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보는 책인가



  흔들리는 버스나 전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제가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저는 열일곱 살부터 이런 책읽기를 했습니다. 열일곱 살이던 해에 어버이가 집을 옮기는 바람에 그때부터 고등학교를 두 다리 아닌 버스로 다녀야 했고, 버스로 한 시간 즈음 다녀야 하는 길에 언제나 한 손에 책을 쥐고서 제 마음을 책을 거쳐서 읽으려 했습니다. 흔들리는 곳에서 책을 어떻게 읽을까요? 흔들림에 맞추어 제 몸을 똑같이 흔들기에 얼마든지 읽습니다. 흔들리는 곳에서 제 몸이 안 흔들리도록 하려면 책이며 눈이 다 흔들려서 글씨가 눈에 안 들어옵니다. 그러나 버스나 전철이 흔들리는 결하고 제 몸을 똑같이 맞추어 움직이면(흔들면), 제 눈은 책을 또렷이 바라보고 아무 흔들림 없이 책을 읽습니다. 책을 읽을 적에는 오직 책만 바라봅니다. 다른 것을 바라볼 까닭이 없습니다. 창밖을 본다거나 버스·전철을 탄 다른 손님을 볼 까닭이 없습니다. 사내라는 몸을 입고 태어난 터라, 제 또래는 버스를 타면 으레 ‘가시내라는 몸을 입고 태어난 여학생’을 흘깃거리는데, 저는 그런 흘깃질에 마음이 없었어요. 거꾸로 제 또래는 책읽기에 마음이 없었습니다. 책읽기를 오래 하다 보니, 이제는 1000쪽에 이르는 책도 몇 분이나 몇 초 만에 읽어낼 수도 있습니다. 1000쪽이건 2000쪽이건 이러한 책에 깃든 참거짓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어요. 무슨 심령술사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숲에 깃들어 숲을 늘 마주하면서 숲을 읽으려 한다면, 숲을 척 보아도 숲이 아픈지 튼튼한지 바로 알아챕니다. 저는 책으로 제 마음읽기를 어릴 적부터 했기에, 어느 책을 보든 이 책을 쓴 분이 ‘무엇을 바라보고 바라며 책을 냈는가’를 마음으로 읽습니다. 이를테면, 돈을 바라보았는지, 이름값을 바라보았는지, 교수 자리를 바라보았는지, 티없는 넋으로 이웃한테 앎을 나누려 했는지, 즐겁게 배움길을 걸으며 깨달은 슬기를 벗한테 알려주고 싶은지, 어설피 짚은 헛다리가 헛다리인 줄 모르고 자랑을 늘어놓으려 하는지 …… 들이 책 겉종이만 보아도 한눈에 들어와요. 그런데 퍽 오랫동안 놓친 대목이 있습니다. 책을 보며 책을 읽어낼 줄 아는 눈이라면, 사람을 보며 사람을 읽어낼 줄 아는 눈으로도 옮아 가야 아름답겠지요. 이 눈으로 살림과 삶과 사랑을 읽고 알아내며 즐겁게 꽃피우는 눈으로도 옮겨 가야 기쁘겠지요. 그러니까, 저는 책으로 마음을 읽는 눈을 키우기는 했어도, 그 다음 길을 어떻게 간다든지 새로 지필 만하다는 대목을 못 느끼거나 생각을 않은 채 살았습니다. 열일곱부터 걸어온 이 길이 어느 고비를 맞이한 요즈음 아주 짤막한 말 한 마디가 벼락처럼 가슴으로 스몄습니다. “더 할 수 있습니다”라는 한 마디입니다. 이 말을 들려준 분은 저더러 책을 앞으로 어떻게 읽으라거나, 여러 마음닦기나 몸닦기를 어떻게 다스리라고 이끌거나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저 다른 여러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이 한 마디 “더 할 수 있습니다”를 들려주었을 뿐입니다. 저는 이 한 마디를 듣고 먼저 물속에서 제 몸을 새롭게 맞추어 보았습니다. 눈을 뜨고 골짝물에 잠겨 숨을 일곱걸음 내뱉아 보았지요. 세걸음 내뱉기까지는 어렵잖이 되는데, 네걸음을 내뱉으려니 문득 숨이 막혀요. 이때에 “더 할 수 있습니다”를 떠올리며 몸에 그렸고, 그 뒤 거침없이 물속에서 숨을 내뱉을 수 있었고, 냇바닥에 착 가라앉아서 달라붙은 제 몸 둘레로 온갖 물고기가 맴돌면서 ‘반가워, 잘 왔어. 우리 같이 놀자.’ 하고 속삭여 주었습니다. 우리 몸에는 끝이 없지만, 우리 몸은 이 몸뚱이에 끝이 있는지 없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끝이 있다는 생각을 씨앗 한 톨로 심으면 몸은 이대로 따라갑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끝이 없다는 생각을 다시 씨앗 한 톨로 심으면 몸은 또 이대로 따라갑니다. 무엇을 먹어야 튼튼해지지 않겠지요. 무엇을 안 먹어야 튼튼해지지 않을 테고요. 먹든 말든, 마음이 기쁨인지 두려움인지 살필 줄 알아야지 싶습니다. 하든 안 하든, 하다가 그치든 끝까지 해보려 하든, 제대로 바라보아야지 싶습니다. 우리는 어디를 보는 책읽기를 할까요? 우리는 무엇을 바라는 마음읽기를 할까요? 우리는 어떤 사랑으로 나아가려는 꿈읽기를 할까요? 길은 늘 우리 마음에 있고, 길을 바라보는 눈은 언제나 스스로 머리를 어떻게 틔워서 가슴을 어떻게 여는가에 달린 노릇이지 싶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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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대가?



