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노래》 부치기 (사진책도서관 2016.8.22.)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사진책도서관 숲노래+한국말사전 배움터’



  아침을 지어서 먹인 뒤부터 봉투 쓰기를 합니다. 거의 보름을 기다린 끝에 닿은 새 봉투에 사인펜으로 주소를 적습니다. 소식지하고 봉투를 같은 날 주문했으나 봉투는 소식지보다 열이틀쯤 뒤에야 집에 닿았기에 소식지 담은 상자는 그동안 평상에서 얌전히 기다렸어요. 토요일에 봉투 상자가 닿았고 월요일 아침에 드디어 상자를 끌러서 주소를 천천히 적습니다. 오늘 몇 분한테 띄울 봉투를 적을 만할까 하고 생각하며 하나하나 쓰는데, 어느새 마흔 통이 넘어갑니다. 마흔 통쯤 꾸려서 우체국에 가야지 하고 생각하며 고샅을 내다봅니다. 지난 몇 해째 고흥군에서는 상하수도 사업을 한다면서 마을길을 죄다 파헤쳐 놓아요. 우리 마을도 달포 즈음 고샅길을 파고 뒤집고 덮고 다시 파고 뒤집고 덮기를 되풀이합니다. 오늘도 길을 다 까뒤집어서 대문 밖으로 아예 나갈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지? 그래도 봉투를 짊어지고 나갈까? 자전거를 끌고 나갈 수 없으니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 우체국으로 갈까?


  다시 마루에 앉습니다. 마루에 앉아서 봉투를 더 씁니다. 큰아이가 곁에 나란히 앉아서 봉투에 소식지를 넣고 봉투 끝을 접어 줍니다. 어느덧 예순 통째 봉투를 쓰고, 또 쓰고 마저 써서 일흔 통째 봉투까지 씁니다. 손으로 하나하나 주소를 적는 일은 꽤 품이나 겨를이 들어요. 문득 생각해 보니, 일부러 손글씨로 주소를 적기도 했어요. 우리 도서관 소식지를 받는 분들이 ‘봉투에 적힌 손글씨’를 반겨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어요. 요새는 손으로 주소를 적어서 편지를 띄우는 일이 드물거든요.


  지난 몇 해 사이에 살림이 꽤 후줄근해서 인쇄기 잉크를 장만하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이러다가 지난주에 인쇄기 잉크를 드디어 장만했어요. 다음에 소식지를 띄울 적에는 주소는 인쇄기로 뽑고, 받는 분 이름하고 우편번호만 손으로 적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주소를 종이에 뽑아서 오리는 일은 큰아이나 작은아이 모두 거들 만하고, 풀을 발라서 붙이는 일도 두 아이가 거들 만해요.


  큰아이는 저한테 뜨개치마를 선물했던 분이 문득 떠올랐다며 그분한테 편지를 썼습니다. 큰아이가 쓴 편지는 큰아이 가방에 넣고, 소식지 꾸러미는 내 가방에 담습니다. 상하수도 공사를 하는 분들이 어느새 고샅길을 덮어 놓습니다. 일을 마치시는가 봅니다. 잘되었네 하고 여기며 자전거를 끌고 나오기로 합니다. 아이들을 자전거에 태우고 아주 천천히 달립니다. 바람을 가릅니다. 햇볕을 먹습니다. 즐겁게 우체국으로 갑니다. 소식지를 모두 부치고 나서 면사무소 마당에 있는 나무를 타면서 느긋하게 놉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작은아이는 자전거수레에서 새근새근 잠듭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도서관일기)


(‘도서관 지킴이’ 되기 안내글 : http://blog.naver.com/hbooklove/220188525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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