없습니다. 제가 살림을 짓고 삶을 가꾸며 사랑을 속삭이는 눈빛으로 쓰면 넉넉한 느낌글입니다. 아쉽다고 느끼는 책을 죽 보면, 무엇보다 사랑이 없습니다. 숲이 없습니다. 해바람비가 없고, 풀꽃나무가 없습니다. 맨손에 맨발이 없고, 아이랑 어깨동무하는 눈망울이 없고, 새·풀벌레가 없더군요.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숲노래 책빛

책하루, 책과 사귀다 76 가게 집 터 숲 바다



  한자 ‘방(房)’은 우리말로는 ‘칸’을 가리킵니다. ‘책방 = 책칸’으로, “책이 있는 칸”이지요. 알맞게 추슬러서 책을 갖추니 ‘책칸’이고, 책을 사고팔면서 ‘책가게’요, 집처럼 포근하게 꾸려 ‘책집’이면서, 책으로 새롭게 일구는 땅이기에 ‘책터’이고, 숲에서 푸르게 넘실거리는 숨결을 그러모아 나누는 자리인 ‘책숲’으로 갑니다. 이윽고 넉넉하면서 푸진 ‘책바다’로 잇닿고, 느긋이 놀이하고 일하며 어우러지는 ‘책마당’이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차곡차곡 짓는 ‘책밭’으로 곁에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이름을 붙이면서 어떤 마음을 북돋울 적에 즐겁고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울까요? 수수하게 ‘책가게·책집’부터 생각을 이어 ‘책칸·책터’를 지나 ‘책숲·책바다’를 누리다 보면 ‘책마당·책밭’에 이르기 마련이요, ‘책누리·책나라’나 ‘책구름·책바람’에 ‘책날개·책나무’라든지 ‘책꽃·책들’로 흐드러질 만합니다. ‘책놀이터’도 즐겁고 ‘책가꿈터’도 반갑습니다. ‘책지음터’도 멋스럽고 ‘책나눔터’도 상냥해요. ‘책이음터’가 되다가 ‘책살림터’로 피어나기도 할 테지요. ‘책노래터’나 ‘책사랑터’는 어떨까요? 틀을 벗어나면 다 다르게 빛나는 오늘 이곳이 신나게 춤춥니다.


ㅅㄴㄹ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