  고흥에서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가 거침없이 달립니다. 으레 황전쉼터에서 쉬거나 임실군 오수쉼터에서 쉬는데, 오늘 따라 이 시외버스는 황전에서도 오수에서도 안 쉽니다. 저는 그리 대수롭지 않아서 쉼터에 안 들러도 됩니다만, 거의 세 시간쯤 달리는 시외버스가 내체 달리기만 하니 손님 한 분이 오줌을 참기 어려운지 버스 일꾼한테 말을 여쭙니다. 버스 일꾼은 쉼터 아닌 어느 길가에 버스를 댑니다. 손님 한 분은 길가에서 풀밭에 깃들어 오줌을 눕니다. 볼일을 마친 손님 한 분은 버스에 오르면서 사람들한테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입니다. 깜짝 놀랍니다. 아니, 손님이 고개를 숙일 일일까요? 마땅히 섰어야 하는 쉼터에 안 쉬었고, 쉼터에서 안 쉰다고 알림말 한 마디 없었으니, 다른 손님한테 고개를 숙이며 미안하다 말할 사람은 버스 일꾼이요, 이렇게 시외버스를 거침없이 몰고 쉼터를 들르지 않은 일꾼을 거느린 버스회사 우두머리입니다. 왜 그대가 고개를 숙이나요? 왜 이렇게 우리는 길든 몸짓이 되나요? 따져야 할 모습이 보이면 따질 노릇이고, 파헤쳐야 할 곳을 제대로 파헤쳐야 할 노릇이기에, 책 하나를 손에 쥐어 읽을 적에, 이모저모 샅샅이 훑으면서 배울 대목하고 아쉬운 대목을 짚습니다. 그리고 저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곰곰이 돌아보면서 제 몸짓이나 말짓에서 군더더기를 제때에 제대로 깨달으려고 합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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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그릇



  플라스틱 물병이나 통이나 그릇을 안 쓸 수 있을까요?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을 버릴 수 있을까요? 안 쓴다면 언제부터 안 쓸 수 있을까요? 버린다면 어떤 몸짓으로 버릴 수 있을까요? 아마 다섯 갈래 길이 있으리라 봅니다. 또는 다른 길이 더 있을 수 있을 테고요. 플라스틱을 안 쓰거나 버리는 길을 하나씩 짚어 봅니다.


