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는 않아서



아직 말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 살던 무렵, 오늘날 제 몸으로 보자면 스물을 갓 넘긴 나이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든지 ‘그럼에도’ 같은 말씨를 곧잘 썼어요. 이제 이런 말씨는 안 씁니다. 어설픈 번역 말씨라서 안 쓰기보다는 제 넋이나 뜻을 살뜰히 담아낼 만한 말시가 아니로구나 싶어서 안 써요. 이웃님이 이 대목을 읽어 주시면 좋겠어요. 우리가 말씨를 가다듬거나 바로잡는다고 할 적에는 ‘안 옳다’거나 ‘틀리기’ 때문이 아니에요. 때로는 두 가지, ‘안 옳’거나 ‘틀려’서 가다듬거나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만, 이보다는, 아름답지 않고 즐겁지 않고 사랑스럽지 않고 반갑지 않고 달갑지 않고 신나지 않아서 안 쓴다고 해야지 싶어요. 생각해 봐요. 우리가 즐겨쓰는 말씨란 말 그대로 즐겁게 쓰는 말씨입니다. 즐겁게 쓸 말씨를 쓰되, 즐겁게 쓰는 말씨가 우리 스스로 보기에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가를 돌아볼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 아름답거나 사랑스럽게 나아가는 길에 벗님이 될 책을 살펴서 장만하고 읽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보이는 몸짓이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가를 헤아리고, 이 아이들하고 새로 지울 기쁜 살림을 꿈꾸면서 하루를 열려고 해요. 책이란 참 재미있어요. 우리 삶을 담아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 스스로 지을 삶을 넌지시 귀띔해 주어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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