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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천의 권 1
Buronson 글, 하라 테츠오 그림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5월
평점 :
절판


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하늘처럼 파랗게 두 손 가득



《창천의 권 1》

 부론손 글

 하라 테츠오 그림

 조진숙 옮김

 학산문화사

 2002.5.25.



  중학교 2학년 무렵이라고 떠오르는데, ‘기술’이란 갈래에서 하는 ‘제도’를 배워야 해서 값비싼 ‘제도 참고서’를 사야 했고, 어머니한테서 돈을 받아 학교 앞 문방구로 걸어가다가 그만 주먹떼를 마주쳤습니다. 이들은 대여섯이었나 예닐곱이었는데, 저하고 동무를 두들겨패고서 돈을 빼앗습니다.


  돈을 빼앗긴 채 집으로 울면서 돌아오니 우리 형은 도리어 저를 나무랍니다. 얼간이 같은 놈들한테 돈을 빼앗기고도 모자라, 맞고 울면서 돌아오느냐고, 넌 안 되겠으니 바로 무술학원에 다녀야겠다면서 제 손목을 움켜쥐고 온갖 무술학원을 찾아갔어요.



“염왕을 잡아? 푸하하! 염왕이 폐하의 호위병이 되면 우린 하루아침에 거지꼴이 되고 말 텐데! 당연히 찾는 즉시 없애버릴 거야!” (40쪽)



  태권도, 유도, 합기도 …… 이런 저런 무술학원을 찾아가서 어떻게 가르치는가를 지켜본 우리 형은 이도 저도 내키지 않습니다. 이러다가 특전무술을 가르치는 데에 저녁나절에 닿는데, 우리 형은 이곳이 마음에 든다며 대뜸 제 이름을 적어 넣고 이튿날부터 다니라고 얘기합니다.


  특전무술을 가르치는 그곳은 가장 어린 배움이가 고등학교 2학년이고, 그나마 한 사람입니다. 이이하고 저를 뺀 모든 사람은 스무 살이 넘어요. 어쩜 이렇게 벅찬 곳에 집어넣는가 싶었으나, 무술학원 막내 가운데 그야말로 꼬꼬마라는 대목 때문에 오히려 이를 악물기로 했어요.



“왜 말하지 않았어요, 리! 나에 대해 다 말하지 그랬어요!” “우린 친구를 팔지 않아! 그게 청방이야!” (51쪽)


“이 은혜를 어떻게 갚지?” “필요 없어.” “뭐라구?” “친구잖아?” (73쪽)



  우리 주먹은 왜 있을까요? 우리는 주먹으로 무엇을 할 만할까요? 주먹이란 다른 사람이나 짐승을 때리라고 있을까요? 푸른별 사람들이 걸어온 자취를 돌아보면, 아무래도 하나같이 싸움자취입니다. 어느 나라를 돌아보아도 이른바 ‘역사’란 이름으로 남기는 얘기는 한결같이 싸움박질입니다.


  《창천의 권 1》(부론손 글·하라 테츠오 그림/조진숙 옮김, 학산문화사, 2002)를 읽습니다. 이 만화에 앞서 《북두의 권》이 있어요. 두 만화는 어깨동무를 하는 줄거리입니다. 사람들이, 아니 사내들이 참다운 빛을 잃고서 오직 ‘돈·가시내·마약’에 사로잡혀 노닥질을 하고 쌈박질로 하루를 보내는 어지럼판을 오직 맨주먹으로 때려부수면서 “넌 이미 죽어 있다”라는 한 마디를 날리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오호! 북두의 별이 소원을 이루어준 건가? 짐을 위해 잘 와주었다!” (철썩!) “으아악! 아브브브브! 아파! 무슨 짓이냐! 부모한테도 맞은 적이 없는 짐을! 짐은, 짐은, 짐은, 황제다!” “거 참 되게 시끄럽군, 이 얼뜨기! 차라리 죽어버리지 그래? 인간 말종, 똥자루야!” (100∼101쪽)



  어릴 적부터 어른이 된 오늘에 이르기까지 늘 생각에 잠깁니다. 우리 눈은 왜 있을까요? 우리 이는 왜 있을까요? 우리 귀는 왜 있을까요? 우리 손발은 왜 있을까요? 우리 몸은 왜 있을까요? 스스로 묻고 생각합니다. 실마리가 보이지 않아도 다시 묻고 자꾸 묻습니다.


  어느 날 문득 어디에선가 소리를 들려주는 빛덩이가 있어요. “얘야, 사람한테 주먹이란, 작은 씨앗을 든든히 감싸서 지켜 주려고 있단다. 그리고, 이 움켜쥐면서 생기는 주먹이란 눈물을 훔치라고 있고, 빗물을 떨구라고 있단다. 이 주먹은 어른이 된 몸으로 아이들을 두 팔에 대롱대롱 매달리게 해서 즐겁게 노는 구실이란다.”


  그래요. 그렇지요. 싸우라는 주먹이 아닌, 씨앗을 감싸면서 바깥 그 어느 얄궂거나 자질구레하거나 지저분한 것도 스미지 못하도록 돌보는 주먹일 테지요. 누가 주먹을 쥐어 때리려고 달려들면 손을 활짝 펴서 가볍게 톡톡 스치며 흘려보내라는 손일 테지요. 맞싸우는 주먹이 아닌, 안쓰럽거나 가엾거나 바보스러운 이웃을 보면 스스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이 눈물을 씻으라는 주먹일 테고요.



“잠꼬대 하지 마! 개가 사람을 물면 그 책임은 주인한테 있어!” (106쪽)


“힘겨루기는 끝났어. 죽을 필요는 없어.”“경호원 생활에 열중하다가 내 권법은 녹슬어 버렸어. 아니, 나 자체가.” (159∼160쪽)



  무술학원이란 곳을 다니면서 날마다 담금질을 했습니다. 무술학원 사범은 날마다 저를 숱하게 집어던졌습니다. 집어던지면서 늘 말하지요. “바닥에 떨어질 적에 바로바로 낙법을 해서 몸이 안 다치게 해라.” 어리다고 봐주는 눈치가 하나도 없는 무술학원에서 이를 깨물고 살아남으려고 집하고 학교하고 무술학원 사이를 날마다 뜀박질로 오갔어요. 버스를 아예 안 탔고, 걷기조차 안 했어요. 등짐이 가볍건 무겁건 늘 달렸어요. 비가 와도 눈이 와도 그저 눈비를 맞으면서 달립니다. 건널목에 걸리면 제자리뛰기를 했고, 건널목이 푸른불로 바뀌면 이내 다시 달렸지요.


  무술학원 다른 사람들이 한 시간 동안 땀을 빼면 저는 두 시간 동안 땀을 뺐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팔굽혀펴기를 백 판 하면 저는 이백 판을 했습니다. 무엇이든 곱빼기로 했고, 온힘을 다해 한 해 동안 무술학원을 버티어 냈어요.



