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좋다 (사진책도서관 2016.9.30.)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숲노래+한국말사전 배움터’



  올 유월 즈음부터 사진책 이야기를 몇 꼭지 못 썼습니다. 새로운 사진책이 안 나왔기 때문에 못 쓰지 않았습니다. 올해에 내놓은 ‘새로운 한국말사전’에 마음을 쏟느라 손목이 버겁기도 했고, 이다음으로 내놓을 또 다른 ‘새로운 한국말사전’을 엮느라 바쁘기도 했습니다. 한 가지 핑계를 더 대자면, 좀 뻔한 사진책만 많이 보여서 요 몇 달 동안 사진책을 거의 안 장만했어요. 한국 사진밭이 어쩐지 자꾸자꾸 틀에 박힌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싶더군요. 스스로 제 삶자리에서 기쁨과 사랑을 찾아내어 조촐히 나누는 숨결로 나오는 사진책보다는 ‘유행·사조·예술’에 치우치기 일쑤이고, 다른 한 갈래에서는 ‘기록·보도’라는 틀에 얽매이기만 한다고 느낍니다. 지난 오월에 《나도 잘 찍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하고 《우물밖 여고생》이라는 사진책 이야기를 쓴 뒤, 거의 넉 달 만에 《꿀젖잠》이라는 사진책 이야기를 써 보았습니다. 넉 달 만에 비로소 마음에 드는 사진과 책과 이야기를 갈무리했어요. 사이가 참 뜸했지만 그저 좋습니다. 더 많은 사진과 책과 이야기를 다루어야 사진비평이 될 만하지 않으니까요. 그저 한 권이 있어도 좋고, 그예 한 권으로 삶을 노래할 수 있어도 넉넉합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도서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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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낫이 빠르다 (사진책도서관 2016.9.24.)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숲노래+한국말사전 배움터’



  풀을 베는 연장을 장만했습니다. 기름이나 전기를 먹이지 않고 손으로 밀어서 풀을 베는 연장입니다. 혼자서 낫질로 풀을 베기보다는 풀깎이를 써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풀깎이를 장만하느라 10만 원이 들었습니다. 어디 한 번 풀깎이로 밀어 보자 하고 미는데 줄기가 야무진 풀은 깎지 못합니다. 풀잎만 밀어낼 수 있다고 할까요. 낫으로 풀을 벨 적에 더 빠르네 하고 느끼지만, 구슬땀을 흘리며 이 풀깎이를 써 보자고 생각합니다. 이 연장이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제대로 못 밀 수 있을 테니까요.


  작은아이는 도서관에서 책으로 탑을 쌓으며 놉니다. 멋지네 훌륭하네 예쁘게 하고 말을 해 줍니다. 작은아이는 책탑이 왜 자꾸 쓰러지는지 못 깨닫습니다. 책이 다치니 말을 해 줄까 하다가 작은아이 스스로 깨닫기를 바라면서 혼자 놀도록 지켜보기로 합니다. 작은아이는 책탑이 무너지고 또 무너지고 자꾸자꾸 무너지는 일을 겪은 뒤 한 가지를 알아챕니다. 종이상자에 책탑을 쌓으니 무게가 한쪽으로 쏠려서 쓰러지는 줄 알아채요. 책상자하고 주판을 써서 기둥을 받치니 아까처럼 책탑이 쓰러지지는 않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도서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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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웃 (사진책도서관 2016.9.6.)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숲노래+한국말사전 배움터’



  봄부터 가을까지 도서관 문간에서 조그마한 풀개구리를 만납니다. 이 아이들은 늘 도서관 문간에서 놉니다. 때로는 유리문에 달라붙고, 때로는 문고리에 달라붙습니다. 때로는 내 어깨에 폴짝 뛰어내렸다가 물똥을 뽀직 싸면서 다시 뛰어오르기도 합니다. 어느 날에는 도서관으로 슬금슬금 들어옵니다. 뭔가 볼 만한 것이 있을까 궁금할 테지요. 너무 깊이 들어오다가 책꽂이 뒤에 숨으면 갇힐 수 있으니, 골마루를 기는 모습을 보면 살그마니 두 손으로 잡아서 바깥으로 내보냅니다. 풀개구리야, 너희는 바깥 풀밭에서 놀렴. 여름이 저물며 가을에는 한결 싱그러우면서 시원한 바람이 붑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도서관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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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문득 (사진책도서관 2016.8.28.)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숲노래+한국말사전 배움터’



  신나게 놀다가 어느 날 문득 한 가지를 배웁니다. 한 가지를 새롭게 배우면서 쑥쑥 자랍니다. 재미나게 일하다가 어느 날 문득 한 가지를 익힙니다. 한 가지를 새롭게 익히면서 씩씩하게 자랍니다. 아이들은 신나게 놀다가 스스로 문득 배우면서 자랍니다. 어른들은 재미나게 일하다가 어느 날 문득 한 가지를 익히면서 큽니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늘 새롭게 자랍니다.