 ㉠ 누구한테서 이야기를 듣기 앞서 느낌으로 알기에, 플라스틱을 안 쓰거나 버린다 ㉡ 누구한테서 이야기를 듣고 곧장 플라스틱을 안 쓰거나 버린다 ㉢ 책·신문에서 읽고 바로 안 쓰거나 버린다 ㉣ 책·신문에서 읽고 스스로 더, 깊이, 낱낱이 알아본 뒤에 안 쓰거나 버린다 ㉤ 내 삶자리뿐 아니라 이웃 삶자리에서도 플라스틱이 사라지도록 한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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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벌레 수다



  제가 서너 살 아이일 적에 어떻게 놀았는지 가만히 돌아보았습니다. 그무렵 저는 온갖 짓을 다 하며 놀았구나 싶고, 우리 어머니는 너그러이 모든 놀이를 받아들여 주었지 싶습니다. 언제나 포근하다고 느끼며 놀았고, 이때에 즐긴 놀이 가운데 ‘벌레 되기’가 있습니다. 숲에 깃들어 가랑잎하고 죽은 가지가 널브러져 보이는, 그러니까 사람 눈으로는 이렇게 보이는 숲바닥에 납작 엎드렸습니다. 서너 살 제 모습은 어디이건 가리지 않고 납작 엎드려서 ‘벌레가 되어’ 벌레 눈으로 보고 벌레 더듬이로 느끼며 벌레 다리로 기면서 벌레 입으로 맛보며 놀았거든요. 다음부터는 제가 벌레가 되었을 무렵 벌레가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너희(사람)는 우리(풀벌레)를 몰라도 너무 몰라

1. 우리(벌레)한테 말하는 입(발성기관)이 없다고? 모르는 소리 하지 마. 우리(벌레)한테는 말하는 입이 있을 까닭이 없어. 더듬이가 왜 있니? 더듬이로 말하지. 이 더듬이를 쓰면 아무리 멀리 있어도 서로 말을 나눌 수 있어. 너희(사람)처럼 입으로 소리란 걸 내야 하지 않아.


2. 너희가 우리하고 말을 나누고 싶다면 입을 다물어. 우리가 되어 함께 기어다녀. 그리고 눈으로 보려 하지 말고 몸으로 봐. 온몸으로 보고 기고 듣고 느끼면 우리하고 말할 수 있어.


3. 너희는 왜 우리가 너희 몸을 타고 오르거나 기어서 오르는지 궁금하지? 너희가 풀밭이나 숲에 우뚝 서거나 앉으면, 너희 몸뚱이를 나무처럼 여겨. 그런데 나무가 무언지 아니? 너희가 나무로 여기는 것은 우리한테는 나무가 아니라 집이야. 너희가 나무로 여기는 것은 우리한테 집이면서 먹이 곳간이야. 언제까지나 마르지 않는 먹이가 샘솟는 곳간이면서 우리를 아늑하게 지킬 터를 지을 수 있는 집이지. 그래서 너희 몸이라고 하는 곳을 기어다니면서 먹이를 찾고 집을 지을 만한 데를 찾지. 너희가 산 목숨이니까 너희 몸에 집을 짓지는 못하지만, 너희가 죽은 목숨이라면 얼마든지 너희 몸에 집을 지어. 그리고 너희 몸을 집이자 먹이 곳간으로 삼아서 다 쓰면 너희 몸은 흙으로 돌아가.


4. 제발 너희 눈으로 우리를 따지거나 재려고 하지 마. 너희가 풀싹이나 새싹이라고 일컫는 것이 바로 우리한테 나무야. 우리는 한 해를 살면서 풀싹이나 새싹이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보며 기뻐하지. 풀싹이나 새싹이 무럭무럭 자라듯 우리도 꾸준히 허물벗이를 하면서 자라. 자라는 기쁨을 느끼고 배우는 것이 나무이기에, 우리한테 나무는 바로 풀싹하고 새싹이야.


