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딪히는 책



  아직 해보지 않은 일을 하려고 부딪힌다면 늘 즐겁구나 싶어요. 아직 가지 않은 길을 가려고 나선다면 언제나 신나는구나 싶어요. 부딪히기란 즐거운 배움짓이고, 나서기란 신나는 배움길이지 싶습니다. 낯선 책을 손에 쥐어 읽으려는 몸짓은, 낯설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읽고서 우리 삶을 새롭게 짓도록 마음을 가다듬으려고 하는 일이지 싶습니다. 책읽기란, 나한테 익숙한 이야기가 아닌 나한테 낯선 이야기를 굳이 애써서 찾아나서면서 부딪히고 새롭게 생각하는 배움놀이라고 느낍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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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모르는 책읽기



  서울마실길에 어느 공원에서 마을아이들하고 어울려 놀던 큰아이는 어느 어른이 귀뚜라미를 함부로 손가락으로 튕겨서 날리는 모습을 보았다고 합니다. 큰아이는 귀뚜라미가 깜짝 놀라며 아파하는 줄 느꼈고, 귀뚜라미를 손가락으로 튕긴 어른한테 귀뚜라미가 싫어하는 그런 걸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답니다. 귀뚜라미를 손가락으로 튕긴 어른은 큰아이한테 ‘어른한테 그런 말 하는 것 아니다!’ 하면서 나무랐다고 하더군요. 큰아이는 울먹울먹하면서 말을 못하고, 큰아이하고 어울려 놀던 마을아이들이 이 얘기를 들려주었어요. 큰아이를 토닥이고 품에 안고서 속삭였습니다. “벼리야, 누가 벼리를 보고 예쁘고 멋지고 훌륭하다고 하면 기쁘니? 생각해 보렴. 누가 벼리를 보고 좋다고 하든 나쁘다고 하든, 그건 벼리 참모습이 아니야. 그저 그 사람이 보고 생각하는 그 사람 모습일 뿐이야. 누가 우리를 보고 아름답다고 말하기에 우리가 아름답지 않아. 누가 우리를 보고 멍청하다고 말하기에 우리가 멍청하지 않아. 우리는 우리일 뿐이야. 몸집은 어른이지만 어른이 아닌 사람이 많아. 그리고 나이가 많다고 해서 벼리 같은 어린이를 얕보는 사람이 있어. 그런 사람들이 벼리한테 무슨 말을 할 적마다 웃을 일도 울 일도 없단다. 벼리 마음을 보렴. 그리고 귀뚜라미는 걱정할 일 없어. 귀뚜라미는 풀밭에 깃들어 잘 쉴 테야.” 멋모르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멋모르고 뜬금없이 읽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밝히는 책을 손에 쥐고도 이 이야기를 저 이야기나 그 이야기처럼 잘못 짚는 사람이 있습니다. 멋모르는 말에 하나하나 대꾸하다가는 우리 삶이 흐려지겠지요. 겉멋을 꾸미는 길이 아닌, 삶멋을 짓고 삶맛을 펴며 삶길을 고이 가꾸는 마음을 품으며 비로소 어른이 되는 이웃을 그립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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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많아도



  돈이 많아도 이 돈을 어디에 쓸 줄 모른다면, 주머니에 돈이 어마어마하더라도 돈이 제구실을 못합니다. 책이 많아도 이 책을 읽고서 어디에 쓸 줄 모른다면, 머리에 담은 지식이 엄청나더라도 책이 제몫을 못합니다. 모으는 데에서 그칠 돈이 아닌, 어디에 어떻게 쓰면서 즐겁고 아름다운 삶이 되도록 하려는가를 배우고 알아야 합니다. 읽는 데에서 그칠 책이 아닌, 어디에 어떻게 받아들이면서 기쁘고 사랑스러운 살림이 되도록 다루려는가를 익히고 알아야 하지요. 지식이나 이론은 아무리 많아도 덧없습니다. 삶이 있어야 하고, 살림을 해야 하며, 사랑을 지을 줄 아는 사람으로 하루를 열고 마음을 기울일 노릇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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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연기를 하고 싶은가



  고흥에서 순천으로 가는 시외버스에 텔레비전이 켜졌습니다. 손님이 제법 있으니 이 아침연속극을 보시는 듯합니다. 아침연속극에는 싸움, 때리기, 죽이기, 악쓰기, 속이기, 시샘하기, 성내기, 빼앗기, 괴롭히기, 울기, 소리치기 들이 쉬지 않고 흐릅니다. 이런 연속극을 아침에 들여다보면서 우리 머리나 마음은 어떻게 될까요?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방송사는 왜 아침마다 이런 줄거리로 연속극을 내보낼까요? 저녁에도 매한가지이지요. 왜 연속극이며 운동경기이며 영화이며 죄다 죽이고 죽고 싸우고 다투고 때리고 맞고 악쓰고 울고부는 그런 줄거리를 다루어야 할까요? 우리를 이런 틀에 길들여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는 길은 아닐까요? 그런데 무엇보다 연기자 마음을 모르겠습니다. 연기자는 이런 연기를 참말 하고 싶을까요? 누구를 미워하고 싫어하다가 죽이려고 하는 마음을 온몸으로 드러내는 연기를 참으로 하고 싶을까요? 이런 연기를 훌륭히 해내야 이름을 떨치고 돈도 벌며 보람이 있을까요? 연기는 그냥 연기가 아니라 삶으로 뒤바뀌지 않을까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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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TV방송은 틀림없이



  좋은 TV방송을 보면 좋은 마음이 된다는 이웃님 말을 듣다가 불쑥 한마디를 하고야 맙니다. “그런데 선배는 늘 좋은 TV방송을 보기만 할 뿐, 몸으로는 안 움직이지 않나요? 좋은 TV방송은 이제 그만 봐도 되지 않나요?” 이 말을 하고서 깊이 뉘우칩니다. 이 말은 고스란히 나한테 돌아올밖에 없습니다. ‘좋거나 훌륭하거나 사랑스럽다고 하는 책은 이제 그만 읽어도 되지 않나?’ 하고 물을 만하니까요. 좋은 책도, 훌륭한 책도, 사랑스러운 책도 참말 꾸준히 새로 나옵니다. 좋거나 훌륭하거나 사랑스러운 책을 그때그때 장만해서 보기만 해도 한삶을 다 보낼 만합니다. 이제 책은 그만 읽어도 될 만합니다. 이러다가 다시 생각해 봅니다. 자질구레한 일을 줄여서 아름다운 책을 읽으며 날마다 마음을 정갈히 돌보는 길을 걸어도 될 노릇 아닌가 하고요. 아침저녁으로 푸르게 하늘숨을 마시고 아이들하고 기쁨을 노래하다가 아름다운 책을 몇 줄씩 읽고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을 다스리면 될 노릇 아닌가 하고요. 좋은 TV방송은 틀림없이 있습니다. 이러한 TV방송도 얼마든지 즐길 만합니다. 그런데 TV방송하고 책은 큰 얼거리에서 달라요. TV방송은 화면을 켜고 전기를 써야 합니다. 책은 숲에서 왔고, 해가 뜬 날 가만히 펴서 언제라도 누릴 수 있습니다. 책이 더 좋다거나 아름답다는 뜻이 아닙니다. 저는 전자책을 굳이 읽을 뜻이 없습니다. 전기를 안 먹고도 삶을 새롭고 아름답게 밝히는 길동무가 책이라 한다면, 이 책 몇 가지를 살뜰히 건사하면 좋겠다고 여길 뿐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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