  아버지 자전거를 밀면서 노는 작은아이가 어느새 자전거 키를 넘습니다. 제법 자랐구나. 작은아이는 요즈음 들어서 “나도 벼리(누나)가 앉는 자전거에 앉아 보고 싶어.” 하고 얘기합니다. 이제 키가 자랐으니 발이 닿을 수 있다고 여깁니다. 작은아이는 우리 도서관 곳곳에 있는 골판종이를 낑낑거리며 날라서 뭔가를 짓습니다. 놀이집을 짓고, 자동차가 지나갈 길을 짓습니다. 기다란 골판종이를 네모낳게 꺾어서 몸을 사이에 넣어서 웅크립니다. 숨기놀이를 스스로 지어냅니다.


  어느 날 문득 아이들을 보다가 이 아이들이 어버이한테 얼마나 기쁜 배움을 새롭게 일깨우는가 하고 느낍니다. 나도 이 아이들이 어느 날 문득 기쁘며 새롭고 재미난 배움을 새롭게 일깨워 주는 어버이 자리에 설 수 있어야겠지요. 도서관을 슬그머니 드나드는 사마귀 한 마리를 풀밭으로 옮겨 줍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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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노래》 부치기 (사진책도서관 2016.8.22.)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숲노래+한국말사전 배움터’



  아침을 지어서 먹인 뒤부터 봉투 쓰기를 합니다. 거의 보름을 기다린 끝에 닿은 새 봉투에 사인펜으로 주소를 적습니다. 소식지하고 봉투를 같은 날 주문했으나 봉투는 소식지보다 열이틀쯤 뒤에야 집에 닿았기에 소식지 담은 상자는 그동안 평상에서 얌전히 기다렸어요. 토요일에 봉투 상자가 닿았고 월요일 아침에 드디어 상자를 끌러서 주소를 천천히 적습니다. 오늘 몇 분한테 띄울 봉투를 적을 만할까 하고 생각하며 하나하나 쓰는데, 어느새 마흔 통이 넘어갑니다. 마흔 통쯤 꾸려서 우체국에 가야지 하고 생각하며 고샅을 내다봅니다. 지난 몇 해째 고흥군에서는 상하수도 사업을 한다면서 마을길을 죄다 파헤쳐 놓아요. 우리 마을도 달포 즈음 고샅길을 파고 뒤집고 덮고 다시 파고 뒤집고 덮기를 되풀이합니다. 오늘도 길을 다 까뒤집어서 대문 밖으로 아예 나갈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지? 그래도 봉투를 짊어지고 나갈까? 자전거를 끌고 나갈 수 없으니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 우체국으로 갈까?


  다시 마루에 앉습니다. 마루에 앉아서 봉투를 더 씁니다. 큰아이가 곁에 나란히 앉아서 봉투에 소식지를 넣고 봉투 끝을 접어 줍니다. 어느덧 예순 통째 봉투를 쓰고, 또 쓰고 마저 써서 일흔 통째 봉투까지 씁니다. 손으로 하나하나 주소를 적는 일은 꽤 품이나 겨를이 들어요. 문득 생각해 보니, 일부러 손글씨로 주소를 적기도 했어요. 우리 도서관 소식지를 받는 분들이 ‘봉투에 적힌 손글씨’를 반겨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어요. 요새는 손으로 주소를 적어서 편지를 띄우는 일이 드물거든요.


  지난 몇 해 사이에 살림이 꽤 후줄근해서 인쇄기 잉크를 장만하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이러다가 지난주에 인쇄기 잉크를 드디어 장만했어요. 다음에 소식지를 띄울 적에는 주소는 인쇄기로 뽑고, 받는 분 이름하고 우편번호만 손으로 적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주소를 종이에 뽑아서 오리는 일은 큰아이나 작은아이 모두 거들 만하고, 풀을 발라서 붙이는 일도 두 아이가 거들 만해요.


  큰아이는 저한테 뜨개치마를 선물했던 분이 문득 떠올랐다며 그분한테 편지를 썼습니다. 큰아이가 쓴 편지는 큰아이 가방에 넣고, 소식지 꾸러미는 내 가방에 담습니다. 상하수도 공사를 하는 분들이 어느새 고샅길을 덮어 놓습니다. 일을 마치시는가 봅니다. 잘되었네 하고 여기며 자전거를 끌고 나오기로 합니다.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우고 아주 천천히 달립니다. 바람을 가릅니다. 햇볕을 먹습니다. 즐겁게 우체국으로 갑니다. 소식지를 모두 부치고 나서 면사무소 마당에 있는 나무를 타면서 느긋하게 놉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작은아이는 자전거수레에서 새근새근 잠듭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도서관일기)


(‘도서관 지킴이’ 되기 안내글 : http://blog.naver.com/hbooklove/220188525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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