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교육’을 ‘책’으로 할 수 있을까
책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 책으로는 언제나 책 이야기를 할 수 있구나 하고 느낀다. 모든 책에는 저마다 이야기를 담기
마련이지만, 사람은 책을 길동무로 삼기는 하더라도, 삶은 책 바깥에서 이룬다. 아름다운 책을 읽더라도 아름다운 이야기는 책을 손에 쥐는 동안
흐른다. 책을 내려놓으면 삶은 책하고 다르다.
책에서 얻은 이야기가 삶에서도 흐르리라 여길 수 없다. 삶에서 누리는 이야기를 책에서도 함께 누리자고 여길 때에 비로소 책을 즐거이 맞이할
만하다고 느낀다. 책처럼 짓는 삶이 아니라, 삶을 짓듯이 책을 한 권씩 만나면서 즐겁게 노래하는 하루가 된다.
그러니까, 인성교육이든 무슨무슨 교육이든 책으로는 할 수 없다. 오직 삶으로 할 수 있다. 직업교육이든 지식교육이든 학교에서는 할 수 없다.
오직 마을이랑 집에서 삶으로 할 뿐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학교는 삶터 구실을 하나도 못 하면서 오직 시험공부 하는 데에서 그친다. 마을
이야기를 함께 짓는 학교라 한다면, 학교에서 인성교육이나 다른 여러 가지 교육을 할 만하다. 그러나 마을 이야기를 함께 짓지 못할 뿐 아니라,
마을하고는 동떨어진 채 ‘출퇴근하는 공무원’만 있는 학교라 한다면, 이 학교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책이 여러모로 도움이 될 수도 있겠지만, 사람다운 마음결로 나아가려고 하는 ‘인성교육’이라면, 모름지기 삶자리에서, 그러니까 어버이랑 아이가
이웃하고 동무를 아끼는 하루를 누려야 한다. 숲·나무·풀·꽃이며 온갖 벌레·새·뭇짐승에다가 바람·해·별·달·구름 모두를 헤아릴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따순 마음이나 고운 마음이나 착한 마음이나 너른 마음을 키우거나 가꾸거나 살찌울 만하리라 느낀다. 별 한 톨 못 보는 아이들이 무슨 착한
마음이 되겠는가? 바람 한 줄기 느끼지 못하는 어른들이 무슨 고운 마음을 가르치겠는가? 가을에 가을볕을 함께 쬐고, 겨울에 겨울노래를 함께 부를
적에 비로소 삶이요 교육이며 사랑이 된다. 4348.10.21.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책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