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시급이 우스운 책
뜨개질을 익혀서 실하고 바늘을 골라 수세미 하나를 뜨기까지 얼마나 걸리는가를 헤아리면, 그 기나긴 나날에 실값에 바늘값에 품값이란 어마어마합니다. 그런데 손수 뜬 실수세미 하나를 돈을 치러 장만하자면 고작 3000원 안팎이요, 1000원밖에 안 하는 실수세미도 있습니다. 실값이며 바늘값이며 품값이나마 될까요? 삶을 돈으로 친다면 할 수 있는 일이란 어쩌면 하나도 없다고 할 만합니다. ‘돈이 안 되는 일’을 하느라 품을 바치기보다는 ‘돈을 벌어서 돈을 안 쓰는 길’이 가장 똑똑할는지 모릅니다. 저더러 왜 자가용을 장만하지 않느냐고, 왜 굳이 시골버스를 타고 시외버스를 타면서 다니느냐고, 왜 등짐을 짊어지고 다니느냐고 묻는 이웃이 많습니다. 이런 걸음이나 삶은 참 바보스러울 수 있겠다고 느낍니다. 자가용이라면 휙 다녀올 길을 찬바람 맞으며 시골버스를 기다리고 등짐을 짊어지며 나르자면 오래 걸리고 힘도 드니까요. 하루에 한두 시간쯤 들여 열흘에 걸쳐 헌 바지를 기웠는데요, 드디어 오늘 헌 바지 손질을 마쳐서 즐겁게 입고 나서 생각해 보니, 꽤 긴 품을 들였구나 싶습니다. 이른바 최저시급으로 쳐도 헌 바지를 손질하는 데에 쓴 스물 몇 시간이란, 차라리 곁일을 뛰고서 새 바지를 살 적에 훨씬 돈이 적게 든다고까지 할 만해요. 그러나 손수 바늘을 쥐어 바지를 기웁니다. 스무 해 남짓 입어 많이 해진 바지는 다리를 뭉텅 잘라 엉덩이하고 샅을 대는 깡똥바지로 고치려고 합니다. 이 바느질을 하자면 또 열 몇 시간을 열흘쯤 나누어서 들이겠지요. 틀림없이 매우 빠른 길이 있고, 참말로 돈이 되는 길이 있을 텐데, 저는 이런 길이나 저런 길은 쳐다보지 않습니다. 제가 살림하고 살아갈 길을 바라봅니다. 아마 책읽기하고 글쓰기도 이와 같을 테지요. 돈만 바라본다면 책을 읽는 틈이란 매우 아까울 만합니다. 책 읽을 틈에 돈을 더 벌면 돈이 모일 테니까요. 다만 저는 사람이요, 생각을 짓는 사람이요, 사랑을 꿈꾸는 사람이니, 굳이 돈이나 최저시급이 안 될 책읽기하고 글쓰기를 합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