“죽을 자리는, 어디든 상관 없어.” (174쪽)


“보답을 하고 싶네.” “됐습니다.” “그럼 이것밖에 없지만 이거라도 가지고 가게.” “라면 값은 그리 비싸지 않습니다.” “자넨, 내 딸의 생명을 구해 줬어.” “그럼 담배 한 개비, 그거면 됩니다.” “왜 구해 준 건가?” “후우, 맛있군. 당신은 여기서 죽기에는 아깝다, 그렇게 보였을 뿐.” (190∼191쪽)



  무술학원을 다닌 뒤로는 얻어맞은 일이 없을까요? 여느 삶터에서는 얻어맞은 일은 없습니다만, 군대에서는 노상 얻어맞습니다. 군대는 병장·상병·일병·이병으로 가른 자리뿐 아니라, 행정보급관·하사관하고 중대장이란 자리로 윽박지르면서 마구마구 두들겨패더군요.


  무술학원을 다니고서도 ‘주먹으로 남을 때리지’ 못하고 얻어맞기만 했다지만, 무술학원을 다니면서 몸을 다스린 바탕이 생겼기에, 군대에서 그렇게 흠씬 맞는 나날이었어도 견딜 만하더군요. 그렇게 때려대는 사람을 보면서 ‘그대야말로 참 불쌍하네.’ 하고 마음으로 생각했어요. 주먹꾼이 군대를 마치는 마지막날 밤에 그 주먹꾼한테 조용히 찾아가서 “야, 오늘 저녁까지는 네가 고참인지 지랄인지 모르겠으나, 이튿날부터 넌 개×끼야. 내가 이 군대를 마치고 사회에 돌아가면, 넌 내가 없는 데로만 다녀. 길에서 나를 봤다가는 너 무슨 꼴이 날는지 모른다.” 하고 속삭였어요.


  《창천의 권》에 잘 나오는데요, 주먹질을 일삼는 이들은 저희보다 힘센 주먹이 눈앞에 있으면 깨갱하면서 꼬리를 내립니다. 아무 데서나 주먹을 휘두르는 이들은 얌전하거나 반듯하거나 착하거나 부드러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어요. 그래서 그런 주먹꾼이 군대에서 저지른 주먹질을 뒤로 하고 사회로 돌아갈 적마다 흠씬 말벼락을 베풀어 주곤 했습니다. 그들하고 똑같이 되고 싶지 않아 그들을 주먹으로 건드리는 짓은 안 했고요.



“라몬, 많이 컸구나! 이제 안심이다! 내가 돌아오지 않으면, 네가 계승자다!” “무슨 소리야. 바보야! 형 맘대로 뭐야? 말도 안 되는 소리란 거 잘 알잖아!” “라몬! 만일 고민되는 일이 있으면, 창공을 생각해라! 창공에 기원해라!” (206∼207쪽)


“아무리 구름이 끼어도 구름 위는 항상 창공이다! 너의 소망은 창공에 있다!” (208쪽)



  만화책을 덮고서 생각에 새삼스레 잠깁니다. 1995∼1997년에 군대에 있는 동안 저를 그렇게 때려댄 그 바보스러운 사내한테 말벼락을 퍼붓는다고 해서 그들이 사회에서 달려졌을는지 알 길이 없어요. 어쩌면 그들은 군대에서 무슨 짓을 일삼았는지 감쪽같이 숨기거나 꽁꽁 묻어두면서 오늘을 살아갈는지 모릅니다.


  뒤늦은 일이기는 하겠지만, 그때 그들한테 말벼락이 아닌, 눈물어린 말을 들려주면 어떠했으랴 싶어요. 이를테면 “밤이라서 별빛이 가득한 까만하늘이야. 이 까만 밤하늘을, 또 낮에는 새파란 하늘을, 어디에 가서라도 생각하기를 바라. 그대가 주먹을 휘두른들 저 별빛이나 바람을 부술 수 있니? 건드리지도 못할걸. 부디 이다음에 가는 곳에서는 주먹에서 힘을 풀고서 별빛을 두 손에 담고 바람빛을 두 손으로 쓰다듬는,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바라. 이제부터라도 착한 마음으로 살아가면 좋겠어. 네가 앞으로 착하게 살아간다면, 뭐 그때엔 길에서 그대를 스칠 일이 있으면 빙긋 웃어 줄게.” 같은 말을.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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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볼 슈퍼 12 - 메르스의 정체
토리야마 아키라 지음, 토요타로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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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갈고닦나, 다스리나, 싸우는가



《드래곤볼 슈퍼 12》

 토요타로 그림

 토리야마 아키라 글

 유유리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0.7.20.



  싸울아비만 낳고 키워서 다른 별을 마구잡이로 깨부수는 별이 있다고 해요. 그 별에서는 오직 싸움만 헤아릴 뿐이기에, 싸움이 아닌 사랑으로 마주하거나 어우러지는 일이 없다지요.


  싸움별에서 태어났다가 푸른별을 깨뜨리는 싸울아비 노릇을 하도록 다른 별에서 찾아온 아기가 있습니다. 이 아기는 싸울아비로 태어났지만, 아기일 적에 푸른별로 온 터라, 홀로 있는 아기를 안쓰러이 여긴 어느 할아버지가 사랑으로 곱게 돌보면서 ‘몸을 갈고닦으면서 다스리는 길’을 알려줍니다. 싸움이 아닌 사랑을 가르치는 푸른별 할아버지가 있기에, 싸움별 아기는 푸른별 아이로 거듭납니다. 할어비는 싸움이 아닌 ‘몸 갈고닦기하고 다스리기’를 아이한테 물려주고서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이봐, 앞으로 며칠이나 더 이러고 있어야 하지?” “자네는 오공 군보다 더 스피릿이 불안정해. 우선은 몸과 마음의 균형을 맞춰야 하지. 참고로 오공 군은 거기서 150일 정도 있었어.” “배, 150일이라고?” (51쪽)



  그저 싸움박질만 가르치고 배우면서 물려받는 곳에서 자라나는 아이라면 마땅히 싸움박질을 배우겠지요. 싸움박질로 위아래를 가를 테고, 싸움박질로 빼앗거나 괴롭히는 짓이 흔할 테고요.


  오직 사랑을 가르치고 배우면서 물려받는 곳에서 자라나는 아이라면 무엇을 배울까요? 사랑으로 어깨동무하면서, 사랑으로 나누거나 보듬는 손길이 언제나 눈부실 테지요.


  우리는 어느 길을 걸어갈 적에 스스로 즐겁거나 아름다울까요? 우리는 어느 길을 등돌릴 적에 스스로 바보스럽거나 따분할까요?



