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볼 슈퍼 12 - 메르스의 정체
토리야마 아키라 지음, 토요타로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2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갈고닦나, 다스리나, 싸우는가



《드래곤볼 슈퍼 12》

 토요타로 그림

 토리야마 아키라 글

 유유리 옮김

 서울미디어코믹스

 2020.7.20.



  싸울아비만 낳고 키워서 다른 별을 마구잡이로 깨부수는 별이 있다고 해요. 그 별에서는 오직 싸움만 헤아릴 뿐이기에, 싸움이 아닌 사랑으로 마주하거나 어우러지는 일이 없다지요.


  싸움별에서 태어났다가 푸른별을 깨뜨리는 싸울아비 노릇을 하도록 다른 별에서 찾아온 아기가 있습니다. 이 아기는 싸울아비로 태어났지만, 아기일 적에 푸른별로 온 터라, 홀로 있는 아기를 안쓰러이 여긴 어느 할아버지가 사랑으로 곱게 돌보면서 ‘몸을 갈고닦으면서 다스리는 길’을 알려줍니다. 싸움이 아닌 사랑을 가르치는 푸른별 할아버지가 있기에, 싸움별 아기는 푸른별 아이로 거듭납니다. 할어비는 싸움이 아닌 ‘몸 갈고닦기하고 다스리기’를 아이한테 물려주고서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이봐, 앞으로 며칠이나 더 이러고 있어야 하지?” “자네는 오공 군보다 더 스피릿이 불안정해. 우선은 몸과 마음의 균형을 맞춰야 하지. 참고로 오공 군은 거기서 150일 정도 있었어.” “배, 150일이라고?” (51쪽)



  그저 싸움박질만 가르치고 배우면서 물려받는 곳에서 자라나는 아이라면 마땅히 싸움박질을 배우겠지요. 싸움박질로 위아래를 가를 테고, 싸움박질로 빼앗거나 괴롭히는 짓이 흔할 테고요.


  오직 사랑을 가르치고 배우면서 물려받는 곳에서 자라나는 아이라면 무엇을 배울까요? 사랑으로 어깨동무하면서, 사랑으로 나누거나 보듬는 손길이 언제나 눈부실 테지요.


  우리는 어느 길을 걸어갈 적에 스스로 즐겁거나 아름다울까요? 우리는 어느 길을 등돌릴 적에 스스로 바보스럽거나 따분할까요?



“저 녀석들이 수련 중이라고 말했지?” “네, 그때 도망친 줄로만 알았습니다만,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다니 놀랍군요.” “그렇다는 건, 조금만 기다리면 더 거대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건가?” (86∼87쪽)



  우리나라에서는 오래도록 나쁜만화라는 손가락질을 받은 《드래곤볼》이 있어요. 모든 줄거리가 싸움이요 죽임짓이니 섣불리 좋은만화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좋다 나쁘다’라는 틀을 내려놓고서 생각해 보기로 해요. 만화책이 싸움판을 다루어서 안 좋다면, 이 나라 정치나 경제나 문화나 종교나 교육은 어떠한지요? 이 나라에서 싸움판 아닌 데가 있는가요? 이 나라 아이들은 배움길이 아닌 입시지옥을 걸어야 합니다. 입시지옥을 빠져나온 다음에는 취업지옥이에요. 취업지옥을 겨우 빠져나왔더라도 ‘우리 집을 마련하는 불구덩이’가 잇따릅니다. 이 불구덩이까지 빠져나왔어도 ‘아이를 돌보는 수렁’이 잇달지요. ‘사회를 이룬 모든 길’은 고스란히 싸움판입니다. 우리 터전 어디에서도 싸움 아닌 길을 찾아보기가 만만하지 않습니다.


  입시지옥으로 나고 자라면서 어른이 된 몸으로 아이를 낳을 적에 아이한테 입시지옥 아닌 놀이터나 참배움터를 베풀 수 있을까요? 오직 입시지옥만 치르면서 어버이 자리에 선 사람이 아이들한테 학원이 아닌 놀이판을 같이 누릴 수 있나요? 《드래곤볼 슈퍼 12》(토요타로·토리야마 아키라/유유리 옮김, 서울문화사, 2020)은 《드래곤볼》로 잇던 기나긴 이야기를 마치고 또 마치고서 새로 그려내는 이야기입니다. 《드래곤볼 Z》도 있었는데요, 이 만화에서 꽃님으로 나오는 ‘손오공’은 푸른별 싸움판을 거쳤고, 푸른별을 깨뜨리려는 다른 별하고 맞서는 마당도 거쳤어요. 이다음에는 푸른별이 깃든 별누리 님(우주 하느님)을 만나는 마당도 거쳤고, 저승나라도 거쳤으며, ‘별누리 님’이 섬기거나 따르는 더 깊고 너른 ‘온별누리(은하계)’까지 거쳤어요. 미르구슬(드래곤볼)하고 얽혀 일곱 미르님이 맞물리는 싸움판마저 거친 손오공인데요, 이 끝없어 보이는 누리싸움판에서 새삼스레 ‘한별누리(모든 은하를 아우르는 한복판)’를 맞닥뜨립니다.


  이 한별누리에서까지 일어나는 새삼스러운 싸움판을 치러야 하는데, 언제나 더 높이 거듭나야 하는 길이에요. 싸움솜씨를 기르는 겉모습을 넘어, 푸른별을 사랑하는 마음을 어느 만큼 다스릴 수 있는가 하는 대목을 짚습니다.



