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저녁까지
밤을 지나 새벽으로
봄비 한 줄기
온 들판
따사로이 적신다.

 

마늘밭이 젖고
세멘기와 지붕이 젖고
앙상한 모과나무가 젖고
꽃봉오리 터뜨리려는 후박나무가 젖고
세멘으로 닦은
길바닥과 마당이 젖는다.

 

아침과 낮과 저녁
집식구 옷가지와 기저귀
차근차근 손빨래 한다.

 

우리 집에
아직
빨래기계 없다.
내가 늘 집에서 일하니
내 몸이
빨래 예쁘게 건사한다.

 

체르노빌
드리마일
후쿠시마

 

여기에
영광 고리 월성 기장
또는 새로 어느 곳
이름 몇 글자
더하지 말란 법 있을까.

 

전기 없는 날
틀림없이 찾아올 테니
전기 없는 삶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온 하루 축축한 집안에
불을 넣는다.
깊은 새벽에 겨우 마른
기저귀를 갠다.

 


4346.3.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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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밤하늘
새까맣게
물들인
구름

 

사이사이
하얗게
달빛
어린다.

 


4345.3.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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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승달

 


별빛까지 잠든
그믐밤
비로소
물러서며
초승달
예쁘게 뜬다.

 

첫째 아이
손톱 끝에도
초승달
둘 뜬다.
오늘도 미처
못 깎이고 재운다.

 


4345.2.2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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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꿈치

 


뱃속 벌레 잡는 약
면내 약국으로 사러
자전거에 수레 달아
첫째 아이 태우고
봄햇살 봄바람 누리며
천천히 달린다.

 

집을 나서기 앞서
둘째가 똥 푸지게 누어
밑 씻기고
똥기저귀 빨아
후박나무 빨래줄에 널었다.

 

약 한 봉지 사서
집으로 돌아오니
팔꿈치가 저리다.

 

이 팔꿈치는
2004년 한여름 한낮
자전거 타고
내리막길 달릴 때
짐차가 갑자기 앞에
확 끼어들기에
부리나케 서느라
길바닥에 몇 바퀴 구르며
망가졌다.

 

짐차는 뺑소니쳤다.

 

내 손목은
1998년 한여름 새벽
신문배달 마친
빈 자전거로
지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골목서 불쑥 튀어나온
여름휴가 간다던 네 식구
까만 차가
뒷바퀴 들이받아
하늘 붕 날다
길바닥에 꽈당 꼴아박히며
으스러졌다.

 

여름휴가 까만 차는
미안하다 말하며
소식을 감췄다.

 

저녁나절,
첫째 아이를 씻기며
온 식구 옷가지를
빨래한다.

 

손목은 아무것
못 느낀 지 오래.
팔꿈치는 전기
지릿지릿 오며 괴롭다.

 

애벌빨래 마치고서
국을 데우고
양상추무침 마련한
밥상 차려
다 씻긴 아이
먹인다.

 

아이가 밥 먹는 동안
남은 빨래 끝낸다.
오늘도
잘 살았다.

 


4345.2.2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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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가
옆지기가 밭둑에서
돌을 하나 줍는다.
돌 모양이 참 예쁘단다.

 

발걸음 멈추고
옆지기가 주운 돌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래,
참 예쁘네.

 

옆지기가
예쁘게 바라보며
손으로 감쌌기에
예쁘게 생긴 돌
좋은 이름 얻는구나.

 


4345.2.2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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