5. 너희가 우리처럼 되면, 너희가 우리처럼 놀면, 우리는 너희 몸을 타고 오르거나 기어서 다닐 엄두를 안 내. 왜냐고? 그때에는 너희가 우리를 잡아먹을는지 모르잖아! 너희처럼 커다란 몸뚱이인 벌레가 숲을 돌아다닌다고 생각해 봐! 얼마나 무서운데! 그렇지만 너희가 우리를 잡아먹지 않고 얌전히 우리를 지켜보거나 살펴본다면 너희가 어떤 벌레인가를 살피려고 살짝살짝 다가설 수 있어. 그러나 너희(벌레가 된 사람)가 언제 우리를 잡아먹을는지 모르니 늘 살금살금 다가설 뿐이지.


6. 네가 개구리가 된다면 모기는 너를 물 수 없어. 생각해 봐. 모기가 개구리한테 다가가면 어떻게 되겠니? 숲에서 모기가 싫다면 개구리처럼 굴어. 그러면 돼.


7. 하나 덧붙인다면, 우리가 너희 몸에서 기어다니는 길은 너희 몸에서 긁어 줄 만한 곳이야. 우리는 우리 먹이를 찾으려고 너희가 나무라고 이르는 것을 기어다니는데, 이렇게 기어다니면서 나무라고 하는, 우리한테는 집이자 먹이 곳간인 것에서 아픈 데를 콕콕 쑤시거나 파헤치지. 그러면 우리한테 맛난 밥이 흘러. 너희 몸을 깨물면 우리한테 좋은 밥(독소나 찌꺼기)이 나오고, 그러면 너희한테도 이바지를 하겠지.


8. 더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네가 가야 한다니 이만 줄일게.


(숲노래/최종규 . 보고 들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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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물 수다



  지리산 기스락 골짜기에서 비를 맞았습니다. 보름 남짓 비가 들지 않더니 갑자기 구름이 몰려들었고, 빗방울이 가볍게 들다가 어느새 굵게 쏟아집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빗물에 몸을 맡겨 씻는다고 합니다. 두 팔을 벌려 빗물이 더 구석구석 스미도록 합니다. 엎드리고 누우면서 빗방울을 맞이합니다. 바위에 누워서 한참 비를 맞는데 문득 빗물이 말을 겁니다. 아니, 빗물이 수다를 떨겠다고 합니다. 다음부터는 빗물이 쉴새없이 떠든 수다입니다. ㅅㄴㄹ


내가 왜 찾아가는지 이야기할게.

1. 너희가 도시에 살면서 맨몸으로 비 맞을 일이 드물잖아. 이 자리에서 사람들이 ‘비 맞는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찾아왔어. 빗물로 몸 씻을 줄 아는 사람은 어젯밤 찾아왔을 때 미리 맞았겠지?


2. 곧 해가 날 테니 신나게 비를 맞으렴.


3. (너희 몸에) 빗물 떨어지는 곳은 너희가 아픈 곳이야. 아픈 곳을 생각하면서 맞으렴. 비 맞고 나서 왜 오줌 마려운 줄 알아? 아픈 곳에 빗물 맞으면서 찌꺼기(독소)가 빠져나와야 하기 때문이야.


4. 네가 궁금한 한 가지를 알려줄게. 사람들이 비 온 뒤에는 나물이 싱겁거나 맛없어진다고 하잖아? 왜 그런 줄 아니? 그냥 밭에서 기르는 풀은 한 가지 성분만 세서 독하다고 여겨서 삶거나 데치거나 찌거나 무쳐서 먹지. 그런데 그러면 풀맛을 알 수 없지. 양념맛 소금맛일 뿐이야. 풀맛 없이 먹는 나물은 풀이 베푸는 맛이나 고마움을 누리게 못하지. 풀이 주는 영양소도 못 누려. 그래서 내(빗물)가 내리는 까닭은 풀맛을 부드럽게 해서 날로 먹으라는 뜻이야. 비 오는 날 풀을 뜯어먹으면 아주 맛있고, 너희(사람) 몸에도 좋지. 우리(빗물)가 바로 풀을 맛나게 해 주는 참 양념이야. 풀을 풀 그대로 먹도록 해주는 참된 양념이지. 비가 오지 않는 날에는 샘물이나 냇물처럼 흐르는 물에 풀을 살살 적셔서 먹어 봐.


5. 자, 이제 오늘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 바로 해를 보낼게. 다음에 만나.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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