“저 녀석들이 수련 중이라고 말했지?” “네, 그때 도망친 줄로만 알았습니다만,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다니 놀랍군요.” “그렇다는 건, 조금만 기다리면 더 거대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건가?” (86∼87쪽)



  우리나라에서는 오래도록 나쁜만화라는 손가락질을 받은 《드래곤볼》이 있어요. 모든 줄거리가 싸움이요 죽임짓이니 섣불리 좋은만화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좋다 나쁘다’라는 틀을 내려놓고서 생각해 보기로 해요. 만화책이 싸움판을 다루어서 안 좋다면, 이 나라 정치나 경제나 문화나 종교나 교육은 어떠한지요? 이 나라에서 싸움판 아닌 데가 있는가요? 이 나라 아이들은 배움길이 아닌 입시지옥을 걸어야 합니다. 입시지옥을 빠져나온 다음에는 취업지옥이에요. 취업지옥을 겨우 빠져나왔더라도 ‘우리 집을 마련하는 불구덩이’가 잇따릅니다. 이 불구덩이까지 빠져나왔어도 ‘아이를 돌보는 수렁’이 잇달지요. ‘사회를 이룬 모든 길’은 고스란히 싸움판입니다. 우리 터전 어디에서도 싸움 아닌 길을 찾아보기가 만만하지 않습니다.


  입시지옥으로 나고 자라면서 어른이 된 몸으로 아이를 낳을 적에 아이한테 입시지옥 아닌 놀이터나 참배움터를 베풀 수 있을까요? 오직 입시지옥만 치르면서 어버이 자리에 선 사람이 아이들한테 학원이 아닌 놀이판을 같이 누릴 수 있나요? 《드래곤볼 슈퍼 12》(토요타로·토리야마 아키라/유유리 옮김, 서울문화사, 2020)은 《드래곤볼》로 잇던 기나긴 이야기를 마치고 또 마치고서 새로 그려내는 이야기입니다. 《드래곤볼 Z》도 있었는데요, 이 만화에서 꽃님으로 나오는 ‘손오공’은 푸른별 싸움판을 거쳤고, 푸른별을 깨뜨리려는 다른 별하고 맞서는 마당도 거쳤어요. 이다음에는 푸른별이 깃든 별누리 님(우주 하느님)을 만나는 마당도 거쳤고, 저승나라도 거쳤으며, ‘별누리 님’이 섬기거나 따르는 더 깊고 너른 ‘온별누리(은하계)’까지 거쳤어요. 미르구슬(드래곤볼)하고 얽혀 일곱 미르님이 맞물리는 싸움판마저 거친 손오공인데요, 이 끝없어 보이는 누리싸움판에서 새삼스레 ‘한별누리(모든 은하를 아우르는 한복판)’를 맞닥뜨립니다.


  이 한별누리에서까지 일어나는 새삼스러운 싸움판을 치러야 하는데, 언제나 더 높이 거듭나야 하는 길이에요. 싸움솜씨를 기르는 겉모습을 넘어, 푸른별을 사랑하는 마음을 어느 만큼 다스릴 수 있는가 하는 대목을 짚습니다.



“하계인들의 훈련을 봐주는 일이라면 저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경우는 지구의 음식이 목적이잖습니까?” “호호호, 전부 꿰뚫어보고 계시는군요.” “알겠습니다. 아슬아슬하긴 해도 규정을 어기지 않았다는 것 역시 사실이죠.” (101쪽)



  높고낮음을 가르기에 싸움판이 생깁니다. 높낮이가 없이 즐겁게 너하고 나를 가를 적에는 싸움이 아닌 어깨동무가 나타나지요. 너희랑 우리를 사랑으로 가를 적에는 싸움이 아닌 두레를 지펴요. 자, 생각해 봐요. 여러 나라가 있다면, 여러 나라는 싸울아비에 총칼을 앞세워 서로 으르렁거릴 노릇인가요, 아니면 서로 노래하고 춤추면서 아끼는 즐거운 눈빛으로 어우러지는 잔치가 될 노릇인가요?


  으뜸지기 한 사람만 가리는 길이란 따분합니다. 누구나 살림지기가 될 적에 신납니다. 꼭두지기 한 사람이 우쭐거리는 곳이란 무시무시합니다. 누구나 사랑지기가 되는 데라면 보금자리를 일굴 만해요.



“하하하, 우쭐대지 말게. 이건 꽤 고등 술법이거든. 자네에겐 아직 일러.” “칫, 그럼 어떤 걸 할 수 있지?” “우선 기초 중의 기초인 순간이동부터 가르쳐 주겠네.” “기초……인가? 순간이동이?” (106쪽)



  푸른별사람은 그리 똑똑하지 않다고 합니다. 잊은 길이 수두룩하거든요. 마음으로 움직이고, 마음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날고, 마음으로 넉넉할 숱한 길을 죄다 잊은 푸른별사람이라고 합니다.


  푸른별에서 싸움이 안 그치는 까닭은 바로 이 하나 때문이지 싶어요. 스스로 하늘을 날고, 스스로 몸을 고치고, 스스로 마음눈을 뜰 줄 안다면, 배고프거나 가난할 일이 없어요. 스스로 나는 길을 잊고, 스스로 사랑하는 길을 잃으려 하니, 푸른별사람은 자꾸자꾸 다른 사람 몫을 노리거나 군침을 흘립니다. 스스로 짓기보다는 또다시 이웃사람 몫을 훔치거나 가로채려 하지요.



“어떻게 된 거지?” “방금 그것이 자네가 본래 가지고 있던 힘이라네. 수련하기 전, 자네는 스피릿과 육체의 균형이 맞지 않아서 자신의 힘을 밖으로 잘 내보내지 못하고 있었어.” (113쪽)



  《드래곤볼 슈퍼》에서 꽃님 손오공이 나온다고 했는데, 손오공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꽃님입니다. 저마다 다르게 빛나면서, 저마다 다르게 길을 가는 꽃님이에요. 한동안 ‘저 혼자 잘난 줄 여긴’ 엉성쟁이였다면, 누구보다 어수룩하지만 착하고 참된 마음을 빛내는 손오공하고 얼크러지면서 ‘스스로 착하고 참되면서 즐겁게 살아가는 길’을 스스로 찾아나섭니다.


  손오공은 딱히 일깨우거나 가르치는 꽃님이 아닙니다. 손오공은 늘 스스로 갈고닦으면서 다스리려는 숨결입니다. 더 높거나 잘나려고 갈고닦지 않아요. 곰곰이 생각할수록 ‘이다음으로, 이 너머로 가는 길이 있을 텐데?’ 하고 느끼기에, 이렇게 느끼는 대로 한 걸음 두 걸음 꾸준히 나아가려 하는 손오공입니다.


  살아가는 길은 끝이 아니라 걸음인 줄 아는 손오공이에요. 오늘 하루는 아침저녁으로 누구나 똑같이 흐르는데, 이 똑같은 하루를 스스로 다르게 가꾸어서 어제랑 다르게 북돋우려고 하는 손오공입니다.



