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쉼



다리를 쉬려면 일찌감치 택시를 불러 집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순천서 작은아이 새 잠옷이랑 털신을 장만한 다음 귤하고 딸기까지 장만합니다. 이러고서 버스를 타고 '골목책방 서성이다'에 들릅니다. 작은아이는 그림책을 넘기다가 그림을 그리고, 나는 어깨에 기운이 돌기를 기다리면서 몇 가지 책을 눈으로 담고 읽다가 장만해서 고흥 돌아가는 시외버스에서 읽어야지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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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을 받을 책


아산으로 이야기마실을 와서 기쁘며 신나게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이 자리에서 교사 이웃님한테 천안에 있는 헌책집 〈갈매나무〉하고 〈뿌리서점〉에 보물 같은 책, 이른바 ‘꽃책’이 잔뜩 있다고 말씀을 여쭈면서, 제 살림돈이 모자라 눈앞에 아른거리면서도 장만하지 못한 책이 참 많다고, 적어도 300만 원어치 책을 장만해서 사전짓기라는 길에 곁책으로 삼고 싶다고, 그렇게 못 장만한 300만 원어치에 이르는 책 가운데 하나로 ‘조선총독부에서 낸 국어 교과서’ 하나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야기꽃을 마치고 함께 낮밥을 먹는 자리에서 교사 이웃님 한 분이 저한테 말씀합니다. “최 선생님이 못 샀다는 책 가운데 조선총독부 교과서 하나는 제가 선물로 사 드리고 싶습니다.” 책선물이란 마음선물 아닐까 싶습니다. 아니, 책선물이란 사랑선물일 테지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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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는 않아서



아직 말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 살던 무렵, 오늘날 제 몸으로 보자면 스물을 갓 넘긴 나이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든지 ‘그럼에도’ 같은 말씨를 곧잘 썼어요. 이제 이런 말씨는 안 씁니다. 어설픈 번역 말씨라서 안 쓰기보다는 제 넋이나 뜻을 살뜰히 담아낼 만한 말시가 아니로구나 싶어서 안 써요. 이웃님이 이 대목을 읽어 주시면 좋겠어요. 우리가 말씨를 가다듬거나 바로잡는다고 할 적에는 ‘안 옳다’거나 ‘틀리기’ 때문이 아니에요. 때로는 두 가지, ‘안 옳’거나 ‘틀려’서 가다듬거나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만, 이보다는, 아름답지 않고 즐겁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고 반갑지 않고 달갑지 않고 신나지 않아서 안 쓴다고 해야지 싶어요. 생각해 봐요. 우리가 즐겨쓰는 말씨란 말 그대로 즐겁게 쓰는 말씨입니다. 즐겁게 쓸 말씨를 쓰되, 즐겁게 쓰는 말씨가 우리 스스로 보기에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가를 돌아볼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 아름답거나 사랑스럽게 나아가는 길에 벗님이 될 책을 살펴서 장만하고 읽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보이는 몸짓이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가를 헤아리고, 이 아이들하고 새로 지울 기쁜 살림을 꿈꾸면서 하루를 열려고 해요. 책이란 참 재미있어요. 우리 삶을 담아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 스스로 지을 삶을 넌지시 귀띔해 주어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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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딱읽기



고흥에서 순천을 거쳐 아산으로 오는 길에 책 두 권을 뚝딱 읽었습니다. 퍽 두툼한 책도 가볍게 마무리를 지었어요. 이러고서 동시를 다섯 꼭지를 썼고, 가만히 눈을 감고 노래를 들으며 차분히 마음을 다스려 보았어요. 이러고도 틈이 남아서 그동안 쪽글조차 못 보내고 살던 여러 이웃님한테 새로 낸 동시집을 알리는 쪽글을 신나게 보냅니다. 이러고도 또 틈이 남기에 천안에 있는 책집을 두 곳 들러 이럭저럭 넉넉히 새로운 읽을거리를 장만합니다. 생각해 보면 책 몇 권쯤 뚝딱 읽기는 매우 쉽습니다. 책 한 권을 짓기까지 글쓴이는 기나긴 해를 쏟았고, 엮은이도 퍽 오래 품을 들였을 텐데 말이에요. 책을 뚝딱 읽어낼 적마다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어쩜 이렇게 뚝딱 읽어도 좋을 만큼 훌륭한 선물을 베풀어 주셨을까! 나는 고작 삼십 분이나 한 시간 만에 이 엄청난 이야기를 읽고 살피고 헤아리면서 배우잖아! 책이란 얼마나 값싼 배움길인가!’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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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시급이 우스운 책



뜨개질을 익혀서 실하고 바늘을 골라 수세미 하나를 뜨기까지 얼마나 걸리는가를 헤아리면, 그 기나긴 나날에 실값에 바늘값에 품값이란 어마어마합니다. 그런데 손수 뜬 실수세미 하나를 돈을 치러 장만하자면 고작 3000원 안팎이요, 1000원밖에 안 하는 실수세미도 있습니다. 실값이며 바늘값이며 품값이나마 될까요? 삶을 돈으로 친다면 할 수 있는 일이란 어쩌면 하나도 없다고 할 만합니다. ‘돈이 안 되는 일’을 하느라 품을 바치기보다는 ‘돈을 벌어서 돈을 안 쓰는 길’이 가장 똑똑할는지 모릅니다. 저더러 왜 자가용을 장만하지 않느냐고, 왜 굳이 시골버스를 타고 시외버스를 타면서 다니느냐고, 왜 등짐을 짊어지고 다니느냐고 묻는 이웃이 많습니다. 이런 걸음이나 삶은 참 바보스러울 수 있겠다고 느낍니다. 자가용이라면 휙 다녀올 길을 찬바람 맞으며 시골버스를 기다리고 등짐을 짊어지며 나르자면 오래 걸리고 힘도 드니까요. 하루에 한두 시간쯤 들여 열흘에 걸쳐 헌 바지를 기웠는데요, 드디어 오늘 헌 바지 손질을 마쳐서 즐겁게 입고 나서 생각해 보니, 꽤 긴 품을 들였구나 싶습니다. 이른바 최저시급으로 쳐도 헌 바지를 손질하는 데에 쓴 스물 몇 시간이란, 차라리 곁일을 뛰고서 새 바지를 살 적에 훨씬 돈이 적게 든다고까지 할 만해요. 그러나 손수 바늘을 쥐어 바지를 기웁니다. 스무 해 남짓 입어 많이 해진 바지는 다리를 뭉텅 잘라 엉덩이하고 샅을 대는 깡똥바지로 고치려고 합니다. 이 바느질을 하자면 또 열 몇 시간을 열흘쯤 나누어서 들이겠지요. 틀림없이 매우 빠른 길이 있고, 참말로 돈이 되는 길이 있을 텐데, 저는 이런 길이나 저런 길은 쳐다보지 않습니다. 제가 살림하고 살아갈 길을 바라봅니다. 아마 책읽기하고 글쓰기도 이와 같을 테지요. 돈만 바라본다면 책을 읽는 틈이란 매우 아까울 만합니다. 책 읽을 틈에 돈을 더 벌면 돈이 모일 테니까요. 다만 저는 사람이요, 생각을 짓는 사람이요, 사랑을 꿈꾸는 사람이니, 굳이 돈이나 최저시급이 안 될 책읽기하고 글쓰기를 합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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