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사 9
우루시바라 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YukiUrusibara #蟲師 #むしし #漆原友紀


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 버려야 할 마음



《충사 9》

 우루시바라 유키

 오경화 옮김

 대원씨아이

 2008.5.15.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강의에서도, 책에서도, 흔히들 “욕심을 버려라” 하고 말합니다. 어릴 적부터 이런 말을 익히 들었습니다. 어릴 때나 요즘이나 매한가지로 느끼는데, 이런 말은 우리 마음에 피어날 싹을 싹둑 끊는구나 싶습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이나 이웃이나 동무한테 “욕심을 버려!” 따위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럼 아카네는 그 후, 어떻게 된 거요?” “글쎄요. 어쩌면, 할머니처럼 누군가와 뒤바뀌어 어디에선가 살고 있지 않을까요?” (29쪽)



  한자말 ‘욕심(欲心)’을 표준국어대사전은 “분수에 넘치게 무엇을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풀이합니다만, ‘欲’이라는 한자는 ‘貪’이란 한자가 아닙니다. 둘은 다르지요.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까? ‘욕심 = 탐내는 마음’으로 풀이한 사전이 알맞나요? 욕심이란 그저 ‘욕 + 심’입니다. 한자 ‘욕’은 “하고자 하다”를 가리킵니다. 이 한자는 ‘좋아하다’를 가리키지요.


  자, 그럼 수수께끼를 풀었을까요? 아니, 이 수수께끼를 스스로 풀어 보시기 바랍니다. 똑똑히 보고 똑똑히 알아보면 좋겠습니다. “욕심을 버려라 = 하고자 하는 마음을 버려라”란 뜻입니다.



“너는 어째서, 계속 그 상태인 거냐? 그래, 넌, 차마 밟지 못한 거구나. 마음씨가 비단결처럼 고운 아이였으니까. 미안해. 난, 네 그림자를 밟은 아이와, 부부가 됐어.” (47쪽)



  예부터 ‘나라(국가)’나 ‘터(사회)’를 세워서 우두머리에 오르고 벼슬아치를 거느리며 구실아치를 부리는 이들은 하나같이 ‘말’로 장난질을 칩니다. 요즈막 우두머리·벼슬아치·구실아치가 치는 말장난 가운데 하나는 “피해 호소인·피해 고소인”입니다. 참 웃기지요. 말인가요, 불낙인가요?


  우리는 “욕심을 버려”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가 버려야 할 마음이 하나 있다면 “탐내지 마라”이겠지요. 다만, 저는 이런 말은 안 쓰고 싶습니다. 어린이가 알아듣기에 너무 어렵습니다. 저는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하는 말을 쉽게 쓰고 싶습니다. 그래서 “욕심 ○, 탐심 ×”가 아닌 “꿈꾸렴, 시샘하지 말고.”처럼 이야기합니다. “꿈을 그리자, 남을 부러워하지 말고.”처럼 보탭니다.



“네가 그랬지? 벌레에겐 벌레만의 사정이 있다고. 자기 형편에 맞춰 그걸 비틀어버리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돼. 그 능력을 어떻게 써먹을지는 너 자신에게 달렸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 (86쪽)



  벌레가 있으니 벌레잡이가 있는지 모릅니다. 《충사 9》(우루시바라 유키/오경화 옮김, 대원씨아이, 2008)은 벌레하고 벌레잡이 사이를 그립니다. 모두 열 자락으로 이야기를 마무르는 만화책인데, 막판에 이른 아홉걸음을 보면 ‘잡이’가 어떤 구실인가를 새삼스레 되짚어 줍니다.


  벌레잡이란 이름에서 ‘잡다’는 무엇일까요? ‘잡아서 죽이다’라는 잡다일는지요, ‘길을 잡다’라는 잡다일는지요. 우리는 어떤 잡다(잡이)로 나아갈 적에 스스로 빛나는 노래가 될 만한가요.


  칼잡이라 할 적에는 두 갈래가 있습니다. 첫째는 칼을 마구 휘둘러서 사람을 잡아 죽이려는 싸울아비가 있겠지요. 둘째는 칼을 알맞게 다잡고 다스리는 부엌님이요 정지님이 있어요. 잡아서 죽이려는 마음일 적에는 스스로 사납고 무서우며 곁에 동무가 없습니다. 알맞게 다잡거나 다스리려는 마음일 적에는 스스로 이웃나눔을 하는 밥짓기에 살림짓기로 나아가니 곁에 동무가 있습니다.



“널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네가 돌아가야 할 곳이야. 저 하늘 너머에, 널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매일같이 밥상을 차려놓고 기다리는 엄마. 인형을 숨겨 놓고 같이 놀아 주는 언니. 기억해라. 여긴, 네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야.” (115쪽)



  벌레잡이는 벌레를 족치는 길이 아닙니다. 벌레잡이는 벌레한테서 푸른별 얼거리를 배우는 길입니다. 모름지기 뭇사람은 마구 휘두르는 칼잡이가 아닌, 한집안을 사랑으로 보듬는 부엌지기라는 칼잡이로 나아갈 노릇입니다.