“피콜로, 우린 필요없었던 거냐?” “아니, 이제부턴 너희가 아니면 싸우지 못한다. 기가 존재하지 않는 인조인간이 아니면 말이야.” (186쪽)



  마음을 품기에 합니다. 마음을 안 품으면 안 하거나 못 합니다. 마음이 있기에 움직입니다. 마음이 없으면 어디로든 가지 않거나 못 해요. 아기는 스스로 마음을 품기에 목을 가누고 몸을 뒤집고 일어서고 걷고 달리고 뛰고 춤추고 노래합니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가는 모든 숨빛이 스스로 즐겁게 노래하는 모습을 돌아본다면, 우리는 날갯짓이나 헤엄질 모두 스스로 마음이 있을 적에 해내는 줄 알아차릴 만해요.


  마음으로 합니다. 아니, 마음이기에 갈고닦거나 다스립니다. 마음이 아니기에 싸웁니다. 마음이 아니라면 다투거나 윽박지르거나 자랑합니다. 마음이기에 사랑스레 피어나는 길을 가요. 마음이 아니기에 그저 뜻모른 채 싸우다가 스스로 쓰러지고 이웃이며 동무도 나란히 죽음길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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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럼피우스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60
바버러 쿠니 지음, 우미경 옮김 / 시공주니어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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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 느낌글을 쓴 적 있는데

그 글을 꽤 많이 뜯어고쳐서

새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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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숲노래 그림책

사람을 돌보는 한 마디



《미스 럼피우스》

 바버러 쿠니 글·그림

 우미경 옮김

 시공주니어 

 1996.10.10.



  책을 읽으면서 언제나 글붓을 한 손에 쥡니다. 이 글붓으로 책에 적힌 글씨를 손질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글씨를 손질하지는 않아요. 그렇게 하다가는 그 책을 못 읽거든요. 도무지 아니다 싶은 대목을 글붓으로 슥슥 그은 다음에 ‘고쳐쓸 글’을 적어 넣습니다.


  우리 집 어린이하고 그림책을 읽으면서 언제나 그림책마다 글손질을 해놓습니다. 책을 펼쳐 목소리로 들려줄 적에는 그때그때 ‘눈으로 고쳐서 읽으’면 되지만, 아이 스스로 혼자 그림책을 읽고 싶을 적에는 ‘영 아닌 글씨’가 수두룩한 채 읽히고 싶지 않아요.


  이를테면, “머나먼 세계로 갈 거예요”는 “머나먼 나라로 가겠어요”로 고쳐서 읽습니다. “대답해요”는 “말해요”나 “이야기해요”로 고쳐서 읽습니다. “하지만”은 “그렇지만”이나 “그러나”로 고쳐서 읽습니다. “해낸 거예요”는 “해냈어요”로 고쳐서 읽습니다. “학교 근처에도 뿌렸어요”는 “학교 옆에도 뿌렸어요”로 고쳐서 읽습니다. “우리 집 정원”은 “우리 집 꽃밭”으로 고쳐서 읽습니다. “허리가 다시 쑤시기 시작했고”는 “허리가 다시 쑤셨고”로 고쳐서 읽습니다. “천국의 새”는 “하늘나라 새”로 고쳐서 읽습니다. “피곤해 보이는군요”는 “힘들어 보이는군요”로 고쳐서 읽습니다. “한 어촌의 촌장”은 “바닷마을 지기”로 고쳐서 읽습니다. “재스민 향기”는 “재스민 내음”으로 고쳐서 읽습니다. “일을 했던 거예요”는 “일을 했어요”로 고쳐서 읽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는 “아침에 일어나 손(과 낯)을 씻고”로 고쳐서 읽습니다. “하늘 색깔을 칠하기도”는 “하늘 빛깔을 그리기도”로 고쳐서 읽습니다. “빨간 꽃들이 피어 있지요”는 “빨간 꽃이 피었지요”로 고쳐서 읽습니다. “빙 둘러 있는 바위”는 “빙 두른 바위”로, “세상을 좀더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지”는 “온누리를 좀더 아름답게 가꾸는 일이지”로 고쳐서 읽습니다.



저녁이면 앨리스는 할아버지 무릎에 올라앉아서 머나먼 세상 이야기를 들었어요. 할아버지 이야기가 끝나면 앨리스는 “나도 어른이 되면 아주 먼 곳에 가 볼 거예요. 할머니가 되면 바닷가에 와서 살 거고요.” 했대요. 할아버지는 “그래, 아주 좋은 생각이야, 얘야. 그런데 네가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더 있구나.” 했대요. 앨리스는 “그게 뭔데요?” 하고 물었지요. 할아버지는 “세상을 좀더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지.” 했어요. 앨리스는 “알았어요.” 하고 대답했지만, 그걸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몰랐대요. (9쪽)



  할아버지한테서 물려받은 이야기 씨앗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럼피우스’라는 사람이 있다지요. 이분 삶자취는 《미스 럼피우스》(바버러 쿠니/우미경 옮김, 시공주니어, 1996)에 찬찬히 흐릅니다. 꽤 옛자취를 다룬 그림책이기에, 이무렵 할아버지는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서 오로지 말로만 이야기를 들려주었대요. 그림책이나 글책을 읽어 주지는 않았다지요.


  살아오며 맞닥뜨리거나 부대끼거나 치르거나 누려온 살림길을 하나하나 풀어내어 이야기로 여미었다고 합니다. 어린이 럼피우스는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마다 서린 즐겁고 사랑스러운 씨앗을 고스란히 받아먹으면서 자랐대요.


  오늘 우리는 어떤 이야기 씨앗을 나누는 사이로 지내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집집마다, 마을마다, 학교나 사회마다, 어른·어버이하고 어린이·푸름이 사이에 무슨 이야기가 마음을 가꾸는 씨앗으로 흐르는지요?


  좋거나 훌륭한 책이 많은 오늘날입니다. 좋은 책이나 훌륭한 책을 읽어도 돼요. 좋거나 훌륭한 영화나 볼거리가 많은 오늘날입니다. 좋거나 훌륭한 영화라든지 볼거리를 누려도 돼요. 다만, 아무리 좋거나 훌륭한 책·영화·볼거리가 있더라도, 어른이나 어버이 자리에 선 사람이라면, 그 모든 좋거나 훌륭한 살림자락을 우리 나름대로 삭이거나 풀어내어 이야기로 들려줄 수 있으면 한결 나으리라 생각해요. 말 한 마디에 온사랑을 담아서 이야기로 들려주기를 바라요.