“하계인들의 훈련을 봐주는 일이라면 저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경우는 지구의 음식이 목적이잖습니까?” “호호호, 전부 꿰뚫어보고 계시는군요.” “알겠습니다. 아슬아슬하긴 해도 규정을 어기지 않았다는 것 역시 사실이죠.” (101쪽)



  높고낮음을 가르기에 싸움판이 생깁니다. 높낮이가 없이 즐겁게 너하고 나를 가를 적에는 싸움이 아닌 어깨동무가 나타나지요. 너희랑 우리를 사랑으로 가를 적에는 싸움이 아닌 두레를 지펴요. 자, 생각해 봐요. 여러 나라가 있다면, 여러 나라는 싸울아비에 총칼을 앞세워 서로 으르렁거릴 노릇인가요, 아니면 서로 노래하고 춤추면서 아끼는 즐거운 눈빛으로 어우러지는 잔치가 될 노릇인가요?


  으뜸지기 한 사람만 가리는 길이란 따분합니다. 누구나 살림지기가 될 적에 신납니다. 꼭두지기 한 사람이 우쭐거리는 곳이란 무시무시합니다. 누구나 사랑지기가 되는 데라면 보금자리를 일굴 만해요.



“하하하, 우쭐대지 말게. 이건 꽤 고등 술법이거든. 자네에겐 아직 일러.” “칫, 그럼 어떤 걸 할 수 있지?” “우선 기초 중의 기초인 순간이동부터 가르쳐 주겠네.” “기초……인가? 순간이동이?” (106쪽)



  푸른별사람은 그리 똑똑하지 않다고 합니다. 잊은 길이 수두룩하거든요. 마음으로 움직이고, 마음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날고, 마음으로 넉넉할 숱한 길을 죄다 잊은 푸른별사람이라고 합니다.


  푸른별에서 싸움이 안 그치는 까닭은 바로 이 하나 때문이지 싶어요. 스스로 하늘을 날고, 스스로 몸을 고치고, 스스로 마음눈을 뜰 줄 안다면, 배고프거나 가난할 일이 없어요. 스스로 나는 길을 잊고, 스스로 사랑하는 길을 잃으려 하니, 푸른별사람은 자꾸자꾸 다른 사람 몫을 노리거나 군침을 흘립니다. 스스로 짓기보다는 또다시 이웃사람 몫을 훔치거나 가로채려 하지요.



“어떻게 된 거지?” “방금 그것이 자네가 본래 가지고 있던 힘이라네. 수련하기 전, 자네는 스피릿과 육체의 균형이 맞지 않아서 자신의 힘을 밖으로 잘 내보내지 못하고 있었어.” (113쪽)



  《드래곤볼 슈퍼》에서 꽃님 손오공이 나온다고 했는데, 손오공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꽃님입니다. 저마다 다르게 빛나면서, 저마다 다르게 길을 가는 꽃님이에요. 한동안 ‘저 혼자 잘난 줄 여긴’ 엉성쟁이였다면, 누구보다 어수룩하지만 착하고 참된 마음을 빛내는 손오공하고 얼크러지면서 ‘스스로 착하고 참되면서 즐겁게 살아가는 길’을 스스로 찾아나섭니다.


  손오공은 딱히 일깨우거나 가르치는 꽃님이 아닙니다. 손오공은 늘 스스로 갈고닦으면서 다스리려는 숨결입니다. 더 높거나 잘나려고 갈고닦지 않아요. 곰곰이 생각할수록 ‘이다음으로, 이 너머로 가는 길이 있을 텐데?’ 하고 느끼기에, 이렇게 느끼는 대로 한 걸음 두 걸음 꾸준히 나아가려 하는 손오공입니다.


  살아가는 길은 끝이 아니라 걸음인 줄 아는 손오공이에요. 오늘 하루는 아침저녁으로 누구나 똑같이 흐르는데, 이 똑같은 하루를 스스로 다르게 가꾸어서 어제랑 다르게 북돋우려고 하는 손오공입니다.



“피콜로, 우린 필요없었던 거냐?” “아니, 이제부턴 너희가 아니면 싸우지 못한다. 기가 존재하지 않는 인조인간이 아니면 말이야.” (186쪽)



  마음을 품기에 합니다. 마음을 안 품으면 안 하거나 못 합니다. 마음이 있기에 움직입니다. 마음이 없으면 어디로든 가지 않거나 못 해요. 아기는 스스로 마음을 품기에 목을 가누고 몸을 뒤집고 일어서고 걷고 달리고 뛰고 춤추고 노래합니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가는 모든 숨빛이 스스로 즐겁게 노래하는 모습을 돌아본다면, 우리는 날갯짓이나 헤엄질 모두 스스로 마음이 있을 적에 해내는 줄 알아차릴 만해요.


  마음으로 합니다. 아니, 마음이기에 갈고닦거나 다스립니다. 마음이 아니기에 싸웁니다. 마음이 아니라면 다투거나 윽박지르거나 자랑합니다. 마음이기에 사랑스레 피어나는 길을 가요. 마음이 아니기에 그저 뜻모른 채 싸우다가 스스로 쓰러지고 이웃이며 동무도 나란히 죽음길입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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