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는 사람이 있는 책



  아끼는 사람이 있으면 어느 책이든 두고두고 사랑받습니다. 아끼는 사람이 없으면 어느 책이든 어느새 시름시름 앓듯이 사그라듭니다. 팔림새를 놓고 ‘사랑받는 책’인가 아닌가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사랑은 숫자로 따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버이가 아이한테 더 비싼 옷을 입히거나 더 값진 밥을 먹이기에 사랑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잘 팔리거나 많이 팔린 책이 되기에 ‘사랑받는 책’이지 않습니다. 어느 책 하나를 읽은 사람이 스스로 새롭게 기운을 내고 일어서면서 삶을 아름답게 짓도록 북돋운다면, 이 책은 모두 ‘사랑받는 책’이요, 어느 모로 본다면 ‘사랑을 가르친 책’입니다.


  아끼는 사람이 있으면 어느 마을이든 오순도순 살기 좋습니다. 아끼는 사람이 있으면 어느 일거리이든 즐겁게 할 만합니다. 아끼는 사람이 있으면 밥 한 그릇이 더욱 맛있고, 아끼는 사람이 있으면 노랫가락이 한결 싱그러우면서 반갑습니다.


  아끼는 손길이 모든 넋을 새롭게 살립니다. 아끼는 눈길이 모든 숨결을 새롭게 북돋웁니다. 아끼는 마음길이 모든 사랑을 새롭게 깨웁니다. 4348.11.20.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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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얻는 길



  사람이 살며 책으로 얻는 길도 한 갈래 있다. 책으로만 얻는 길이 아니라, 책으로도 얻는 길이다. 사람한테는 책이 있어도 즐겁고, 책이 없어도 즐겁다. 나를 둘러싼 모든 숨결이 사랑이요 꿈인 줄 안다면, 바로 이 모든 사랑이랑 꿈은 언제나 즐거우면서 아름다운 책이 되는구나 하고 느끼리라 본다.


  무릎에 책 한 권 얹어서 이야기를 읽는다. 두 다리로 땅을 박차고 달리면서 바람을 마신다. 두 손으로 흙이랑 풀을 매만지면서 살림을 짓는다. 두 눈으로 구름을 보고 꽃을 보면서 노래를 부른다. 두 귀로 풀벌레랑 멧새가 지저귀는 새로운 가락을 들으면서 웃음이 피어난다. 널로 짠 마룻바닥에 앉아서 숲노래를 흥얼거린다. 4348.11.8.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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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어 주는 사이



  우리는 책을 읽어 주는 사이. 네가 바라기에 읽어 주고, 내가 즐거우니 서로 읽어 준다. 나긋나긋 따사로운 목소리에 고운 사랑을 실어 책을 읽어 준다. 도란도란 마음꽃을 피우면서 차근차근 읽어 준다. 자, 들어 보렴. 이 책에 흐르는 이야기로 오늘 하루도 신나는 꿈을 함께 꾸어 보지 않겠니. 자, 함께 읽을까. 이 책에 깃든 이야기로 너랑 나랑 서로 아끼면서 기쁘게 뛰어노는 하루를 지어 보자. 4348.10.30.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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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노래하는 책



  삶을 곱게 바라보면서 그리는 시 한 줄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저마다 이 지구별 삶을 곱게 바라보면서 시 한 줄을 그릴 수 있으면 가을은 새롭도록 싱그러울 테지요. 가을바람을 새삼스럽도록 푸르게 다시 누리려고 시를 한 줄 손수 써서 읽습니다. 시인이어도 시를 쓰고 시인이 아니어도 시를 씁니다. 가수가 아니어도 노래를 부르고 가수여도 노래를 부릅니다. 오늘 하루를 즐겁게 열면서 밥을 짓고 빨래를 하며 아이들하고 복닥입니다. 가을이라서 따로 가을내음 짙은 책이 있다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어느 책이든 기쁜 마음으로 집어서 펼칠 수 있다면 모두 ‘가을을 노래하는 책’이 됩니다. 내 마음이 가을을 노래할 적에 비로소 가을책이면서 가을사랑으로 거듭납니다. 4348.10.22.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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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교육’을 ‘책’으로 할 수 있을까



  책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 책으로는 언제나 책 이야기를 할 수 있구나 하고 느낀다. 모든 책에는 저마다 이야기를 담기 마련이지만, 사람은 책을 길동무로 삼기는 하더라도, 삶은 책 바깥에서 이룬다. 아름다운 책을 읽더라도 아름다운 이야기는 책을 손에 쥐는 동안 흐른다. 책을 내려놓으면 삶은 책하고 다르다.


  책에서 얻은 이야기가 삶에서도 흐르리라 여길 수 없다. 삶에서 누리는 이야기를 책에서도 함께 누리자고 여길 때에 비로소 책을 즐거이 맞이할 만하다고 느낀다. 책처럼 짓는 삶이 아니라, 삶을 짓듯이 책을 한 권씩 만나면서 즐겁게 노래하는 하루가 된다.


  그러니까, 인성교육이든 무슨무슨 교육이든 책으로는 할 수 없다. 오직 삶으로 할 수 있다. 직업교육이든 지식교육이든 학교에서는 할 수 없다. 오직 마을이랑 집에서 삶으로 할 뿐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학교는 삶터 구실을 하나도 못 하면서 오직 시험공부 하는 데에서 그친다. 마을 이야기를 함께 짓는 학교라 한다면, 학교에서 인성교육이나 다른 여러 가지 교육을 할 만하다. 그러나 마을 이야기를 함께 짓지 못할 뿐 아니라, 마을하고는 동떨어진 채 ‘출퇴근하는 공무원’만 있는 학교라 한다면, 이 학교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책이 여러모로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사람다운 마음결로 나아가려고 하는 ‘인성교육’이라면, 모름지기 삶자리에서, 그러니까 어버이랑 아이가 이웃하고 동무를 아끼는 하루를 누려야 한다. 숲·나무·풀·꽃이며 온갖 벌레·새·뭇짐승에다가 바람·해·별·달·구름 모두를 헤아릴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따순 마음이나 고운 마음이나 착한 마음이나 너른 마음을 키우거나 가꾸거나 살찌울 만하리라 느낀다. 별 한 톨 못 보는 아이들이 무슨 착한 마음이 되겠는가? 바람 한 줄기 느끼지 못하는 어른들이 무슨 고운 마음을 가르치겠는가? 가을에 가을볕을 함께 쬐고, 겨울에 겨울노래를 함께 부를 적에 비로소 삶이요 교육이며 사랑이 된다. 4348.10.21.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책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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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e 2015-10-21 12:00   좋아요 0 | URL
˝별 한 톨 못 보는 아이들이 무슨 착한 마음이 되겠는가?
바람 한 줄기 느끼지 못하는 어른들이 무슨 고운 마음을 가르치겠는가?
가을에 가을볕을 함께 쬐고, 겨울에 겨울노래를 함께 부를 적에
비로소 삶이요 교육이며 사랑이 된다.˝

무척 공감 가는 글입니다.
가을에 가을 볕을 함께 쬐고, 겨울에 겨울 노래를 함께 부를 수 있는 것이
근간이 되는 그런 교육이 몹시 그립습니다.^^

숲노래 2015-10-21 12:56   좋아요 0 | URL
곧 모든 곳에서
누구나 즐겁게 나눌 수 있기를 꿈꾸어요.

그러나 사회는 국정교과서 같은 바보짓을 일삼는데
슬기롭고 똑똑하며 착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보살피는 어버이와 어른이
훨씬 많으리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