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 수다



  지리산 기스락 골짜기에서 비를 맞았습니다. 보름 남짓 비가 들지 않더니 갑자기 구름이 몰려들었고, 빗방울이 가볍게 들다가 어느새 굵게 쏟아집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빗물에 몸을 맡겨 씻는다고 합니다. 두 팔을 벌려 빗물이 더 구석구석 스미도록 합니다. 엎드리고 누우면서 빗방울을 맞이합니다. 바위에 누워서 한참 비를 맞는데 문득 빗물이 말을 겁니다. 아니, 빗물이 수다를 떨겠다고 합니다. 다음부터는 빗물이 쉴새없이 떠든 수다입니다. ㅅㄴㄹ


내가 왜 찾아가는지 이야기할게.

1. 너희가 도시에 살면서 맨몸으로 비 맞을 일이 드물잖아. 이 자리에서 사람들이 ‘비 맞는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찾아왔어. 빗물로 몸 씻을 줄 아는 사람은 어젯밤 찾아왔을 때 미리 맞았겠지?


2. 곧 해가 날 테니 신나게 비를 맞으렴.


3. (너희 몸에) 빗물 떨어지는 곳은 너희가 아픈 곳이야. 아픈 곳을 생각하면서 맞으렴. 비 맞고 나서 왜 오줌 마려운 줄 알아? 아픈 곳에 빗물 맞으면서 찌꺼기(독소)가 빠져나와야 하기 때문이야.


4. 네가 궁금한 한 가지를 알려줄게. 사람들이 비 온 뒤에는 나물이 싱겁거나 맛없어진다고 하잖아? 왜 그런 줄 아니? 그냥 밭에서 기르는 풀은 한 가지 성분만 세서 독하다고 여겨서 삶거나 데치거나 찌거나 무쳐서 먹지. 그런데 그러면 풀맛을 알 수 없지. 양념맛 소금맛일 뿐이야. 풀맛 없이 먹는 나물은 풀이 베푸는 맛이나 고마움을 누리게 못하지. 풀이 주는 영양소도 못 누려. 그래서 내(빗물)가 내리는 까닭은 풀맛을 부드럽게 해서 날로 먹으라는 뜻이야. 비 오는 날 풀을 뜯어먹으면 아주 맛있고, 너희(사람) 몸에도 좋지. 우리(빗물)가 바로 풀을 맛나게 해 주는 참 양념이야. 풀을 풀 그대로 먹도록 해주는 참된 양념이지. 비가 오지 않는 날에는 샘물이나 냇물처럼 흐르는 물에 풀을 살살 적셔서 먹어 봐.


5. 자, 이제 오늘 내 이야기는 여기까지. 바로 해를 보낼게. 다음에 만나.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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