우리 고모할머니 미스 앨리스 럼피우스는 만년설이 덮여 있는 높은 산봉우리들도 올랐고, 정글을 뚫고 지나기도 했고, 사막을 횡단하기도 했어요. 사자가 노는 것도 보았고, 캥거루가 뛰어다니는 것도 보았고요. 그리고 어디를 가든, 결코 잊을 수 없는 친구들을 사귀었대요. (16쪽)



  말이란 무엇일까요. 말은 어떻게 태어났을까요. 말은 누가 지었을까요. 우리가 쓰는 모든 말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처음 생겨서 오늘 우리한테까지 왔을까요.


  말은 지식이 아닌 삶이라고 느낍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생각하는 모든 꿈과 보람과 땀이 깃들기에 말이지 싶습니다. 아스라이 머나먼 옛날 옛적부터 살아오던 사람들이 슬기랑 사랑이랑 꿈이랑 보람을 단출하게 갈무리해서 말 한 마디에 담았다고 느껴요. 이 말을 엮어서 이야기를 들려줄 적에는, ‘목소리에 얹어 흐르는 말씨마다 생각을 가꾸는 빛나는 숨결’을 물려주는 셈이지 싶습니다.


  그나저나 어린이 럼피우스는 어느새 아가씨 럼피우스가 됩니다. 젊은 럼피우스는 할아버지 이야기씨앗을 늘 가슴에 품고서 온누리를 두루 돌아보았다고 합니다. 숱한 일을 겪고, 숱한 곳을 보고, 숱한 사람을 만나고, 숱한 나라를 거쳤다지요.


  모든 어버이는 사랑으로 맺어 아기를 낳습니다. 아기는 눈도 못 뜨고 젖을 빨기에도 힘든 몸뚱이입니다만, 두 어버이가 물려주는 너른 사랑을 새삼스레 받으면서 비로소 젖을 빨고, 옹알이를 하고, 똥오줌도 누고, 살그마니 눈을 뜨면서 ‘누가 나를 이렇게 따스하게 돌보지?’ 하면서 바라보고, 어느덧 귀를 틔워 ‘누가 나한테 이렇게 나긋나긋 노래를 불러 주지?’ 하면서 듣습니다.


  아기 몸에서 아이 몸을 지나 어린이로 나아가는, 어느새 푸름이로 피어나서 젊은 어른으로 자라나는 이 모든 사람들은, 어버이가 물려주는 사랑어린 말을 씨앗으로 보듬으면서 생각을 살찌우고 마음을 키운다고 하겠습니다. 사랑이 있기에 태어나고, 사랑이 흐르기에 자라며, 사랑이 피어나기에 눈부십니다. 이 사랑은 언제나 말 한 마디가 징검다리가 되어 하루를 이어줍니다.



미스 럼피우스는 “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더 남아 있어. 난 세상을 더 아름답게 할 무슨 일인가를 해야 해.” 했어요. 그렇지만 어떻게? 미스 럼피우스는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했어요. “세상은 벌써 아주 멋진걸.” (18쪽)



  젊은이 럼피우스에서 아줌마 럼피우스로 거듭나는 길에 선 분은 자꾸자꾸 생각합니다. 할아버지가 들려준 꿈씨앗을 되새깁니다. 온누리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어디나 이토록 아름다운데, 어떻게 “온누리를 아름답게 하는 일을 해 다오.” 같은 할아버지 말을 이룰 만한지 아리송합니다. 하나도 모르겠지요. 온통 수수께끼입니다.


  그림책에 흐르는 발자국이며 이야기를 헤아립니다. 저는 우리 집 어린이를 비롯해서 온누리 어린이·푸름이한테 어떤 말을 즐겁고 사랑스러운 씨앗으로 가꾸어서 들려줄 적에 스스로 아름답고, 다같이 아름다울 길을 가꿀 만할까요? 저를 둘러싼 이웃 어른들은 저마다 어떤 말로 하루를 지을 적에 스스로 즐겁고 사랑스러우면서 둘레에 즐겁고 사랑스러운 기운을 흩뿌릴 만할까요?


  문득 눈을 감고서 생각에 잠기다가, “아이들아, 너희는 앞으로 온누리를 아름답게 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다오.” 하고 들려줄 이야기란, 어른이 아이한테만 하는 말이 아닌, 바로 어른 스스로 늘 다짐하는 말이기도 하겠네 싶어요. 할아버지 스스로 언제나 아름답게 일하고 쉬고 놀고 꿈꾸고 노래하고 살림하고 싶으니, 곁에 있는 아이한테도 이 마음을 고스란히 들려주겠네 싶습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시장·도지사 같은 자리에 서도 아름답게 일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벼슬자리만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생각해 봐요. 아기를 낳은 모든 어버이가 아름답습니다. 아기를 따스히 돌보고 어루만지며 자장노래를 부르는 모든 어버이가 자랑스럽습니다. 아기가 아이를 거쳐 어린이로 자라면서 푸름이로 피어나도록 보살피는 모든 어버이가 사랑스럽습니다. 그리고 이 길을 걷는 모든 어린이랑 푸름이가 스스로 사랑스럽지요.


  아름다운 삶을 사랑하기에, 아름다운 말을 사랑합니다. 아름다운 사람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꽃피우고 싶기에, 아름다운 말로 아름다운 넋을 일구고 싶습니다. 너랑 나 사이에 즐겁게 흐르는 노래가 있기에, 이 노래를 말로 엮어 이야기를 들려주고 듣습니다. 이 이야기는 늘 새롭게 꿈씨앗이 되어 우리 마음으로 스며듭니다.



언덕 꼭대기에 다다랐을 때, 미스 럼피우스는 탄성을 질렀어요. “정말 믿어지지가 않아!” 언덕 너머에는 푸른빛, 보랏빛, 장밋빛 루핀 꽃들이 가득했던 거예요! 미스 럼피우스는 기쁨에 가득 차서 무릎을 꿇었어요. “바람이야! 바람이 우리 집 정원에서 여기까지 꽃씨를 싣고 온 거야! 물론 새들도 도왔겠지!” (22쪽)



  삶이라는 길은 머리를 굴려서 헤아리지 못합니다. 삶이라는 사랑은 책만 읽어서는 깨닫지 못합니다. 삶이라는 하루는 언제나 누구나 스스로 즐겁게 노래하며 가꿀 적에 시나브로 헤아립니다. 삶이라는 오늘은 참말로 웃고 춤추고 꿈꾸는 상냥한 마음에서 환하게 피어나 어느 날 문득 깨달아요.


  하루아침에 깨우칠 이야기란 없지 싶습니다. 한꺼번에 받아들일 삶이란 없지 싶고요. 아이는 한두 해만에 어른이 되지 않습니다. 어른이라 해서 한두 해만에 부쩍 자라지 않습니다. 네 살 어린이는 네 살 어린이답게 살아가며 큽니다. 마흔 살 어른은 마흔 살 어른답게 살아가며 큽니다. 여든 살 할매 할배라면 여든 살 나이에 걸맞게 이제껏 몸으로 복닥인 나날을 온몸에 아로새기겠지요.


