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대가?
고흥에서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가 거침없이 달립니다. 으레 황전쉼터에서 쉬거나 임실군 오수쉼터에서 쉬는데, 오늘 따라 이 시외버스는 황전에서도 오수에서도 안 쉽니다. 저는 그리 대수롭지 않아서 쉼터에 안 들러도 됩니다만, 거의 세 시간쯤 달리는 시외버스가 내체 달리기만 하니 손님 한 분이 오줌을 참기 어려운지 버스 일꾼한테 말을 여쭙니다. 버스 일꾼은 쉼터 아닌 어느 길가에 버스를 댑니다. 손님 한 분은 길가에서 풀밭에 깃들어 오줌을 눕니다. 볼일을 마친 손님 한 분은 버스에 오르면서 사람들한테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입니다. 깜짝 놀랍니다. 아니, 손님이 고개를 숙일 일일까요? 마땅히 섰어야 하는 쉼터에 안 쉬었고, 쉼터에서 안 쉰다고 알림말 한 마디 없었으니, 다른 손님한테 고개를 숙이며 미안하다 말할 사람은 버스 일꾼이요, 이렇게 시외버스를 거침없이 몰고 쉼터를 들르지 않은 일꾼을 거느린 버스회사 우두머리입니다. 왜 그대가 고개를 숙이나요? 왜 이렇게 우리는 길든 몸짓이 되나요? 따져야 할 모습이 보이면 따질 노릇이고, 파헤쳐야 할 곳을 제대로 파헤쳐야 할 노릇이기에, 책 하나를 손에 쥐어 읽을 적에, 이모저모 샅샅이 훑으면서 배울 대목하고 아쉬운 대목을 짚습니다. 그리고 저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곰곰이 돌아보면서 제 몸짓이나 말짓에서 군더더기를 제때에 제대로 깨달으려고 합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