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꽃과 책읽기


 단풍꽃을 본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때에 보고는 단풍꽃을 아주 오랜만에 본다. 단풍꽃이 지고 단풍씨가 맺으면 팔랑팔랑 팔랑개비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땅으로 내려온다. 단풍씨가 저절로 떨어지기를 나무 밑에서 기다리기도 하지만, 손으로 단풍씨를 똑 따서는 위로 던져 빙글빙글 돌며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기도 한다.

 이제 이 단풍꽃 봉오리가 흐드러지게 터지고 나면 단풍씨가 알알이 맺힐 테고, 이 단풍꽃이며 단풍씨이며 아이와 함께 가만히 바라보면서 멧자락 나무살이를 껴안으리라 본다.

 내가 이름을 아는 나무를 바라본다. 내가 이름을 모르는 나무를 바라본다. 내가 이름을 아는 나무는 이름을 아는 대로 반가이 줄기를 쓰다듬으면서 바라본다. 내가 이름을 모르는 나무는 이름을 모르는 대로 살가이 잎사귀를 어루만지면서 바라본다. 새로 돋은 잎을 하나 골라 똑 뜯어서는 입에 넣는다. 살살 씹는다. 그리 멀지 않던 지난날, 먹을거리가 없던 시골사람은 느티나무 잎을 뜯어서 떡으로 쪄서 먹기도 했다고 들었다. 느티나무잎을 뜯어서 먹어 보면 퍽 먹을 만하다. 다른 나뭇잎도 뜯고 풀잎을 함께 뜯어 먹으면 꽤 괜찮다. 그러나 나무도감이나 식물도감에는 나뭇잎을 어떻게 먹으면 되는지, 나뭇잎마다 맛이 어떻게 다른지는 안 적힌다. 단풍잎을 먹어 보면 어떨까. 아직 활짝 펼쳐지지 않은 여린 단풍잎이라면 살짝 뜯어서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어제는 햇살을 듬뿍 받는 단풍꽃을 바라보았고, 오늘은 빗물을 흠뻑 머금는 단풍꽃을 바라본다. 사람들은 가을날 단풍잎이 바알갛게 물든 모습이 곱다며 ‘잎사귀 구경’을 다니는데, 단풍꽃이 감붉은 빛깔로 어여삐 봉오리를 터뜨릴 때에 ‘꽃 구경’을 다니는 일이 없다. 어쩌면, 단풍나무에 단풍꽃이 피는 줄을 모르기 때문은 아닐까. 감나무에는 감꽃이 피고, 느티나무에는 느티꽃이 피며, 오얏나무에는 오얏꽃이 핀다. (4344.4.2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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