  사람을 사람답게 돌보는 말 한 마디는 ‘아름다움’이 아닐까요?. ‘착함’이고 ‘참다움’이지 않을까요? 이를 한자말로 일컬어 ‘진선미’라 하는데, 어렵게 한자말로 쓰기보다는 쉽고 수수하면서 가벼웁게 ‘착하고 참다우며 곱게’ 꿈꾸면서 사랑하면 넉넉하리라 생각해요. ㅅㄴㄹ

.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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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타 달리다 6
타카하시 신 지음, 이상은 옮김 / 학산문화사(만화)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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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たかはししん #高橋しん #かなたかける


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 맨발로 달리는 마음



《카나타 달리다 6》

 타카하시 신

 이상은 옮김

 학산문화사

 2020.3.25.



  2012년 봄날, 맨발로 면소재지 중학교 너른터부터 우리 마을 어귀까지 달렸다가 다시 면소재지 중학교 너른터로 달린 적이 있습니다. 저한테는 고무신만 있습니다. 그때 시골 면소재지에서는 ‘면민 체육대회’를 열었고, 저는 우리 마을에서 가장 젊은 사내였기에 5킬로미터 달리기에 나가야 했습니다. 5킬로미터쯤이야 가볍지요. 그런데 막상 달리기를 하자니 제 고무신이 낡았습니다. 낡아서 뒤축이 다 닳았더군요. 아차 싶었으나 이미 늦은 일. 헐렁거리는 고무신으로는 외려 못 달리겠다고 여겨 맨발로 달리기로 했습니다.



“축구나 야구도 싸우고 싶으면, 포기하지 않으면, 중학교 공식전에서 여자가 남자 팀의 일원으로 싸울 수 있어.” (23쪽)



  맨발로 다니기를 즐깁니다. 멧자락을 오를 적에도 곧잘 신을 벗습니다. 맨발로 척척 바위를 타지요. 맨발로 착착 들길을 걸어요. 둘레에서는 어떻게 맨발로 다니느냐고 걱정하지만, 지난날에는 누구나 맨발로 멧자락을 탔고 들길을 걸었어요. 다들 ‘신을 안 꿰고 걸었’습니다.


  고작 1970∼80년대만 하더라도 맨발로 골목에서 놀던 어린이가 수두룩합니다. 이 맨발 어린이가 신을 꿴 까닭은 여러 가지일 텐데, 첫째는 흙길이 시멘트바닥으로 바뀐 탓입니다. 시멘트바닥으로 골목이며 고샅이 바뀌면서 자동차가 무섭게 달립니다. 자동차가 무섭게 달리면서 길바닥에 쓰레기가 늘어납니다.


  아이들은 모름지기 맨발에 맨손으로 놀기를 좋아하고, 나무타기를 할 적에도 맨발에 맨손이어야 착착 짚고서 올라가지요. 이런 아이들이 싱그럽게 자라면서 튼튼하게 크도록 하자면, 우리는 시골을 비롯해 서울 한복판에서까지 아스팔트랑 시멘트를 걷어낼 노릇이에요. 찻길을 줄이고 맨발로 구르고 맨손으로 흙을 쥐고서 까르르 뛰놀 빈터를 늘릴 일입니다.



‘자신을 속이는 게 능숙한 사람도 있고, 서툰 사람도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변함없이…….’ (46쪽)


‘포기할 수 없어서 우는 거야. 눈물을 흘리는 재능. 포기하지 않는 재능. 아아, 그래, 우는 것은 사람만이 가진 재능이다.’ (48쪽)



  달리며 기쁘기에 달릴 적마다 활짝 웃고 노래하는 아이가 있대요. 이 아이는 으뜸이나 버금이나 꼴찌를 따지지 않습니다. 그런 줄세우기는 쳐다보지 않아요. 오직 달리기를 바랍니다. 두 다리로 이 땅을 디딜 적에 얼마나 사뿐사뿐 바람이 되는가를 생각해요. 두 팔로 바람을 사락사락 당길 적에 얼마나 가볍게 앞으로 나아가는가를 생각하지요. 《카나타 달리다 6》(타카하시 신/이상은 옮김, 학산문화사, 2020)을 보면, 바야흐로 중학생이 된 ‘달림순이’가 뭇 또래랑 언니까지 ‘달림순이·달림돌이’로 끌어내는 이야기가 푸릇푸릇 흐릅니다.


  더 빨리 달리자고 말하지 않아요. 다만 저 깊은 곳에 있는 모든 기운을 뽑아내어 힘껏 달리자고 말합니다. 더 먼저 달리자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저 너른 곳에 있는 맑은 바람을 끌어들여 가뿐하게 달리자고 얘기합니다.



“귀를 기울여 들어 보세요. 나의 고동, 나의 호흡, 주변의 호흡, 발소리, 그리고 내가 거기서 어떻게 달리고 싶은지. ‘지금’을 위해서가 아니에요. 한 달 후의 시합도 좋고 미래를 상상하면서 달리세요. ‘거기’서 어떤 스피드로 달리고 싶은지 생각하면서 달리세요. 그게 바로 장거리라는 경기예요! 다행히 장거리에서는 경기 중에 자기 자신과 마주할 시간이 아주 많아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자기 자신의 몸과 마주하는 시간이.” (82∼83쪽)



  초·중·고등학교 너른터에서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맨발로 달리기를 할 수 있도록 풀밭이나 잔디밭으로 가꾸면 좋겠습니다. 맨발로 뛰놀다가 벌렁 드러누울 수 있도록 농약을 안 뿌리기를 바랍니다. 큰고장에 아파트를 올리더라도 아파트 크기보다 넓게 숲정이를 두면서 이곳은 맨발로 다니도록 꾀하면 좋겠습니다. 잔디밭이 왜 망가지느냐 하면, 딱딱한 플라스틱 신으로 자꾸 밟기 때문이에요. 맨발로 잔디밭을 디디면 망가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공원이며 숲이며 멧골에 들어가려고 할 적에는 누구나 신을 벗고 맨발이어야 하도록 하면 좋겠어요.


  누구나 맨발로 다니는 길이 되도록 하자면 길에 아무 쓰레기가 구르면 안 되겠지요. 잘 치우기도 해야겠지만, 이에 앞서 아무도 쓰레기를 안 버리는 마을살림으로 나아갈 노릇입니다.


  생각해 봐요. 우리는 신을 꿰고서 집안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신을 바깥에 벗고서 들어가니 집안에 흙이 구를 일도 적어요. 우리가 일하는 곳이라든지 배우는 곳도 신을 꿰고 다니기보다는 맨발로 다니도록 나뭇바닥으로 한다면, 우리 몸은 한결 튼튼할 테며, 맨발로 다니는 만큼 우리 스스로 일터며 배움터를 더 정갈히 건사하지 않을까요?