  통통통 도마질을 노랫가락으로 바꾸어 내는 칼잡이가 되기에 아름답습니다. 토도독 채썰기를 노래잔치르 펼쳐 보이는 칼잡이로 살림하기에 사랑스럽습니다.


  우리가 어른이라면 어린이한테 아름다운 길을 밝혀야겠지요. 우리가 어버이라면 푸름이한테 사랑스러운 살림을 물려주어야겠지요. 우리가 어른이라면 “피해 호소인”이라는 말장난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버이라면 “피해 고소인”이라는 말장난으로 핑계질을 일삼지 않습니다. 어른은 슬기로울 뿐 아니라 아름답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어버이는 사랑스러울 뿐 아니라 즐거이 노래하는 사람입니다.



“엄마.” “왜?” “강은 어디서 와?” “산속 계곡에서 흘러내려오는 거야.” “계곡물은 어디서 와?” “하늘의 구름에서 떨어져.” “그럼 하늘의 구름은?” “바다에서 태어나지.” “바다?” “이 강이 마지막에 도달하는 곳. 물이 굉장히 많은 곳이야.” “많아? 얼마나?” “으음, 엄마도 아직 한 번도 못 봤는데.” (156∼157쪽)


“눈에 보이는 사방이 전부 물이래.” “우와. 그럼, 바다도, 강도, 비도, 구름도, 다 똑같네?” “그래. 모양은 달라도 전부 똑같아.” “그렇구나.” (158쪽)



  그 어떤 말장난도 노래가 되지 않습니다. 그 어떤 말치레도 사랑이 되지 않습니다. 모든 말장난은 이 말장난을 일삼는 사람부터 갉아먹습니다. 모든 말치레는 이 말치레를 듣고서 좋아하는 사람부터 무너뜨립니다.


  이제 ‘욕심·꿈’하고 ‘탐심·시샘(부러움)’ 사이를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글을 잘 쓰겠다는 욕심을 부리지 마라” 같은 생각이라면 글은 죽어도 못 쓰기 마련입니다. 말뜻을 제대로 어림하시겠나요? “글을 잘 쓰겠다는 탐심을 부리지 마라” 같은 생각이라면 글이 술술 흘러나오기 마련입니다. “스스로 하루를 즐겁게 살아내고, 이 즐거운 노래를 언제나 스스럼없이 펼치고 싶다는 꿈을 그린다”면 글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춤노래이든, 또 사랑이든 살림이든 일놀이나 그 어떤 길이라 하든 솔솔 풀린다고 생각합니다.


  시샘이나 부러움은 으레 미움이나 밉질로 흐릅니다. 시샘이나 부러움은 어느새 따돌림이나 괴롭힘질로, 또 등돌림이나 콧방귀로 흐릅니다. 때로는 팔짱을 끼겠지요.



“유타. 넌 지금 어디에 있니? 강이니? 바다니? 비니? …… 그래. 넌 어디에든 다 있는 거야.” (187∼188쪽)



  꿈이 없다면 죽은 넋입니다. 꿈을 그리지 않으면 죽은 몸입니다. 꿈이 있기에 싱그러운 넋입니다. 꿈을 그리기에 산뜻하게 피어나는 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빛나는 꽃으로 피어날 씨앗을 마음에 품고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다만, 말장난이나 말치레를 그치지 않으면 씨앗은 안 깨어납니다. 기쁘게 살림하고 즐겁게 사랑하면서 오늘 하루를 꿈으로 그리려는 마음이라면 씨앗은 시나브로 깨어납니다.



‘아마도 한 번 가면 돌아올 수 없는 곳이겠지. 저곳은. 그래도 상관없어. 어차피 내겐 있을 곳 따윈 없으니까.’ (224쪽)


“이 세상에 있어선 안 되는 장소 따윈 아무한테도 없어. 그건 너도 마찬가지야. 이치가 돌아가도록 허락해 줬잖아. 이 세상 모두가 네가 있어야 할 곳이다.” (234∼235쪽)



  애쓰지 않으면 좋겠어요. 애쓰지 말고 사랑하셔요. 힘쓰지 않아도 됩니다. 햄쓰지 말고 노래하셔요. 사랑으로 마주하면 어떤 일이든 스스로 뜻하는 대로 나아갑니다. 노래로 맞아들이면 어떤 고비가 굴레나 수렁이나 울타리라도 사르르 녹이면서 서로 새롭게 어깨동무하는 숲으로 나아갑니다.


  버려야 할 마음인 ‘시샘·부러움’입니다만, 더 생각하면 굳이 안 버려도 됩니다. ‘시샘·부러움’이 우리한테 찾아왔다면, 이런 마음이 찾아올 적에 우리가 어떤 하루가 되는지를 가만히 보면 좋겠어요. ‘시샘·부러움’이란 마음이 있으면서 환하게 웃거나 곱게 사랑할 수 있는가를 살펴보면 좋겠어요. 어떤 마음이 찾아오든 새삼스레 배웁니다. 기꺼이 배우면서 넉넉히 펼칠 적에 ‘사람’이 됩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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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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