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부침개와 책읽기
옆지기 귀빠진날을 맞이했다.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어제부터 곰곰이 생각했다. 귀빠진날이 닥치고 나서 생각한대서야 무얼 달리 뾰족히 할 만할 수 없겠구나 싶은데, 요 몇 해 사이 무슨 일을 하든 하나하나 차근차근 내다보면서 헤아린 일이란 거의 없지 않느냐 떠올린다. 미리미리 살피거나 보듬지 못하기 일쑤라고 느낀다. 숱한 집일이 밀려드니까, 이 집일을 껴안기만 하더라도 다른 일은 하나도 할 수 없다. 새벽과 밤에 잠을 쪼개어 글조각을 붙잡는데, 졸립거나 고단한 몸을 버티며 글조각을 붙잡는 일이란 퍽 부질없거나 덧없는지 모른다.
옆지기 귀빠진날인 오늘은 새벽 여섯 시 이십삼 분에 일어난다. 요즈음 새벽에 꽤 늦게 일어난다. 새벽 서너 시쯤에 일어나서 일손을 붙잡아야 그럭저럭 글조각 보듬기를 할 만한데, 새벽 여섯 시라면 너무 늦다. 이때에 일어나면 거의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아침 일곱 시부터는 아침밥을 차리느라 부산을 떨어야 하니까. 일곱 시 이십 분이나 삼십 분 즈음에 쌀을 씻어 불리고, 아침에 끓일 국을 무엇으로 할는지 생각한다. 미역국이나 다시마를 넣은 국이라면 미역이나 다시마를 미리 손으로 끊어서 불려야 한다. 다른 국 또한 이무렵부터 국거리를 손질한다.
아이는 오늘 따라 아홉 시 반 즈음에 일어난다. 요 몇 달 사이, 다른 날에는 아침 일곱 시 반이나 여덟 시에 어김없이 일어났는데, 하도 신나게 뛰놀다 보니 오늘만큼은 꽤 많이 고단했나 보다. 열 시가 가까워 일어났는데에도 아침밥이자 낮밥을 먹을 무렵부터 눈가에 졸음이 꽤 쌓인 모습이다.
느즈막하게 일어난 아이를 데리고 비탈논으로 간다. 우리가 짓는 비탈논은 아니고, 웃마을 이오덕학교에서 짓는 비탈논이다. 이 비탈논 둑자리를 따라 송송 돋는 쑥을 뜯는다. 아이는 처음에 몇 차례 아버지 흉내를 내어 쑥을 뜯어 보더니, 이내 논둑이며 논바닥이며 뛰어다니며 노래를 부른다. 신나게 잘 논다.
저녁밥을 차리려고 또 한 번 아이를 데리고 논둑으로 나온다. 아이는 아이대로 마음대로 노래하면서 뛰놀고, 아버지는 바지런히 쑥을 뜯는다.
내가 옆지기한테 해 줄 만한 선물이란 무엇일까. 없는 돈으로 무엇을 해 줄 수는 없다. 무언가 먹고프다 한다면 자전거를 몰고 읍내로 달려가서 장만한 다음 낑낑대며 돌아올 수 있겠지. 지난 한 해 동안 튀김닭 한 번 피자 세 번 자전거배달을 했다. 이 멧골자락까지 날라다 주는 곳은 없으니까.
오늘은 아침과 저녁으로 쑥부침개를 해 본다. 아침에 마련한 쑥부침개에는 밀가루가 좀 많이 들어간 듯해서 저녁에 하는 쑥부침개에는 밀가루보다 쑥을 훨씬 많이 넣는다. 아침보다 곱절을 더 뜯은 쑥으로 부침개를 해 보았다.
따지고 보면, 저녁에는 쑥부침개라기보다 쑥버무리튀김에 가깝다. 조금 더 바삭하게 되도록 해야 할 텐데, 아직 잘 안 된다. 불을 꽤 작게 해서 스텐팬으로 했는데, 불을 이보다 훨씬 작게 하고 기름을 더 적게 둘러서 해야 할까. 불크기는 알맞은데 기름을 살짝 더 둘러 볼까.
인천 골목동네에서 살다가 멧골자락 작은 집으로 옮긴 우리들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라면 봄에는 봄내음이 물씬 나는 밥상을 차리는 데에 있지 않을까 살짝 생각해 보았다. 나는 아직 나물을 잘 모른다. 하나씩 배워야 할 텐데, 책으로는 배울 수 없을 듯하다. 이 풀 저 풀 뜯어서 먹으며 몸으로 배워야 하겠지. 망초도 어찌저찌 먹어 보려 하다가, 텃밭을 고르며 하도 많이 나와서 망초를 데치거나 볶거나 어찌저찌 해서 먹어 보려던 마음이 싹 가셨다. 사람들이 왜 망초를 잘 안 먹는지 알 만하다고 느꼈다. 이렇게 질리게 금세 돋아나며 텃밭을 뒤덮으니까, 이 망초를 솎아내자고 얼마나 고달프겠나. 따지고 보면 쑥도 금세 퍼져서 돋곤 하는데, 쑥은 사람한테 향긋한 냄새이면서 봄맛을 돋우기 때문에 그닥 안 싫어할까. 그러나 텃밭 풀을 뽑고 흙을 갈아엎을 때에는 나 또한 쑥이고 뭐고 가리기 힘들더라. 꽃다지이건 뭐건 하나하나 따로 갈무리하기 벅차더라. 참말 손바닥만 한 텃밭을 갈면서.
쑥부침개를 아침과 저녁으로 내리 하면서, 국에도 쑥을 꽤 넣어 본다. 국을 마시며 가만히 코를 킁킁거리면 쑥내가 난다. 이 쑥을 앞으로 며칠 더 즐길 수 있을는지, 또는 4월 내내 쑥을 즐길 만한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밥에도 쑥을 넣어 쑥밥을 해 볼 수 있을까. 옆지기한테 한 번 물어 보고 나서 쑥밥을 해 보고 싶다. 뜯을 사람도 적고 먹을 사람도 적으니, 온 논둑과 밭둑 쑥은 도맡아서 뜯고 도맡아서 밥거리로 마련한다. 쑥떡까지는 못할 듯싶지만, 쑥밥은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쑥부침개는 옆지기한테 어줍잖게 내민 선물이라면, 쑥밥은 나한테 남우세스레 내미는 선물이 될까. 그러면 아이한테는 어떤 쑥을 내밀어 주면 좋으려나. (4344.4.13.물.ㅎㄲㅅㄱ)
아침이자 낮밥...
저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