“우리 중에 그 누구도, 이 신발보다 많이 뛰지 않았어! 이 팀에서 약한 소리를 해도 되는 건, 이것보다 낡은 운동화를 신은 녀석뿐이야!” (137쪽)


“말주변이 좋은 녀석도 있어. 그런 놈들이 이득인 세상으로 보일 때도 있겠지. 하지만, 예를 들면 음악은 왜 탄생했을까? 누군가가 알아차린 거야. 말로는 전달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감정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너는 달리기를 함으로써, 상식도 이치도, 윤리도, 말조차도 뛰어넘은 무언가를 전했으니까.” (167쪽)



  달리는 아이들은 달리면서 말합니다. 참 용하지요. 달리느라 숨이 찰 텐데, 여느 자리보다 달리면서 더 깊고 넓게 마음을 틔우면서 말을 해요. 《카나타 달리다》에 나오는 아이들은 아무래도 달릴 적에는 ‘꼭 하고픈 말’을 더 고를 테며, ‘깊은 데에서 우러나오는 말’만 터뜨릴 테고, ‘한결 넓게 아우르고픈 말’을 생각하겠지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도 생각해 봅니다. 학교에 학교버스가 따로 없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집하고 학교를 오갈 적에 태워 주지 않으면 좋겠어요. 어른들도 집하고 일터 사이를 다닐 적에 버스나 전철뿐 아니라 자가용도 안 타면 좋겠어요. 다들 두 다리로 걸어다니면 좋겠습니다. 두 다리로 마을을 거닐면서 이웃집을 바라보면 좋겠어요. 우리 집 곁에 있는 숱한 이웃 숨결을 느끼면 좋겠어요. 우리 곁에는 사람뿐 아니라, 새랑 풀벌레랑 크고작은 짐승이랑 벌나비랑 개구리랑 매미랑 딱정벌레랑, 더할 나위 없이 온갖 이웃이 있는 줄 느끼면 좋겠어요.



“여러분은 어디까지나 오픈참가. 순위도 남지 않고, 좋은 기록을 내 봤자 현대회에 출전하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을 터. 그래서 모인 거잖아요? 여러분은. 승패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지만 승패도 중요하죠. 그리고 마음속의 승패는 더욱더 중요합니다.” (186쪽)



  사랑하는 아이를 쓰다듬을 적에 장갑을 끼는 어버이란 없습니다. 우리 두 손은 온몸에서 흐르는 기운을 가만히 퍼뜨리면서 나누려고 하는 이음목이라고 할 만합니다. 집 바깥에서 오래 마실을 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맨 먼저 무엇을 하나요? 신을 벗지요? 집으로 돌아와서 신을 벗으면 어떻던가요? 홀가분하면서 개운하고, 이제야 살 듯한 마음이 되지 않나요?


  껍데기를 벗는 첫걸음이 맨발 되기입니다. 푸른 숨결을 맞아들이는 두걸음이 맨발로 풀밭 걷기입니다. 푸른별에서 살아가는 우리 스스로를 느끼면서 우리 이웃을 헤아리는 석걸음이 맨손에 맨발로 나무타기입니다. 자, 어떤 넉걸음에 닷걸음을 내딛어 볼 만할까요?


  신을 벗어던질 수 있는 곳이기에 스스럼없습니다. 껍데기를 안 쓰고 겉치레를 안 하는 사이라면 즐겁습니다. 모두 환하게 웃는 살림길이 되기를 빕니다. 누구나 해맑게 노래하는 사랑길이 되기를 바라요. ㅅㄴㄹ

.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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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사 9
우루시바라 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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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kiUrusibara #蟲師 #むしし #漆原友紀


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 버려야 할 마음



《충사 9》

 우루시바라 유키

 오경화 옮김

 대원씨아이

 2008.5.15.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강의에서도, 책에서도, 흔히들 “욕심을 버려라” 하고 말합니다. 어릴 적부터 이런 말을 익히 들었습니다. 어릴 때나 요즘이나 매한가지로 느끼는데, 이런 말은 우리 마음에 피어날 싹을 싹둑 끊는구나 싶습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이나 이웃이나 동무한테 “욕심을 버려!” 따위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럼 아카네는 그 후, 어떻게 된 거요?” “글쎄요. 어쩌면, 할머니처럼 누군가와 뒤바뀌어 어디에선가 살고 있지 않을까요?” (29쪽)



  한자말 ‘욕심(欲心)’을 표준국어대사전은 “분수에 넘치게 무엇을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풀이합니다만, ‘欲’이라는 한자는 ‘貪’이란 한자가 아닙니다. 둘은 다르지요.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까? ‘욕심 = 탐내는 마음’으로 풀이한 사전이 알맞나요? 욕심이란 그저 ‘욕 + 심’입니다. 한자 ‘욕’은 “하고자 하다”를 가리킵니다. 이 한자는 ‘좋아하다’를 가리키지요.


  자, 그럼 수수께끼를 풀었을까요? 아니, 이 수수께끼를 스스로 풀어 보시기 바랍니다. 똑똑히 보고 똑똑히 알아보면 좋겠습니다. “욕심을 버려라 = 하고자 하는 마음을 버려라”란 뜻입니다.



“너는 어째서, 계속 그 상태인 거냐? 그래, 넌, 차마 밟지 못한 거구나. 마음씨가 비단결처럼 고운 아이였으니까. 미안해. 난, 네 그림자를 밟은 아이와, 부부가 됐어.” (47쪽)



  예부터 ‘나라(국가)’나 ‘터(사회)’를 세워서 우두머리에 오르고 벼슬아치를 거느리며 구실아치를 부리는 이들은 하나같이 ‘말’로 장난질을 칩니다. 요즈막 우두머리·벼슬아치·구실아치가 치는 말장난 가운데 하나는 “피해 호소인·피해 고소인”입니다. 참 웃기지요. 말인가요, 불낙인가요?


  우리는 “욕심을 버려”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가 버려야 할 마음이 하나 있다면 “탐내지 마라”이겠지요. 다만, 저는 이런 말은 안 쓰고 싶습니다. 어린이가 알아듣기에 너무 어렵습니다. 저는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하는 말을 쉽게 쓰고 싶습니다. 그래서 “욕심 ○, 탐심 ×”가 아닌 “꿈꾸렴, 시샘하지 말고.”처럼 이야기합니다. “꿈을 그리자, 남을 부러워하지 말고.”처럼 보탭니다.



“네가 그랬지? 벌레에겐 벌레만의 사정이 있다고. 자기 형편에 맞춰 그걸 비틀어버리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돼. 그 능력을 어떻게 써먹을지는 너 자신에게 달렸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 (86쪽)



  벌레가 있으니 벌레잡이가 있는지 모릅니다. 《충사 9》(우루시바라 유키/오경화 옮김, 대원씨아이, 2008)은 벌레하고 벌레잡이 사이를 그립니다. 모두 열 자락으로 이야기를 마무르는 만화책인데, 막판에 이른 아홉걸음을 보면 ‘잡이’가 어떤 구실인가를 새삼스레 되짚어 줍니다.


  벌레잡이란 이름에서 ‘잡다’는 무엇일까요? ‘잡아서 죽이다’라는 잡다일는지요, ‘길을 잡다’라는 잡다일는지요. 우리는 어떤 잡다(잡이)로 나아갈 적에 스스로 빛나는 노래가 될 만한가요.


  칼잡이라 할 적에는 두 갈래가 있습니다. 첫째는 칼을 마구 휘둘러서 사람을 잡아 죽이려는 싸울아비가 있겠지요. 둘째는 칼을 알맞게 다잡고 다스리는 부엌님이요 정지님이 있어요. 잡아서 죽이려는 마음일 적에는 스스로 사납고 무서우며 곁에 동무가 없습니다. 알맞게 다잡거나 다스리려는 마음일 적에는 스스로 이웃나눔을 하는 밥짓기에 살림짓기로 나아가니 곁에 동무가 있습니다.



“널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네가 돌아가야 할 곳이야. 저 하늘 너머에, 널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매일같이 밥상을 차려놓고 기다리는 엄마. 인형을 숨겨 놓고 같이 놀아 주는 언니. 기억해라. 여긴, 네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야.” (115쪽)



  벌레잡이는 벌레를 족치는 길이 아닙니다. 벌레잡이는 벌레한테서 푸른별 얼거리를 배우는 길입니다. 모름지기 뭇사람은 마구 휘두르는 칼잡이가 아닌, 한집안을 사랑으로 보듬는 부엌지기라는 칼잡이로 나아갈 노릇입니다.


  통통통 도마질을 노랫가락으로 바꾸어 내는 칼잡이가 되기에 아름답습니다. 토도독 채썰기를 노래잔치르 펼쳐 보이는 칼잡이로 살림하기에 사랑스럽습니다.


  우리가 어른이라면 어린이한테 아름다운 길을 밝혀야겠지요. 우리가 어버이라면 푸름이한테 사랑스러운 살림을 물려주어야겠지요. 우리가 어른이라면 “피해 호소인”이라는 말장난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버이라면 “피해 고소인”이라는 말장난으로 핑계질을 일삼지 않습니다. 어른은 슬기로울 뿐 아니라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어버이는 사랑스러울 뿐 아니라 즐거이 노래하는 사람입니다.



“엄마.” “왜?” “강은 어디서 와?” “산속 계곡에서 흘러내려오는 거야.” “계곡물은 어디서 와?” “하늘의 구름에서 떨어져.” “그럼 하늘의 구름은?” “바다에서 태어나지.” “바다?” “이 강이 마지막에 도달하는 곳. 물이 굉장히 많은 곳이야.” “많아? 얼마나?” “으음, 엄마도 아직 한 번도 못 봤는데.” (156∼157쪽)


“눈에 보이는 사방이 전부 물이래.” “우와. 그럼, 바다도, 강도, 비도, 구름도, 다 똑같네?” “그래. 모양은 달라도 전부 똑같아.” “그렇구나.” (158쪽)



  그 어떤 말장난도 노래가 되지 않습니다. 그 어떤 말치레도 사랑이 되지 않습니다. 모든 말장난은 이 말장난을 일삼는 사람부터 갉아먹습니다. 모든 말치레는 이 말치레를 듣고서 좋아하는 사람부터 무너뜨립니다.


  이제 ‘욕심·꿈’하고 ‘탐심·시샘(부러움)’ 사이를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글을 잘 쓰겠다는 욕심을 부리지 마라” 같은 생각이라면 글은 죽어도 못 쓰기 마련입니다. 말뜻을 제대로 어림하시겠나요? “글을 잘 쓰겠다는 탐심을 부리지 마라” 같은 생각이라면 글이 술술 흘러나오기 마련입니다. “스스로 하루를 즐겁게 살아내고, 이 즐거운 노래를 언제나 스스럼없이 펼치고 싶다는 꿈을 그린다”면 글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춤노래이든, 또 사랑이든 살림이든 일놀이나 그 어떤 길이라 하든 솔솔 풀린다고 생각합니다.


  시샘이나 부러움은 으레 미움이나 밉질로 흐릅니다. 시샘이나 부러움은 어느새 따돌림이나 괴롭힘질로, 또 등돌림이나 콧방귀로 흐릅니다. 때로는 팔짱을 끼겠지요.



“유타. 넌 지금 어디에 있니? 강이니? 바다니? 비니? …… 그래. 넌 어디에든 다 있는 거야.” (187∼188쪽)



  꿈이 없다면 죽은 넋입니다. 꿈을 그리지 않으면 죽은 몸입니다. 꿈이 있기에 싱그러운 넋입니다. 꿈을 그리기에 산뜻하게 피어나는 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빛나는 꽃으로 피어날 씨앗을 마음에 품고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다만, 말장난이나 말치레를 그치지 않으면 씨앗은 안 깨어납니다. 기쁘게 살림하고 즐겁게 사랑하면서 오늘 하루를 꿈으로 그리려는 마음이라면 씨앗은 시나브로 깨어납니다.



‘아마도 한 번 가면 돌아올 수 없는 곳이겠지. 저곳은. 그래도 상관없어. 어차피 내겐 있을 곳 따윈 없으니까.’ (224쪽)


“이 세상에 있어선 안 되는 장소 따윈 아무한테도 없어.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이치가 돌아가도록 허락해 줬잖아. 이 세상 모두가 네가 있어야 할 곳이다.” (234∼235쪽)



  애쓰지 않으면 좋겠어요. 애쓰지 말고 사랑하셔요. 힘쓰지 않아도 됩니다. 햄쓰지 말고 노래하셔요. 사랑으로 마주하면 어떤 일이든 스스로 뜻하는 대로 나아갑니다. 노래로 맞아들이면 어떤 고비가 굴레나 수렁이나 울타리라도 사르르 녹이면서 서로 새롭게 어깨동무하는 숲으로 나아갑니다.


  버려야 할 마음인 ‘시샘·부러움’입니다만, 더 생각하면 굳이 안 버려도 됩니다. ‘시샘·부러움’이 우리한테 찾아왔다면, 이런 마음이 찾아올 적에 우리가 어떤 하루가 되는지를 가만히 보면 좋겠어요. ‘시샘·부러움’이란 마음이 있으면서 환하게 웃거나 곱게 사랑할 수 있는가를 살펴보면 좋겠어요. 어떤 마음이 찾아오든 새삼스레 배웁니다. 기꺼이 배우면서 넉넉히 펼칠 적에 ‘사람’이 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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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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